이 땅에서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육체적· 물질적 유한성에 따른 인
간의 수고로움은 원죄의 대가로, 고난과 시련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질병과 굶주림, 출산이라는 고통 속에서 생존을 위한 땀을 흘려야 한다.
실제로는 힘든 일이겠지만, 만일 믿음이 확고해서 영적 가치를 우선으
로 하여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자족과 감사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
을까.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령의 인도 속에서 지혜를 구하며 노력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수용한다면, 삶의 불안으로 인한 고통과 걱정
을 상당히 덜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간에게 고난을 주셨지만, 수
고와 연단을 거쳐 예수님을 따라 부활과 영생의 길을 예비하심에 소망
을 갖는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6:23]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고 나약하기에 죽음의 공포와 삶의 불안 속에
서 평안을 누리기란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죄인인 인간의 약점을 파
고드는 사탄의 교묘한 전략 속에서 탐욕과 나태, 쾌락에 빠지고, 교만과
아집으로 서로 상처를 주면서 끝없는 걱정·불안에 시달리며 사는 게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이는 사탄이 삶의 불안을 극대화하여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여 멀어지게 하며,
원죄의 결과로 죽음과 육체적· 물질적 한계에 맞닥뜨린 인간의 나약함을 자극하여,
나태 또는 그 반대인 탐욕의 불길로 끈질기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를 상대적 박탈감 또는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로 지치게 하고,
갈증으로 인한 갖가지 중독에 취약하게 만든다.
단순함이 답이라고 했던가.
이를 단순화하면,
욕구 좌절과 불안으로 인한 인간의 정신문제는
‘실낙원에서 마주치는 에덴의 상실감과 그 집착’에 닿아있으리라.
첫댓글
네...
귀한 말씀입니다
잘되면 내덕이요
못 되면 누구를 탓하기도요
미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