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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는 필리핀이란 나라는?
한번 읽어볼 만한 필리핀 역사 배우기
부족국가로 형성된 필리핀
16세기까지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部族)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스페인의 식민통치
1521년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도중 세부 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후 에스파냐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9세기 말까지 200년 이상 계속된 에스파냐의 통치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보급시켜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 교회
국가로 만들었으며 필리핀은 수도사(修道士)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 수도사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결국, 1898년에 미서 전쟁에서 패한 에스파냐는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필리핀의 지배권을 2,000만 달러에 미국으로 양도했다.
미국의 식민통치와 독립투쟁
그 후에도 필리핀 인의 독립투쟁은 계속되고 혁명 정부도 수립되었으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피딩스·막다피 법이 통과되어 10년 후에 필리핀 독립이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1935년에는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마누엘 케손이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치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마르코스의 집권 이후 경제 성장률이 떨어져 1969년에는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이 필리핀을 앞지르게 되었다. 현재는
경제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반면, 필리핀 정부 수립 때부터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빈부 격차가 필리핀
사회의 커다란 과제로 남아있다.
[지리]
자연
바나우에 계단식 논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동북단에 있으며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사이에 자리 잡은 대소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무인도에 불과해 사람이 사는 섬은 약
1,000개뿐이며 이름이 붙여진 섬도 약 2,70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필리핀 군도의 섬들은 환태평양화산호(環太平洋火山弧)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地震)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하다. 섬들이 지형은 대체로 산(山)이 많으며, 평야는 해안에 접한 저지대를 흐르는 하천 유역에 한정되어
있어서 농경지는 별로 없다. 필리핀은 화산 덕택으로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다. 특히 이 나라 최대의 섬인 루손 섬의 마욘 산은 원뿔형의 활화산으로 무척 아름답다. 루손 섬과 민다나오 섬의 면적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기후
열대성(熱帶性)이며 몬순과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년을 통해 기온이 높은 마닐라의 연평균 기온은 27도이다. 몬순은 6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南西)에서, 11월부터 3월 말까지는 북동(北東)에서 불어온다. 계절은 우기와 건조기로 나누어지며 군도의 동쪽과 서쪽에서는 건조기와 우기가 서로 엇갈린다. 태풍은 7월에서 10월까지의
시기에 내습하는데 특히 루손 섬은 매년 태풍의 통로가 되고 있다.
12~2월
이 시기는 필리핀의 겨울이며, 여름보다 비교적 기온이 낮고 비도 적다. 이런 경향은 마닐라를 포함한 루손 섬 북서부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건기라 해도 태평양 동해안에서는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3~5월
이 시기는 다른 나라의 봄에 해당하며, 필리핀에서는 아주 빨리 여름이 찾아온다. 그중에서도 5월 무더위의 낮 온도는 35~40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밤에도 기온은 아직 남아있어서 대개 25도 정도이다. 하지만, 아직
건기이기 때문에 더워지진 않다. 하지만, 바기오 지방은 이
시기가 되어도 시원하다.
6~12월
대개 5월에 여름이 끝나고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최근엔 기상이변으로 우기의 시작이 늦어지고 있다. 1983년에는 7월 중순까지 건기가 계속되기도 했다. 우기는 11월까지 계속되어서 이로 말미암아 비사야스 지방, 민다나오 섬 북동부, 루손 섬 동해안에서는 매년 태풍에 의해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
필리핀의 민족 구성은 복잡 다양하다. 대체로 네그리토 족·인도네시아 족·말레이 족이 중심이 되고 있는데 현재의 필리핀인 대부분은
말레이 족에 속한다. 이들 여러 민족 외에 화교와 메스티소라고 불리는 혼혈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화교가 경제생활에 공헌하고 있다면 메스티소는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고등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한다. 이 밖에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 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
족 등의 민족은 정령(精靈)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언어 또한 많아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 필리핀어이다.
행정 구역
필리핀의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필리핀의 행정 구역입니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이는 메트로 마닐라를 구성하는 하나의 시를 의미한다. 메트로 마닐라는 14개 시와 3개 읍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트로 마닐라를 통괄하는 행정기관은 Metro Manila
Developement Authority(MMDA)로 광역행정 업무를 협의, 조정하고 있다.
정치
아로요 대통령
마르코스 독재와 민중항쟁
1965년 대통령에 취임한 페르난도 마르코스는 1973년 국민 투표를 통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20년 장기독재 끝에 1986년 2월 민중들이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항쟁으로 마르코스가 축출되고 아키노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했다.
아키노 정부
1987년 2월 필리핀 신헌법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아키노 정부는 76.3%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3권분립의
대통령 중심제에 대통령의 임기 6년, 중임 불가를 규정한
새 헌법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군부 쿠데타가 반발하고 우파 세력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키노 대통령은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좌파·공산세력도 이에 강경으로 대처했다. 외교정책은 독립 후 친미 정책으로
일관했다. 1966년에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에 가맹하고, 1967년에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가입했다. 1970년대부터 독립 외교를 표방하고 중국·소련과의 광범위한 관계
수립, 동남아 제국 및 일본과의 관계 유지, 미국과의 균형관계
모색 등을 골자로 하는 신외교정책을 1973년 선언했다.
아키노 이후 정치변화
1992년 대선에서는 코라손 아키노 역사의 지명을 받은 라모스가 당선됐으며 1998년 5월에는 에스트라다가 당선되었다. 2001년 1월 아로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대외 관계
필리핀인은 일본 국내에서 국적별로 4 위의 인구를 가진 재일 외국인이다.
대한관계
대한민국과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1년 후인 1949년에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이듬해(1950년) 한국전쟁 때는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치안
군대
현역은 지원제이며 예비군은 대졸자에 한해 의무이다.
미흡한 총기정책
이 나라는 미국처럼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총기 소지에 대한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어린이들도 일반 총포점에서 탄약을 살 수 있다. 총포점은 큰 상가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많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더욱 위험하다. 택시
탑승이나, 밤늦게 거리에서 산책하는 일은 위험하며, 위협하는
일이 있어도 실랑이를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
도시 치안
잘 알려진 도시는 경찰들이 순찰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교육 수준 등이 높아 범죄율이 낮으며,
마을 형태로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입구나
출구 쪽에는 언제나 검문소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병원, 은행, 백화점이나 가게 등에서는 사설 경비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으며, 이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다. 출입구에선 언제나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며, 어느 곳에서나 총을 소지하고 있는 사설경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
농업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다. 전(全) 노동 인구의 5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쌀, 옥수수는 주식이며 아바카〔麻〕, 설탕, 담배, 코코넛은
중요한 수출품이다. 국민 생활의 기반이라고 둘 수 있는 농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생산성이다. 낮은 생산성의 원인 중 하나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 있다. 수많은
농민이 소작농으로 생산한 곡물의 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한다. 특히 곡창지대인 중부 루손에서 소작농의
수가 압도적인데, 이들의 빈곤은 사회 불안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공업
수출형(輸出型)·고용 증진형(雇用增進型)의 공업화가 1960년대 이후의
과제로 대두하었으며 계속되는 개발 계획에서는 경제 기반 정비, 투자 장려법, 중간 자본재 산업(中間資本財産業)·노동
집약 산업·중소 기업·지방 산업의 육성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아직 경공업 단계이다.
무역
무역에서도 경제의 식민지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농산물·광산물 등 1차 산품만이 수출되고 공업 제품은 수입된다. 주요 수출품은 코프라, 설탕, 목재, 아바카, 철광석 등인데 이 중에서도 코프라, 설탕, 목재의 비중은 커 이 세 가지 품목이 총 수출량의 3분의 2나 된다. 주요
무역 대상국은 미국과 일본으로, 이들 나라는 필리핀 총 수출분의
67%, 총 수입분의 50%를 차지한다.
사회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교회 즉, 천주교 국가로 플라자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생활 관습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이 짙게 풍긴다. 주요 도시마다 대부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천주교 예배당이 있는데 특히 필리핀의 로마 가톨릭 교회행사는 열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에는 많은 참회자가 실제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묶고 못까지 박아 예수의 고난을 연출하기조차 한다.
한편, 각 바랑가이(최소
행정단위)의 수호성인을 받드는 축제도 생활의 중요한 단면이다. 미국의
영향은 무엇보다 영어의 사용이나 교육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 국민의 3/4이 영어를 할 줄 알며 학교, 정계, 재계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교육 수준은 높은 편으로 초등 교육과
중학교 과정이 의무 교육제이며 문맹률은 10% 정도이다. 미국의
대학, 대학원으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미국과의 교수, 연구원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필리핀 사회는 빈부 격차가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심해 일부 부유한 상류층은 거액의 재산을 축적했지만 빈민가
촌에는 상수도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누추한 판잣집이 가득하며 매춘과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수도
마닐라 중심부에는 옛 에스파냐 요새와 기독교 공동묘지 등 과거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람이 많고 교통 혼잡이 극심한 편이다. 지프를 개조하여 요란한 장식물을 부착한 지프니가 눈에 띄는 명물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환락가에는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과 최고의 나이트클럽뿐 아니라 온갖 매음굴이 난무하고 있다.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필리핀의 언어입니다.
국어는 타갈로그어, 공용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이지만, 모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는 합계 172개에 이른다. 이것들은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분류되지만 거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사용되는 언어에는 중국어(베이징어나 푸젠어),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의 에스파냐어와 크레올어, 이슬람교도 사이에
사용되는 아랍어가 있다. 특히 에스파냐어는 2008년 1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학교에서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교육
필리핀은 대한민국처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은 국가이다. 아시아 최초의 대학인 세인트
토마스 대학교 등의 명성 있는 대학교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교육은커녕,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경우도 많다.
종교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즉, 천주교가 우세한 기독교 국가이며,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필리핀 기독교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천주교 신자(83%)이며, 그 외 필리핀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hines), 개신교(9%)가 있다.
필리핀 이슬람
필리핀 이슬람은 민다나오 섬에 많이 존재하는데, 이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천주교
신자를 이주시키는 종교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살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정령신앙 등의 토착 종교가 있었으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문화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천주교 문화가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고 남부의 큰 섬인 민다나오에는 이슬람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교통
필리핀의 교통에서는 해운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박의 항행으로 국토가 이어지고
통일되기 때문이다. 육상 교통으로는 철도가 루손, 파나이에서
경영되고 있다. 자동차 도로도 루손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