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일기를 쓰게하고, 슬픔이 시인을 만들었다" 이 얼마나 바람의 뼈를 토해내는 감성적이지 않은가. 그런 외로움과 슬픔이라면 돈을 주고 사겠다며 나서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화서2동주민센터, 주민자치교육프로그램인 문학창작 반 강의실의 얘기다.
매주 화요일 오후2시부터 2시간 동안 수업은 진순분 시인의 지도로 열린다. 진순분 시인은 수원의 오목천동이 고향이며,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과 문학예술 시 부문 신인상 당선, 한국시조 신인상 당선, 시조시학상 본상, 한국시학상, 수원문학작품상, 경기문학인상 등 그밖에도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먼저 함께 인사를 나누면 마음은 옛날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이날 1교시 수업은 '나도 시인이 될 수 있다'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꽃길도 혼자 걸으면 쓸쓸하고 외롭다. 교재의 첫머리에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걱정'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화자의 시적 발상을 더듬어보는 시간이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다박다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면/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 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 시의 어린 화자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열무를 팔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숙제를 다 끝내고 간절하게 엄마를 기다리지만 엄마의 배추잎 같은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이 배어난다고 했다.
또 이런 일은 어릴 적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 같다며, 선생님은 외로움 속에 어머니를 그리며 어린 마음에 일기를 썼다고 했다. 그런 슬픔이 시인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선생님은 어릴 적 아버지가 군인이었으며, 부대 이동이 많은 가운데 어린 동생들만 데리고 전방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런 탓에 할머니 집에 살며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눈물로 일기 숙제를 썼으며, 학교에서 숙제 검사를 하면 선생님은 잘 썼다며 앞에 나가 읽게 했다고 한다.
교실 안은 훌쩍거리며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하며, 마침내 교장선생님이 불러 이 아이가 일기 잘 쓰는 아이냐?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시고, 그 후 수원시 교육장상을 받게 되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노트20권을 받았을 때는 꿈처럼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고 한다.
광교저수지 길을 걸으며, 그렇게 일기 쓰기와 친해진 가운데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생 때는 책과도 더 친해졌다며, 수인선 철길 건너 고색동 친구네 집 고등학생 오빠가 있었는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처음 빌려다 읽었다며,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밖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파우스트, 데미안, 이광수의 흙, 정비석의 성황당,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 등을 읽었다며, 특히 이광수의 '무정'은 참 인상 깊게 남는다고! 그러면서 외롭고 슬픔만이 아니라 책도 시인을 낳는다며 책을 많이 읽으시라고 한다. 시집을 백 권 읽은 사람, 열 권 읽은 사람,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시를 가장 잘 쓸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일단 시를 써보는 일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보다, 책부터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때 묻은 시작 노트를 들춰 보이며, 산 역사 속 인생역전을 보는 것만 같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겠는가. 자신의 오롯한 문학적 역량을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충정일 것이며, 그런 선생님의 '아름다운 고뇌'라는 시를 보면 지난날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광교산 골짜기는 낭만이다. '구름이 벗어지네요/ 막막하던 하늘에/ 별빛이 내려오네요/ 이 길 밤새 걸어가면/ 어머니!/ 닿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먼 나라/ 이렇듯 그는 눈물 많은 소녀였던 것으로 보여 진다. 전방의 부모님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는 것만 아니었으며, 아버지의 불시 전역으로 가세가 기울어 4남매의 맏이로 배고픔과 아픔도 많았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었을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진순분 선생님은 그런다. 혹자는 '진분순' 이라고도 부른다며 남들은 이름이 많이 헷갈려한다고 한다. 하지만 진순분! 얼마나 진실하고 순수하며 분꽃 같은 이름인가. 동안의 인상은 연분홍 진달래꽃을 떠올리게도 하는 것이다. 거기에 포용의 가슴이 넓은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날 공부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마음에 드는 시 한편을 썼을 때 땅을 박차고 솟구치는 자아의 충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옛 선조들도 다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시를 알고 뜻이 맞는 이들과 시사를 결성하고 그 모임의 규약을 이렇게 정했다.'며 살구꽃이 피면 한차례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차례 모이고, 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차례모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지의 연꽃이 피면 한차례 모이고, 철철이 꽃 따라 모여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챙겨 시가를 읊조릴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 어찌 술 한 잔 그립지 않으리, 이 얼마나 시서묵객들의 낭만이 엿보이는 부러운 대목인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전날부터 카톡 방에 올라온 글은 오늘 수업이 끝나면 광교저수지 벚꽃구경가자 전해왔고, 그 마음들이 어찌 동요하지 않았을까. 불시에 정약용의 동호회원이 된 기분으로 우리는 합일했다. 그리고 저마다 벚꽃 가슴하나 안고 시 꽃들이 될 수 있었고, 보리밥 집의 도토리묵과 해물파전 안주의 막걸리는 어찌 풍진세상을 품어주는 시선주가 아니었으리. 광교산에는 연분홍 진달래꽃도 불콰하니 피어올랐다.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