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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성물관리 및 질서유지법
본 장에서는 성소 기구 중 매일 정리하는 등대 (1-4)와 일주일마다 한 번씩 교체하는 진설병(5-9) 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다. 이것들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한 신앙생활의 실물교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물 관리법을 다룬 뒤 후반부는 슬로빗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다 처형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는 범법자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등대의 기름과 진설병 떡은 일반백성들이 준비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공동체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제사를 드리는 신앙적 측면의 대신 관계뿐만 아니라 동료들에 대한 대인 관계의 문제를 취급하는 것을 보여준다.
삶이란 항상 다양성이 그 특정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간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신약의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생활의 양면적 특성을 일깨워주는 교훈이 된다.
등불 규례
1- 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 3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 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할지니라
이 규정은 성소 내의 등대에 관한 것이다. 성소 안의 등대에는 7 개의 동잔이 있었다. 이것을 때노라 (Menonrah)라고 부른다. 이에 관한 규례는 출애굽기 27:20 - 21 에 나와 있다.
이 등대에는 순결한 순결한 기름으로 끊이지 않고 켜지도록 기름이 떨이지지 않게 했다. 보통 기름은 감람나무(올리브)의 잎, 열매, 줄기 등을 함께 으깨고 걸러내 얻었지만, 등대에 쓰이는 순결한 기름은(출 30;8; 삼상 3:3) 감람나무 열매만을 재료로 해서 으깬 뒤 여러 번 정제하여 얻은 기름이다.
이 등대의 기름은 항상 켜져 있었는데, 이는 항상 드리는 제사로 일정 간격의 정한 때에 항상 제의가 반복되도록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조석으로 등잔불을 갈았는데, 조석으로 정돈했다. 두껍게 덮여있지만 창이 없는 성소 내부는 어두웠기 때문에 제사장이 활동할 수 있도록 등불을 항상 밝혔다 (PP, 348). 밤에는 전체를 다 켰고, 낮에는 그 중 3 개만 켰다고 요셉푸스는 언급한다 (Antiquities. 3. 8. 3). 등불이 켜 있도록 하기 위해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조절하여 둥잔불이 끊이지 않도록 정리했다.
번제단의 불이 항상 타고 있고, 진설병처럼, 이 등불도 항상 켜져 있었다. 이는 하나님은 빛이심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이다(시 27:1; 36:9). 그래서 그분은 어두움이 아닌 빛 가운데서 경배를 받으셔야만 한다(사 45:18 - 19). 인간의 삶 속에 성령의 은혜가 필요하다. 등불과 등대로 성령의 사역을 상징한다. 세상을 밝히는 등대로서 성도들은 빛의 사명을 다해야한다(마 5:12).
진설병 규례
5 - 9: 5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이로 하여 6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 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진설병은 제단에 바친 고운 밀가루로 된 떡을 말한다. 이것은 매 안식일에 교체된 후 제사장들의 몫이 되었다(출 25:30; 35:13; 39:36). 이는 공적인 소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매안식일마다 성소에 놓여졌기 때문에 진설병을 주님의 면전에 있다는 “임재의 떡 ” 또는 “얼굴의 떡” 이라고 불렀다. 마치 끊이지 않고 항상 드려지는 번제가 상번제라 불리어 졌듯이(민 28:3,6) 진설병도 항상 차려놓았다. 그래서 새 떡이 떡상 위에 놓이기 전에 옛것을 치우지 않도록 주의했다(대하 2:4). 이 진설병은 백성들의 필요를 항상 채워 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에 대한 중거이며 그분을 신뢰하는 이스라엘의 필요가 항상 주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유향은 향나무의 수지를 건조시켜 만든 향품인데, 남부 아라비아와 소말리랜드에서 자라는데, 미디안이나 에바(Ephah), 그리스, 그리고 스바인 (Sheba)들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으로 수입되었다(사 60:6; 렘 6:20). 정결한 유향은 진설병 위에 두었다가 화제로 번제단에 태워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시고 기뻐 받으시는 제물로 드렸다(2:2). 하나님의 기억을 새롭게 하여 그분으로 하여금 그분 백성들과의 언약적 사랑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후일 동방박사들이 이 귀하고 값진 선물을 예수님께 예물로 드렸다(마 2:11).
12조각 되어 있고 6개씩 2줄로 배열되었는데, 12지파를 상징했다. 이 떡은 누룩없는 것으로 후대에는 레위인들이 이것을 배열하고 준비했다(대하 9:32; Antiquities 3. 6~ 6). 이 진설병은 인간의 생명의 양식에 대한 항구적 필요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 주시는 은혜를 상징한다(마 6:31-34). 후일 다윗이 시장하여 이 진셜병을 먹은 예가 있고(삼상 21:1-6), 신약에서도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주님께서 바로 이 다윗의 진설병을 먹은 예를 상기시켰다(마 12:1-8). 이 떡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거룩한 것이었다. 신약에서 이 진설병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그리스도를 상징했다(요 6:51; 고전 11:24).
탈무드에 의하면 떡과 향단의 교체를 설명하는데, 두 명의 제사장은 새로 놓을 진설병을, 두 명은 새로운 향로를 가지고 돌아가서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서고, 교체할 진설병과 향로를 위해 각 두 명의 제사장은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섰다. 오래된 것을 새 것으로 교체하게 전에 먼저 새 것을 놓고 교체할 떡을 치웠다. 그래서 떡이 항상 여호와 앞에 있었다.
진셜병은 반드시 제사장과 그 가족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후일 다윗이 사울에게 피하여 도망하던 시절, 놈의 성소에서 아비멜렉에게 절박한 필요를 말하자 부녀를 가까이 아니한 자들은 먹으라고 하면서, 그에게 진설병을 주어 먹게 했다(삼상 21:2-7).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시장하여 이삭을 먹었다. 이로 인해 바리새인들에게 넷째 계명을 범했다는 힐책을 받게 된다(마 12:1-8; 막 2:23-28; 눅 6:1-5).
이에 예수님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떡을 시장한 다윗이 먹도록 한 아비멜렉의 담대한 행위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절박한 필요에 대한 상식적 태도와 동정이 율법의 자구적 해석보다는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신성모독자 처형
10-18: 10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된 자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중에서 싸우다가 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12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4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 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16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 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17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여기서는 출애굽 이후 신앙공동체에서 출애굽 당시 애굽인과 결혼한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이스라엘 자손과의 불화를 나타낸다. 주요 내용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사례로 엄정한 판단을 보여준다. 애굽에서 생활할 때 애굽인과 결혼한 경우가 있었고 이들 중 일부가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나왔다. 이런 결혼관계로 인해서 나중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출 12:38; 민 11:1,4).
이 젊은이는 애굽인 아버지에서 난 사람으로 이스라엘 진밖에 살았으나 진 안에 천막을 치려고 하다 문제가 발생하자 잘못을 뉘우치는 대신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했다. 문제가 발생하자, 하나님의 뭇을 기다렸다. 이는 신본주의의 사관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3번째 계명이 있지만(출 20: 7), 이 경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여러 상황 중 나타난 원칙이 있지만, 표면적 정황 너머에 있는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약점이므로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신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빗으로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다.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저주하는 말을 들은 모든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치라는 것이었다. 모독하는 말을 들은 모든 당사자들이 확실한 증거의 표로써 오염된 말을 한 당사자에게 죄를 전가시켰다. 본토인이든지 외국인이든지 그 이름을 저주하면 사형이 선고되었다.
여기서 저주하다는 말은 “가볍다, 경히 여기다,” “경멸하다,” “멸시하다”라는 의미이다(BDB, 886; GHCL, 733; THAT, 2:641-643). 그러나 훼방하다는 말은 “찌르다, 구멍을 뚫다” 동의 뜻으로 하나님의 성호에 구명을 뚫고 훼손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저주는 신명의 일반적 이름을 저주하는데 쓰였고, 훼방하다는 말은 언약의 하나님이며 개인적 성호인 야훼 즉 예수님의 이름을 훼방할 때에 쓰였다(Schult, DBAT 7 [1974], 31, m Sanhedrin. 7.5; b. Sanhedrin. 56). 이런 신성모독에 대한 가혹은 형벌은 당대와 후대의 교훈으로서 공동체의 연대성과 책임성 야훼 신앙의 숭고성을 보존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엄중한 경종이 된다.
동해 보복법
17-23: 17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19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20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것이며 21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22 외국인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히 할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2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 그들이 저주한 자를 진 밖에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 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여기서는 상해죄 중 동해 보복법 혹은 탈리오법(talio‘s law) 이라고 한다. 탈리오법칙은 고대근동의 정의의 표준이었다. 고대근동 세계에서 복수의 연속과 그 악순환을 막고자 어떤 피해를 끼친 자에게 동일한 상해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식으로 통일한 방법으로 보복한다는 복수법이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며,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아야 했다. 이로써 하나의 피해에 대해서 둘이나 그 이상의 보복을 막도록 한 것이다. 정확히 측정가능하고 동일수준의 보복만을 규정하는 법이다. 이는 함무라비 법전(# 190) 과 그 이전의 법인 리피트 이쉬타르 법전(Lipit-Ishtar, # 25) 에 도 나온다.
여기서 이 법의 정신은 그대로 존속한다. 악행에 대한 국가의 처벌이다. 이것은 악을 제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 법정신을 확대 설명하셨다(마 5:28-44).
구속사관
예수님은 위에서 다룬 등대와 진설병의 상징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 (요 8:12; 9:5)고 말씀하시고, 역시 “나는 생명의 떡" (요 6:35,48) 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의 이러한 말씀들은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성소의 등대와 진설병의 효험들과 기능들을 충족시키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신다. 성소제도에서의 이러한 제의는 오늘날 교회를 통해서 신자들에 게 제공된다.신자들은 빛이신 주님을 따르고 그분께서 주시는 빛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또한 성령께서 개인의 삶에 빛으로 채우시고 빛을 추구하는 생활을 해야한다(요 1:5).
신자들은 성만찬에서 예수님의 몸에 참여한다.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의 공로를 통해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 신앙 공동제의 축제에 참여한다. 또한 생병의 떡이신 예수님을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연구하고 그것을 내재화시키고 삶에 실천할 때 선자들은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으로 굶주린 세상에서 생명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된다. 신성모독죄는 신약에서도 엄하게 다스려진다.
셋째 계명은 하나님의 성호를 잘못 말하는 모든 것을 금한다(출 20:7; 신 5:11).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맹세하지 말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경히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런 원칙에서 말씀하시고(마 5:37) 야고보와 사도 바울도 신성모독죄를 엄히 경고한다(약 3:9-12; 덤전 1:20).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일상의 말을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권고한다(골 4:6).
고대 이스라엘에서 맹세는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처럼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에도 그렇게 나타났다(왕상 21:1- 14).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최후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목의 신성 모독죄로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마 26:65). 동일하게 스데반도 이러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행 6:8-15; 7:54-60).
신약에서는 통해 보복법을 신학적 개념극복으로 설명한다. 구약적 보복법올 더 높은 사랑의 상위법에 굴복시키도록 신학적 개념극복으로 설명하신다. 심지어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 (마 5:39)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대한 자구적 해석과 적용은 어려운 일이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신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의롭게 주장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분쟁과 갈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학대와 욕설을 당할 때, 신자들은 백성들 가운데서 평화를 추구하고 예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나타내게 된다(마 5:13).
이러한 구속적 행위로써 신자들은 주님의 명령을 순종한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히 10:30; 레 19:18; 신 32:35).
신약에서는 정의의 문제를 세속 권력이 집행하도록 한다(행 25:11; 롬 13:4; 벧전 2:14.20).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때 기쁘게 불의와 능욕을 참도록 요구받는다(벧전 4:13).
이 말씀들에서 사회 정의는 시민 정부에 의해서 촉진될 수도있지만, 신자들 간에는 용서와 관용을 베풀 것을 권고한다.
교훈과 적용
1. 하나님 교회의 성물은 거룩하게 여겨지고 숭경의 자세로 대해야 한다. 모든 것이 지정된 절차에 따라서 취급되어야 한다. 특히 십일조 및 안식일 등 거룩한 것으로 선언된 것은 인간이 절대 가감해서는 안되다.
2. 등불이고 등대이신 주님은 우리 성도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구원의 빛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빛 가운데서 행할 때 우리는 죄악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자녀가 된다.
3.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신자들은 믿고 먹고 따라야 한다. 생명의 떡인 성경 말씀을 매일 연구하고 명상하며 실천해야 한다. 이웃들에게 이 생명의 떡을 나누어주는 사신으로 서야 한다.
4. 성도들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호를 써서 맹세하거나 세속적인 일에 함부로 이 이름을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5. 동해 보복법은 오늘날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 (롬 12:10) 라는 말씀처럼 사랑의 원리로 대체되었다. 이 원칙에 의하여 교인들은 교회에서 보복하거나 중상 모략 등을 피해야 한다.
6. 언약공동체에서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대신적 헌신과 사회적 및 대인관계 등의 복합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신자들은 상호간의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 빛이신 주님을 따르고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삶으로써 신자들은 세상의 빛과 먹이 된다. 또한 공동체에는 조직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서 세운 교회법을 준수하고 필요시 징계절차를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