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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
성경본문 : 느헤미야 13: 1-3
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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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지난 한주간 주안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사셨습니까?
어떤 분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또 다른 분들은 ‘정말 힘겹게 한주간을 보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당연히 하루 하루의 삶이 좋은일만 가득하고 좋은날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어려움도 겪게되고 사람 때문에 상처도 받고 심지어 교회문제신앙문제 때문에도 버겁고 힘들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많은 어려움과 힘든일들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예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의 삶은 매 순간 크던 작던 선택을 통해서 이어져 갑니다.
오늘 현재 여러분의 모습은 과거의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또 여러분이 오늘 앞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속에 어떻게 하면 바른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떻게 유익한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르고 유익한 선택을 바라는 그 욕구 때문에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많은 사람들은 분별력과 비전을 꼽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분별력과 비전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분별벽이란?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세상 물정에 대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능력’ 즉 분별력이란 것은 올바른 선택을 뒷받침해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분별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자리에서도 혹시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그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면 무엇보다 지혜로운 분별력을 갖추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다운 덕소가족들이 무엇이든 지혜로운 분별력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의 13장 1-3절 말씀을 보았습니다.
얼마전에도 이 느헤미야서를 함께 보았습니다만 이 느헤미야는 13장으로 되어있는 느헤미야 = hy:m]j,n] 「여호와께 위로를 받음」이란 이름 뜻을 가진 선지자가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조국을 재건하는 그런 내용의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앞서 느헤미야 12장 27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간 160년동안 황폐되었던 이스라엘 성벽이 재건되면서 희망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12년간의 이스라엘 총독을 지낸후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 바사제국으로 돌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6절)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을 떠난뒤 1년여 동안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변질되고 혼란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할수없이 느헤미야는 다시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조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의 원칙을 강조하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서 그들이 지켜야할 삶의 원칙을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신앙도 있고 믿음도 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렸거나 혹은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별반 신앙의 무의미한 생활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신앙의 원칙들을 저 버렸기 때문에 오는 문제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원칙없는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말씀에 감격이 없고 신앙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과 저는 신앙의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 꼭 지켜야할 신앙원칙이 무엇인지 함께 도전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저와 여러분이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잠시 고국 이스라엘을 떠나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고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백성들 앞에서 말씀을 낭독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합니다.
13:1절 말씀을 보십시다. 본문 어떻게 본문이 시작되고 있습니까?
"그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3절 말씀에서도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라고 기록합니다.
느헤미야는 이 백성이 다시 이 말씀을 붙들 때에만 그들의 회복이, 행복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즉 느헤미야는 말씀을 떠나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삶에 지쳐있고 참된 행복을 회복하고 싶으십니까? 진정한 축복을 다시 누리고 싶어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른 것 그 어떤 것을 붙들려고 하지마시기를 바랍니다.
- 돈, 명예, 그 어떤것도 붙들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행복은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잠시 행복감을 가져다 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이 말씀의 진리를 붙들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시편1편에서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시편1편1절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리고 2절 말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렇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감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을 보면
그동안 아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지도자 모세가 죽은 뒤에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의 마음은 정말 참담했습니다. 200만명 이상의 백성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당장 요단강을 건너야 하고, 여리고성을 정복해야 합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자기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 말씀을 받은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 그는 연약한 자신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 어렵고 힘든 현실의 문제도 바라 보지 않았습니다.
- 앞으로 어떤 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 의지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여러분!
진정한 행복의 비결은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사실을 분별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낭독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고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이 다시금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 말씀을 회복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말씀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삶의 문제 직장문제 물질문제 이런 저럼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먼저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구별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읽고 첫번째로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암몬과 모압 사람들과의 분리였습니다.
13:1절 하반절입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왜 느헤미야는 그들과 분리시켰습니까? 그들의 세속적인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 분리 즉 구별을 요구한 것입니다.
13장 2,3절 말씀을 보십시다.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구별되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압과 암몬 자손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 생활할 때에 발락이라는 왕이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도록 만든 족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저주하지 못하게 하니까 머리를 써서 모압과 암몬의 예쁜 여자들을 이용해 광야에 정착하고 있는 이스라엘 남자들을 간음하게 하고 혼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압과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 속에 있는 죄성을 타고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죄를 짓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죄악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족속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과 암몬 족속의 악함을 역사 속에서 이미 경험한바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조국에 들어와 보니 모압과 암몬자손들과 결혼을 하고 이들을 통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스라엘의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못하니까 성경을 배울 수 없었고 말씀의 영향력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이방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 세워질 수 없다는 걸 느헤미야가 발견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 교훈을 통해 정말 하나님 안에 있는지, 아니면 세상 안에 있는지를 분별하라고 지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환경적인 동물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사물을 보는 각도와 이해하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세속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과 교제하고 있다면 거기서 나를 분리해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사람,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점검해 보십시오.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며 내가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세상과 잠시 떨어져야 합니다. 영적으로 새롭게 된 다음 그들을 찾아가 복음의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복음 안에서 복음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의 병든 가치관과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세상에 물들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깨우고 그들에게 인생의 참된 행복이 어디있는지 분별해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세워두고 살아가야합니다’.
본문 4절 이후이하를 보면 느헤미야가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릴 거제와 소제물을 쌓아두는 창고에 도비야라는 사람의 방과 물건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비야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했던 존재입니다. 바로 이 도비야가 엘리 아살이라고 하는 제사장과 친척 관계를 맺으면서 성전 안에 자기 방을 만들고 거기에 짐을 갖다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할 물건들로 채워야 될 그 방이 인간을 위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시 이 사건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다시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우리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될 신분인데 우리안에 우리 자신을 위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그와 타협하지 않고 그 세간을 방 밖으로 내어 던졌다고 8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가르칩니다. 그것은 바로 십일조와 안식일에 대한 우선순위였습니다. 십일조와 안식일만큼 신앙의 전반적인 부분을 진단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일조의 실천은 무엇보다 우리의 소유가 우리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것임을 의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십일조 정신을 가르칠때 가장 큰 의미로 강조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10분의 1만이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인데 그중에 10분의 1을 온전히 구체적으로 구별하여 주께 드림으로 그 나머지 10분의 9까지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부분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만일 10분의 1도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가 10분의 9를 주의 뜻대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살수 있다고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는 자기 백성의 행복을 위해 생애를 바친 지도자로서 무엇보다 이 십일조의 회복을 열망한 것입니다. 드디어 백성들은 순종을 결단합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13:12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행복을 회복하는 전기가 된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 일주일 7일이 모두 주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의 하루를 구별하여 주를 예배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로 보냄으로 나머지 6일의 주인도 하나님 이신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매시간 시간마다를 주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성도가 일주일의 하루인 주일도 주의 뜻대로 구별하여 사용할줄 모른다면 우리는 그가 나머지 6일을 주의 목적을 따라 시간 낭비없이 선용하리라는 것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는 13:17에서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백성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안에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은 말씀의 회복입니다.
거룩한 구별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분별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이런 축복의 삶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