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미터급 히말라야 봉우리 가운데 인간에게 최초로 문을 열어준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이라 일컬어지는 그곳에 히말라야 오지마을 문화체험단이 1월 8일 12박 13일의 일정으로 발을 내디뎠다. 학생이 중심이 되고, 가족이 함께한 히말라야 오지마을 문화체험단은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에 도착하여 야크인 예티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대형버스에 짐을 옮긴 체험단원들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목적지로 출발한다. 카트만두를 벗어나니 저 멀리 랑탕의 설산이 우리를 반겨준다.
단원들이 피곤에 떨어질 쯤 도착한 포카라는 한산하다. 오늘이 번다!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행동하는 일종의 파업이다.
휴양도시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산군 트레커와 등반자들의 최종 점검지이자 휴식처다. 안나푸르나 산군이 한눈에 들어오고 거대한 페와호에 투영된 히말라야의 모습이 트레커들을 히말라야의 공간으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체험단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시발점인 페디에서 승합차로 갈아타고 담푸스로 향한다. 담푸스에 도착, 처음으로 대하는 롯지에서 단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닭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롯지 위 자그마한 운동장에서 어둠을 뒤로한 채 현지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며 뛰논다. 어둠 속에 우리 단원들은 공을 따라가기도 급급한데 현지 어린이들은 잘도 가지고 논다.
이른 아침 멀리 마차푸차레의 여명과 함께 눈을 비빈다. 다음 경쾌한 출발소리와 함께 체험의 첫발을 내딛는다. 마을을 통과하여 숲으로 들어서고 만년설산을 적당히 내리쬐는 태양빛을 벗 삼아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포타나 마을을 지나 도착한 돌카 마을 입구에서는 학교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걷고 있다. 산허리를 가로질러 이어진 길가에서는 마을 아낙이 소일을 하고 히말라야 개는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산 전체에 만들어진 다랑이논 사이로 집들이 드문드문 이어져 있고 지붕 개량을 하는 마을 주민들의 손길은 여유가 있다.
민가가 촘촘히 이어지며 제법 큰 롯지들이 나타난다. 이곳이 오늘의 숙박지이자 학교 방문행사 계획이 있는 란드룩 마을이다.
학교에 도착하자 1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우리를 환영해준다. 현지 학생들이 생화로 만든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우리는 방문의 목적을 설명하고 학생들과 함께 작은 운동회를 연다. 학생들이 함께하는 춤사위를 시작으로 떨어질세라 허리를 부둥켜안으며 진행되는 꼬리잡기, 닭싸움 단체전을 펼치고,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네팔 민요 레쌈삐리리,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며 서로의 우정을 쌓는다. 처음엔 서먹서먹하던 학생들도 모두가 함께 되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해가 서서히 기울고 우리는 준비해간 웨스트우드 의류와 대한적십자사 우정의 선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다. 학교 기부금도 듬뿍 낸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네팔에 이제 우리가 도움을 주는 것이다.
너무 기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니 준비해간 것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더욱 더 많은 선물을 준비해야 할 듯하다.
아침이 밝아오는데 설사 이야기가 한창이다. 몇 명의 단원들이 밤새 화장실과 긴밀한 접촉을 한 듯하다. 청주 남중 1학년인 변형준 외 세 명이 심한 모양이다. 일정이 순탄치 않을까 걱정도 되고 부모 떨어져 혼자 온 형준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롯지의 대표 아가씨 러비나양과 인사를 하고 멀리 보이는 안나 남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산위에서 내려오는 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시설을 지나 물가로 내려서니 오른쪽으로 거대한 폭포가 시원스레 내리 뿜는다. 폭포 아래의 평평한 공간에 위치한 롯지에서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형준이를 정경숙, 윤성희 사장이 데리고 온다.
지누난다에서 점심을 먹으며 후미와 연락을 하니 아직까지 형준이가 탈진상태란다. 일정을 늦추려다 고민 끝에 예정대로 촘롱으로 향하기로 한다. 이번 일정 중 가장 가파른 곳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고됨이 묻어난다.
어느덧 마을 입구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제법 잘 정리된 마을이다.
전망 좋은 롯지에서 방 배정을 하고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린다. 어둠이 깔리고 걱정이 깊어질 즈음 헤드랜턴 불빛과 함께 마지막 세 명이 들어온다.
형준이의 몸 상태가 조금 좋아졌단다. 그런데 이번엔 희섭이가 탈이 난다. 촘롱까지 올 때는 별 탈 없이 씩씩하게 올라온 희섭이다. 말없이 너무 많은 힘을 쓴 모양이다. 하루 정도 쉬려해도 일정이 녹록치 않으니 별 수 없이 희섭이를 정경숙, 윤성희사장에게 부탁하고 다시 출발한다.
2744개의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끊임없는 내림길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든다. 계곡에 내려서서 티베탄 다리를 건너니 이번에는 하염없는 오르막길이다.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가 시야에서 비켜나고 먼지 나는 오름길에 몸이 처지기 시작할 즈음 시누와 고갯마루가 나타나고 마차푸차레가 우리를 반겨준다. 시바신이 신혼여행을 온 장소로 신성시되는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농심에서 제공한 둥지냉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오름길에서의 피로를 다스린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희섭이와 지친 학생들을 위해 도반까지의 목표를 밤부로 줄이기로 한다. 숙소도 문제가 없다는 스텝들의 확인을 받고서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는데 형준이, 공희, 기배가 나란히 설사를 한다.
30분 넘게 긴 언덕을 넘자니 저 멀리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에서 히말라야 원숭이들이 우리를 환영하며 곡예를 한다. 아직 청주 남성초등학교 4학년인 박윤지양은 묵묵히 제 갈 길로 가고 있지만 오빠들 따라가는 것이 벅찬 듯하다.
다른 단원들을 미리 보내고 윤지와 모처럼 천천히 가는데 갑자기 배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헉! 급설사! 잠깐 볼일을 보고 쉬고 있으려니 충주 중앙중 유영희 선생이 도착한다. 윤지를 부탁하고 정숙영 약사와 기배를 기다려 배낭을 받아가지고 함께 출발한다.
그런데 밤부에 숙소가 꽉 차 원래 예약했던 도반으로 가야 한다는 무전이 온다. 큰일이다. 희섭이가 뒤에 있고 기배 또한 상태가 좋지 않으니 걱정이 앞선다. 오늘 모두 도반에 도착하려나?
빨리 출발하라는 교신을 하고 서두르는데 생각보다 밤부가 꽤 멀다. 도반에 도착 했다는 연락을 받고 인원확인을 주문하였는데 유영희선생과 윤지가 보이지 않는단다. 암담하다. 이어둠에 별 생각이 머리를 짓누른다. 빨리 셀파를 보내 확인하라 이야기 하고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다시 무전이 온다. 모두 무사히 도착 하였다고. 긴장된 마음을 쓸어 담고 도반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온다. 롯지에서 윤지에게 놀라지 않았는가 물어보니 대견하게도 담담해한다. 감사하다.
저 아래 시누와에 몸이 아픈 희섭이와 보호자 둘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침낭과 약과 먹을 것을 내려 보낸다. 자신의 몸을 추스리기도 어려운데 약을 지어주신 정숙영 약사님과 묵묵히 할 일을 해주는 스텝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공희는 토했다 하고 정숙영 약사 모자는 너무 지쳐 이곳에서 쉬어야겠단다. 모자의 일정은 시누와팀이 올라오면 결정하라고 하고 출발한다. 공희는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제발이지 모두 다함께 안나푸르나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걸음을 옮긴다.
용현이와 윤호는 아버지인 최양재 선생과 이재룡 선배의 영향인지 모두 건강해서 큰 걱정이 없다. 형준 또한 씩씩하다. 어른들은 상태가 다 좋다. 윤지가 조금 힘들어하지만 자기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
데우랄리를 지나니 천지가 눈에 덮여있다. 이곳부터는 거대한 협곡이다. 햇빛에 녹은 눈이 신발을 적시고 미끄럼도 함께 가져온다.
모디콜라의 협곡을 걷는다. 거대한 절벽 사이로 걷는 우리 모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잡초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나를 더 가지려고, 하나를 더 얻으려 애쓰는 인간 속세의 모습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저 멀리 강가푸르나가 눈에 들어오고 마차푸차레가 거대한 벽을 내밀 때, 마차푸차레 BC 롯지에 당도한다. 날씨가 제법 차갑다. 하나둘 롯지에 도착하고 그간 학생들 간호하느라 우리와 떨어져 있던 정경숙 사장과 유영희 선생, 강종묵 학생이 나란히 들어온다.
너무 감사하고 반갑다. 우리보다 반나절이나 먼 곳에서 출발하여 함께 이곳에 닿은 것이다. 도반에 있던 정숙영씨 모자는 시누와로 내려갔고 희섭이는 그곳에 남기로 하였다고 전해준다.
식사 후 모두에게, 준비해간 압축 산소인 산소샘을 마시게 한다. 지난번 이곳에서 몇 명이 고소로 고통을 호소하였기에 미리 준비한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고소의 고통을 호소하는 단원은 없다. 산소 때문일까? 예단은 할 수 없지만 압축 산소는 분명 어떤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하늘에 별들이 제법 노닌다. 마차푸차레 위에서 빛나는 별, 안나 남봉을 비추는 별, 머리 위를 수놓는 별들의 향연에 잠시 넋을 놓는다.
새벽 4시 50분. 별들도 고요한 새벽에 우리는 떡국을 먹고 출발을 서두른다. 몸의 상태는 모두 양호하다. 어둠 속을 뚫고 안나푸르나 베이스로 향한다. 어둠 속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살포시 웃는 달이 우리의 동반자다.
모두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가도 가도 끝없는 설원의 목표점, 오르고 또 올라도 다시 나타나는 오름길, 잠시라도 다리쉼하면 몸 깊이 들어오는 한기, 움직일 때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모두들 서서히 오른다.
ABC의 롯지가 눈앞에 나타나고 해가 서서히 안나푸르나를 비춘다. 어둠의 고요를 깨는 거대한 장관이 연출된다. 이동수씨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한덕동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태고의 신을 일깨우는 장엄한 광경을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ABC에 다다르니 벅찬 흥분이 밀려온다. 모두들 이상 없이 이곳에 당도했다. 도반에 있는 단원이나, 시누와에 있는 단원 모두가 마음으로 이곳에 함께 있다. 롯지 위의 언덕에 올라 그곳까지 올라온 자기 자신과 함께 히말라야의 장엄함에 감탄을 쏟아낸다.
1999년 4월 29일 이곳 7900미터 지점에서 실종된 산악인 지현옥의 추모제를 준비한다. 간단한 젯상에 머리를 조아리니 가슴에 배인 그리움이 볼을 타고 눈물이 되어 흐른다. 우리나라를 대표한 여성 산악인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서 “현옥이형 어디 계신가요?” 목 놓아 소리지른다. 아마도 이곳의 산신이 되어 우리를 보살펴준 덕에 우리 모두 무사히 여정을 마치지 않았나 싶다.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남봉, 안나푸르나 팡, 안나푸르나 3봉, 4봉,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가 우리를 빙 둘러 펼쳐져 있다. 저 대자연의 조화 속에서 히말라야 신이 우리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이곳을 오르며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머리가 공허하다. 아마도 무상의 자유를 얻은 듯하다. 신만이 가질 수 있는 무상, 무소유의 자유를 만끽하며 발길을 세속으로 돌린다.
이번 히말라야 오지마을 문화체험단은 히말라야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향기 속에서 자아를 찾고 삶의 공간에서 능동적 사고를 가지는 데 한몫을 하고자 기획하였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봉사를 통해 인간 내면의 성숙도를 높여 한 단계 진보한 삶, 영혼을 찾고자 한 것이다. 우리 대원들이 네팔 어린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순수한 모습을 보며 내 가족의 소중함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면 13일의 과정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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