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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에 오른 국민MC 송해(宋海)
여산송씨 송해(본명,宋福熙)님은 1927년 4월27일(89세) 황해도 재령에서 출생합니다. (실재나이는 2살이 더많다는 말도 있고, 부인이름은 석옥이 여사이며, 외아들(대학2학년때오토바이사고로 사망) -- 이하 글은 인터넷에서 그대로 옮겼음 -- 이 자리에서 송해는 "지난 1984년 진행을 맡은 이후 지금까지 26년간 진행을 해오고 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처럼 내 앞에 고생하신 진행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이어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30년 변천사에 대해 회고했다.여산송씨 송해는 "초창기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의 몸놀림이나 헤어스타일이 비슷비슷했다"며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다소곳이 서서 노래를 했고, 여자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한복을 입고 나와서 노래했다"고 전했다. 송해는 "하지만 요즘 출연자들은 개성들이 넘친다"며 "그동안 시대도 변했고 시청자들 취향과 관람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시청자들과 가까워져야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이런 변화에 맞춰 능동적으로 대처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서 "출연자들이 변하니 나 역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됐다.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신고 있던 스타킹을 씌운 여성 출연자도 있었고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아찔한 순간을 연출한 출연자도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연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나 역시 흥겹게 진행했다"고 밝혔다.송해는 또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전국 각지를 돌아본 자신의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그는 "과거엔 지역마다 특색이 있었다. 특히 영호남 분들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수도권 분들은 좀 깍쟁이 같은 면이 있었다" 며 "하지만 요즘은 거의 평준화가 됐다. 전국 어디를 가도 적극적인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이어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방송 하루 전 그 지역을 걸어서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강관리도 됐다"고 전했다.한편, '전국노래자랑' 30주년 특집방송 '국민과 함께 30년'은 오는 14일 방송된다.kjy7@cbs.co.kr - 인터넷에서 퍼왔음 - | |
송해 (신명나는 세상) 야이 야이 야내 나이가 어때서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눈물이 나네요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어느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세월아 비켜라 내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야이 야이 야내 나이가 어때서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어느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송해 “기네스북에 오른 ‘전국노래자랑’ 유재석도 MC 대기 중”기사입력 2014-06-28 01:45:37 [TV리포트 = 이혜미 기자] 최장수 MC 송해가 기네스북에도 등록된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노리는 MC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입담을 뽐냈다. 송해는 27일 방송된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5주년 특집으로 송해가 출현한 가운데 유희열은 “5년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이기도 하고 영광스러운 자리기도 하다”라며 벅찬 소감을 나타냈다. 이에 송해가 “그러면 내가 거북하다”라며 다독이자 유희열은 “선생님이 만지니 흥분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송해는 34년째 방송되고 있는 ‘전국 노래자랑’에 대해 “나는 30년 진행했다. 기네스북에도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또 송해는 MC를 기다리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내 뒤에 유재석이 있다”라고 센스 있게 말했다. 이어 송해는 “그 뒤로 엄용수와 이상벽이 있다. 우리끼리만 알자. 이상벽이 언제쯤 물려주겠냐고 하기에 50년 후에 물려주겠다고 했다”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한편 이날 송해는 ‘내 나이가 어때서’로 노래솜씨를 뽐냈다. 이혜미 기자 gpai@tvreport.co.kr/사진 =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화면 캡처 | |
송해(宋海)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송해 본관은 여산(礪山)이다.[1] 본명: 송복희(宋福熙) 출생: 1927년 4월 27일(89세) 일제 강점기 황해도 재령군(現 조선민주주의인 민공화국 황해남도 재령군) 국적: 대한민국 직업: 가수/ 희극배우 / 방송인 활동기간 1948년~ 현재 종교 불교 학력 해주예술학교 성악과 졸업 자녀 슬하 외아들(대학 2학년때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 |
차례 1 생애 2 방송 활동 3 일화 4 출연 작품 4. 1 영화 4. 2 드라마 4. 3 CF 5 수상 경력 6 주석 |
생애[편집]
송해는 1927년 4월 27일에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1948년에 해주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졸업 발표회에서 노래를 시작하였다. 1950년 6월 25일24세에 한국 전쟁으로 월남하여 군에서 통신병으로 일했으며 정전협정의 통신문을 모스부호로 전송했다.[2]
1955년29세때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했으며, 다양한 예능을 가져야 하는 악극단의 특징 덕분에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라[2]여러 무대 및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1988년 5월부터 한국방송《전국노래자랑》을 26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3]또한 그는 전국노래자랑을 무대에 서기 힘들 때까지 진행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송해는 지역별 특성에 대하여 "영호남은 어쨌든 화끈하고, 충청도는 풍미가 있다. 강원도는 가만히 계산을 했다가 터트리는 심사가 있고, 경기도나 서울은 깍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4]
방송 활동[편집]
TV
KBS 코미디 하이웨이
KBS 고전유머 극장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
MBC 라디오 코미디쇼
KBS 설특집 딩동댕 스타노래자랑
MBC 주택복권 추첨
KBS1 전국 노래자랑
MC
2010년 4월 3일 연예가 중계 코너 게릴라 데이트 - 송해
2010년 11월 16일 김승우의 승승장구 게스트(초대 손님)
2008년 5월 27일 산너머 남촌에는1 - 전국노래자랑 충남 예산군 편 mc
2014년 9월 15일, 9월 22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 게스트
일화[편집]
평소 송해는 모터사이클을 사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반대 하였다. 결국 송해의 부인이 송해 몰래 아들에게 모터사이클을 사 주었는데 아들은 제3한강교 (지금의 한남대교)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 송해는 절대 제3한강교를 지나다니지 않는다.[5]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이나, 여자 이름이라는 이유로 놀림 받은 바람에 지금의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11월 8일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에서 송해가 경로잔치에 출연해 8만원짜리 건강보조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28만원에 사도록 부추겼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고,[6] 검찰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몇몇 연예인들과 함께 소환하여 조사한 후[7] 같은 해 12월 7일 불구속 기소했다.[8]
한국 전쟁 시절에 통신병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53년 7월 27일 22시를 기하여 모든 전선에 전투를 중단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휴전 전보를 직접 알렸다고 밝혔다.[9]
출연 작품[편집]
영화[편집]
1966년 요절복통 007
1968년 남자 미용사
1968년 단벌 신사
1968년 어머니는 강하다
1969년 남편 (영화)|남편
1969년 내 팔자가 상팔자
1969년 신세 좀 지자구요
1969년 특등비서
1970년 구혼 작전
1970년 운수대통 일보직전
2002년 울랄라 씨스터즈
2003년 동해물과 백두산이
2013년 전국노래자랑
드라마[편집]
2007년 산 너머 남촌에는 27회 전국노래자랑 충남 예산군 편 mc 역
CF[편집]
1970년 삼립식품 하이면
1970년 한국존슨 에프킬라
1985년 한스제약 까스파파
1985년 동국제약 인사돌
1987년 모나리자
1992년 한화L&C 둥둥부자
2000년 / 2011년 명인제약 이가탄
2012년 IBK기업은행
2013년 SK텔레콤 LTE-A
2013년 DTV코리아
2013년 대농바이오영농조합법인 만품산삼가득 생 막걸리
수상 경력[편집]
1987년 KBS 코미디 연기대상 특별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2001년 한국연예협회 제8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문화훈장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2003년 제15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진행자부문'
2003년 제30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특별공로상
2003년 보관문화훈장
2004년 KBS 바른 언어상
2008년 제44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2009년 제2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대중문화부문상
2009년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자랑스러운 스승님상
2010년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TV 진행상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특별상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은관문화훈장
주석[편집]
이동 ↑ 시조 송유익 고려때 공 세우며 기틀 마련… 조선 들어 명문가로, 《세계일보》, 2014년 3월 25일
↑ 이동: 가 나 놀러와 300회 특집,2010년 8월 2일 방영분
이동 ↑ 새얼굴 새프로 TV 봄단장 (경향신문)
이동 ↑ 윤희성. 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2010년 3월 3일에 확인.
이동 ↑ 송해, 아들 사망후 교통방송 DJ 그만 둔 이유 `눈물고백` 스타투데이 2010.11.17 2013.6.11 확인
이동 ↑ 여의도 스케치「뽀빠이 폭로」에「송해 건드리기」 동아일보 1996.11.13
이동 ↑ 宋海(송해)씨등 조사후 귀가 경향신문 1996.12.4
이동 ↑ 「약장수 연예인」3명 불구속기소 동아일보 1996.12.8
이동 ↑ 송해 “6.25 휴전 전보, 군사기밀에 덜덜 떨었다”… 울컥하네!, 동아일보, 2014년 9월 16일 작성.
9. 전국노래자랑 18년 영원한 ‘젊은 오빠’, 《신동아》, 2002.2.1.10. (전국노래자랑) 송해, "24년 진행…마지막 소원은 고향 '황해도'편" (인터뷰) - 《스포츠 서울》, 200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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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팔음산 님 감사합니다. 회원가입되신분들의 검색은 십여명을 넘지 않은데 3일동안에 이렇게 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은 연예인 송해의 인기가 어느정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 여산송씨의 자랑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송해 선생님이 우리 여산 송씨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기네스북에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등록되었고 합니다만, 그 것 이외에도 우리나라에 코리안 기네스북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기록되지 않을까 합니다. 즉,
1)한국에서 “여러분 안녕하세요”를 가장 많이 외친 사회자: 모든 전국 노래자랑에서 “여러분 안녕하세요”를 무조건 2회 외치니까.
2)한국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방곡곡의 모든 다양한 음식을 가장 많이 맛본 사람: 노래자랑에서 수없이 많은 종류의 특산 농산물과 음식을 먹었으며, 또한 지방에 머물면서 그 곳의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서.
3)오빠부대 대원을 가장 많이 거느린 사람: 전국의 대중가요 여성 팬은 거의 모두 송해오빠의 부대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4)전국 여성들로부터 포옹을 가장 많이 받아본 연예인: 노래자랑에서 ‘송해 오빠’ 하면서 포옹한 여성 숫자는 엄청날 것이니까. 이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정신적인 수준은 거의 클래식 음악에 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민중의 애환이 굽이굽이 스며있는 대중음악의 사회를 그토록 오랫동안 보아왔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 상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왔으니 그에 관하여 한마디로 말한다면 ‘살아있는 대중음악의 전설적인 사회자이자 민중의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로 말할 수 있겠으며,
송해 선생님의 사후에는 국민장(國民葬)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장(社會葬) 정도는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 관한 저의 글은 'http://blog.naver.com/bonanza3000---Music and Sound' 를 보시면 됩니다.
대구시 달성군에서는 송해공원을 만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