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3막17장 (8부)
1970년대 국내의 토목기술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국토 발전에 대한 의지와 투지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강원도의 한계령은 1102 야전공병대가 2년여에 걸쳐 완공하였고, 경부고속도로의 옥천터널과 홍천 양구간 터널등 공병대는 전국의 위험하고 험난한 공사만 도맡아 하였다.
이러다할 토목건설사가 있지도 않았고 덤프트럭과 불도저. 굴삭기,로더등 토목장비가 텃없이 부족하였으니 맨손으로 터널을 뚫고 다리를 만들고 산을 깍으며 길을 만들어야 하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난제속에서 그들은 목숨을 내던지며 조국 건설에 앞장 선것이다.
공병대는 전시중 교량을 가설하고 지뢰 설치제거,폭파등 주요업무를 수행하나 전시가 아닌경우는 난이도가 높고 민간인이 꺼려하는 토목공사에 투입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총을 만지지 않고 군생활을 할수 있다는 착각에 공병대에 지원했다가 땅을 치고 후회한 것이다.
터널폭파시 잔해물 제거하다 터널이 무너지는가 하면 산을 깍는도중 절벽으로 떨어져 무수한 공병대원들이 희생된 것이다.
공병대.
그들이 없었다면 조국의 근대화를 시행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1974년 11월15일
경기도 연천 고량포에서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정찰도중 땅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 탐색하여 보니 북한들이 파놓은 땅굴이 발견 된것이다.
국내의 공병대는 조국 건설에 매진하는데 북한의 공병대는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공병대는 다리를 놓고 산을 깍아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한으로의 지하철(?)개통에 목숨을 건것이다.
월남전 당시 베트콩들이 은폐와 엄폐를 위해 밀림속에 땅굴을 파고 기거하며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적국을 향해 은밀히 땅굴을 두더지처럼 팠다는 것은 우리의 허를 찌르는 묘책일지 모르나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야비하고 미개한 국가로 손가락질 당하고 만것이다.
치사한 침략이었다.
잠수함을 타고 해양으로 침투하는 것은 들어봤어요
전세계 전쟁사에 듣도 보도 못한 지하 땅굴로 침략을 시도하려 하였다니 그 악란함에 치가 떨릴뿐이다.
그후 제2땅굴,제3의 땅굴,제4의 땅굴이 발견되여
조국강산을 온통 헤집고 파헤쳐 너덜지게 만들고 만것이다.
무엇이 그들은 두더지로 만들었을까,
그들이 바라는 조국통일이 두더지 흉내로 성공했다면 세계 전쟁사에 길이 빛날 업적이 되였을 것이다.
그들은 고구려,백제,신라 처럼 삼국통일을 이룬 통일신라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통일신라는 황산벌전투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룩한 떳떳한 승리로 이룬 통일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생전 듣도 못한 치졸한 술수로 통일을 획책하였다.
땅굴은 그들만의 착각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애절한 바람으로 묻혀 버렸다.
두더지한테 한수 더 배우고 땅굴을 팠어야 했는데
너무 서둘러서 실패 한것이다.
그렇다.
오늘따라 두더지 게임이 생각난다.
불시에 뛰쳐 나오는 두더지 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머리를 맞추면 점수를 받는 게임이 생각 나는 것은 왜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