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6u_QxOYiBWk
진골목은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 ‘질다’에서 기원하였다. 조선시대 때부터 존재한 진골목은 그 시절 내로라하는 대구의 유지들이 많이 살았다. 특히 대구 토박이 달성 서씨 부자 서병국과 그의 형제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뿐만 아니라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정치인 신도환,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 평화 클러치 김상영도 이 골목에 살았다. 부자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저택들은 화교협회와 정소아과 의원, 식당 등으로 남아 있다. 지금 현재 이 골목의 길이는 100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골목이 여전히 진골목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이 골목이 담고 있는 시간들이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고 그 시간을 느끼며 걷는다면 절대 금방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도다방 방문객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전통다방이다. 미도다방은 사라져가는 전통다방의 원형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서 많은 장년층들과 예술가들이 방문한다. 한때는 유학자들이 많이 방문해 ‘양반다방’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관광객들도 전통다방을 경험해보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남겨져 있다. 이제는 보기 드문 이 시대의 사랑방이다.
정소아과 의원 1937년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대구 갑부 서병직의 저택이었는데 1947년 정필수 원장이 매입해 정소아과 건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정소아과는 한국전쟁 전후의 대구를 담은 소설 ‘마당깊은 집’에도 등장할 정도로 대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던 병원이었다. 정소아과 건물은 변형이 거의 없어 일제강점기의 상류층 주거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근대 건축물이다. 집 내부에는 있는 곡선으로 처리한 담, 1층에 있는 일광실, 서양식 욕조 등을 통해 일제 강점기 부유층의 생활 모습과 그 시절 근대 건축의 진수를 파악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