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67)-벌거숭이 관광객 속의 정장을 한 원숭이 4사람. 프랑크푸르트 역에 내려 택시를 잡고 호텔예약서를 보여주었더니 그는 웃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예약서를 확인하고 무슨 문제점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그냥 가 버렸다. 그 다음 택시를 타고 예약서를 보여주었는데 그도 웃으며 걸어갈 수가 있는 거리라고 했다. 지금 같았으면 구글지도로 찾아갈 터인데 길도 모르고 지도도 없었다. 더구나 프랑크푸르트는 뒤셀도르프와 달리 위험한 도시라며 택시가 가장 안전하니 돈 아끼지 말고 택시를 타라던 소장의 생각이 나서 좀 데려다 달랬더니 원하면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그는 역광장을 한바퀴 돌고는 한쪽길로 들어가더니 몇 백 m 가서 세우며 여기라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택시요금을 지불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서 습관대로 관광홍보지를 몇 장 주워서 룸으로 갔다. 모두가 로렐라이에 관한 것들이었다. 열차 칸에서부터 졸렸던 터라 저녁시간에 맞추어 프론트에 콜을 부탁하고 잠이 들었다. 벨 소리에 눈을 뜨고 샤워를 한 후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는 호텔 카운터의 여행로비에서 로렐라이 여행을 예약했다. 다행히 투어버스가 호텔까지 픽업하러 온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로렐라이 행 투어버스는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 선착장까지 운행하고 거기서 배를 타고 라인강으로 들어가 로렐라이까지 간다고 했다. 난 택시를 타고 마인츠강 선착장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마인강 선착장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탔다. 아마 학생들인 것 같았다. 처음엔 선실로들어 갔으나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가가고 선실 안은 연로한 분들만 앉아 계셨다. 바깥 풍경도 볼 겸 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올라갔더니 온통 반라의 벌거숭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내던 여식이던 상의는 다 벗어 제치고 사내들은 팬티바람, 여식애들은 부분만 가린 수영복 차림으로 바라보기가 민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깨 동무를 하고 함께 온 단체처럼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구석구석을 돌아보아도 앉을 만한 자리가 보이질 않았다. 그들이 앉아있는 틈사이에 한 두좌석이 있었지만 수영복차림의 그들 사이에 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난간에 기대어 강가의 풍물을 보고 있었다. 조금 후에 두 동양인이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싱가폴에서 업무 차 출장 왔다가 로렐리이를 보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도 웃옷을 다 입은 정장 차림으로 나처럼 자리를 찾다가 못 잡고 난간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독일어도 하고 가끔 출장으로 독일을 오간다며 독일을 잘 안다고 했다. 조금 후 정장을 한 분이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싱가폴 분이 가더니 데리고 왔다. 일본인이었다. 그 많은 승객 중에 상의를 입고 있는 사람은 선실에 앉아있는 노인들을 제하고는 동양인 네 사람 뿐이고 서양인들은 전부 웃옷을 벗고 있었다. 개중에는 연세가 조금 든 서양인도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서양인들은 피부특성상 일광욕을 해야 된다는 게 피부 관리하는 방법이라며 독일어를 잘 한다는 싱가폴 사람의 설명이었다. 파리 세느강변에도 웃옷을 벗어 제치고 일광욕을 하는 이들을 본 터라 일광욕 자체는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었지만 눈을 둘 곳이 없었다. 눈만 들면 작은 수박통을 달아 놓은 듯한 그들의 가슴에 유두만 가려 놓은 브라자가 눈에 들어와 눈을 들 수가 없었다. 실은 한번씩 쳐다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비정상적인 것 같이 보였다. 애꾸눈 세상에 가면 눈 2개가진 사람이 병신이라 던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들이 보기는 정장을 한 동양인들이 마치 벌거숭이 세상에 원숭이처럼 보였을 런지도 모르겠다. 조금 후에는 벌거숭이 학생들이 남녀 가릴 것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떼 창을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목성이 큰 독일인들이라 그 울림이 유람선 후면 쪽으로 바람을 타고 흩어졌지만 워낙 소리가 커서 대화를 하기가 힘들었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선실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독일 대학생들의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괜찮다며 싱가폴 친구들은 계속 난간에서 쳐다보았다. 일본인과 둘이 나란히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후에 다음 정착지에서 내려서 고성을 관람한다고 방송을 했다. 싱가폴친구들이 들어와 조금 후 독일 성을 보여주고 라인강변에서 재배한 포도주도 시음할 수 있다고 부연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마인츠(Mainz) 산록의 성들이었다. 라인강 좌편으로 고성들이 보였다. 본래 여행프로그램에 이런 스케쥴이 있은 것조차 몰랐지만 유럽에서 고성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조금 후 선박이 정박을 하고 내리는 순서대로 깃발을 따라 성곽투어를 했다. 동양인 넷도 함께 한조에 들어가 성 위로 올랐다. 유럽의 성은 산 위에 있는 게 많았다. 선착장에서 성곽까지 꽤나 가파른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성문 위에는 중세시대의 가문의 문장이 걸려있거나 벽면에 부착 되어있었다. 지금도 유럽의 작은 나라들 국기에는 가문의 문장이 보이지만 휘장은 작은 공국들로 구성된 중세국가의 부족단위의 표시였던 것 같았다. 성문을 들어서면서 성루까지 미로를 따라 올라가서 한국의 초소 같은 적의 침투를 감시하던 망루에서 굽이 쳐 흐르는 라인강을 보고는 라인강변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거의 동굴 같은 곳에 숙성하고 있다며 통로 한쪽으로 술통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통로는 적이 쳐들어와 어쩔 수 없이 피신할 때 도망치는 퇴로라고 설명했다. 포도주를 성주 문양이 새겨진 유리잔으로 시음을 하고 그 잔은 기념으로 가져 가라고 했다. 포도주가 필요한 사람은 포도주 한 병에 그 성의 문양이 새겨진 잔을 두 개씩 넣어 판매하고 있었다. 난 포도주 보다 그 유리잔이 더 갖고 싶었다. 그래서 한 병을 사니 잔이 3개가 되었다. 일본인이 받은 잔을 필요 없다고 해서 4개를 갖고 와서 지금도 집사람과 포도주 한잔씩 할 때 그 옛날을 생각하며 그 잔을 사용하곤 한다. 다시 유람선으로 돌아와 로렐라이로 가는데 마이크로 안내방송이 나왔다. 떼창을 부르던 관광객들도 조용해졌다. 잠시 후부터 탑승할 때 국적과 성명을 기록한 승선자 명단을 보고 호명을 한다며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싱가폴인의 통역에 의하면 호명된 사람들은 자국인은 외국어로, 외국인은 자국어로 로렐라이 노래를 부르고 추첨에 따라 쿠폰을 준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10 DEM의 페널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호명된 젊은이들은 남자던 여자던 일광욕을 하던 그대로 거의 수영복 차림으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추첨에 따라 함성이 오갔다. 승객 중에는 다른 유럽인들이 많은 지 여러 나라의 말로 로렐라이가 불려 지고 있었다.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이지만 우리 눈에는 모두들 독일사람들로 착각한 것이다. 우리 중에는 싱가폴인이 처음 호명되어 그는 마이크를 잡고 중국어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한국어로 로렐라이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조마조마하고 있던 중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아무 소리 않고 10 DEM를 페널티를 내고 추첨했더니 20 DEM짜리 쿠폰이 당첨되었다. 선박 매점과 로렐라이 다운타운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는 사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선박은 로렐라이 언덕에 곧 도착할 것이라며 방송과 함께 로렐라이 전설에 대한 설명을 한동안 방송해 주었다. 로렐라이 선착장에 곧 배가 도착하자 관광객들은 인어상이 있는 로렐라이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언덕에서 라인강을 내려다보며 자국어로 로렐라이를 떼창으로 불렀다. 그들 뒤를 따라 정장을 한 원숭이 넷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한눈에 보이는 로렐라이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실망이었다. 차라리 부여 낙화암이 훨씬 나은 것 같았다. 하지만 로렐라이 주변의 강물의 소용돌이로 나쁜 일을 하고 지나가는 선박은 인어아가씨가 괴성을 내면 그곳에서 침몰한다는 전설과 로렐라이 노래로 전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관광산업은 별도 투자없이 외화를 벌 수 있는 산업 이다. 한국의 그 많은 문화유산을 지구촌에 알려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머지 시간은 주변 액세서리 가게에서 기념품을 사거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자유 시간이었다. 몇몇 액세서리점을 둘러 본 후 독일어를 하는 싱가폴인의 안내에 따라 한 식당에서 독일 특식을 주문했다. 조금 있더니 말굽같이 생긴 구운 햄 2개와 사라다와 감자가 나왔다. 그래도 가격은 20 DEM이라고 했다. 독일이던 한국이던 관광지 물가는 비슷한 모양이었다. 나는 쿠폰으로 점심값을 때웠다. 사고는 식사하면서 마신 병 맥주 4병의 값이었다. 맥주가 작은 병인데도 200 DEM가 청구되었다. 메뉴에 구운 햄버그는 20 DEM이었는데 맥주는 시가라고 한다. 바가지 쓰는구나 생각하고 지불하려는 데 싱가폴인이 막아 서며 시중에서 비싸야 5 DEM하는걸 10배나 더 청구한다며 시비가 붙었다. 싱가폴인은 메뉴를 요구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은 그때그때의 시가에 따른다며 거부했다. 싱가폴인은 경찰을 부르겠다며 으름장을 놓다가 급기야는 경찰까지 불렀다. 경찰도 식당의 메뉴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도 일본 긴좌(銀座)에서도 맥주 4 병에 100$(200 DEM)에 마셨다며 너희도 관광객에게 그렇게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자 싱가폴인이 너희가 일본에서 바가지 쓴 걸 왜 우리에게 그러느냐?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들은 일본인이 아니냐고 되물으며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일본인을 제외한 세사람은 여권을 보여주며 항의했다. 그들은 기가 죽으며 일본에서 당한 분풀이를 하려고 그랬다며 병당 10 DEM로 계산했다. 말을 잘하는 싱가폴인 덕에 바가지를 면했다. 싱가폴인이 긴좌의 맥주값이 사실이냐고 진반 농반으로 물었다. 일본인의 이야기는 긴좌에서 심야 바(Bar)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며 웃으며 해명을 했다 로렐라이에서 마인츠강 선착장까지 돌아올 때도 선박에서는 각자 호명을 했다. 이번에는 로렐라이를 본 감상을 말하라고 하고 호명된 분들은 로렐라이에 대해 감명 깊게 보았다는 칭찬뿐이었다. 나는 이미 호명이 되어 말 할 기회도 없었지만 막상 기회가 있었으면 한국에는 이 보다 아름 다운 낙화암이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정장을 한 동양인은 벌거숭이 세상에서 원숭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