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아브람과 사래의 실패(16:1-3)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두 번째 실패를 했다. 첫 번째 실패는 그 땅에 기근이 들어서 잠시 거류하려고 애굽으로 가면서 발단이 되었다. 자기 아내 사래의 미모가 아리따운 이유로 애굽 사람이 사래를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사래가 자기의 누이동생이라고 하자는 비겁한 약속을 한 것이다. 이 불안은 실제 상황이 되어서 사래는 애굽의 바로의 부인으로 들어가고 아브람은 사래를 빼앗기는 대신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과 노비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바로는 사래를 돌려보내고 아브람은 가나안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12:10-20)
아브람과 사래의 두 번째 실패는 사래의 여종인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하여 후손을 두고자 한 일이었다. 아브람은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12:2)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거듭 후사에 대한 약속을 확인받았다.(13:16, 15:5) 그럼에도 자식이 태어날 기미가 없고 가나안에 들어온 지 10년이 되었다. 이 현실이 그들 부부에게는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근심거리가 되었다.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않는 판국에 자기 여종인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하여 자녀를 두자고 제안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 애굽 여인 하갈은 누구인가. 아브람이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사라를 궁으로 데려가면서 바로가 아브람에게 사례로 준 여종이었을 것이다. (12:16) 그렇다면 하갈은 아브람이 첫 번째 실패 때 얻어진 사람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두 번째 실패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죄가 죄를 이끌어 오고 실수가 실수를 이끄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이제 사래의 잘못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물론 이 잘못은 비단 사래 혼자만이 책임을 질만한 것은 아니다. 남편인 아브람이 한마디 반론이나 반대 없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 잘못의 단초를 사래가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래의 잘못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여러 차례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12:2, 13:16, 15:4-5)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이 결단을 해야 할 때라든지 외로울 때나 두려울 때 즉 믿음이 떨어질 듯한 상태가 되면 찾아오셔서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신 것이다. 그러면 아브람은 그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15:6) 그럼에도 왜 사래는 믿음이 없는 행동을 제안했고 아브람은 그 제안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까. 아브람과 사래의 신앙이 주변 환경을 통해서 흔들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들이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가 10년이 되었으니 사래의 나이는 75세고 아브람의 나이는 85세다. 인간적으로 조금은 초조해질 나이가 아닌가. 육신이 늙어가면서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당시는 자식이 없으면 저주 받은 것으로 간주되던 때였다. 건강하고 자녀를 두고 장수하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길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불행이요, 저주라 해야 할 것이다. (신7:14, 출23:25-26) 이런 사회에서 사래와 아브람은 초조했을 것이다. 셋째로 당시의 사회 풍습은 자녀가 없으면 자기 몸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하여 그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는 풍습이 정당화 되고 있었다.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는 자식을 낳았지만 둘째부인 라헬은 자식이 없자 라헬이 비상조치로 자기의 몸종인 빌하를 남편에게 들여보내 아들을 낳게 하여 자기 자식을 만들려 한 것이 좋은 예이다.(30:3) 그리고 빌하가 아들을 낳자 라헬은 자기 아들이라고 기뻐하고 있다.(30:6) 이런 사회적 환경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하갈을 통해서 이루어질는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후손을 주실 것은 믿지만 성취시키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 성취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그 수단도 정당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몸종을 아브람에게 후실로 준 사래의 실수는 일부일처제의 윤리를 파괴한 것이 두 번째이고(2:24, 마19:6) 셋째는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하고 말했다.(2)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식을 주시지 아니했으니까 이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뜻이 된다. 그러면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과 행동이 믿음을 떠난 인간의 지혜요, 수단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실수요, 실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