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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왜 문학(詩)인가
-문학과 사회에 대한 오디세이의 물음
김준태
1.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Sclechte Zeit f"ur Lyric’
베트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독일시인/1898~1956) 詩
그러나 나는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 받고 있음을.
그의 목소리는 듣기도 좋고, 그의 얼굴은 아름답다.
마당 안 부러진 나무는 괴로운 땅 위에 모습을 내고,
행인들은 그것을 병신 같다고 욕설을 퍼 부어댄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해협의 보트와 강 하구의 한가로운
돛단배들을 나는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찢어진 그물에 걸린
물고기만을 나는 들여다본다. 불임기의 시골부인들이 허리 구부린
그 모습만을 어째서 나는 노래하는 걸까? 처녀들의 젖가슴은
옛날처럼 따듯하다만.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다가온다. 꽃피는 능금나무에 대한 열정과
엉터리 화가의 말솜씨의 경악스런 행동은 나의 가슴속에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엉터리 화가의 세계만이
나를 책상으로 달려가 시를 쓰게 한다.(시 전문)
2. 생명예찬의 詩 ‘순수의 조짐Auguries of Innocence’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영국시인. 1757~1827)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보라 네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담아 보아라.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 And Eternity in an hour.)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울새는 /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
쫓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 아기 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 늑대들과
사자의 울부짖음은/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건져 올린다.(시 일부)
3. ‘나는 너다, 그리고 너는 나다’의 세계 :
옥따비오 빠스(멕시코 시인) 長詩 [태양의 돌]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뛰쳐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내가 없으면 남들도 없는―남들은 내게 완전한
실존감을 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없다.
항상 우리가 있을 뿐이다. 나와 너 사이에서 우리가.
삶이란 어떤 남의 것, 항상 저 멀리, 아주 멀리 너를
떠나서, 나를 떠나서, 항상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는 것!(시 일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아(ego)를 실현’해 나아가기 위한 그것인지도 모른다. 자아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나, 자기, 혹은 각 개인의 존재론적 의식이나 관념 그것을 말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샤르트르에 의하면, 각 개인의 자아란 절대적(즉자적) 개념이기보다는 상대적인 개념(대자적 존재)으로 파악된다. 인간은 모두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만이 그 의미가 규정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시인 G. 네르발의 말을 빌리면 “나는 너다”란 개념이 성립이 되는데, 철학적인 이 논리는 후대의 초현실주의 시인 랭보나 앙드레 브르똥에게 영향을 끼친다. 20세기 멕시코가 낳은 최고의 시인 옥따비오 빠스도 장시 ‘태양의 돌’에서 예의 “나는 너다”란 개념을 깊이 보여준다. 이 시는 그의 조국 멕시코 중앙 고원에 발달한 ‘아즈테카 문명’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이다.
아즈테카 문명은 1520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코르테스가 거느린 수백명의 군대에 의해 멸망한 아즈테카 즉 인디오족의 문명이다. 이들 민족은 세계의 본질을 허무의 암흑으로 보고, 그것과 싸우는 태양에게 펄펄 살아있는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친 제사의식, 인신공희(人身供犧)로 유명하다. 이 제사의식은 하나됨의, 공동체사회를 추구한다. 옥따비오 빠스의 장시 [태양의 돌]은 범아일여(梵我一如), 범신론, 메타포어로서 공동선과 공동체를 열망하는 시인의 멕시코 정신과 인도철학을 담고 있다.
4. 생명사상과 홍익인간의 만인철학 : 詩 ‘콩알 하나’
얼마 전 나는 한국을 찾은 ‘독일교포자녀 초청세미나’에 참석하여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코리아문화의 세계적 보편성’이란 주제로 얘기를 이끌어나갔다. 독일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은 교포 2세대들이었다. 인문계고등학교(김나지움)에 다니거나 직업학교(아르바이트슐레)에 들어간 학생들이 그들이었다.
30여 명의 학생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내게 귀를 기울였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유머도 섞어가며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저 70년대 시절, 인력수출의 붐을 타고 독일로 떠난 광부들, 간호사들이 바로 그들 학생들의 어머니요 아버지가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염두해 두고 일찍이 그들의 부모들이 태어나서 자란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가를 차근차근 얘기해주었다. 먼저 준비해간 콩알을 하나씩 그들의 손바닥에 놓아주었다. 독일에 돌아가면 그들이 사는 집의 정원 빈터에 심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독일교포 학생들에게 ‘콩알 하나’란 나의 시를 노래하듯이 낭송해주었다.
누가 흘렸을까 // 막내딸을 찾아가는 /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
구멍 난 보따리에서 / 빠져 떨어졌을까 // 역전 광장 / 아스팔트 위에 /
밟히며 뒹구는 / 파아란 콩알 하나 //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
도시 밖으로 나가 / 강 건너 밭이랑에 /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
그때 사방팔방에서 / 저녁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 전문)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콩알에 빗대어 설명할 때 학생들의 호기심은 그 어떤 혈연주의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더욱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독일교포자녀 2세 여러분(Korean second generation resident in Germany)! 나는 오늘 주로 ‘콩알 하나’에 대하여 얘기하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하나뿐이겠으나 흙에다 심으면 또 다른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이 콩알 하나가 아닐까요. 콩알 하나를 가지고 코리아의 조상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명에 대한 비유, 나눔과 베풂에 대한 비유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콩알 하나라도 버리지 말아라, 콩알 하나라도 밟으면 죄가 된다, 콩 조각도 나눠먹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신앙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사람들이 이 땅 한반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라고 생명주의에 대하여 신들린 듯이 말해주었다.
온 누리에 널리 이롭게 나누어 베푼다는 뜻의 홍익사상, 모두 함께하는 두레의 대동정신, 효에 근거한 조상숭배, 동물과 식물을 숭배하는 토템사상, “이 세상에 나아닌 것이 하나도 없고 너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불교의 범신론적인 애니미즘 사상, 민족적 토속신앙(샤머니즘),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가르친 동학사상 등을 들려주었다. 한국인들의 그런 마음과 사상이 결국은 세계적 문화의 보편성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그것을 어린 시절 한반도의 남녘, 고향의 논과 밭에서부터 터득한 것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라를 찾아온 독일 교포학생들의 두 눈은 빛났다. 생명사상과 만인을 위한 철학을 콩알 하나에서 배운 것 같았다.
5. 빛과 하늘도 휜다 하물며 우리들이!
詩 ‘60년 성사聖事’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요즘 나는 아인슈타인 박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머리에 떠올린다. 그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아인슈타인 우유를 어린 손자들이 종종 마시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슬며시 얻어 마시며 맛을 본다. 그래서 ‘60년 성사聖事’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라는 두 편의 시를 썼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을 말하고 싶어 그러했으리라. 초속 30만km 속도로 날아가는 빛이 태양의 주위를 휘어져 돌아간 것이 1919년 런던관측소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사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아, 빛도 휜다! 하늘도 휜다!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을 포함한 자유입자들이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움직인다” 그 법칙을 인류의 과학역사상 처음으로 발표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일반상대성이론, 나는 이것을 사랑의 이론으로도 규정한다. 특히 남과 북이 지난 60여 년간 분단의 세월을 직선적인 관계만을 되풀이해왔기에 곡선의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나의 시(노래) 속으로도 끌어들인다. 손자인 아가를 앞가슴에 보듬고 아파트 앞 언덕에 오르면서 남과 북의 평화적인 대화와 소통을 갈망한다. 서로가 곡선으로 둥글게 휘어져야만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시 ‘60년 성사聖事’일부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전문을 같이 음송하면 좋겠다.
아가야 /둥근 젖병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아인슈타인을 쭉쭉 빨아대는
아가야 // 어때 맛이 괜찮니 / 배가 쿨렁쿨렁 소리 나게 부르니 / 올해
60회갑을 맞은 이 할아버지는/너를 등에 업고 먼 산에 올라가보련다 //
네 어미의 젖꼭지처럼 /오래 오래 아인슈타인을 빨고 싶다는 /눈빛으로
나와 눈 맞춤을 하는 아가야 // 나비 떼인 양 쏟아지는 달빛 속으로 /
하얗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머나먼 길― / 아가야 나는 너를 등에 업고
걸어가면서 / 오늘은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나고야만다 // 빛도 휘고
하늘도 휜다고 무릎을 친다//무궁 무궁한 하늘도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 우주, E=mc²을 엎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60년 성사聖事’(시 일부)
E = mc²이라! 아 그런데, 아인슈타인 박사가 ‘에너지(E)와 질량(m)은 등가이고 변환 가능하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핵분열과 핵융합이론으로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때 아인슈타인 박사는 신에게 그가 저지른 핵물리학의 결과에 대하여 용서를 받고자 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건에서도 확인되었듯이 핵은 상상을 초월한 재앙을 가져다주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의 원리를 생각해보는 것이 아닌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란 시가 바로 그런 고뇌와 기쁨에서 생산된 것 같다. 이 시 전문을 입술에 올려보고자 한다.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
1916년, 아인슈타인 박사는 드디어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을 포함한 자유입자들이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내놓는다. 바로 이 이론으로 인공위성이 만들어지고 우리들은 안방에서 편히 TV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아, 빛이 휘다니? 아, 하늘도 휜다니? 아인슈타인은 빛이 직선으로 가다가 곡선으로 휜다는 사실을 발표, 세계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1919년 런던관측소에서 빛이 태양의 주위를 돌면서 휘는 것이 목격된 것이다.
그렇다. 빛과 하늘도 휘듯이 우리들도 이제는 직선과 직선으로 부딪치지 말고 곡선의 철학으로 서로를 껴안아주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은 아인슈타인 박사의 ‘빛과 하늘도 휜다’는 우주의 위대한 진리를 받아들여 평화와 공생을 추구하는 통일을 앞당겨야 하리라.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나에게 큰 가르침을 안겨준 어린 쌍둥이 손자 성민이와 성진이, 아인슈타인 박사에게 감사드린다. 사람생명을 하늘처럼 우러러보며 모두가 하나 되는 그날을 꿈꾼다. 무지개처럼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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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선 대표시 8편
감꽃
어릴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참깨를 털면서
산그늘이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금남로 사랑
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언덕이었다
달맞이꽃을 흔들며 날으는 물새들
금남로는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어린애와 나란히 밭으로 가는 금남로
어머니와 나란히 밭으로 가는 금남로
아버지와 나란히 쟁기질하는 금남로
할머니와 나란히 손자들을 등에 업는 금남로
할아버지와 나란히 밤나무를 심는 금남로
누이와 나란히 감꽃을 줍는 금남로
금남로는 민들레와 나비떼들의 고향이었다
그리움의 억세디 억센 끈질김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멀리
청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가까이 마을로 찾아가는 길
금남로는 어머니의 젖가슴이었다
우리가 한때 고개를 파묻고 울던
어머니의 하이얀 가슴이었다.
불이냐 꽃이냐
어떤 사람은 불의 길을 가지만
어떤 사람은 꽃의 길을 간다
어떤 사람은 불을 역사라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꽃을 역사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아우성의 길을 가지만
어떤 사람은 노래의 길을 간다
너희여 참삶이란 불이냐 꽃이냐
사랑의 참길이란 불이냐 꽃이냐
불은 밤의 어두움을 밝이지만
꽃은 낮의 어두움을 밝힌다
불이 피묻은 칼을 녹여버릴 때
꽃은 피묻은 칼을 닦아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의 길을 가지만
어떤 사람은 꽃의 길을 간다
어떤 사람은 아우성의 길을 가지만
어떤 사람은 노래의 길을 간다
어떤 사람은 아우성과 노래의 길을 한꺼번에 간다
체옹 에크Cheoung Ek
잡풀 무성한
물웅덩이에
수련 몇 송이 떠 있네
모든 영혼에는 파수꾼이 있다*?
석가나무 나뭇잎에
잠깐 내려앉기도 하는
별빛이라든가 꽃향기에 파수꾼이 있다?
1975년 9월이던가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15km 지점
1백여 명의 젖냄새 아가들을 트럭에
싣고 와 한꺼번에 파묻어버린 체옹 에크!
아
이 생면부지의 벌판에 와서
나는 내가 인간이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어린 죽음들 앞에 무릎 꿇어 엎드릴 때
― 코리아의 문경 새재 너머 돌당골에서
거창 신원 감악산 돌고 돌아 박산골에서
한라산 북촌마을 바닷가 너븐숭이 돌밭에서
두 살, 세 살 나이에 총알세례 받은 아가들!
그 어린 것들이
여기 먼 나라 체옹 에크
흙빛뿐인 물웅덩이에까지 와서
아야어여오요우유 한국어 母音으로 함께 울고 있었다.
*체옹 에크Cheoung Ek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근교에 위치한 일명
킬링필드. 제노사이드 현장 중 하나로 가장 많은 사람이 학살당한 곳.
**이슬람 경전 [코란]의 ‘밤의 방문자 장’에 나오는 경구.
단테의 지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의 배를 가른 식칼!
마지막엔 낫과 괭이와 도끼
탱크와 교수대 작두와 함께
지옥의 불! 용광로에 던져져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이빨 빠진 한 자루 식칼!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년 5월 피렌체에서
태어나 1321년 9월 14일 라벤나 聖프란체스코 성당에 영면함.
길
어디로
가야 길이 보일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어디에서 출렁이고 있을까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잃고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가
사람들이 저마다 달고 다니는 몸이
이윽고 길임을 알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기쁨이여
오 그렇구나 그렇구나
도시 변두리 밭고랑 그 끝에서
눈물 맺혀 반짝이는 눈동자여
흙과 서로의 몸 속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바로 길이었다.
텐산산맥을 넘어가며
아무리 아름다운 금수강산도
거기 사람이 서 있지 않으면
그게 무슨 명산이요 명화이랴
아무리 높은 서녘의 텐산산맥도
신라 혜초스님이 넘지 않았다면
내 또한 무심히 바라만 보았으리
궁극으로 아름다운 산, 태산준령은
거기 사람이 들어서거나 넘어설 때
새와 구름 날으는 큰산으로 솟는다
*텐산산맥 : 천산산맥(天山山脈)
*명산(名山)이요 명화(名畵)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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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김준태 시에 대한 평글(김치수/ 고재종 / 김용락)
고향의 의미
김치수(평론가.이화여대 교수)
김준태의 시를 읽으면 이상한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시에는 우리가 추억으로서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농촌의 삶이 간직하고 있는 투박한 삶의 건실성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게 사는 것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도시의 삶이 가지고 있는 세련된 삶의 허구성이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무수한 대립의 이미지들이 뒤얽혀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단순한 선악의 양분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인의 고통스런 자아의 탐구이면서 동시에 그 자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현장의 탐구인 것이다. 그러한 탐구로서의 김준태의 시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원초적인 생명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 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驛前)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때 사방팔방에서
저녁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콩알 하나」)
이미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콩알 하나’에 대한 시인의 애착이 ‘도회지 안 / 도회지 밖’이라는 두 가지 대립 개념을 낳으면서 ‘쭈그러진 시괄 할머니’가 지니고 있는 ‘생명’으로서의 ‘콩알’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것은 도회지의 아스팔트에서는 생명력이 없이 굴러다니고 밟히는 콩알이지만 ‘밭이랑’에서는 생명으로서의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얼핏 보면 아주 단순한 사실의 확인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도시가 ‘콩알’의 소비적인 장소인 반면에 농촌이 그것의 생산적인 장소라는 대립적인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가 콩알을 밭이랑에 심어주었다는 행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말을 바꾸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콩알을 생명으로서 되돌려주는 행위이다. 이것은 콩알에도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고향이 있고 따라서 시인은 콩알의 고향을 찾아주는 것이다.
김준태의 첫 번째 시집『참깨를 털면서』의 후기에는 ‘고향’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되어 있다. ‘나의 고향은 나의 우주다. 나의 고향은 나의 교과서요, 바이블이요, 눈알이요, 망원렌즈요, 배꼽이요, 귓구멍이요, 속옷이요, 머슴이요, 보리밥이요, 천국이요, 개똥이요, 구정물통이다. 요컨대 나의 고향은 나의 모든 것이다. 나의 미래다.’고 하는 이 시인의 고향은 시인 자신의 전체이며 삶 전체인 것이다. 그것은 그의 두 번째 시집『나는 하느님을 보았다』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주제이며 그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삶 전체인 것이다. 첫 번째 시집의 후기에서 말하고 있는 시인의 고향은 시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적(흔히 하는 말로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시인 자신의 삶을 결정짓고 있는 시인의 공간적(혹은 상황적) 의미를 띠고 있는 나아가서는 시인의 정신(혹은 문화)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준태에게 있어서는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내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와 같은 잃어버린 고향의 슬픔도 아니고, 기억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고향도 아니고, 비판과 찬양의 대상이 되는 객관적 고향도 아니며, 어느 지역에 한정되는 지역적인 고향도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로서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다른 누구에게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고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준태의 시에 나오는 고향이 어느 특정한 지역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시 곳곳에서는 ‘나의 고향’이 ‘해남’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광주에서
남쪽으로 삼백리
내 고향 해남
(「추억에서」 1련)
해남이라 동백꽃 내 고향
황소마저 팔아버린 마구간
비좁은 둥근 양철그릇 안에
할아버님을 앉혀드려 놓고
옛날 같은 뒷등을 밀어주었네
옛날 같은 앞가슴도 밀어주었네
(「할아버님 생각」 1련)
여기에서 드러나는 ‘해남’이라는 특정지역으로서의 고향은 시인의 개인적 삶이 형성되었던 고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특정한 지역으로서의 고향은 ‘할아버지야 / 할머니야 / 전쟁 통에 자식 잃고 / 지금은 / 어디로 / 어디로 가셨나’라든가 ‘홍두깨로 휘감아 방망이로 두드린 / 무명배 바지 적삼을 여며 입고 / 한세월 지게 밑에 살아오신 / 할아버님의 뒷등을 밀어주면서’와 같은 그 다음 면을 읽게 되면 한국이면 누구나 경험했던 역사적인 사건과 시골의 가난한 삶을 대변하는 보편적인 고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고향은 가령 한국사회 전체와의 관련 아래서의 시골이라든가, 도시와의 관계 아래서의 시골로 인식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옛날과 같은 폐쇄되고 보존되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라든가 우리 사회라든가 하는 전체 공간으로부터 끊임없는 간섭을 받아 변화하는 공간이다.
보리꽃이 피면 가겠네
살구꽃이 피면 고향이여 가겠네
칼날 같은 기계 속에 팔려온 목숨이어도
노을의 저 불타는 입술에 속살을 부비고
억새풀 굳센 바람으로 가서 춤추겠네
메말라 터진 살덩이를 적시겠네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출발
고향이여 지금은 당당하게 돌아가겠네
썩은 고목 속에 집짓는 검은 박쥐들을 쫓아내며
언덕마다 나무마다 흐르는 강물마다 가슴을 헹구며
산꿩이 푸드득 청천(靑天) 하늘로 날아오르듯
황톳길 들녘에서 다시 태어나겠네
앞뒤 산에서 늑대가 울던 날 밤
연두콩알 같은 눈물이나 떨어뜨리고
말없이 이끌려 하룻밤에 멀리 죽어갔던
짚신이여 나막신이여 들기러기 떼여
뻘겋게 부서지는 흙덩이를 뒤에 두고
아아 원통하게 사라진 뜨거운 앞모습이여
(「기계 속에서」제 1∼3련)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고향이란 ‘보리꽃’과 ‘살구꽃’이 피는 목가적인 고향이다. 그러나 벌써 ‘보리꽃’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우리의 ‘보릿고개’라는 가난의 역사가 상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없이 이끌려’ ‘죽어갔던’ 역사적 상처가 시인의 마음속에 ‘원통하다’는 한을 남겨놓은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그러한 고향을 떠나 일터를 찾아 나온 사람에게 고향이란 일터가 있는 도회지와 대립되는 곳이다. 말하자면 고향을 떠나왔지만 그곳은 언제나 ‘돌아갈’ 곳으로 나타나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향이 이제는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곳은 아니다. 그곳은 ‘칼날 같은 기계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숙명’처럼 존재하는 곳이고 그래서 ‘지금은 당당하게 돌아가겠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향을 떠나본 사람의 고향 재인식은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향이 편안을 보장해주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억새풀 굳센 바람으로 가서 춤추겠’다고 말한다. 온갖 역사적인 비극에도 버티어나가면서 자신의 되찾게 될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는 강렬한 생명력을 ‘억새풀 굳센 바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굳센 바람으로 춤을’ 추기 위해서는 아무리 고향을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다는 삶의 비극적 인식을 숙명처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 번을 돌아선들 오로지 하늘과 바람으로 씻겨지는 고향산천이여
보리꽃이 피면 풋풋한 보리꽃에 묻혀서
살구꽃이 피면 연분홍 살구꽃에 묻혀서
한 많은 오천년을 흙덩이로 울겠네
그 울음으로 다시 논밭을 가꾸고
그 울음으로 다시 들불을 이루겠네
(「기계 속에서」제 4련)
말하자면 고향 땅에서 흙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 것이 5천년 역사의 한을 푸는 행위로 바꿈으로서 한국 사회 전체로, 역사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그것은 ‘돌아온 탕자’와 같은 행복한 귀환은 아니다. 그것은 울음으로 ‘울음으로 다시 논밭을 가꾸고 / 그 울음으로 다시 들불을 이루’는 비극적인 귀환이다. 이러한 비극적 귀환의 대상으로서의 고향이 침략의 설움을 당한 한국의 역사로 확대되는 것은 ‘글안족이 뭉개고 일본의 어스름이 짓누르고 / 간밤의 도적놈이 살금살금 기어가던 흙에 / 배를 깔고서 / 쌀밥보다 미끈한 詩를 쓴다’(「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고 하는 첫 번째 시집 속의 한 구절에서 특히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고향을 노래하면서 고향의 한 많은 삶과 현실을 함께하는 시를 생각하고 그러한 삶과 현실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다.
말을 꼬불려서 곧은 문장을 비틀어서
시작을 그렇게 하면 되나
참신하고 어쩌고 떠드는 서울의 친구야
무등산에 틀어박힌 나 먼저
어틀란틱지나 포에트리지를 떠들어봐도
몇 년간을 눈알을 부라리고 찾아봐도
네 놈의 심장을 싸늘하게 감싸는
그럴듯한 싯귀는 없을 거다
네 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찢어서
죽인 어제는 없을 거다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부딪치던 소리는 없을 거다
(「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일부)
6·25라고 하는 역사적 비극을 떠나서 우리의 현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시인에게 있어서는 고향을 떠나서 그의 시적인 현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인의 시에서는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향의 모든 것과의 끊임없는 조화와 친화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조화와 친화의 관계는 근원적인 사랑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으로서 생명력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것이다. 모든 사물이 바로 고향 의식을 일깨우고 그 사물들과 함께 있음으로 해서 ‘울음을 우는’ 한을 지닐지라도 자신의 고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고향으로 달리는 車 속에서’라는 시에서 ‘롯테껌이나 껌을 씹으면서 / 쓰디쓴 지난날을 잊어버’리는 도시적인 삶을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車 속에서 ‘우리는 문득, 몸서리치며 바라본다 / 공동산 언덕 위에 나부끼는 도깨비불들을 / 도깨비불들의 소리 없는 비명과 아우성을!’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죽음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를 고향을 떠나서는 잊은 것 같지만 우리의 내면 속에 언제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 비극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고향이 ‘비명과 아우성’으로 가득 찬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 15년을 살다보니 / 달팽이 / 청개구리 / 딱정벌레 /
풀여치 / 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 더없이 그리워진다 /
조그만, 아주 조그마한 것들까지 / 사람으로 보여와서 /
날마다 나는 / 손톱을 매만져댄다 / 어느 날 문득 /
나도 모르게 / 혹은 무심하게 / 이런 조그마한 것들을 /
짓눌러 죽여버릴까 봐 / 날마다 나는 / 손톱을 깎으며 /
더욱 사람이 되자 / 더욱 더욱 사람이 되자 /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 오, 파랑새여 파랑새여...... (「15년」)
여기에서 ‘달팽이’ ‘청개구리’ ‘딱정벌레’ ‘풀여치’ 등은 흔히는 서정시에서 시인의 감정 표현의 도구로 사용되는 ‘자연’에 지나지 않는데, 이 시인에게 있어서는 고향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무심하게’ ‘죽여버릴까 봐’ 시인이 손톱을 깎는다고 하는 것은 시인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죽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15년 동안 도시에 살아오면서 시인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 하찮은 것 같은 생명들을 잊게 되는 것은 고향을 잊는 것이며 따라서 고향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을 잊는다는 것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더욱 사람이 되자 / 더욱 더욱 사람이 되자’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것이다. 자연으로 표현되는 시인의 고향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든가 ‘달이 뜨면 그대가 그리웠다’라든가 하는 무수한 시편들에서 확대되고 있고 심화되고 있다. 그것은 고향의 작은 곤충들뿐만이 아니라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을 가진, 따라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면서 그것이 곧 ‘사람’이 된다. 시인은 그러한 고향의 사물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사랑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는 고향을 찾을 수 없고 ‘하느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는 안된다.
인간성이란 바다와 같은 것이어서, 설령
바닷물의 한쪽을 더럽힌다 해도 그 바다
전체가 더렵혀지지는 않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1980년 7월 31일
저물어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몸이 아파 술을 먹지 못하고
대신 콜라로나 목을 축이면서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느꼈다
1980년 7월 31일 오후 5시
뭉게구름 위에 앉아 계시는
내게 충만되어 오신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그런 뒤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고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좋아졌다
내 몸뚱이가 능금처럼 붉어지고
사람들이 이쁘고 환장하게 좋았다
이 숨길 수 없는 환희의 순간
세상 사람들 누구나를 보듬고
첫날밤처럼 씩씩거려 주고 싶어졌다
아아 나는 절망하지 않으련다
아아 나는 미워하거나 울어 버리거나
넋마저 놓고 헤매이지 않으련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라면 피라미
한 마리라도 소중히 여기련다
아아 나는 숨을 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하찮은 물건이라도
입맞추고 입맞추고 또 입맞추고 살아가리라
사랑에 천번 만번 미치고 열두 번 둔갑하여서
이 세상의 똥구멍까지 입맞추리라
사랑에 어질병이 들도록 입맞추리라
아아 나는 정말 하느님을 보았다.
사족蛇足:나는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린 시절의 나의 할머님은
당골례(무당)를 이만저만 좋아했고 또한 그것을 나에게 강요했기 때문에, 나는 기껏해야
도깨비 밖에 상상 못하는 놈이다. 좌우지간에 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의 詩 [너는
기다려서는 안된다]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노래한 것을 기억은 하고 있는데, 그 전편을 소
개하면 이렇다. “神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너는 기다려서는 안된다 /그 의 힘을 스스로 밝히는 / 그러한 神이란 의미가 없다 / 태초에서부터 너의 내면에 / 神이 바람처럼 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그리하여, 너의 마음이 닳아오르고 비밀을 지킬 때 / 神은 그 속에서 창조를 한다.”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을 설파할 때의 모세의 ‘I am who I am"이란 말과 묘한 상응(相應) 내지는 동일한 뉴앙스를 이룬 것 같기는 하나, 제대로 내 따위가 알 턱이 어디 있으랴. 니체가 괴로워 했던 “Gott ist tot"란 엄청난 이야기도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고 있으며, 그렇다고 라인홀드 니이버가 니체와 상대적으로 부딪쳤던 “There is no God"의 의미도 모른다. 유대인의 메시아사상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Soma (헬라어로서 영어로는 The Body of Christ), 즉 하느님을 보아버린 것이다. 아, 나 같은 놈도 하느님을 보아버렸으니......。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길게 ‘사족蛇足까지 붙이고 있는)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랑에 도달한 그의 고향시들은 고향 안에서 고향의 한과 함께 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논리적이라든가 이론적인 모든 것에 대해서 극도의 불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험적인 세계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비극성 자체를 경험적으로 인식하려는 시인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령 ‘참깨를 털면서’에서 할머니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참깨 자체를 털 때 쏟아지는 깨알의 중요성보다도 한을 털어내는 인고의 양식을 더 깊이 노래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한(恨) 풀이가 사랑에 도달하게 되는 김준태의 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시적 언어의 특수한 배열과 리듬으로 인해서 그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단히 거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두 개의 강렬한 이미지들이 맞부딪침으로 인해서 끊임없는 불꽃을 휘게 만들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잠든 의식에 충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충격은 우리 시가(詩歌)의 전통적인 가락 때문에 유장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의 장시인 ‘살풀이’와 ‘지리산 여자’를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김준태의 시에 나타나는 서사적인 요소는 그의 시가 우리의 삶의 고향을 되돌려주는 강렬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이끌고 가는 전통적인 리듬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이미지와 리듬은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 자신의 의식의 자동화(自動化) 때문에 부재화(不在化)되고 있는 것들을 존재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삶에 대해서 새로운 감각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각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시를 읽는 동안에 소비해버리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각의 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그의 시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고 생각함으로써 삶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워서 등가죽으로 첨벙거리는 / 전신을 거꾸로 눕혀 퍼덕대는 / 이 기막힌 송장헤엄을 생각해보셨습니까’ ‘오늘 또 누가 송장헤엄을 배웁니까 / 송장헤엄을 서로 서로 배우려고 / 이무기가 살아있는 강물로 뛰어듭니까?’라는 구절이 나오는 ‘송장헤엄’과 같은 시와 또 다른 시 ‘송장메뚜기’가 우리로 하여금 읽는 과정을 길게 하는 것은 그의 시가 쉬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시가 어렵게 느껴질 때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고향의 의미]는 김준태의 두 번째 시집『나는 하느님을 보았다』(한마당.1981)에 발문 형식으로 게재된 평론가 김치수(이화여대 교수.1940∼2014)님의 평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서울대 불문과와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 졸업. 님은 ‘상처와 치유’ 등 다수 저작을 남겼다.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드는 시인
고재종
김준태는 밭의 시인이다. 역전 광장에 떨어진 콩알 하나라는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 강 건너까지 가서 거기 밭에 꼭꼭 묻어주는 시인이 밭의 시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첫시집「참깨를 떨면서」에서 시작된 흙과 밭의 시는 최근 시집『지평선에 서서』의밭詩연작에까지 계속된다.밭은 말하지 않는다/ 흙을 모자처럼/ 눈썹 아래까지 눌러 쓰고/ 끝없는 명상에 젖는다/ 먼 하늘 햇빛 달빛을/ 그 넓은 가슴으로 받아/ 밭은 언어 대신에/ 잎새는 하늘로 펴주고/ 열매는 거꾸로 매달아놓는다. 그의 시「밭은 철학을 한다」인데, 이쯤 되면 그에게 있어서 밭은 삶의 시원이고 완결점이며, 삶의 현장이고 유토피아이다. 시인이 밭을 그렇게 보는 것은 생명과 생명의 매개 역할을 해주는 곳이 밭이고, 개인적 삶의 터전에서 공동체적 삶의 이상을 겨냥할 수 있는 곳이 밭이기 때문이다.
김준태는 통일시인이다.밤마다 나는 북한 여자와 잠을 자지만/ 아들 한번 고구려 사내놈처럼 낳으려고/ 그녀와 대한민국 전체로 보름달로 놀아나지만/ 딸 한번 평안도 기생같이 쏘옥 빼내려고/ 그녀의 숨겨진 땅을 진흙덩이로 뒹굴지만/ 늪수렁에 감춰진 열쇠를 맨주먹으로 비틀지만/ 첫새벽에 먼저 일어나 잠든 그녀를 보면/ 육이오 때 밀려왔다가 지금은 고작/ 밥벌이로 술집을 차린 피난민 여자가 아닌가로 시작되는 시「북한 여자」는 분단 속에서의 민중의 삶이 얼마나 쭈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절절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분단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감꽃」이란 시가 이 슬픈 현실을 증거해낸다.
김준태는 정치시인이다.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파묻혔나”로 시작되는「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시집가여」는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 신문에 발표됐다가 시인의 온갖 수난을 부른 시다. 한 시인이 시대의 불의에 맞서 이처럼 유격적으로 시로 저항한 예는 동서고금의 시단에서도 별로 그 예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불이냐 꽃이냐」라는 시도 이런 정치시이다.
김준태는 휴머니즘과 생명의 시인이다. 기계와 기계의 도시/ 우와, 전화벨 소리가/ 파리떼처럼 들끓는 책상 위에/ 연초록 둥그런 꽃병을 놓고/ 한 송이 수선화일랑 꽃아두니(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통치하리라」) 하는 행위나왜 새들은/ 안 보이는 나라로까지 날아가서 죽을까/ 그 마음을 아는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져…갈 곳을 몰라 하는/ 벌레들의 뒷등을 덮어준다.(「무제」)는 것이나, 초등학교 1,2학년 애들이려나/ 광주시 연제동 연꽃마을 목욕탕-/ 키가 큰 여덟 살쯤의 형이란 녀석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여섯 살쯤의 아우를/ 때밀이용 베드 위에 벌러덩 눕혀 놓고서/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마치 그의 어미처럼 닦아주고 있었다/ 불알 두 쪽도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 주는 것이었다(「형제」) 라고 하는 것이나 모두 다 눈물나도록 인간애와 생명애가 넘쳐나는 세상을 꿈꾸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 엄청난...]은 고재종(1957∼) 시인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새벽들] [날랜 사랑] 등.
화(和)와 쟁(諍)의 중도사상
김용락
1.
내가 김준태라는 시인의 이름을 처음 본 것은 아마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977-8년쯤이 아닌가 싶다. 그의 첫시집『참깨를 털면서』(1977)라는 시집이 출간 이후 그 시집에 대한 계간 평에서 본 것 같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아마 계간지「문학과 지성」의 계간 평인 듯한데 농촌생활의 정서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거 같다.
「참깨를 털면서」라는 작품을 처음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첫째는 내가 그때까지 생각하고 주로 봐 왔던 모더니즘 계열의 난해시와는 다른 형태의, 너무 평이하고 사실적인 서술의 시여서, 이런 것도 시가 되나? 하는 문학 창작론 측면의 놀람의 감정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내 고향인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서도 할머니가 참깨를 털 때는 산그늘이 내리는 산비탈 밭고랑에 갑바를 깔아놓고 쪼그려 앉아서 참깨를 털 때 참깨 깻단이 부러지고 모가지가 떨어질까봐 할머니 자신도 조심조심해서 털지만, 일손을 거들고 있는 손자인 나에게도 살살 털어라고 충고하는데, 멀리 전라도 끝 해남지방에서도 참개를 털 때는 경상도와 같은 방식으로 터는구나하는 풍물적 신기한 감정이었다.
김준태 시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대략 “고향정신(시를 쓴다는 것은 고향을 발견하는 것이다(횔덜린), 사람생명(사람은 하늘. 사람목숨은 모든 이데올로기를 앞서는 상위개념), 통일(동서남북의)과 평화”라는 데로 모아진다. 조금 부연하자면 횔덜린의 주장처럼 삶의 원초적 질료로서의 고향의식뿐 아니라 이농과 수탈의 대상이 된 현실로서의 고향과 농촌에 대한 서정적 정서의 발현, 그리고 사람만의 생명의식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아우르는 대지적 생명의식이 그의 시 전편에 골고루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통일도 남북 간의 통일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평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인 동서간의 지역주의 극복에도 그의 시적 관심이 크다.
“일체 중생이 아프니 나 또한 아프다(一切衆生病 是故我病)” -유마거사
“시대만이 그의 유일한 가능성이다. 시대는 작가들을 위해서 이루어졌고, 작가는 시대를 위해서 존재 한다”-사르트르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이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不死鳥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시 전반부)
아! 아! 지금 읽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1980년 당시 대구에서 어떤 경로인지 모르게 흘러들어온 이 시를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에 빠졌던 생각이 되살아난다. 이 시 한 편이 한국문학사에 없었다면 ‘광주’는 어쩔 번했나? 이 한 편의 시로 김준태는 문인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아니 김준태 개인뿐 아니라 동시대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시인들이 존재의 의미를 확인받았다. 김준태 시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인 강한 남성적인 톤, 살육의 현장에서 목도한 처참한 역사성은 이 시를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은 경지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핍박과 죽음에 절망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고 새로운 세상,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강렬한 의지가 돋보인다. 오월광주 이후 한국문학은 원죄 의식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정점에 바로 이 시가 있어 문학의 위엄을 되찾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원효님 이윽고 오시네 / 동서남북 벽선을 두루 마치고 /
누워 천정 올리는 와선 마치고 / 하얀옷 돌 속으로 들어가시네 /
춤추며 쇳덩이 같은 돌 속으로 / 들어가 둥근 해 들고 나오시네 /
춤추며 쇳덩이 같은 시공 속으로 / 들어가 둥근 달도 들고 나오시네 /
꽝꽝 돌 속 연꽃 꺾어 나오시네 // → → → ○○○ ← ← ← //
한라산 지리산 백두산 고구려 백제 신라/울 원효대사님께서 온통 바다로
만들었네 / 바람 속 구름 속 첩첩산속 온통 바다이네 /물고기보살 땡그렁
땡그렁 헤엄쳐 다니네 / 황금비늘 몸속에 천불부처님 다 넣으시고 //
→ → → ○○○ ← ← ← // 새는 두 날개를 가져도 날지 못한다 /
좌우의 날개 둘 가져도 날지 못한다 / 몸뚱이가 하나일 때 천지간을
날은다 / 퇴계 이황 선생의 마음하늘 이, 4단과 / 기대승 선생 기,
7정이 원으로 만나야 / 새야, 새야 우리들도 훨훨 날아가리라 /
*벽선壁禪·와선臥禪·시공時空·천불千佛/이理·4단四端·기氣·칠정七情.원圓
-「원효元曉」(시 전문)
잘 알려진 것처럼 원효의 중심 사상은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쉽게 말하면 화쟁사상은 극단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을 자유자재로 하며 모든 이론적 대립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을 말한다. 원효는『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란 책을 통해 화쟁사상을 주장하고 있는데 인도에서 성립해서 중국을 거쳐 신라에 들어온 불교가 이론적으로 나눠져 논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관과 유식, 천태와 화엄, 소승과 대승, 현교와 밀교의 모든 주장들을 회통시켜 한 차원 높은 진리를 탐색한 것이 화쟁사상이라 할 수 있다. 화쟁사상의 사회 역사적 배경으로 당시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이 벌인 피어린 전쟁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김준태의 근작시는 ‘원효’의 세계에 입문한 듯하다. 앞 서 언급한 바도 있지만 치우침 없는 열린 마음의 상태인 중도사상, 올바른 쟁(諍)을 통한 화(和)의 세계는 요즘 말로 소통에 다름 아니다.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단절과 폭력의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중도와 화쟁의 세계에로 몰입이 근래 김준태 시의 살아있는 모습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화(和)와 쟁(諍)의 중도사상]은 열린시학(2014년 봄호) 김준태 특집에 게재된
김용락 시인의 장문의 글에서 일부 발췌하여 옮긴 것. 김 시인은 경북 의성 출신.
1984년 ‘창비’로 데뷔. 대구 경운대 교수, 시집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외 다수.
김준태(金準泰) 1948년 해남 출생, 1969년『전남일보』ㆍ『전남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월간『시인』으로 한국문단에 나옴. 시집으로『참깨를 털면서』『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국밥과 희망』『불이냐 꽃이냐』『넋통일』『오월에서 통일로』(판화시집) 『칼과 흙』『통일을 꿈꾸는 슬픈 色酒歌』『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지평선에 서서』『형제』(육필시집)『밭詩』『달팽이 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Gwangju, Cross of Our Nation)』(영역시집) 등을 펴냈다. 1995년『문예중앙』에 중편소설「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선보인 이후 100여 편의 액자소설을 발표. 산문집『시인은 독수리처럼』, 문명비평집『21세기말과 지역문화』, 한국세계명시해설집집『사랑의 확인』『사랑의 변주』상하권, 번역서『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팀 오브라이언), 기행집『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통일시에 해설을 붙인『백두산아 훨훨 날아라』등을 펴냈다. kjt48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