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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역사는 ‘인간’이라는 식물에 이로움을 주는 공공생활 방식을 얻기 위해 온갖 실험을 다해본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잡다한 실험 끝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이라는 두 원리에 인간 종자를 투여할 경우 단 한 세기 만에 유럽인이 세 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웃을 고려하고자 하는 결의를 극대화시킨 것이며 공존의 의지가 가장 강하게 표현된 ‘간접행동’의 원형이라고 스페인의 생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정의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다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적인 권위가 자신의 전능한 권력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통치하는 국가 속에 다른 가능성을 남겨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수가 소수에게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으로 지상에 울려 퍼진 가장 고귀한 외침이며, 강한 적뿐만 아니라 심지어 약한 적과도 공존하겠다는 결의라고 선언했다. 인간이 이처럼 아름답고 역설적이며, 이처럼 우아하고 아슬아슬하며, 이처럼 반자연적인 것에 도달하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그는 찬탄했다.
자유민주주의와 대중의 등장 1800년부터 1세기 동안은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인류의 진화된 시대의식의 발화와 이와 맞물려 펼쳐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물질문명의 연쇄 폭발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켰다.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공간이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이런 문명의 빅뱅과도 같은, 발생 확률이 거의 없는 일들이 어떻게 해서 유럽에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평균인이 자신의 경제 문제를 이처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의 지위는 날이 갈수록 안정되고 타인의 임의로부터 독립되었다. 이전에는 운명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 행운의 선물로서 간주되던 것이 이제는 감사할 게 아니라 요구해야 할 권리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서 처음으로 대중이라고 하는 집단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중들은 자신들을 탄생시킨 문명의 원리를 인지해 낼만한 시대정신을 터득하고 있지 못하며 그들이 기술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수준에 도달한 현재의 문명을 그저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 때문에 다시 문명의 위기가 온다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경고했다. 아득한 옛날 도시가 탄생하였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두루 이롭게 하라는 자유민주주의 원형이 될 만한 홍익 정신을 바탕으로 신시라는 도시국가 공동체를 창출하고, 선진의 물질문명을 일구어 낸 한웅할아버지의 신시 개천 이야기를 통해서 문명의 빅뱅이 일어나는 시공간의 모습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스스로 자급자족의 능력은 가지지 못한 도시라는 공간을 건설한다는 것은 한 차원 높은 삶의 원리를 터득한 존재가, 두루 이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펴서 시간과 공간을 연결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같은 부족끼리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살던 사람들이 부족을 박차고 나와서 의심과 경계를 넘어서 서로 만나고, 다양한 물물을 교환하며 작은 나를 버리고 더 큰 나로 살아가기로 결심해야 만들어지는 창조물이 도시다. 알을 깨고 나오는 의식의 점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의 창조물이다. 환웅이라고 하는 시대정신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를 상상하지 않고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런 엄청난 일들이 근대의 유럽인들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모든 문명이 멸망한 것은 그 원리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유럽의 문명이 가공할 문제에 직면하여 그 가능성마저 폐기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가공할 문제란 문명의 원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즉 대중이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대중들은 문명의 편의 속에서 엄청난 노력과 세심한 배려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거대한 발명과 건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 스스로 자기 문명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라는 시스템도 일부 인간들이 발명한 창조물로서 과거에는 유효했지만 미래에는 사라질 수도 있는 가치와 전제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은 국가란 인간이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애써 건설해가야 하는 사회 형태라는 것을 모른다. 사회는 국가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 만든다. 그 다음에는 국가가 우위를 점하고 사회는 국가를 위해 존속하기 시작한다. 국가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인간 실존의 관료주의화를 더욱 강화한다. 관료주의 강화는 사회의 군대화로 나타난다. 사회가 노예화되기 시작하여 국가에 봉사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점점 국가의 개입으로 사회적 자발성은 봉쇄당하게 되며 인간은 정부라는 자신이 만든 기계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 국가 개입주의는 결국 국민을 국가라는 단순한 장치와 기계의 먹이인 고기와 빵으로 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국가는 자신의 실존과 유지를 생명체에 의존해야 하는 한낱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사회의 골수를 빨아먹은 다음 말라비틀어져 해골만 앙상한 채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는 생명체의 죽음보다도 더욱 창백한 녹슨 기계의 죽음이라고 가세트는 예측했다. 기계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왕따 당한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외로움과 병마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부모가 경제난 속에 아이를 목 졸라 죽인다. 분노해서 죽이고, 좌절해서 죽고 사회가 노약자를 몰아내서 죽이고 있다. 모두가 사회를 탓하고 전능한 국가를 바라보지만 기계는 그저 돌아만 간다. 거대한 기계가 무자비하게 돌아가면서 사람들에게 남아 있던 문명의 원리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 기계의 부속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한때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함께 경험하면서 더불어 살던 원리를 배우던 핵심 단위인 가정이 해체를 맞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져 간다. 내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할 대상이,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믿고 지지해야할 대상이 점점 적어져 간다. “인간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교양 없는 야만인이 된다. 야만은 해체를 지향한다. 그래서 야만 시대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작은 단위끼리 서로 적대시하던 시대였다”라고 가세트는 말한다. 세상은 점점 믿지 못할 사람들로 채워지고, 모든 사람이 타자화되어 가는 위험한 곳으로 변해간다. 가정은 자꾸 잘게 잘게 썰어져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그나마도 차례 차례 해체되어지고 가족이 해결할 수 있었던, 가족이 해결해야 했던 문제들을 사회 속으로 토해 낸다. 가족이 붕괴되면서 가장 연약한 계층부터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학교는 지난 세기의 자랑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오로지 현대적인 삶의 기술만을 가르쳤을 뿐 계몽시키지는 못했다. 대중들에게 열심히 생존 수단들을 제공하긴 했지만 역사적 사명감을 심어주지는 못했다고 가세트는 평가한다. 그들에게 현대적인 도구의 힘과 긍지를 허겁지겁 전해주었지만 그 정신을 심어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문명의 유지를 위해서 대중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습득시키는 역할을 하던 학교가 이제 대중들을 잡아먹는 기계가 되었다. 왜, 무엇 때문에 학교에 가야하고 왜 이러한 것들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왜 꼭 성적으로 줄 세워서 대부분의 학생들을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찍어야 하는지 모른 채, 사람들은 차가운 기계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이 기계를 통과한 아이들은 똑같은 지식을 똑같은 방식으로 포장한 포장지 쌓여서 학교를 졸업한다. 관료주의화 되어 스스로가 정해놓은 교육의 한계를 맴돌면서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처럼 학교는 철거덕 철거덕 기계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만약 학교가 국가의 독점 영역이 아니라 자유 경쟁하는 기업이었다면 벌써 파산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전 과정을 노트북 하나에 다 담을 수 있을 만한 지식을 주입시키기 위해서 고객들인 학생들은 삶을 지옥처럼 느끼게 만드는,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도 고객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공권력에 의한 감옥 같은 곳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완전 범죄의 살인들이 발생한다. 이른바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을 차지하고 국민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에게서 국민들이 대안을 바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부정부패하고 양심을 속이면서, 뻔뻔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타락이란 다름 아니라 부당한 것으로 보이는 것과 변칙적인 것을 상습적이고 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확실히 타락해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률 1위, 청소년 흡연율 세계 1위, 이혼증가율 1위, 노인자살율 1위, 학교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있는데 어떤 대통령 후보도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국가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은, 이처럼 강력한 통치 상황은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권위, 곧 정부는 하루살이의 존재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전도가 밝은 것도 아니고 발전이나 전개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어떤 계획을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삶의 프로그램도 없고 계획도 없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서 어디론가 가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해진 길도 예정된 궤도도 없기 때문이라고 가세트는 한탄했다. 우리는 서구 중심의 문명이라는 규범 체계가 효력을 상실했다 보여지긴 하지만 다른 체계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도 모르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난장판을 벌이는 일에 몰두하는 문명의 어린이와 같이 살아간다. 문명의 원리를 깨우친 극소수의 어른들이 있기는 있지만 대중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설사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자신들의 리더로 추대하려 하지 않는다. 2012년 홍익의 문명원리를 살려내자!
시대정신은 내가 지금 서있는 위치를 가늠하고 문명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이 시대가 가야할 곳을 밝히는 정신이다. 문명의 원리는 “다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적인 권위가 자신의 전능한 권력을 제한하거나 심지어 희생을 감수하는 것, 다수가 소수에게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 에 기반하여 개인의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하여 원리를 탐구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한 물건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것을 할 수 있게 동기 부여된 세상이 바로 그것이다. 5천년 전 단군할아버지 만드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세상, “모든 사람을 두루 이롭게 하는 이치대로, 양심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오늘날의 문명의 원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제 사회의 모든 곳에서 홍익의 문명 원리를 살려내야 한다. 홍익 가정을 복원하자!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도 있는 사람들 속에서, 홍익 가정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런 돌봄을 받은 아이가 자라나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심지어 공공의 선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홍익인간으로 성장한다. 세대간의 연결과 유대가 강화된 가족문화를 복원하자!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육체의 여행을 지혜롭게 이끌어 줄 가정문화를 복원하자! 내 육체가 더 이상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영혼의 고향을 찾아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홍익 가정의 정신문화도 만들어 보자 ! 홍익 마을을 만들자! 누군가 어려운 사람을 보았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살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가족들이 모여서 만들어 가는 마을이 홍익 마을이다. 다른 집의 아이가 내 아이처럼 소중한 홍익 마을을 만들자! 법에 고소하지 않아도, 멱살을 잡고 다투지 않아도 마을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세월의 지혜가 가득한 존경받는 어르신이 살아있는 소통과 화합의 마을을 만들자. 홍익 학교를 만들자! 모든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싶어서 밤잠을 설치는 그런 학교를 만들어 보자. 모두가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다양성의 놀이터로 만들어 보자. 삶이 가혹한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바쳐서 무언가를 이룩해 볼 수 있는 축복 무대라는 것을 가르치는 인생 학교를 만들어 보자. 무한한 삶의 지혜를 가진 선생님들이 자신의 영혼을 바쳐 아이의 영혼을 키우는 학교, 삶의 이유를 알게 해주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인생 학교를 만들어보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꿈을 선택하게 한 후에 성인식을 시켜주고 자기 인생을 자기가 꿈꾼 대로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배움의 인생터가 되도록 학교를 만들어 주자!
홍익 대통령을 뽑자! 앞으로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층만은 분열과 좌절을 감수하는 경쟁형 다수결이 아니라 타협과 조화의 화백제도로, 만장일치 제도로 교황 선출하듯이 뽑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인 것처럼 뽐내는 현재와 같은 팔불출 선거제도로는 진정한 화합을 이룩하지도 못하고 정말로 우수한 국사급 인재를 추천하지도 못한다. 홍익의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대통령 후보가 누가 당선될 것인지 겨루는 삼자 택일 방식이 아니라, 삼자의 의견을 모아서 대한민국의 가장 좋은 방식이 무엇이 될 것인지 토론하고 의견을 청취한 후에, 누가 이 정책을 통합해 시행해 나갈 것인지 전국의 도지사들이나 지역 대표자들이 모여서 만장일치로 한명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나머지 분들은 자신들이 최선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담당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할 수 없으므로 누구든 당선되고 나면 세 사람의 좋은 의견을 수렴해서 세 세력을 포용하고 화합시키겠다는 선언을 하도록 하자. 어느 세력도 대한민국보다 크지는 않으므로 자기 세력보다는 대한민국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자 ! 그리고 당선자가 자신의 지혜뿐만 아니라 문명의 원리를 터득한 국사급 인사를 초빙해서 국가 백년대계를 구상하고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아니라 국민화합과 공동 번영의 홍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이끌어 보자. 훗날 대한민국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나라들이 생긴다면 그들의 대표들도 참석시켜서 한국연방의 대통령을 뽑는 화백제도를 열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모두 찬성하는 대통령이 아니면 뽑힐 수 없는 이런 화합형 제도 하에서야 비로소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들이 기꺼이 참여하는 한국 연방을 다시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세계의 모든 힘없고 가난한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더불어 사는 홍익 연방체를 희망하는 시절이 오면 우리는 2천년 평화시대를 열었던 팍스 단군시대를 이 시대에 재현한 새천년 평화시대를 열수 있지 않을까? “국가 건설은 진정한 창조이다. 국가는 절대적인 상상 활동에서 비롯한다. 상상이란 인간이 가진 해방의 힘이다. 한 민족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은 그 민족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고 가세트는 말한다. 나의 스승이신 일지 이승헌 총장님께서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탄생할 홍익 대통령이 만들어 갈 동방의 빛 대한민국을 꿈꾸며 노랫말을 준비해 놓으셨다. 가수 김범룡씨가 이 노랫말에 영감을 받아 10분 만에 작곡을 했다고 한다. 동방의 빛 대한민국 작사 : 일지 이승헌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 있어 아아아 대한민국 우리는 너를 사랑해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우리에겐 원하는 것이 있어 아아아 대한민국 긴긴날을 기다려 왔다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아아아 대한민국 위대한 탄생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