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동 시인의 시 읽기
돌의 꿈, 몸을 낮추어 걷는 존재의 상상
❙정솔 시집 『사막여우가 우는 저녁』 (걷는사람)
-돌 하나의 우주적 걸음, 정솔의 「물수제비」를 읽고
「물수제비」는 단 한 줄로 존재의 세계를 연다.
“돌의 꿈은 걸어보는 일입니다.”
돌이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불가능 속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본다. 돌은 구르기만 할 뿐 스스로 걷지 못하지만, 시인은 그 돌에게 “걸어보라”고 속삭인다. 그 말은 곧, 세상을 향해 스스로 발을 내딛으려는 시인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다.
돌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며 수없이 부딪치고 깨지고 닳아간다. 강물의 세월이 돌의 표면을 다듬으며, 거친 돌들은 서로 부딪쳐 모서리를 잃고 흙 속에 묻혔다가 햇살 아래 윤이 나기도 한다. 그 오랜 여정 끝에서야 비로소 돌은 둥글고 납작한 형태를 갖춘다. 많은 돌들 가운데서도 수제비를 닮은 납작한 돌, 즉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돌은 극히 일부다. 그것은 선택받은 돌, 물의 품에서 수없이 깎이고 씻기며 스스로를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온 존재다. 시인은 그 돌을 들어 올려 말한다.
“닳고 닳은
둥글어진 돌을 골라 수면에 던질 땐
몸을 낮추고 한쪽 눈을 감아야
제대로 물수제비가 떠집니다.”
‘닳고 닳은’이라는 말은 단순한 마모나 피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내의 흔적이며, 고통 속에서 자신을 다듬은 시간의 결이다. 시 속의 돌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생의 풍화 속에서 빚어진 존재의 상징이다.
그리고 ‘몸을 낮춘다’는 행위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시인의 내면적 자세다. 화려함보다 절제를 택하고, 강함보다 부드러움을 품는 태도. 그 빛은 물 위로 비치는 한 줄기 달빛처럼 잔잔하다. 스스로를 낮출 줄 알기에 오히려 더 멀리, 더 오래 날아오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정솔 시인의 시 세계를 지탱하는 삶의 윤리이자 미학이다. 시인은 이어 말한다.
“돌이 구르기는 합니다만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을 거라
오늘은 작은 돌에게 걸어보라고 물수제비를 뜹니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구르다’와 ‘걷다’를 대비시킨다. 구르는 돌은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지만, 걷는 돌은 스스로 길을 내는 존재다. 시인은 돌을 물 위에 던지며 처음으로 ‘걸을 기회’를 선물한다. 물 위를 뛰는 돌의 모습은 생의 축소판이며, 그 짧은 도약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함께 있다.
“아장-장-장
돌 하나가 아기 걸음마처럼 갑니다.”
아기가 세상에 첫 걸음을 내딛듯, 돌은 물 위를 종종걸음으로 건너간다. 시인은 그 순간을 통해 ‘삶의 연습’을 본다. 불안과 기쁨이 교차하는 찰나, 존재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돌멩이는 물 위를 퐁퐁퐁 걸으며
물속 하나, 물속 둘, 물속 셋……을 들여다봅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장자의 붕새가 구만리를 나는 대신, 한 조각의 돌이 물 위를 잠시 걷는 장면이다. 거대한 날개의 비상 대신, 작은 돌의 도약으로 시인은 세계를 건넨다.
신달자의 『물 위를 걷는 여자』가 잊힘과 기억, 상실의 경계를 헤매는 여성의 의지를 그려냈다면,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아름다움을 응시한다. 정솔 시인은 그 두 길의 교차점 위에 서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길 위에서도 한 걸음을 내딛는 존재의 의지,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함께 포착한다.
결국 「물수제비」는 구르던 존재가 걸음을 배우는 순간의 시학이다. 돌의 궤적 속에서 인생의 궤적을 보고, 물 위에서 짧게나마 걷는 돌의 꿈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 또한 다시 튕겨 오르기를 바란다.
“나도 저 돌멩이처럼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세상 하나, 세상 둘, 세상 셋……
눈을 크게 뜨고”
이 장면은 단순한 동경이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고자 하는 세상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빛나는 또 하나의 세계다. 그곳은 고통이 닳아 빛이 되고, 부딪치고 깎인 상처가 의미로 변하는 자리다. 시인은 말없이 다짐한다.
“나도 다시 눈을 뜨겠다.”
그것은 삶을 다시 바라보려는 확신이며, 한 번의 도약으로 세계를 새롭게 건너려는 존재의 의지다. 그리고 마지막엔 독자를 향한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 역시 던져진 돌이 아니던가?
우리도 언젠가 물 위를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존재가 아니던가?
이 시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잔잔한 물결처럼 여운을 남긴다. 확신보다 가능성으로, 완성보다 과정으로, 정솔 시인은 오늘도 물 위의 돌처럼 짧고도 영원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돌의 꿈은 걸어보는 일입니다
닳고 닳은
둥글어진 돌을 골라 수면에 던질 땐
몸을 낮추고 한쪽 눈을 감아야
제대로 물수제비가 떠집니다
돌이 구르기는 합니다만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을 거라
오늘은 작은 돌에게 걸어보라고 물수제비를 뜹니다
아장-장-장
돌 하나가 아기 걸음마처럼 갑니다
물 위에서 아슬아슬 걸어가던 돌멩이가
안간힘을 다해 불시착합니다
어떤 돌멩이는 서너 발짝 뛰고 불시착하고
어떤 돌멩이는 예닐곱 발짝 뛰고 불시착합니다만
돌멩이는 물 위를 퐁퐁퐁 걸으며
물속 하나, 물속 둘, 물속 셋……을 들여다봅니다
나도 저 돌멩이처럼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세상 하나, 세상 둘, 세상 셋……
눈을 크게 뜨고
-「물수제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