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성모발현 100주년 기념미사에서의 이한택 주교님 강론
김원율 안드레아
대수천 교리연구소장
다음은 2017년 5월 11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봉헌된 파티마 성모발현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 한국본부의 총재이신 이한택 주교님께서 행하신 감명깊은 강론을 간추린 것입니다.
-------------------------------
2017년 5월 13일은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어리고 천진난만한 세 아이들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각별한 부탁의 말씀을 하신지 100년째 되는 날입니다. 당시 성모님을 뵙는 특전을 입은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루시아 세 어린이 중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두 어린이는 일찍 하느님의 나라로 갔지만 루시아 수녀는 98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모님 발현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우리나라의 현실, 세계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서 100년 전 성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기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안정적이기 보다는 급격한 변화 속에 있습니다. 5월 9일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지만 앞길이 평탄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며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성모님을 통하여 100년 전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은 지금 우리에게 확실한 길, 옳은 길, 쉬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에게 말씀하신 길은 우리에게 확실한 길, 쉬운 길인데 우리가 외면하고 있습니다.
세 어린이 중 히야친타, 프란시스코 두 어린이는 이틀 뒤 5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성하실 것입니다. 이는 2000년 교회 역사상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순교자가 아니면서 성인이 되는 첫 케이스입니다. 이 시성(諡聖)은 어린이들을 성덕을 완성한 성인(聖人)으로 교회가 공식으로 인정하고 선포하며, 이들을 교회의 모범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 어린이들은 어른이 이루지 못한 성덕(聖德)을 해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어린이도 갈 수 있는 길을 어른이 왜 가지 못하는가?
성모님이 발현하시기 1년전 1916년 천사가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천사의 기도, 쎌 기도로 일컬어지는 이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믿고 찬미하며 의지하고 사랑하나이다. 당신을 믿지 않고 찬미하지 않으며 의지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용서해주소서.”
1916년 봄에 천사가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 죄인들의 용서를 비는 기도를 가르쳐 준 이후 이 어린이들은 하루도 빼 놓지 않고 매일 여러 차례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성모님께서 1917년 5월 13일 처음 발현하신 후 5월에서 10월까지 한 달에 한번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셔서 천사의 기도를 보완하는 여러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917년 6월 7일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희생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으며 또한 세계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열심히 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파티마에서 인류에게 원하셨든 것은 기도, 희생, 봉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어린이들의 영성에서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위대한 일, 거창한 일을 하여 큰 공덕을 쌓음으로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2000년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두 어린이를 시복하시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전 인류를 밝히는 촛불 둘을 켜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어린이는 천사의 기도, 성모님께 바치는 묵주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양떼지기였던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뛰어놀던 어린이였습니다. 두 어린이는 성모님을 뵌 특권 때문에 복자(福者)가 된 것이 아닙니다. 두 어린이는 성모님께 한 약속을 죽는 순간까지 지키며 기도를 열심히 하였기 때문에 복자가 된 것입니다.
파티마의 성모님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히야친타의 공이 크다고 합니다. 100년전 5월 13일 세 어린이가 성모님을 뵌 이후 루시아는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고 친구들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히야친타가 잠을 이루지 못하자 어머니가 히야친타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머니에게 ‘그 아줌마는 너무 예뻤어. 너무 아름다웠어.’라고 이야기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5월 13일 처음으로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셨을 때 성모님은 당신의 정체를 아이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이들이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묻자 성모님은 ‘나는 하늘에서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히야친타는 ‘내 안에 불덩어리 같은 것이 올라와서 도저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리하여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메시지가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에는 예언자들이 하느님 체험을 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전한 것은 이들에게 성령이 내려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전하고자 하는 내적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와 비슷한 체험을 히야친타는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이 되는 길,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어린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대한 희생의 선물로 희생의 기도를 드리고 묵주기도를 성모성심께 바친다면 세 어린이처럼 큰 성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예수님을 마음에 두면서 매일의 어려움을 주님께 봉헌하면서 살아간다면 비록 우리의 삶이 평범하더라도 우리는 이 어린이들처럼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서 ‘답게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농부는 농부답게, 부자는 부자답게,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답게, 학자는 학자답게 살아가는 것, 이러한 ‘답게 운동’을 행할 때 이 나라는 평화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혁명을 이룰 것입니다.
‘답게 운동’은 평신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는 사제답게, 주교는 주교답게, 수도자는 수도자답게 살 때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와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답게 살지 않으니 세상이 지금처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정치의 수준도 결국 민도, 우리 각자의 정신과 의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파티마의 세 어린이는 우리나라의 평협보다 100년 앞서서 ‘답게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어린이는 ‘티 없는 어린이답게’ 성모님께 대한 묵주기도와 천사의 기도를 바쳤고 성모성심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모시는 ‘푸른 군대답게’ 성실하게 묵주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100단, 200단처럼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단이라도 정성을 바쳐 성모님께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모님의 마음에 드는 일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순결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이 종국에는 승리하는 길입니다.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100년 되는 해를 맞아 죄인들과 나 자신의 회개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묵묵히 성실히 드리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7.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