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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시 읽기 / 신원철 시인
이 계절의 시 읽기
신 원 철 시인
새가 단청을 물고 동쪽으로 날아간다.
뜰앞 배롱나무가 단청을 훔쳐 품에 넣는다.
목어가 바다로 가는 바람에
색을 조금씩 실어 보낸다.
바람이 간다 온다.
이끼 낀 종 모양의 부도는
울지 않는 소리를 개울에 흘린다.
단청이 벗겨진 목조전 앞
저녁 안개 바람 틈으로 스미고
산도 색을 지운다.
묵화 한 점 피어난다.
시간은
더 가져갈 것이 없어
머뭇거리다 아예 주저앉는다.
- 이동근 「무량수전에 앉아」 『문학의 창』(2026 봄) 전문
“새가 단청을 물고” 날아가 버리고 “뜰앞 배롱나무”도 “단청을 훔쳐 품에” 슬쩍 넣어버린다. 무슨 말일까?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단청이 없다. 처음에는 있었을 테지만 세월이 흘러 벗겨져도 칠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것을 시인은 새가 물어가고 배롱나무가 훔쳐서 갈무리해 버렸다고 해석한다. 또 절집의 처마에 달린 “목어가 바다로 가”면서 “색을 조금씩 실어” 가버렸다고 보기도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면서 단청이 없으니 오히려 목조의 세밀한 조각이 돋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런데 시에서는 그 단청을 배롱나무나 목어가 숨기거나 실어 갔다고 한다. 또 새가 물어갔다고 한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그렇게 단청이 없어진 무량수전의 처마 끝에 바람이 오락가락하고 “이끼 낀 종 모양의 부도”가 “울지 않는 소리를” 개울물에 흘려보내고 있다. 오색의 단청이 없으니 처마 끝에 바람만 오락가락하고 종 모양의 부도는 아예 개울물에 묵음을 흘려보내고 있다. 쓸쓸하다.
그런데 상황은 반전된다. 단청이 없는 목조전 앞에 “저녁 안개”도 스며들고 “산도 색을 지”워 버리더라는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너무나 깨끗하다. 저녁 안개가 하얗게 감돌고 산도 무색이 되었다. 울긋불긋한 단청 대신 마침내 깨끗한 “묵화 한 점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담백한 풍경 앞에서 시간도 “머뭇거리다 아예 주저앉”아 버린다.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단청이 없는 무량수전과 그 앞을 멋지게 그렸다. 오색의 단청을 이놈 저놈 다 가져가 버리고 세월의 흔적이 서린 맨 나무만 남았다. 그랬더니 이 목조건물이 묵화 한 점처럼 단정하게 앉았다. 절을 둘러싼 산의 녹음도 색을 지워버리고 하얗다. 시간까지 흐르다가 멈추어 버린다. 이런 반전이 있나.
한때는 숲이었다, 저들 모두
두 팔 벌려 하늘 우러러 살아가던 나무들
책장이 여름 숲처럼 차오른다
한 채 두 채 모은 집들이 담을 넘어
길거리에 누운, 위기다
정리를 하는 데도 예의가 있다
사인 없는 집
재미없는 집
모르는 사람 집
재미없는데 사인이 있으면 어쩌나
사인은 없는데 재미있으면 어쩌나
집 한 채 짓느라고 오죽 힘들었겠는가
몇 번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이
친필 사인과 재미있는 집이 생겼다
다시 빽빽한 숲에서 살기로 하자
숲의 호흡에 피톤치트 향 가득하다
나는 겸손함을 배웠고 숲은 하늘을 찾았다
- 우정연 「숲 안거」 『문학의 창』(2026 봄) 전문
“한때는 숲이었다, 저들 모두/두 팔 벌려 하늘 우러러 살아가던 나무들”이라는 시의 처음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읽고 출간하는 책들이 원래는 숲이었다. 숲의 나무들이 우리의 시집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장이 여름 숲처럼 차오른다.” 사기도 하고 우편으로 배달되기도 하고 책장이 가득 차오르다가 마침내 넘쳐서 “담을 넘어/길거리에 누운” 지경이 되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한숨이 나온다. 이 책들을 어찌하나. 시인은 그것들을 “사인 없는 집/재미없는 집/모르는 사람 집”이라고 분류한다. 집들을 시집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이해된다.
이 시집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재미없는데 사인이 있으면 어쩌나/사인은 없는데 재미있으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따라 나온다. 잘 아는 시인인데 별로 재미가 없다. 아니면 처음 보는 시인인데 시는 재미가 있다. 이걸 버리나 두나 어찌하나. 그러다가 “집 한 채 짓느라고 오죽 힘들었겠는가”라는 생각이 뒤따라 나온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놓았다 하지만 이 시집 하나 만들기 위해 시인은 얼마나 노심초사했겠는가. “몇 번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마침내 포기했다.
“다시 빽빽한 숲에서 살기로 하자”라고 결심한다. 집이 비좁을 정도이지만 한 권도 버릴 수가 없다. 다시 책장에 책을 하나하나 꽂아 넣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퀴퀴한 책 냄새 대신 “피톤치트 향 가득”해 진다. 생각을 바꾸니 그 답답하던 서재가 상쾌한 공간으로 바뀐다. 시의 결론은 “나는 겸손함을 배웠고 숲은 하늘을 찾았다”는 것이다. 오호, 이 훌륭한 겸양의 미덕이여. 숲과 나무와 책, 특히 시집들에 대한 비유가 좋다. 누구나 공감하는 소재를 훌륭하게 시화했다. 시집을 냄비 받침으로 쓰는 세태여, 이 시 한번 읽어보시라.
몸통이 큰 놈이든 아니든
껍데기가 반짝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손에 잡히는 대로
대가리를 떼어 낸다
배를 가르고 똥창을
꺼낸다
살 속에 박힌 가시도
없애고
껍데기는 손으로 슬슬 긁으면
떨어진다
꼬리지느러미도 잘라 낸다
살점만 모아 놓으니
잘난 놈 못난 놈 머리 좋은 놈
민첩한 놈 멋진 놈이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다
- 신미균 「멸치」 『빈티지풍의 달』 (파란 2026)
사람, 특히 여자를 말할 때, 나이 60이 넘어가면 잘난 년, 똑똑한 년 다 구분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다. 세월이 흘러 늙으면 다 똑같아진다는 말이다. 멸치 배를 따면서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토록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니 신미균 시인의 입담이 놀라울 뿐이다.
“몸통이 큰 놈이든 아니든/껍데기가 반짝이든 아니든” 똑같이 취급하여 “대가리를 떼어” 내고 “배를 가르고 똥창을” 꺼내고 “살 속에 박힌 가시도/없애고” 껍데기는 긁어내고 “꼬리지느러미도 잘라” 내서 “살점만 모아 놓으니” “잘난 놈 못난 놈 머리 좋은 놈/민첩한 놈 멋진 놈”을 구별할 수가 없다. 다 똑같다. 멸치의 세계에서도 분명 잘난 놈이 있었고 날랜 놈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 앞에서 으스대거나 풀 죽거나 하는 일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다 잘라내고 파내고 나니 다 똑같다. 잘나고 못난 것 없이 모조리 똑같다.
시의 마지막 “알 길이 없다”를 곱씹어 보시라. 우리의 삶이란 얼마나 하잘 것 없는가. 멸치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가 크게 다를까. 몇십 년 아등바등 살다가 죽으면 다 똑같은 송장인데 그전에 팔십만 넘어도 모두 비실거린다. 아니 젊어서 잘났던 사람일수록 늙으면 더 초라할 수 있다. 더욱이 젊어서의 아름다움에 집착하여 칼을 대고 시술까지 한다면 진짜 가관이지.
뻐꾸기가 울면 피는 붉은 보라꽃, 뻐꾹채
와룡산 양지바른 풀밭에서 만났어요
뱁새의 둥지에 슬쩍 알을 밀어넣고
제 자식을 제 손으로 길러보지 못하는 슬픔인가요
베이비 박스에 갓난아이를 버리고
멍든 가슴에서 가슴털을 한줌 뽑았어요
그 가슴털로 꽃의 밑동을 감싸안고
울 아기 주먹만 한 꽃을 피워냈어요
저, 탐스러운 꽃송이가 뻐꾸기 눈물
수류탄 꼭지가 빠져버린 발화,
뻐꾹뻐꾹, 애만 태우다
봄이 가요
- 주경림 「뻐꾹뻐꾹 뻐꾹채」 『하늘 별자리 정원사』(불교문예 2026) 전문
“뻐꾸기가 울면 피는 붉은 보라꽃, 뻐꾹채”라고 시는 열린다. 뻐꾸기는 제 알을 남의 둥지에 떨어트려 키우는 새이다. 그런데 그 울음은 슬프다. 뻐꾸기 울면 뻐꾹채라는 꽃이 피는데 붉은 기를 띤 보라색인 모양이다. 그 색과 모양이 아주 슬프다는 것이다. “와룡산 양지바른 풀밭”에서 만난 이 풀꽃에서 시인은 “제 자식을 제 손으로 길러보지 못하는 슬픔”을 읽고 있다.
이것을 현대의 인간 사회에 가지고 와서 “베이비 박스에 갓난아이를 버리고/멍든 가슴에서 가슴털을 한줌 뽑”는 미혼모의 심정에 비유하고 있다. 그것을 다시 꽃으로 연결하여 “그 가슴털로 꽃의 밑동을 감싸안고/울 아기 주먹만 한 꽃”을 피워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 탐스러운 꽃송이가 뻐꾸기 눈물”이라는 것이다. 갓난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버리는 미혼모의 심경과 제 알을 남의 둥지에 낳는 뻐꾸기의 심경이 슬픈 울음소리와 꽃의 처연한 빛깔로 한데 어울리고 있다.
하여 이 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시인의 머리 속에서 “수류탄 꼭지가 빠져버린 발화”라고 상상된다. 수류탄 꼭지가 빠지듯 서러움과 눈물이 꽃으로 터져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이 꽃에서 뻐꾹 소리가 터져 나오는지 숲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지 “뻐꾹뻐꾹, 애만 태우다” 봄이 가고 있다.
전통적인 서정이다. 필자는 이런 풀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깨어난 새끼는 주인의 새끼를 밀어내 버리는 고약한 새지만 이 시에서는 그 슬픈 울음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뻐꾹채라는 풀꽃의 서러운 빛깔에 그것을 연결하고 아이를 버리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미혼모에 또 연결하고 있다. 그 슬픔이 수류탄 꼭지가 빠지듯 꽃으로 터져 나온다. 그리고 뻐꾹뻐꾹 소리가 슬프게 들려오면서 봄이 물러가고 있다. 아무튼 그 이름부터 울음소리까지 슬프고 애련하다.
손톱 끝에 발갛게
꽃물이 남았는데
첫눈이 펑펑 와요
어머나 어쩌지요 하느님
그 사람은 부인이 있고
저는 나이를 너무 먹었는 걸요
- 양애경 「봉숭아 꽃물」 『열린시학』 (2026 봄)
“손톱 끝에 발갛게/꽃물이” 아직 남았다. 손톱 끝의 봉숭아 꽃물은 소녀나 어린 처녀 때의 풋풋하고 여린 마음이다. 그것이 아직도 약간 남아 있다. 몸은 아니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며 “첫눈이 펑펑 와요”라고 통통 뛰어오를 만큼 앳된 이팔청춘이다. 첫눈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만남이다. 오래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친구, 연인 등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마를 치는 현실이 있다. “어머나 어쩌지요 하느님/그 사람은 부인이 있”어요. 내가 좋아하던 그 남자는 지금 한 가정의 가장이에요. ‘어머나’라는 화들짝 감칠맛이다. 어쩌면 좋아요, 그때 나에게 다가올 때 매몰차게 대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되네요. 그리고 마지막 행의 더욱 처참한 현실 “저는 나이를 너무 먹었는 걸요”가 독자들의 가슴을 후려친다. 손톱 끝의 꽃물, 첫눈, 그 사람의 부인, 나의 나이, 등등이 아주 유기적으로 엮인다. 단시의 감칠맛이 우러난다.
짝 없는
수컷 제주 휘파람새
호오-이익-
길게 운다
삼월이다
짝 있어
그냥 운다
짧게
오월이다
- 나기철 「봄」 『시와 소금』 (2026 봄)
“짝 없는/수컷 제주 휘파람새”가 길게 울음을 뽑아올린다. “호오-이익-”하는 긴 울음소리가 제주 한라산 골짝마다 울려 퍼진다. 긴 겨울 지나고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삼월이다. 겨울을 견딘 수컷들이 날아다니며 짝을 찾고 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으로 수컷의 매력과 에너지를 과시하는 것이다. 길게 힘 있게 내뻗는 울음소리가 암컷들의 주목을 끈다. 1연의 끝에 이제 “삼월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2연은 “짝 있어/그냥 운다/짧게”로 이어진다. 짝이 생긴 수컷은 더 이상 힘써서 길게 울지 않는다. 그냥 짧게 운다. 가까이 있는 암컷이 듣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오월이다”가 마지막에 따라 나온다. 삼월에서 오월,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에 암컷을 얻고 어쩌면 새끼까지 깨어났을지 모른다. 가족이 생겼다. 안정을 찾은 것이다. 더 이상 과시할 필요가 없다. 이 새의 길고 짧은 울음소리에 묻어나는 심리상태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리얼하게 전달된다.
해마다 사랑한다며 찾아오긴 했지만
엊그제부터 완전 집적대기 시작했다
품에 안기고 싶다며 애절하게 속삭였고
뜨거운 물을 퍼부으며 다가오지 말라
여러 번 경고했으나 파고들 틈새만 엿봤다
사실 나만 사랑하는 놈이 아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바람둥이다
잘못 걸리면 죽음까지 함께 가자고 유혹한다
겨우 떼어내긴 했지만 냉정하지 않으면
슬금슬금 다시 돌아올 미련을 보인다
만남이란 때론 감기처럼 왔다가 눈물 콧물
흘리며 몸살을 앓게 하고 떠난다 아팠던
그 바이러스는 기억도 못할 거면
- 손지안 「감기」 『미래서정』 (13호 2024)
“해마다 사랑한다며 찾아오긴 했지만/엊그제부터 완전 집적대기 시작”하는 반갑잖은 남자, 그렇게 박대했건만 지치지도 않는다. 이거 한두 번이 아니다. “뜨거운 물을 퍼부으며 다가오지 말라/여러 번 경고했으나” 끈질기게 주변을 맴돌며 틈을 엿본다. 그런데 이놈은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바람둥이”인 데다 잘못 걸려들면 같이 죽자고 떼를 쓰는 놈이다. 몇 번 “겨우 떼어내긴 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슬금슬금 또 들어붙는 놈.
감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누구나 한 해 한 번 정도는 감기에 걸려서 으슬으슬하고 콧물도 흘리고 기침도 한다. 이 지겨운 놈의 감기, 꼭 집적대는 영양가 없는 사내놈 같다. 그런데 시의 핵심은 감기가 아니라 ‘만남’이다. “만남이란 때론 감기처럼 왔다가 눈물 콧물/흘리며 몸살을 앓게 하고 떠”나는 고약한 놈이라는 것이다. 만남이라는 것이 꼭 고약한 바이러스와 같다. 감기처럼 슬금슬금 와서 몸살을 한바탕 앓게 하고 떠난다. 진지한 만남일수록 상처와 후폭풍이 크다. 시의 끝이 재미있다. “아팠던/그 바이러스는 기억도 못할 거면”이라고 미완성으로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아팠으면서 또 잊어먹고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감기를 지겨운 남자로 표현했다가 그것을 만남의 본질로 치환시키고 있다. 감기처럼 혹독하게 아프면서 또 외로워지고 그래서 또 다른 만남을 계속 갖게 된다. 만남이란 추상을 감기로 구체화시킴으로써 시는 단단해지고 있다.
그들은 의사, 약사, 혁명가, 시인, 소설가로 피어나는 장미
화수조합에서 숫자놀음 하는 난 찢어진 아카시아
키네마극장에서 닥터 지바고, 졸업, 러브스토리를 함께 보았다
아카시아, 장미도 디제이에게 쪽지를 건네던 별다방
카펜터스의 Close to you를 따라 부르며
별빛 같은 푸른 눈을 가진,
머물고 싶은 누군가를 기다렸다
한 달 치 월급을 한꺼번에 마셔버린 로젠켈러
우린 비틀즈의 Let it be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호연지기를 키우던 동인천역 주변은 우리의 우주였다
오전 일곱 시 풍경은 건방지고 아름다웠다
미니스커트의 그녀들,
장발을 휘날리며 가는 그들.
난 시 한 편 어울리지 않는 주판알을 품고 그들을 바라봤다
빈혈 앓는 노란 개나리
통통 튀는 열정의 장미를 껴안은 답동성당 종소리
밤새 불빛 꺼지지 않는
미풍 미원 간판도 쓰다듬어 주었다
통금이 가로막던 칠십 년대 동인천역
내일의 향기를 모르는 아카시아
안개의 몽상을 키우던 나의 은밀한 화양연화, 그곳
- 박미산 「동인천역, 1973」 『시와 비평』 (2026 봄)
칠십년대의 풍경화 한 폭을 그리고 있다. 시를 여는 “그들은 의사, 약사, 혁명가, 시인, 소설가로 피어나는 장미”는 당시의 대학생들로 보인다. 그들은 미래의 의사, 변호사, 혁명가, 시인을 꿈꾸며 거리를 휘젓고 있었다. 당시의 풍경은 청바지와 장발, 저항 문화였다. 하지만 시적 화자인 나는 “화수조합에서 숫자놀음”이나 하고 있는 “찢어진 아카시아”였다. 아마 생활을 위해 계산과 장부 정리 업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빈곤함은 다음 행의 “닥터 지바고, 졸업, 러브스토리를 함께 보았”던 키네마극장이라는 구절에서 드러난다. 그때 삼류극장에서는 동시상영이 있었다. 여기서 좋은 영화 3편을 다 보았다.
일하는 나는 아카시아, 대학생들은 장미, 이렇게 계층은 나뉘었다. “아카시아, 장미도 디제이에게 쪽지를 건네던 별다방”이 있었다. 음악다방인 모양이다. 그때는 음악 틀어주는 디제이가 다방에 있었고 인기였다. 거기서 카펜터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또 거기서 “별빛 같은 푸른 눈을 가진” 이상적인 사람을 기다리기도 했다. 로젠켈러란 맥주집에서 “한 달 치 월급을 한꺼번에 마셔버”리기도 했다. 거기서는 비틀즈의 노래를 목 놓아 불렀다. 동인천역 주변의 거기를 “호연지기를 키우던” “우리의 우주”였다고 말하고 있다.
“오전 일곱 시 풍경”은 “미니스커트의 그녀”들과 “장발을 휘날리”는 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등교하는 대학생들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 한 편 어울리지 않는 주판알을 품고”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빈혈 앓는 노란 개나리”와 같았다. 그런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열정의 장미를 껴안은 답동성당 종소리”와 “밤새 불빛 꺼지지 않는/미풍 미원 간판”이었다.
그렇게 나의 청춘은 동인천역 앞에서 흘러갔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아프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통금이 가로막던 칠십 년대 동인천역”이었다. 모든 게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내일의 향기를 모르는 아카시아”였다. 하지만 그 시기는 나에게 “안개의 몽상을 키우던” “은밀한 화양연화”였다. 지금의 세대들은 70년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소위 대학생문화라는 것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그때의 대학생은 일종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숫자도 적었다. 청년문화라는 것이 생겨났고 자유와 저항을 구가했다. 하지만 거기서 소외된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 이 시의 주인공은 그 아픔 속에서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
2003 『미네르바』 등단
시집 『세상을 사랑하는 법』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