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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하루였습니다. 이 더위란 놈은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심에서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법인데 맨날 시골에 있다가 간만에 구리라는 대도시(?)에 나가니 이를 확실히 느꼈습니다.
구리 경기는 언제나 저에게 흥미거리로 다가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팀,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홈 경기장에서 열기넘치는 관중들의 응원을 업고 경기를 열심히 하는 장소가 바로 구리시체육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는 제가 가장 많이 찾는 경기장은 춘천 호반체육관이지만, 구리시체육관은 저에게 있어 호반체육관만큼의 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만큼 많이 다녔고, 다닐 때마다 늘 기대를 했기 때문일까요.
KDB 생명은 최근 게임 승패를 떠나 좋은 기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특히, 10월 28일과 10월 31일의 우리은행과의 2연전에서는 점수합계 50여점 차의 대승을 거두며 상위권에 랭크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물론, 아주 객관적으로 본다면 우리은행의 전체전력은 KDB 생명보다 한 수 아래입니다. 이 두 팀의 대결을 앞두고 대부분의 팬분들이 쉽게 KDB 생명의 승리를 점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러한 '당연시되는 승리확률' 이 아니라 '실제게임의 내용'입니다.
우리은행과의 두 경기의 내용을 대충 본다면, 팀의 주전가드가 부재 또는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KDB 생명의 팀 워크는 여전했습니다. 특히, 신정자 선수의 '포인트 포워드'적 활약은, 우리은행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가며 뼈아픈 2패를 안겼습니다. 수비에서도 KDB 생명은 우리은행의 젋은 선수들의 실책을 이끌어내면서 게임 흐름을 지배했습니다.
김영주 감독님 뿐 아니라 어느 감독님이라도 자신의 팀의 좋은 게임 내용이 되도록이면 오래 지속되길 바랄 것입니다. 어느 기사의 말대로, 승패를 떠나 게임의 내용, 즉 '잘 이기고 잘 지는 것'은 마인드에 보다 민감한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이 경기력은 시즌 중후반에 확 치고나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감독님들은 지금과 같은 시즌 초반에 승패도 중요시 하시지만 게임 내용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주 감독님의 이런 기대는 4일 간의 휴식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리시체육관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영주 감독님은, "경기 초반 게임 밸런스가 흐트러 진 것이 패인(敗因)이었다."라고 게임평을 했습니다. 감독님보다 농구를 한참 보를 저를 비롯한 팬분들이 봐도 이는 자명(自明)한 사실이었습니다.
신정자 선수의 몸은 게임 초반부터 확실히 무거워 보였습니다. 물론 수비에서의 압도적인 리바운더의 모습은 여전했지만 공격면에서 우리은행 2연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분명, 신정자 선수의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킬 패스가 종횡무진 선수들에게 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정자 선수의 패스는 오늘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습니다.
정덕화 감독님은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차(車)를 노릴 좋은 기회에서 정덕화 감독님은 인해전술을 썼습니다. 마치 예전의 인천 SK 와이번스 야구단의 김성근 감독님처럼 정선화 - 김수연 - 정선민 선수를 번갈아 신정자 선수에게 더블팀으로 붙이며 신정자 선수의 안 그래도 안 좋은 컨디션을 더욱 갉았습니다.
신정자 선수가 이렇다보니 이경은 선수의 공격 운영은 어려워 졌습니다. 정상대로라면, 하이 포스트로 올라온 신정자 선수에게 공이 한 번 간 후 일사불란한 선수들의 패턴 공격이 이루어지는데 정상적 패턴의 첫 단추가 흐물적거려 버리니 이경은 선수도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경기 중간중간에 조은주 선수가 여느 때나 다름없이 열심히 로우 포스트에서 '비벼'주고, 일대일을 시도했지만 이는 원 사이드 공격이 되버려 KB 국민은행의 트랩 압박 더블팀의 먹이가 되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조은주 선수가 아무리 돌파 능력이 뛰어난다 한들,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훈련이 잘 된 두세명의 선수들을 다 재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곽주영 선수나, 원진아 선수의 컷-인 공격 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특히 곽주영 선수는 힘으로 골밑 대쉬를 하기에 좋은 하드웨어와 슛 정확도라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런 공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왼쪽 사이드에서 패스를 받은 조은주 선수가 통상적인 일대일 포스트 업을 합니다. 그렇다면 정선화(김수연) - 정선민 - 또 다른 선수가 순간적으로 트랩을 겁니다. 이 때 곽주영 선수가 하이 포스트에서 자유투 라인 안쪽 로우 포스트로 대쉬, 조은주 선수의 패스를 받아 슛 혹은 오른쪽 외곽에 빈 공간을 확보한 한채진(이경은) 선수에게 패스... 나름대로 생각한 저의 미숙한 패턴입니다만 곽주영 선수의 컷-인 능력이 향상된다면 이경은 선수의 작전 시그널에 이 작전도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해야 할 곽주영 선수의 움직임은 이번 경기에서 하이 포스트에서만 보였습니다. 물론, 곽주영 선수 데뷔 때부터 원 핸드 슛을 바탕으로 한 중거리 야투율 좋습니다. 하지만 더욱 좋은 공격과 쉬운 득점을 위해서는 곽주영 선수는 하이 포스트에서 로우 포스트로 파고 들어간 다음 중거리 슛 자세로 슛을 쏘는 것이 아니라 레이업 혹은 사이드 훅 슛을 쏘아야 합니다. 이런 플레이에 능한 젋은 선수가 우리은행의 배혜윤 선수인데 곽주영 선수 까마득한 후배 선수라 해도 이 공격 방법 벤치마킹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팬 분들께서 지적하셨듯, 오늘 '포인트가드' 이경은 선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이경은 선수가 가장 빛나 보일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이 가장 만족할 때는 원만한 게임 운영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 점에서 오늘 이경은 선수는 자신에게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경기장 앞 숙소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을 것 같습니다.
드리블이 길었습니다. 특히 스코어가 벌어졌을 때 그런 모습이었는데, 이경은 선수가 박세미 혹은 이경희 선수를 앞에 두고 드리블로 돌파구를 만들어 스스로 득점을 하려 애를 쓰고 있는 순간 김영주 감독님의 손가락은 빈 선수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평소의 골 배급력이 나오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이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플레이를 하다보니 시야가 좁아진 모습이었습니다. 포인트 가드 선수에게 정말 금기사항인 시야 협소 현상..
이경은 선수는 창의력이 좋은 선수입니다. 신인 때부터 그랬습니다. 현재 우리은행의 이승아 선수가 실속 넘치는 움직임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이경은 선수의 신인 시절과 비교되고 있지만 그것은 농구에서 정석적으로 여겨지는,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충실히 한 것입니다. 이경은 선수는 이와는 류(類)를 달리 합니다. 예전의 타미카 캐칭 선수도 극찬했듯이, 무언가 교과서적 농구와는 다른, 창의성 있는 패싱을 잘 보여 주었던 이경은 선수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정상적인 루트 - 신정자 선수 중심의 패턴 - 가 고사(枯死) 지경에 빠졌을 때 이경은 선수는 빠른 시간 내에 다른 플레이를 생각해 냈어야 했습니다. 혼자서 득점을 하려는 오늘 같은 플레이 말고요. 물론, 감독님이 벤치에서 지시하는 패턴도 중요하지만, 게임이 안 풀려가는 상황에서 이경은 선수의 창의력이 필요했는데 이경은 선수 '나는 팀의 기둥!!'이라는 생각 하에 너무 부담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정말..정말 식상한 말씀이지만 정선민 선수는 나이를 먹으면서 농구가 더욱 느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쉰 살 되면 여자 존 스탁턴이 될 기세입니다. 은퇴를 앞둔, 다소 지난 세월보다는 기량이 줄어야할 노장 선수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 갔습니까?
이번 경기에서 KB 국민은행의 가드들이 할 일은 단순했습니다. 볼을 8초 이내에 하프코트를 넘게 하고, 프런트 코트에서 정선민 선수에게 안전하게 공을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정선민 선수가 세트 오펜스에서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맡아 공 흐름을 조율, 손쉬운 득점을 하게 어시스트를 해 주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자신에게 공을 넘겨주고 로우 포스트로 뛰어 들어가는 박세미 선수에게의 어시스트 장면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이는 두세번 정도 먹힌 것 같은데 단순해 보이지만 정선민 선수가 왜 올라운드 바스켓 '퀸'인지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공을 사이드로 한 번 돌릴 타이밍인데 한 순간의, 하나의 패스로 이를 대비한 KDB 생명의 존 디펜스를 무너뜨리는 명 패스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선민 선수의 폭발적인 득점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득점을 해 줄 선수는 KB 국민은행에 많습니다. 변연하 선수, 박세미 선수, 정선화 선수....다 득점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특히 변연하 선수의 득점 능력은 세계적인 능력입니다.
무엇보다도 KB 국민은행의 선수들을 살려주는 패싱 플레이와 요령 넘치는 스크린 플레이를 보고 싶습니다. 정선민 선수 개인도 요즘들어 이를 더 즐기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득점에 무던히도 신경을 많이 썼던 정선민 '여제'이지만, 이번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잘 받아먹은 선수에게 스스로 다가가서 하이 파이브를 하는 장면을 화면에 보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정선민 선수입니다.
박세미 선수의 활약도 돋보였습니다.
비록 KDB 생명의 4쿼터 몰아때리기에 가려지긴 했지만 박세미 선수의 4쿼터 템포 조절은 휼륭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정선민 선수가 40분 내내 게임 조율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박세미 선수가 볼 운반만 맡는 단순한 역할에 만족할 포인트 가드 선수도 아니고요.
이경은 선수와의 대결에서도 예전과 달리 오히려 우세한 모습을 보이며 이번 경기에서 판정승을 거두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지난 시즌 박세미 선수는 이경은 선수와 매치업할 때 신장 차이 때문에 고전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은 저 멀리 우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오히려 이경은 선수가 박세미 선수의 파워풀한 돌파에 적잖이 뚫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박세미 선수의 주전 가드로서의 다부진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정덕화 감독님의 여유 넘치는 모습도 많이 포착되었습니다. 정 감독님 한 경기에 소리치시는 빈도가 꽤 높으시는 분인데 오늘만큼은 경기가 생각보다 잘 풀려 그냥 팔짱을 끼고 선수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이었습니다. 4쿼터 점수차가 갑자기 좁아졌을 때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번 시즌 자신의 팀에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덕화 감독님 이야기를 꺼내니 뜬금없이 오늘의 강아정 선수가 생각납니다. 정덕화 감독님이 지난 번에 말씀하시기를 "우리 아정이도 정은(신세계 김정은)이한테 절대 뒤지지 않지." 강아정 선수 오늘 정 감독님의 기대에 득점에서는 부응하지 못했지만 경기 초중반 좋은 리바운드로 정 감독님을 흡족케 했습니다.
광주 KIA 타이거스의 응원단장은 서재응 선수이고, 청주 KB 국민은행 스타즈의 응원단장은 구병두 코치님입니다. 서재응 선수가 선수들이 덕 아웃에 들어올 때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나누듯이, 구병두 코치님도 예전 LG 세이커스 시절의 열정으로 벤치로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박영진 코치님도 그런 모습 많이 보였음 좋겠습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여러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김진영 선수의 근황을 잠시 알려드리자면, 다음 주 게임부터 정상적으로 출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늘은 경기 내내 벤치를 지키고 있었는데 경기 후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보다 편안한 모습이라 안도가 되었습니다.
김진영 선수의 팬으로써 하루빨리 코트에서 김진영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며 미숙한 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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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칼럼 재밌게 봤습니다.. kdb가 벌써부터 체력적인 과부가가 걸리는거 아닌지 걱정되네요..
예, 저도 KDB 생명의 경기를 볼 때마다 주전 선수들의 과부하가 걱정됩니다. 특히 신정자 선수...예전 이상윤 감독님도 "정자 없으면 게임이 안 돌아간다."고 말씀하시며 신정자 선수를 혹사시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는데 김영주 감독님의 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 같습니다..
재밌게 잘읽었어요ㅎ 개인적으론 오늘 이경은선수활약이 너무 아쉬웠어요ㅜ
저날은 케디비중 누구 한명 만족할만한 플레이가 없던 날이 아니었나 싶을정도였습니다;;4쿼터5분을 제외하고는..
김진영선수 너무 빨리 나오는건 아닌지..걱정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러네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