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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시대
【교법 1장 67절】
이제 해원시대를 맞이하였으니 사람도 명색이 없던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버림을 받던 땅에 기운이 돌아오리라.
【주해】
이제는 해원시대이므로 과거에 무시되고 버림받던 사람의 직업이나 땅이 이름을 얻고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선천에서는 글공부를 하고 국가 관직에서 벼슬을 하였던 사람의 직업을 사관(士)이라고 하여 가장 높이 하였고 고귀한 직업이었다. 그 다음이 농민(農)이었고, 그리고 상업(商)이나 공업(工)에 종사하는 자는 천민에 속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제시대로서 상업(商)이나 공업(工)에 종사하는 자가 오히려 부(富)의 축적이 많으므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관공서에서 행정직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비인기 직종이다.
또한 선천에서는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자를 백정이라 하였고, 광대나 노래를 하는 자는 가장 천한 대우를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산업경제의 발전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자 고기의 소비가 많아져 도축업을 하는 자나 고기를 파는 식육점은 인기 업종으로 부상되었다.
그리고 옛날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천시 받던 광대는 오늘날 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리며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하였고, 마찬가지로 옛날에는 소리꾼이라 하여 천시 받던 창가(唱歌)를 하던 자는 오늘날 가수들로서 최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와 같이 선천에서는 명색이 없던 사람이 해원이 되어 오늘날에는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 그리고 옛날에는 깊은 산골이나 강원도, 제주도, 울릉도 같은 곳은 환경이 농업을 할 수가 없고,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이 없으므로 어느 누구도 가기를 꺼렸고, 오직 유배지 등으로만 쓰였으나 오늘날은 사람들의 생활이 풍부해지고 산업의 발달로 여유 시간이 많아지고, 깊은 산골까지도 도로가 뚫리고, 배나 비행기 등의 교통이 용이하고, 관광 레저 산업이 발달하여 오히려 강원도의 깊은 산골이나 제주도 등지에는 콘도가 들어서고, 골프장이 생겨서 호황을 누리고 있고, 깊은 산골은 스키장 같은 레저 시설이 개발됨으로 인하여 옛날에는 버림받던 땅이 이제는 부동산이 활발하여 황금 땅으로 변했다. 이렇게 모든 명색 없던 사람이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명성을 떨치고, 버림받던 땅이 귀하게 된 것은 천지의 사물이 모두 해원(解寃)을 하고 있는 것이고, 상제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예시 74절】
지난 임진란 때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세 가지의 한만 맺었으니 소위 삼한당(三恨當)이니라. 첫째로 저희들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함이 일한(一恨)이요. 둘째는 무고한 인명을 많이 살해하였음이 이한(二恨)이오. 셋째는 모 심는 법을 가르쳤음이 삼한(三恨)이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저들이 먼저 서울에 무난히 들어오게 됨으로써 일한(一恨)이 풀리고, 다음 인명을 많이 살해하지 아니 함으로써 이한(二恨)이 풀리고, 셋째로는 고한삼년(枯旱三年)으로 백지강산(白地江山)이 되어 민무추수(民無秋收)하게 됨으로써 삼한(三恨)이 풀리리라.
【주해】
• 상제께서 이 땅으로 오신 것은 참화중(慘禍中)에 묻힌 무명(無名)의 약소민족(弱小民族)인 조선을 먼저 도와서 상등국(上等國)으로 만들고 이를 기틀로 사멸(死滅)에 빠진 천하창생(天下蒼生)을 구하고자 하신 것이다.
조선을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예로부터 깊게 뿌리박힌 반상구분(班常區分), 남존여비(男尊女卑), 적서차별(嫡庶差別) 등 유교(儒敎)의 폐습(弊習)을 먼저 뿌리뽑아버려야 하는데 스스로는 개혁할 수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 맡겨서 개혁코자 하셨다.
그래서 조선을 서양(西洋)으로 넘기면 인종(人種)의 차별(差別)로 학대(虐待)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淸國)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라 하시고, 조선을 일본(日本)에 맡긴다고 하셨다.
·일본인은 정확히 일보는 사람이라 유교의 폐습을 능히 뿌리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 사이 척이 맺혔고, 또 임진란 때 조선에 들어와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세 가지 한(恨)만 맺었다.
일본민족의 가슴에는 언제나 이 한(恨)이 남아 있어 조선을 침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이 일을 풀어야 다시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이므로 상제께서 그들의 한을 푸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상제께서는 일본을 조선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그들의 한(恨)을 풀게 하심과 동시에 이로써 조선은 유교의 폐습이 개혁되어 상등국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 일본이 임진년(壬辰年, 1592년)에 조선을 침략하였지만 해전(海戰)에서 이순신 장군에 의해 대패(大敗)하여 보급로(補給路) 및 공격로(攻擊路)를 차단당한데 이어, 명(明)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이 이끄는 5만 병력의 지원군으로 인하여 평양성에서 크게 패하였고 조선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義兵)들에게 타격을 입게 되자 결국 물러나게 되어, 그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 가지 한을 맺었으니 이를 삼한당(三恨當)이라 한다. 삼한당(三恨當)의 첫째 한(恨)은 일본인들은 조선을 정복하고 서울에 정부(政府)를 두고 자신의 통치하(統治下)에 두고자 하였으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음이다.
둘째 한(恨)은 임진란 당시 왜병에 의해 무고한 조선 백성들을 많이 살해하였으니 이것은 조선민족이 일본에 대해 원한을 품은 것이다.
셋째 한(恨)은 일본이 조선에 들어와 이앙법(移秧法)으로 모심는 법을 가르쳐놓았음을 일본인들은 크게 한탄하였던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은 벼를 직파법(直播法)으로 심어 거두었으므로 소출이 적었는데 왜병(倭兵)이 임진란 때 조선에 들어와 해전에서 패배하여 보급로가 차단되자 자체 식량 조달을 할 방안으로 조선 백성들을 시켜 벼농사를 짓게 했다. 이때 일본 사람들이 이앙법으로 모심는 법을 조선백성들에게 가르쳤으므로 일본인들은 이것을 한탄하였던 것이다.
•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일본의 원(寃)을 풀어야 하는데 상제께서는 조선의 일을 시키시면서 원(寃)을 풀게 하셨다.
일본은 예로부터 조선을 정복하고 서울에 통치정부를 세우기를 숙원하였으므로 이 공사로써 일본은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게 되었으니 일한(一恨)이 풀리게 된 것이다.
물론 역사적인 외형을 보면 일본은 강압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채결하고,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을 맺게 하여 무사히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외형은 이럴지라도 이것은 모두 상제님의 공사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36년 간 통치기간 동안은 조선의 임진란 때와는 달리 무고한 백성들을 많이 살해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이한(二恨)이 풀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남은 세 번째 한(恨)은 모심는 법을 가르친 것이니 상제께서 “고한삼년(枯旱三年)으로 백지강산(白地江山)이 되어 민무추수(民無秋收)하게 됨으로써 그 한이 풀리게 된다”고 하셨다.
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을 하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만주를 점령하여 만주국(滿洲國)을 세운 후 계속 진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나뉘어 싸우고 있던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 위협을 느끼게 되자 1937년에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 대항하였다. 이로써 중일전쟁이 본격화되었고 일본은 전시 식량확보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쌀 공출을 강행하였다.
일제는 ‘미곡배급통제법’, ‘조선미곡배급조정령’, ‘조선미곡시장주식회사령’ 등을 공포하여 미곡을 공출하였는데, 그 강압이 어찌나 심했던지 조선 농민들은 1년 농사지은 쌀을 공출로 모두 빼앗기고 거의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야 했다.
그리고 1941년 12월에 일어난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은 더욱 더 조선에 전쟁 식량 공출을 강행했다.
더구나 1939년부터 1941년 사이에 3년 간 조선의 전 국토는 가뭄이 들어 강바닥이 하얗게 드러나고 산에 풀조차 타들어 농사가 흉작이 된데다 쌀 공출을 해갔으니 조선의 백성들은 소나무껍질을 벗겨서 주린 배를 채웠던 것이다.
이것은 상제께서 ‘고한삼년(枯旱三年), 즉 나무가 마를 정도의 가뭄이 3년 동안 들어 백지강산(白地江山), 즉 강바닥이 하얗게 드러나고 산에 풀이 시들어 하얗게 되니 민무추수(民無秋收), 즉 백성은 추수할 것이 없다’ 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에 들어와 모심는 법을 가르쳐 준 대가를 모두 받아갔으니 삼한(三恨)이 모두 풀린 것이다.
• 그리고 일본은 이 기간 동안 조선에 들어와 반상구분, 적서차별, 남존여비의 유교 폐습을 모두 없애놓고, 1945년 8월 15일에 미국에 의하여 패망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니 ‘일’을 ‘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일본 사람들은 조선에 들어와 일만하고, 돌아갈 때는 품삯도 받지 못하고 돌아갈지니 말대접이나 잘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공사 3장 18절】
상제께서 원일과 덕겸에게 “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 이르시니 두 사람이 명하신 곳에서 성심성의를 다하여 생각하였도다. 이렛날에 원일이 불리워서 상제께 “청국은 정치를 그릇되게 하므로 열국의 침략을 면치 못하며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었나이다. 고서(古書)에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殃)이라 하였으니 상제의 무소불능하신 권능으로 중국의 제위에 오르셔서 백성을 건지소서. 지금이 기회인 줄 아나이다”고 여쭈어도 상제께서 대답이 없었도다. 덕겸은 이렛동안 아무런 요령조차 얻지 못하였도다. 상제께서 “너는 어떠하뇨” 하고 물으시는 말씀에 별안간 생각이 떠올라 여쭈는지라. “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와 예락문물(禮樂文物)의 대중화(大中華)의 산하(山河)와 백성이 이적(夷狄;오랑캐)의 칭호를 받는 청(淸)에게 정복되었으니 대중화에 어찌 원한이 없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를 회복하게 하심이 옳으리라 생각하나이다.” 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 하시니라. 원일은 중국 해원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 하여 불평을 품기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순망즉치한(脣亡卽齒寒)이라 하듯이 중국이 편안하므로써 우리는 부흥하리라.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돌아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小中華)가 곧 대중화(大中華)가 되리라.” 일러주셨도다.
【주해】
• 중국은 황제 헌원으로부터 발원하여 찬란한 문명을 형성하며 5000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나라이다. 그러다가 송나라 말엽 몽고에서 일어난 칭기스 칸에 의해 정복되어 원나라라 하였다가 주원장이 다시 몽고족을 몰아내고 중국을 회복하여 명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명나라는 다시 만주족 누르하치에 의해 멸망하고 중국에는 청나라가 세워졌다.
그러니 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를 가지고 있으며 예의범절이 뛰어나고 각종 예술 등의 문명이 발달했던 대중화가 무지한 만주족에게 정복되었으니 어찌 원한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상제께서 중국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원일과 덕겸의 의견을 물어 처결한다 하시니, 원일은 상제의 무소불능한 권능으로 중국을 취하여 백성을 건지라 하였으나 여기에는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덕겸이 중국이 오랑캐의 칭호를 받던 청에게 정복되었으니 그 국토를 회복케 하여 중국의 원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 하셨다.
상제께서 이렇게 중국 해원공사를 보신 이후 청나라 황제 광서제가 붕어(崩御)하고, 광서제가 후사(後嗣)가 없자 동생 순친왕의 아들 부의(溥儀)가 1908년 겨우 세 살의 나이에 서태후(西太后, 1835~1908)의 지명으로 12대 청나라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광서제가 붕어(崩御)해 그에게 응기해 있던 황극신(皇極神)이 대한제국으로 옮겨왔으므로 황제로서의 기운은 상실된 것이다.
부의(溥儀)는 결국 신해년(辛亥年,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해 1912년 여섯 살에 황제에서 퇴위되었다. 이로써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하였다.
이 중화민국은 1912년 1월 1일 손문(孫文)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는 남경정부(南京政府)를 수립하였으며, 손문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지도 이념으로 삼았다.
그러나 청조(淸朝)가 기용한 군벌 원세개(袁世凱)는 중화민국의 혁명군을 토벌했으며 영국을 끌어들여 중화민국을 견제했다. 이때에 혁명군 또한 내부 대립이 있어 화의가 진행되었는데 원세개는 황제를 퇴위시키는 조건으로 손문으로부터 대총통 지위를 탈취하여 자신이 스스로 대총통에 오르고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때부터 손문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당(國民黨)이 창립되어 원세개의 군벌 정권과 대결하였다. 이후 중국은 내란이 연속되었다.
이런 와중에 손문은 1921년 7월 1일에 태동된 중국공산당과 연합하여 군벌 정권을 몰아냈다. 그러나 이후에는 다시 국민당(國民黨) • 공산당(共産黨) 간에 대립이 생겨났고, 공산당은 이 싸움에서 밀려났다.
이후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 잔존세력들은 양자강 남부의 농촌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공산정권을 수립해 나갔다. 그러나 모택동의 공산당은 국민당의 50여 차례에 걸친 토벌로 인해 크게 손실을 입은 후, 1943년 대장정(大長征)을 행하여 섬북(陝北)으로 이동하여 그곳을 근거지로 삼고 계속 세력을 넓혀나갔다.
중국이 이렇게 내전에 빠져 있는 사이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후 점차로 점령지역을 넓혀오자 1937년 내전을 중지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하여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항일전쟁이 끝난 1946년 1월 국민당과 공산당은 정치협상회의를 열고 연합정부를 수립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전면적 내전으로 돌입하고 말았다.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중국공산당은 이 내전에서 승리하였고,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은 완전히 패퇴하여 대만으로 정부를 옮기고 말았다.
모택동은 전 중국을 통일하여 1949년 10월 1일 중국정부를 발족하였으니 이로써 중국은 국권을 완전히 회복하였고, 오랫동안 오랑캐에게 지배되었던 원(寃)이 풀린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상제님의 중국 해원공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바이다.
• 상제께서 이렇게 중국 해원공사를 보시자 원일은 ‘상제께서는 왜 중국 해원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 하여 불평을 품었다. 그러자 상제께서는 ‘순망즉치한(脣亡卽齒寒)이라’ 하셨다. 즉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린 것이니 중국이 편안하고 부흥하므로 우리나라가 편안하리라고 하셨다.
중국은 우리 이웃의 대륙 국가로써 풍부한 물적•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집약적인 기술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자연히 부흥할 수 있는 것이다. 상제께서는 우리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중국의 원(寃)을 풀어 안정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나라에 이것을 되돌려 갚게 되는 이치이다.
오늘날 중국과 우리나라가 국교가 수립되어 무역이 활발하고, 많은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여 그들의 값싼 인력자원을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여 수출함으로써 외화 획득을 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나는 각종 농수산물 및 산림자원을 싼값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공업제품은 비싼 값으로 수출하게 되니 자연히 우리나라는 부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오가는 무역물품 내역을 보면, 중국은 값싼 농산물을 배로 몇 척씩 우리나라에 보내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핸드폰 한 컨테이너만 보내주면 그 값을 능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과거에는 중국은 대중화라 하고 우리나라가 소중화라 하여 조공을 바쳐왔으나 이제는 도리어 보은의 관계로 많은 이득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니 우리나라가 조공을 받는 격이 되어 대중화가 되는 것이다.
【공사 1장 32절】
상제께서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때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상제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주해】
• 선천(先天) 수천 년 동안 상극(相克)이 인간(人間) • 사물(事物)을 지배하였으니 모든 인사(人事)가 도의(道義)에 어긋나게 되었다. 이로써 원한(怨恨)이 맺히고 쌓이니 삼계(三界)에 원(寃)이 넘쳐 마침내 살기가 터져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원을 풀지 않으면 인계(人界)와 신계(神界)에 맺힌 철천(徹天)의 포한(抱恨)으로 인류가 진멸(盡滅)하게 되었기에 상제께서는 천지(天地)를 구하기 위해서 먼저 해원공사(解寃公事)를 보신 것이다.
• 상제께서는 천지(天地)를 구하고 창생(蒼生)을 구하는데 해원(解寃)을 근본으로 하셨다.
반드시 해원(解寃)이 있은 연후라야 후천(後天)의 선경세상(仙境世上)은 열릴 수가 있는 것이다.
후천(後天) 선경세상(仙境世上)을 눈앞에 둔 지금은 파리목숨 하나에 맺힌 원도 풀어야 하는 해원시대(解寃時代)이다. 원이 맺혀 있으면 후천은 올 수 없기에 천지에 모든 인간 • 사물은 원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 선천에서는 유교(儒敎)의 폐습(弊習)으로 말미암아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두어 남자는 여자보다 존귀하고, 여자는 남자에 비해 비천(卑賤)하게 대하였다.
그러므로 여자는 감히 남자 앞을 지나다니지도 못하게 하고 남자가 길을 지나갈 때까지 옆으로 비켜섰다가 지나가고 나면 가던 길을 가도록 했는가 하면 여자는 길을 나설 때 얼굴을 드러내면 상스럽다 하여 장옷을 뒤집어쓰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와 한 밥상에서 밥도 못 먹게 하였다.
또한 여인들은 시집을 가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 하여 듣고, 보고, 말할 발언권조차 주지 않고 구박이 심했다. 또 유교의 폐습으로 기인된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죄목(罪目)을 만들어 놓고 여자가 이 칠거지악에 걸릴 경우 남자는 아내를 버릴 수 있게 했다.
그리하여 비산업시대(非産業時代)였던, 즉 농경시대(農耕時代)였던 당시에 버림받은 여인네의 생활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버림받은 여인은 ‘한번 시집을 가면 그 집 귀신’이라 하여 다시 친정으로 돌아올 수 없었으며 홀로 세상을 떠돌아야 했던 것이다.
여자를 옭아맨 칠거지악의 폐습은 다음과 같다.
1) 시부모에게 불순한 경우
2)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
3) 음탕한 경우
4) 질투하는 경우
5) 나쁜 병이 있는 경우
6) 말 많은 경우
7) 도둑질한 경우
여기서 보더라도 자식을 낳지 못한다든가 나쁜 병이 있다든가 하는 경우는 본인의 잘못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인네에게 그 책임을 떠넘겨 그 원이 맺히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폐습은 음양(陰陽)의 자연법칙(自然法則)으로 보더라도 음과 양은 그 기능성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려야 할 권리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선천 주역시대는 억음존양(抑陰尊陽)으로써 영웅시대였으므로 육체적으로 힘이 강했던 남성들이 주도권을 잡고 천하를 다스리게 되자 남성들 위주의 제도를 만들어 버림으로 인해 이 제도 속에서 살아갔던 여인들은 많은 원한(怨恨)을 남기게 된 것이다.
• 또한 과거 조선시대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하여 일곱 살이 되면 남녀는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성도덕은 원래 단순한 예절상의 남녀 구분인 내외사상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내외법’이라는 이름으로 법률화되고 강제화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법 적용에 있어서 남녀간의 형평이 무시되었다. 간통이나 혼전 육체관계 등 성과 관련된 잘못은 남녀 모두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자만 단속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성과 관련된 죄는 여자에게만 적용되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기생집을 드나들면서 온갖 음탕한 짓을 행하였던 것이다.
• 그러므로 이제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여인들의 원을 풀기 위해 상제께서 지금까지 남존여비의 관습적인 분별을 틔워버리고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주고 활동에도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하셨다.
그 공사로써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길을 비켜 외면하셨다. 상제께서 이렇게 함으로 인하여 오늘날 여인은 남존여비의 폐습으로부터 해원되어 이제는 전혀 스스럼없이 남자들 앞을 지나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길거리에서 남녀간에 손을 잡고 거닐기도 하는 등 행동이 자유분방해졌으며, 옷차림도 짧아져 미니스커트나, 배꼽이 나오는 윗도리를 입고 다니는 등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된 것이다.
• 또 상제께서는 수절(守節)하는 청상과부들의 원(寃)도 [공사] 2장 17절에서 풀어주셨는데 박공우가 “선천에는 청춘과부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에서 쓸쓸히 늙어 일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불가하오니 후천에서는 이 폐단을 고쳐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서 친족과 친구들을 청하고 공식으로 예를 갖추어 개가케 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아나이다”고 여쭈니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처결하지 못할 것이므로 너에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노라”고 이르시고 “이 결정의 공사가 오만 년을 가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더 이상은 유교의 규법으로 인해 여자들이 수절과부로서 쓸쓸히 일생을 마치는 원(寃)이 없도록 하셨다.
• 오늘날 여인들은 상제님의 이 공사로 인해 칠거지악(七去之惡) 같은 폐습은 구경도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남편이 자신에게 처우를 나쁘게 할 경우 강하게 항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같이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거나 자식을 낳지 못한다 하여 쫓겨나는 여인은 없어진 것이다.
오늘날은 오히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몰인정한 사례가 점점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오히려 풀어놓음으로 인한 예를 모르고, 도리(道理)를 몰라 일어나는 일이다.
• 여인들의 처우는 한층 개선되어 가정살림에서는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까지 등장하여 여인들의 편리를 도모하고, 사회적으로는 육아보육시설이 생겨 여인들도 남성들처럼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하여 사회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은 과거에는 꿈에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처우개선인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권리 신장과 생활환경 개선 등은 모두 상제님의 여인들의 해원공사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 『전경』 [교법] 1장 68절에 상제께서는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예로부터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고 하셨다.
오늘날은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어 딸자식들도 족보에 올리고, 시집간 딸에게도 재산 상속권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여인일지라도 자신의 노력한 정도에 따라서 충분히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예를 들면 요즘은 여자 사장, 여자 법관, 여자 검사, 여자 장관, 여자 대통령 등 남녀의 차별이 없어지고 자신의 노력한 바대로 이룰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은 해원시대이므로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두어 남녀간에 예의가 어긋나더라도 관여치 않지만, 이후 후천(後天)에는 남자는 남자의 위치를 세우고 여인은 여자로서의 위치를 바르게 세워 예법을 바르게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삼강오륜이 바르게 실행되는 세상을 말함이다.
즉 이제 진법이 나와 세상을 바로잡아 가게 되면 음양이 동일한 상태에서 남녀가 상호 존중하면서도 올바른 예법이 세상에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교법 1장 9절】
지금은 해원시대니라, 양반을 찾아 반상의 구별을 가리는 것은 그 선령의 뼈를 깎는 것과 같고 망하는 기운이 따르나니라. 그러므로 양반의 인습을 속히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오리라.
【주해】
과거 선천에서는 반상구분(班常區分)이라 하여 계급상의 차별적인 폐습이 있어서 양반(兩班)은 농사를 짓는 법이 없고,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위주로 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여 무위도식하면서도, 자신들의 생활에 바탕이 되는 기타 생업에 종사하는 상민들을 무시하여 함부로 말하거나 하대(下待)를 하였다.
심지어는 일곱 살 먹은 철부지라도 자기가 양반이면 상민을 대할 때 일흔 먹은 노인을 보고 “돌쇠야! 이리 오너라” 등과 같이 하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폐습은 제도적으로 신분이 세습제로 정하여져 있어서 양반은 잘나든 못나든 태어나면서부터 양반이었으며, 상민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을지라도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평민보다 더 낮은 계급인 노비나 백정 등은 천민(賤民)으로 분류되어 노비는 팔고 사고 할 수 있는 노비문서가 있었으며, 백정 등은 마치 짐승처럼 취급되어 인간으로서 삶을 가져볼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 그들은 철천(徹天)의 포한(抱恨)이 졌던 것이다.
이러한 계급차별에 대한 분노는 당시 서민 예술에 반영되어 기층민들의 울부짖는 정서가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천석부자 호걸양반
팔자좋은 개양반
머슴꾼을 짐승같이
제멋대로 일시켰지
이 시기에 생겨난 이 민요(民謠)는 양반에 대한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양반에 대한 상민들의 적개심은 온 나라에서 성행하던 탈춤놀이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양반은 개좆 양자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라
이 채찍으로 양반 삼형제 놈을
식혜 먹은 고양이 대가리 때리듯
제삿밥 먹은 개 대가리 때리듯
서푼짜리 낫 벼리듯 하면 좋겠다
탈춤놀이에서 말뚝이가 하는 이 대사에는 양반에 대한 한(恨)과 복수심이 가득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양반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양반이라고 으시대면 바로 척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 이제 후천오만년 선경세상으로 가는 대운대통(大運大通)이 있게 되는데 선령신(先靈神)들은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니 힘써 닦으라고 하셨다. 이것은 바로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지금까지 선천에서 지었던 모든 척을 풀어야만 하므로 그 척이 풀려야만 대운대통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손들이 선령신들의 이러한 뜻은 모르고 과거의 폐습인 양반의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 상놈이라고 업신여기게 되면 더욱 더 척에 걸려 후천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손줄이 떨어지면 선령신도 멸망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반상의 구별을 가리는 것은 선령신들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빨리 그러한 폐습적인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우대해 주어야 척이 풀려 후천의 운수를 받는데 막힘이 없고, 또한 서로가 반목하지 않는 평화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경』 [교법] 1장 10절을 보면 상제께서는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쓰셔서 반상의 구별을 없애는 공사를 보셨다.
종도 김형렬은 자기의 머슴을 대하실 때마다 존댓말을 쓰시는 상제를 대하기에 매우 민망스러워 아뢰었다.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이에 상제께서는 “그 사람은 그대의 머슴이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뇨. 이 시골에서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른 고을에 가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 이후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고 일러주시며 해원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 조선시대 당시에 상제께서는 머슴에게도 존댓말을 쓰셨던 것이다. 당시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상제께서는 해원시대를 열어 놓으시고 직접 천인들을 우대함으로써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서로 존중되어야 함을 설명하신 것이다.
오늘날은 상제님의 공사에 의해 양반 상놈을 가리는 인습이 사라졌고 비록 회사의 사장이라 하더라도 사원들에게 존대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관공서에서도 직책의 상관없이 서로 존중함을 볼 수 있다. 즉 이제는 단지 업무상 직책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인성(人性)의 차별은 없는 것이다.
간혹 아직도 자신이 직책이 높다 하여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도인들 간에도 임원이라 하여 평도인들에게 하대를 하거나 하는 것은 모두 양반의 인습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척을 짓는 행위가 되므로 어느 누구를 대할지라도 존중하고 우대하여야 척을 짓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교운 1장 32절】
상제께서 김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 하시고 경학을 시켜 무당 여섯 명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의 관건을 벗기고 그들의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하여 사배를 하게 하고 시천주 세 번을 제각기 따라 읽게 하셨도다. 이것을 끝내고 그들의 이름을 물은 다음에 각자로 하여금 청수를 마시게 하니 이것이 곧 복록이로다.
이것이 해원시대에 접어들어 맨 먼저 천한 사람에게 교를 전하신 것이었도다
【주해】
학교(學校)는 옛날 제왕(帝王)이나 성인(聖人)들이 인세에 내려와 우매한 백성들에게 하늘의 주인이신 세 분 하느님(三神)과 조상을 가르치고, 사람이 살아가는 길, 즉 도(道)를 밝혀서 일깨워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친 교훈을 후세에 가르쳐 내려온 장소를 학교라 한다.
그러나 선천에는 판이 좁고 사람들의 사고 방식 또한 간단하였으므로 학교로 따지면 소학교(小學校)라 한다. 요즘으로 치면 초, 중, 고등학교이다. 즉 선도(仙道)는 포태(胞胎)의 도(道)요, 불도(佛道)는 양생(養生)의 도(道)요, 유도(儒道)는 욕대(浴帶)의 도(道)이다.
포태의 도(道)란 태교(台敎)이며, 양생의 도(道)는 젖먹이고 키울 때 가르침이며, 욕대의 도(道)는 ‘목욕하고 허리띠를 맨다’하니 초기 예의 범절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내놓은 분들이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제왕으로서 복희, 신농, 황제이며 중고시대(中古時代)의 석가, 공자, 예수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세상의 폭이 넓어지고 정신적으로 이제 다 자라서 정신(精神)이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으로서 대인(大人)을 배우는 공부를 하는 과정이 관왕(冠王)이며 이것을 대학교(大學校)라 한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대순진리(大巡眞理)이며, 이것을 가르치시는 선생이 대선생(大先生)이신 강증산(姜甑山), 조정산(趙鼎山), 박우당(朴牛堂)이시다.
그러므로 학교는 과거의 석가, 공자, 예수의 학교보다 이 학교가 가르침이 큰 것이다.
그런데 과거 선천시대는 권세가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므로 천한 사람에게 먼저 이 대학(大學)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난하고, 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들이 이 도(道)를 찾아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교법] 2장 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자만 자족하여 그 명리를 돋우기에 마음을 쏟아 딴 생각을 머금지 아니하나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덕립을 하루 속히 기다리며 운수가 조아들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내 사람이니라.”고 하셨다.
또 [채지가] [남강철교편]에 보면,
부하고 강한사람 해원할게 무엇있노
권리있고 잘난사람 그만해도 자족하고
유식하고 똑똑하면 그만해도 해원이지
시호시호 이내시호 해원시대 만났더라
말도마오 말도마오 부귀자는 말도마오
저의해원 다했으니 들을리가 어디있노
하느님이 정한운수 알고보니 그러하지
귀하고 부한사람 장래에 빈천이요
빈하고 천한사람 오는세상 부귀로다
괄세말라 괄세말라 빈천하다 괄세말라
고단하고 약한사람 길을찾아 들어오고
가난하고 천한사람 도를찾아 들어오고
눈어둡고 귀먹으니 해원하러 찾아드네
해원시대 만났으니 해원이나 하여보소
라고 하였다.
• 또 상제께서는 [교법] 2장 11절에서 종도들에게 “후천에는 약한 자가 도움을 얻으며, 병든 자가 일어나며, 천한 자가 높아지며,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요, 강하고 부하고 귀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 스스로 깎일지라”고 이르셨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敎)를 전하는 공사로 보시기 위해 경학을 시켜 무당 여섯 명을 불러오게 하셨다. 천한 사람이라면 백정이나, 광대 등도 많으나 굳이 무당을 택하여 부르신 이유는 무당(巫堂)은 신(神)을 받아 신을 섬기고 신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고시대에는 하늘의 신명과 통하여 신의 가르침을 받아 내려 백성을 가르치고, 신명에게 제사를 올렸던 제사장을 무당이라 하였다. 그러나 중고 이래로는 제사장이 없어지고 그 형태만 남아 잡신을 받아 굿을 하여 신병(神病)을 고쳐주어 밥을 먹고사는 일에 종사하거나 앞날을 점치는 일에 종사하여 천시 받았던 자를 무당이라 칭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도(道)는 신인상합(神人相合)의 도(道)로써, 하늘의 세 분 하느님(三神)을 섬기고 인간에게 신명(神明)을 봉(封)하는 공부이므로 그 형태가 무당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천시받는 무당을 택하여 불러오라 하셨다.
여섯 명을 부른 이유는 매인이 6명씩 포덕해 나가는 방법을 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김경학을 시켜 먼저 무당 6명을 데려오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진법(陣法)으로 『전경』 [행록] 3장 31절에서 보듯이 “각각 십만 인에게 포덕하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평천하(平天下)할 터이니 너희는 치천하(治天下) 하라. 치천하는 오십 년 공부이니라. 매인이 여섯 명씩 포덕하라”고 하신 것이다.
• 그리고 그들의 관건을 벗기고 그들의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하여 사배(四拜)를 하게 하고 시천주(侍天呪) 세 번을 따라 읽게 하셨다. 이것은 말하자면 입도의식(入道儀式)이다.
관건을 벗긴 것은 지금까지 잡신의 관을 쓰고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잡신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시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세 분 하느님(三神)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념에 사로 잡혀 마음에 잡신이 자리하므로 집안에 온갖 분란(紛亂)과 우환(憂患)과 병(病)이 오는 것이니 그것을 벗어버리고 마음에 세 분 하느님(三神)을 섬기면 마음이 맑아지며, 정신이 밝아져서 도(道)를 알게 되어 소원 성취가 되는 것이므로 그 법을 가르치심이다.
• 그리고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해 사배를 하게 하셨는데, 청수(淸水)는 맑은 물로써 가장 순수한 것이며 맑은 물에는 생명 기운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신명을 불러 응기시킬 때 청수를 떠놓고 심고(心告)를 드리는 것이다.
도전 박우당께서 “물에서 도(道)가 나왔다”고 하셨다. 하느님이 물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에 의해 세 분 하느님(三神)이 밝혀지고 모셔지므로 그곳에 세 분 하느님(三神)께서 모셔진 영대(靈臺)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대가 지어지지 않은 그 당시는 영대 대신 청수에 세 분 하느님(三神)의 신명이 응기하시므로 그곳을 향해 사배를 드리는 것이다. 시천주(侍天呪) 주문을 제각기 세 번 따라 읽게 하신 것은 하늘의 주인이신 삼신(三神), 즉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 조성옥황상제 • 박성미륵세존,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시는 것으로 기도 모시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 이것을 끝내고 그들의 이름을 물은 다음 각자로 하여금 청수를 마시게 하시고 “이것이 곧 복록이로다” 하셨다.
이름을 물으신 것은 입도식에서 녹명(錄名)을 올리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도문소자(道門小子)로서 세 분 하느님(三神) 전(殿)에 입도(入道)를 하였으므로 세 분 하느님(三神) 전(殿)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청수를 마시게 하고 “이것이 곧 복록(福祿)이로다” 하신 것은 입도치성을 올리게 하여 후천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이 큰 복록이 된다는 것이다.
• 또한 이것은 상제께서 해원시대에 접어들어 맨 먼저 천한 사람에게 교를 전하신 것인데 우리 대학교에 들어와 대순(大巡)의 도(道)를 닦으면 천한 자가 귀하게 되어 해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법] 3장 4절을 보면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니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이하여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죄를 조심하고 남에게 척을 짓지 말라. 부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기운이 채워 있는 곳에 큰 운수를 감당키 어려운 까닭이니라. 부자의 집 마루와 방과 곡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 차 있나니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대로 해원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을 남과 비교하여 남의 부귀와 강권을 부러워하여 그것을 갖고자 쫓아가려면 도(道)도 없고 법도 없이 갖은 죄악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죄 짓지 않고 척 짓지 않고는 어려운 법인지라. 그러므로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하게 생각하여 대순의 도를 닦아 도성덕립하게 되면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귀하고 부를 누릴 수 있으니 이로서 천한 자가 해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법 3장 15절 】
또 하루는 경석에게 가라사대 “갑오년 겨울에 너의 집에서 삼인이 동맹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니 그렇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그 일을 어느 모해자가 밀고하므로써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고 하시니 경석이 낙루하며 “그렇소이다”고 대답하니라. 또 가라사대 “너의 형제가 음해자에게 복수코자 함은 사람의 정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너의 부친은 이것을 크게 근심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나니 만일 너희들이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천에 또 다시 악의 씨를 뿌리게 되니 나를 좇으려거든 잘 생각하여라” 하시니라. 경석이 세 아우와 함께 옆방에 모여 서로 원심을 풀기로 정하고 상제께 고하니 상제께서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떠다 놓은 후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하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 경석의 세 형제가 명을 좇아 행하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방성대곡 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너의 부친은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을 괴로워하니 그만 울음을 그치라” 이르시니라.
그후에 “천고춘추아방궁(千古春秋阿房宮) 만방일월동작대(萬方日月銅雀臺)란 글을 써서 벽에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에 두게 하셨도다.
【주해】
갑오년 겨울은 1894년 겨울로써 10월에 동학란이 일어났다. 이때 경석의 부친은 동학의 중진으로서 일하면서 경석의 집에서 삼인이 모여 동맹을 하다가 어느 모해자의 밀고로 관아에 잡혀 처형되었다.
이 일에 대하여 경석과 세 아우는 분히 여겨 복수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으므로 상제께서 또 다시 원의 씨를 뿌릴까 우려하시어 경석의 세 형제를 불러 타이르시고 마음을 돌리게 하셨다. 사람은 한번 원을 맺으면 그것은 반드시 척신이 되어 되갚게 되고 복수를 당하면,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여 풀어 버리면 되지만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억울함을 먼저 생각하여 또 다시 되갚게 되니 이것이 씨가 되어 퍼지고 또 퍼져 궁극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슴에 품은 원은 어느 한쪽이 그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므로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원수를 은인으로 갚아야만 서로 척이 풀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는 “상대가 너의 뺨을 때리거든 너희는 그의 손바닥을 어루만져주라”고 하셨다. 이것은 나의 척신이 그에게 붙어서 나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대드는 것이니 이로써 나는 척이 풀려 가로막힘이 없어지게 되므로, 그로 인해 척이 풀렸으니 도리어 그의 손바닥을 만져주며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상제께서는 [교법] 1장 56절에서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그도 덕이 되어서 복을 이루게 되나니라”고 하셨다.
• 차경석의 부친이 모해자의 밀고로 해를 당함은 과거에 척이 있었기에 그 척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유를 알길 없는 경석과 형제들은 복수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복수를 하게 되면 또 다시 척이 생기고 이것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므로 이런 것을 풀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상제께서 해원시대를 열어 놓았으니 상제의 뜻을 알고 받든다면 이제 복수의 마음을 버리고 더 이상의 척(慽)을 짓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상제님을 따르는 도인으로서 상제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척을 짓는다면 또 다시 후천에 악의 씨를 뿌리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라면 좋은 운수를 받아 후천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석은 세 아우와 함께 모여 서로 원심(怨心)을 풀기로 정하였다.
그러자 상제께서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떠다 놓은 후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하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셨다.
『대순전경』 3장 24절에서 보면 경석의 부친은 이 일로 경석의 형제들이 또 다시 원의 씨를 뿌릴까 심히 염려하여 상제께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청수 한 동이를 떠다 놓은 후 그 청수를 향하여 부친을 대하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경석 형제들이 방성대곡하여 슬피우니 경석의 부친이 괴로워한다고 상제께서 말씀하시고 울음을 그치게 하셨다.
경석의 형제들은 상제님을 따르기 위해서 어찌 할 수 없이 상제께서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마음 속까지는 그 원을 지워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석의 부친은 괴로워한 것이다.
상제께서 ‘천고춘추(千古春秋) 아방궁(阿房宮) 만방일월(萬方日月) 동작대(銅雀臺)’란 글을 써서 벽에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에 두게 하셨는데 ‘천고춘추(千古春秋) 아방궁(阿房宮)’이란 진시황이 아방궁을 지어놓고 천년만년 살고자 하는 꿈을 가졌으되 50세에 죽어 버렸으니 허무한 것이요, ‘만방일월(萬方日月) 동작대(銅雀臺)’는 조조가 동작대를 지어놓고 만방에 그 위세를 떨치고자 하였으나 병들어 허망하게 죽어버렸으니 경석으로 하여금 허황된 왕후장상의 꿈을 버리고 진정 상제님의 뜻을 따르라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 모든 원(寃)과 척(慽)의 근원이 인간의 허황된 욕망으로부터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운 1장 20절】
종도들이 모인 곳에서 상제께서 3월 어느 날 가라사대 “지금은 신명 해원시대니라 동일한 50년 공부에 어떤 사람을 해원하리오. 최제우는 경신(庚申)에 득도하여 시천주(侍天呪)를 얻었는 바 기유(己酉)까지 50년이 되니라. 충남(忠南) 비인(庇仁) 사람 김경흔(金京흔)은 50년 공부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되 그 주문을 신명으로부터 얻을 때에 그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이 두 사람 중의 누구를 해원하리오”라고 물으시니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 중에서 광찬이 “상제님의 처분을 기다리나이다”하니 상제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시천주는 이미 행세되었고 태을주를 쓰리라” 하시고 읽어 가르치시니 그 주문은 이러하였다.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바아”
【주해】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신명(神明)도 모두 해원(解寃)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지금은 신명해원시대니라”고 말씀하셨다. “동일한 50년 공부에 어떤 사람을 해원하리오”라고 하신 것은 최제우는 경신년(庚申年, 1860년) 4월 초5일 구천상제로부터 시천주 주문을 받았다. 이 주문은 최제우가 동학(東學)을 펼치면서 사용한 바가 있다. 『동경대전』 [포덕문]에서 보면,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하였고 또,
나도 또한 그 말씀에 느끼어 그 영부를 받아 써서 물에 타서 마셔본즉 몸이 윤택해지고 병이 낫는지라 바야흐로 선약인 줄 알았더니 이것을 병에 써봄에 이르른즉 혹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하므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그러한 연유를 살펴본즉 정성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으니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그러나 최제우의 가르침은 유교적인 범주를 넘지 못하므로 유교의 폐습을 개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갑자년(甲子年, 1864년)에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거두시고 신미년(辛未年, 1871년)에 직접 강세(降世)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상제께서 시천주(侍天呪)를 공사에 여러 번 쓰시고 그리고 병자들을 치료할 때도 여러 번 사용하셔서 병을 고치셨다.
『전경』 [제생] 7절에 보면,
김윤근이 치질로 수십 년 동안 고생하다가 계묘년 삼월에 이르러 기동할 수 없이 누울 정도로 심해지니라. 이를 긍휼히 여기사 상제께서 그로 하여금 아침마다 시천주를 일곱 번씩 외우게 하셨도다. 그가 그대로 행하더니 병에 차도가 있어 얼마 후에 완쾌되었도다.
이와 같이 최제우가 경신년(庚申年, 1860년)에 시천주(侍天呪)를 받아서 사용하다가 죽은 후 상제께서 강세하셔서 화천하신 기유년(己酉年, 1909년)까지 시천주를 사용하였으니 50년이 되는 것이다. 이미 시천주(侍天呪)는 행세하였으니 최제우는 해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충남 비인(庇仁) 사람 김경흔(金京흔)은 50년 공부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되 그 주문을 신명으로부터 얻을 때에 그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으나 쓰지 못하고 죽었다. 김경흔은 조선 선조 때 충청도 비인 출신으로써 50년 간 도통공부를 하는 방편으로 여러 주문을 사용하였으되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예로부터 비전되어 온 구축병마주(鷗逐病魔呪:병마를 몰아내는 주문)인 ‘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바아’를 송(頌)하다가 비로소 공부가 열렸다. 이때 신명의 계시를 받아 그는 주문의 머리에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을 붙여서 염하였으나, 이 주문으로 완전한 도통을 얻지 못하고 다만 『태을경(太乙經)』이라는 책에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때 김경흔에게 응했던 신명은 ‘태을천상원군’이었다. 김경흔은 태을천상원군으로부터 “이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으나 자신의 도통공부에만 치중하여 신명의 명을 실행치 못하였으니 김경흔도 도통을 하지 못한 원이 맺히고, 신명 또한 이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였으니 원이 있는 것이다. 만일 그때 김경흔이 태을주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여 사람들을 많이 살렸으면 도를 통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신명을 해원하기 위해 상제께서 사람을 많이 살리는 주문인 태을주(太乙呪)를 써서 신명을 해원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인들이 태을주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가면 많은 사람이 살게 되고 이로써 전하는 도인들로 도통을 하게 되므로 신명은 해원이 되는 것이다.
『전경』 [행록] 3장 31절에 보면,
상제께서 어느 날 류찬명(柳贊明)과 김자현(金自賢) 두 종도를 앞세우고 “각각 십만 인에게 포덕하라” 말씀하시니 찬명은 곧 응낙하였으나 자현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상제의 재촉을 받고 비로소 응낙하느니라. 이때 상제께서 “내가 평천하 할 터이니 너희는 치천하 하라. 치천하는 오십 년 공부이니라. 매인이 여섯 명씩 포덕하라”
“내가 태을주(太乙呪)와 운장주(雲長呪)를 벌써 시험해 보았으니 김병욱의 액을 태을주로 풀고, 장효순의 난을 운장주로 풀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즉 매인이 6명씩을 포덕하여 주문을 전하여 한 종도가 10만인에게 전해 가라는 것이다. 즉 1만 2천 960 도통군자가 10만인에게 주문을 전하면 12억 9600명에게 태을주와 운장주를 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이 태을주로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신명해원이 된다.
그런데 김경흔이 받은 주문은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아’이다. 이것만으로는 기운이 발휘되지 않으므로 상제께서
앞에 훔치훔치()를 더 붙였다. 훔()은 소울음소리 훔이고, 치()는 소먹음소리 치이다. 이것은 송아지가 어미소를 부르는 형상으로 도문소자(道門小子)가 세 분 하느님(三神)을 찾는 소리이다. 심우도(尋牛圖)에서 흰 소는 세 분 하느님(三神)을 뜻한다. 세 분 하느님(三神)으로부터 기운을 받아서 태을주 기운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실 때 비로소 이 태을주의 기운이 들어오는 것이고 세 분 하느님(三神)께서 밝혀져야만 완전한 태을주 기운이 발휘될 수가 있다.
• 태을주에 대비되는 시천주(侍天呪), 즉 기도주(祈禱呪)를 같이 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 태을주와 기도주는 음양주문(陰陽呪文)으로써 태을주는 음주문(陰呪文)이고, 기도주는 양주문(陽呪文)이다. 따라서 양일(陽日:甲 • 丙 • 戊 • 庚 • 壬)에는 태을주로 먼저 하여 기도주로 마치고, 음일(陰日:乙 • 丁 • 己 • 辛 • 癸)에는 기도주를 먼저 하여 태을주로써 마친다.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은 태을성(太乙星)에 계시는 제군(帝君)으로서 천상(天上)의 많은 제군들 중 으뜸가는 임금이시다. 도통주(道通呪)의 ‘천상원룡(天上元龍) 감무(坎武) 태을성(太乙星) 두우군(斗牛君)과 같은 분으로서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시고 만신(萬神)을 거령(擧令)하고, 천지(天地)일월성신(日月星辰)을 주관(主觀)하는 신명(神明)이다. 다시 말하면 태을주(太乙呪)는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이 세 분 하느님(三神)으로부터 기운을 받아 내려 인세에 베푸는 우주(宇宙)의 진액(津液)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경』 [교운] 1장 60절에 보면,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그것이 하늘에서 으뜸가는 임금이니라. 오만 년 동안 동리 동리 각 학교마다 외우리라” 하셨도다.
고 일러주신 것이다. 그리고 도주님께서 『태극진경』 8장 50절에서 말씀하시길,
“그대들이 지금 태을주(太乙呪)를 외고 있으나 그 뜻을 알고 하느냐? 만사무기(萬事無忌) 태을주, 포덕천하(布德天下) 태을주, 소원성취(所願成就) 태을주니라. 그러므로 일자(一字) 일음(一音)에도 성(誠) • 경(敬) • 신(信)을 붙여 마음 다져 외워야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의 감응(感應)이 있으리라.”
하셨고, 또 『태극진경』 9장 30절, 31절에서 보면,
“사람의 몸에 구령삼정(九靈三精)이 있음은 천상(天上)의 구성삼태(九星三台)에 상응(相應)함이므로 인신(人身)은 소천지(小天地)이니라. 또 그 몸에 팔만사천 모원공(毛元孔)이 있고 그 모원공마다 모원신(毛元神)이 있으니 태을주(太乙呪)의 정기(精氣)가 거기에 차야 도체도골(道體道骨)이 되느니라.”
고 하셨다. 이것은 마치 누에가 입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치고 자신의 몸을 완성시켜 가듯이 도인(道人)이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시고 태을주를 하게 되면 도체도골(道體道骨)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인이 태을주를 외울 때 “감는다”라고 한다.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太乙呪)를 많이 하고, 많은 사람에게 전하여 많은 사람을 살려야 신명(神明)이 해원(解寃)하고, 좋은 세상이 빨리 오는 것이다.
【교법 2장 20절】
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소조(吉星小照)’라 하여 길성(吉星)을 구하러 다니나 길성(吉星)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吉星)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避難)하는 길이니라.
【주해】
옛날 상고시대(上古時代)는 천존시대(天尊時代)로써 신명을 하늘(天)에 봉(封)하여 사람의 운명(運命)이 별 자리를 타고 와야 그 운(運)이 크게 발휘되었으니 사람들은 길성(吉星)이 비치는 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중고시대(中古時代)에는 지존시대(地尊時代)가 도래(到來)되어 신명(神明)을 땅(地)에 봉(封)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좋은 땅의 기운을 받아야 그 운(運)이 크게 발휘되었으니 모두 지관(地官)을 앞세우고 좋은 땅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는 후천은 인존시대(人尊時代)이니 신명(神明)을 사람에게 봉(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잘 만나야 운이 발휘되는 것이다. 즉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여야 척이 풀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덕을 닦는다는 것은 포덕(布德)을 말함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세 분 하느님(三神)을 알려주고 모시게 하면 길을 알게 되고, 화(禍)를 피할 수 있어 세 분 하느님(三神)의 덕(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잘 알지언정, 눈에 보이지 않는 음세상(陰世上), 즉 신(神)의 세계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무방비 상태의 인간에게 갖은 잡신(雜神)과 척신(慽神)이 접어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禍)를 당하고, 가정에 불화가 끊이질 않는다. 따라서 조상 선령신(先靈神)을 섬기고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시게 되면 집안의 척신으로부터 화(禍)를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 분 하느님(三神)을 모시는 이 법을 전해 주게 되면 그들은 모를지라도 그들의 조상 선령신들은 고마움을 알고 보답하므로 피난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해원시대에 접어들어 남과 척을 짓지 말고, 서로간에 맺힌 걸 풀어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를 도와 도성덕립(道成德立)케 하면 여기서 나의 운이 열리고 길성(吉星)이 빛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척신들로부터 피난하는 길이다.
【교법 2장 14절】
이제 각 선령신들이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그 선자선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나니 힘써 닦을지어다.
【주해】
• 선령신(先靈神)은 4대를 넘긴 후 인간계(人間界)로 돌아오지 않고 신명계(神明界)에 남아 집안을 돌보는 집안신을 말한다. 선령신들은 천상(天上)에 공을 들여 자손을 받아내어 인간계에 내려보내고 자손이 잘 되길 바라며 항상 보살피는 신이다. 그러므로 이 선령신을 두고 본(本)이라 한다. 즉 뿌리라는 뜻이다. 우리가 ‘본(本)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너의 선령신이 누구냐?’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본(本), 즉 뿌리가 있는 것이다.
• 여기의 말씀은 이제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누구에게나 과거의 허물을 청산하고 척을 풀어 좋은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때가 되었으므로 선령신들은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慽神)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도문(道門)에 넣으니 힘써 도를 닦아 대운을 받으라는 말씀이시다.
[채지가] [달노래]를 보면,
천상공덕 선령신들 자손찾아 내려올제
나를보고 반기하며 춤을추고 노래할때
적선일세 적선일세 만대영화 적선일세
백조일손 그가운데 자손줄을 찾아가니
어떤사람 이러하고 어떤사람 저러하고
자손줄이 떨어지면 선령신도 멸망된다
희희낙낙 기뻐할제 한모퉁이 통곡이라
뼈도없고 싹도없다 영혼인들 있을소냐
화인적악 되었던가 너의운수 가소롭다
복연선경 되었으니 이내운수 장할시구
자손을 잘못두면 욕급선조 된다하고
자손을 잘만두면 조상여음 송덕이라
이와 같이 자손줄이 떨어지면 선령신도 멸망되므로 선령신들은 자손들이 도를 잘 닦아주길 학수고대하고 자손들을 보살피고 또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령신들의 뜻을 알 길 없는 우매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는 『전경』 [공사] 3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놓으셨다.
상제께서 대흥리에서 삼십 장(三十張)의 양지(洋紙) 책의 앞장 열다섯 장(十五張)마다
‘배은망덕만사신일분명일양시생(背恩忘德萬死神一分明一陽始生)’을, 뒷장 열다섯 장(十五張)마다
‘작지불지성의웅약일음시생(作之不止聖醫雄藥一陰始生)’을 쓰고 경면주사와 접시 한 개를 놓고 광찬에게 가라사대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고 하시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다” 여쭈니 상제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셨도다.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고 이르셨도다.
이것은 상제께서 은혜를 배신하고 덕 입은 것을 잊어버리면[背恩忘德] 일만(一萬)의 신(神)이라도 다 죽는 것[萬死神]이 분명[一分明]하니 배은망덕하지 않아서 영원히 사는 신이 되는 것이 양(陽), 즉 인간사(人間事)의 발로(發露)[一陽始生]이고, 성스러운 의술과 굳건한 약[聖醫雄藥]을 끊임없이 내어놓는[作之不止] 것이 음(陰), 즉 신명사(神明事)의 발로(發露)[一陰始生]임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상제께서는 광찬에게 신명사와 인간사의 발로가 이러한데 ‘어떤 자가 죽을 것이며 어떤 자가 살겠는가’를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 하시며 물으신 것이다. 이때에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다” 하고 여쭈니 상제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옥새(玉璽)로 하여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시면서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 하시며 하늘의 법[天命]으로 확정하신 것이다.[앞쪽 40페이지 참조]
자손으로서 성공하여 후천 선경의 복록(福祿)을 누리기를 바라는 선령신들의 간절한 뜻을 저버리는 자손은 뿌리 잘린 나뭇가지나 마찬가지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모두 힘써 닦으면 누구든지 후천의 운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선령신들의 뜻을 알아 받들고 힘써 닦아서 꼭 도성덕립하여 운수로 받아야 선령신들도 해원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