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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중간사 : 외경(外經, Apocrypha)
외경이란 BC. 250년경 기독교 시대 초까지 기록된 것으로 히브리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유대의 문헌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반면 기독교와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애굽 유대인들은 외경서를 70인역 헬라어 성경에 포함시켰으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Ⅰ. 외경의 분류
① 역사서 : 마카비상, 마카비하, 에스드라상
② 전승서 : 에스더 첨가서, 수산나 세 젊은이의 노래, 벨과 뱀, 유딧과 토비트
③ 예언서 : 바룩, 므낫세 기도서
④ 묵시서 : 에스드라하
⑤ 교훈서 : 집회서, 솔로몬의 지혜서, 예레미야 서신
Ⅱ. 기독교와 외경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외경이 기독교 이전에 있었던 유대교 사상과 생활에 대하여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연구를 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① 외경은 예수와 초대교회가 인정한 구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분류되는데 유대적, 전통적 구분에 외경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외경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나 인정하거나 인용한 사례가 전혀 없었습니다
② 헬라어 성경을 사용하였던 필로, 요세푸스와 같은 유대학자들도 외경을 알고 있었지만 성경으로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드라하에는 오늘날 히브리성경에 상응하는 24권의 책과 다른 70권의 책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에스드라하14:44~48) 이들 외경들이 회당과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구약성경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만 받아들일 뿐, 그 이상의 중요성으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③ 히브리정경에 정통한 교부들도 정경과 외경에 선명한 구분을 지었습니다 사르디스의 멜리토(Melito), 예루살렘의 씨릴(Cyril), 제롬(Jerome)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정경과 외경의 차이를 인정하였습니다
④ AD. 1456년, 트렌트(Trent)회의에서 외경은 성경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토비트, 유딧, 솔로몬의 지혜서, 집회서, 바룩(예레미야서신포함), 마카비상하, 에스더 첨가서, 다니엘의 첨가된 것(수산나, 세 젊은이의 노래, 벨과 뱀)이 정경으로 선포되었는데 카톨릭학자들은 이것을 전정경(구약)에 대한 후정경(외경)으로 구분하였습니다
⑤ 외경은 비역사적이고, 지리적인 부정확도와 시대착오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정경의 예언 정신이 불명확합니다 그것이 정경에 비하여 저급한 수준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날 개혁교회에서는 외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영국교회도 참고서 정도로 사용할 뿐입니다 한편, 외경외에 성격상 외경과 유사하나 정경과 외경 또는 랍비문헌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BC. 200~AD. 200년사이에 쓰여진 유대교 문헌들이 있는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위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외경과 위경, 그리고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종파적 성격의 문헌 및 고대세계의 다양한 문헌들이 초대교회와 신약성경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여 줍니다
Ⅲ. 외경
(1) 에스드라상
요시야왕(BC.621년), 예루살렘에 있었던 유월절 축제에서 시작하여 에스라(BC.444년)시대에 율법의 공적인 낭독으로 끝나는 구약역사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역대하33:1~36:23과 에스라서 전체, 그리고 느헤미야7:73~8:12의 내용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정경에서 첨가된 부분은 에스드라상 3:1~5:6의 세 근위병 이야기 입니다
다리오왕의 경호원이었던 세 근위병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첫사람은 포도주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장 강한 것이라고 하였고, 두번째 사람은 왕이 지배자로서 종들에게 궁극적인 힘을 가진 강한자라고 하였으며, 세번째 사람인 스룹바벨은 인간을 낳는 여성이 가장 강하나 진리야 말로 이 모든 것을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승자를 결정하는 다리오왕이 스룹바벨의 답을 택하였고, 그의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재건을 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다리오왕이 약속을 이행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에스드라상은 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진리를 영화롭게 하려는 도덕적 편집물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에스드라상이 BC. 150년경 애굽에서 편집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벌게이트역에서는 에스드라3서로 불리우며 70인역의 루기아누스 리센션(Lucianic recension)사본에서는 에스드라하로 부르고 있습니다
(2) 에스드라하
바벨론에서 에스라에게 임하였던 일곱계시를 기록한것입니다(3~14장) 주로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과 하나님이 인간의 길을 공의롭게 하려는 행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메시야의 강림과 축복의 시대를 대망하는 유대인임이 분명하였습니다 서론(1~2장)과 결론(15~16장)은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기록된 보충기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AD. 1세기 말에 아람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며, 2세기 중엽에 헬라어의 서론이 첨가되고, 3세기 중엽에 결론부가 기록되어진 흔적이 있습니다 동방역본 및 라틴 필사본들은 에스드라하의 주요부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게이트에서는 에스드라4로, 독일어 성경에서는 에스라의 묵시로 되어 있습니다
(3) 토비트
BC. 2세기경 아람어로 기록된 종교적 이야기로 유대인의 신앙과 온유한 도덕적 교훈을 조화시켰습니다 경건한 유대인 토비트는 갈릴리 지방 납달리의 후손으로 아내 안나와 아들 토비아스와 함께 살만에셀(BC.721년, 열왕기하18:9~12)에 의해 니느웨로 잡혀갔습니다 유배지에서 토비트는 유대율법을 철저하게 준행하였으나 시력을 잃게 되자 아들, 토비마스를 메대지방의 라기스에게 보내 채무자로 부터 빚을 받아 오게 하였습니다 천사가 토비마스를 엑바타나로 데려가 거기에서 일곱번 결혼한 과부와 사랑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녀의 전(前) 일곱 남편은 악령에 의해 혼인 첫날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토비마스는 사실상 처녀의 몸을 갖고 있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물고기의 내장을 태워 그 연기로 악령을 쫓아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또한 물고기의 쓸개즙으로 아버지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토비트는 산헤립을 사르곤2세가 아닌 살만에셀의 아들로 기록하거나(1:15), 니느웨 성읍이 나모폴라살과 키아자레스(Cyazares)가 아닌 느부갓네살과 아하수에로왕에 의해 점령한것으로 기록하는 등(14:15) 역사적 오류가 발견되고, 거리상 2주의 거리를 하룻길 여행거리로 기록하는 지리적 오류가 발생하여 기록의 신뢰도를 낮추었습니다
(4) 유딧
마카비 혁명이 일어난 이후 팔레스타인 거주 유대인에 의해 히브리어로 기록된 유딧은, 유대과부 유딧이 어떻게 베툴리아를 포위하고 있던 앗시라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로 부터 유대민족을 구출해 내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딧은 위험을 감수하고 홀로페르네스의 막사로 들어가 그를 유혹하여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칼로 목을 베어 죽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앗시리아를 이기어 승리를 주신 증거로 그 목을 취하여 베툴리아로 가져왔습니다 유딧은 야엘이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죽인것에 필적할만한 이야기였습니다(사사기4:17~22) 이 허구적인 이야기는 마카비혁명 이후 유대인들의 애국적 분위기와 종교적 헌신을 반영해 줍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 만이 구원을 가져오며 이것은 율법에 순종하여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 에스더 첨가서
BC. 1~2세기에 이집트 유대인이 정경에 있는 에스더서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섯부분에 107절이 하나님, 기도, 유대교에 대한 참조문으로 첨가되었습니다 첨가서에는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헌신, 신앙, 경건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첨가서들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교황 다마수스로 부터 성경의 표준라틴역본의 준비를 위촉받은 제롬의 업적이었습니다 그는 에스더서의 히브리 본문을 번역한 다음 헬라어와 라틴 필사본에 있는 첨가부분을 이 책의 끝부분에 포함시켰습니다 그 다음 그것이 정경의 어느부분에 속하는지 각주를 달았습니다 후의 필사자들이 부주의 하게 히 해석 주(註)를 빠뜨린 결과 본질적으로 혼합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혼돈단계는 중세 캔터베리의 대주교인 스데반 랑톤(Stephen Langton,1228년사망)때 라틴성경을 쉽게 인용하기 위해 장의 구분을 하였습니다 후기의 자료들이 이미 있던 자료에 연속되어 형성된 것 처럼 에스더서에서 정경적인 자료와 외경적인 자료를 연속해서 각 장에 번호를 붙였습니다
(6) 솔로몬 지혜서
BC. 150~50년, 알렉산드리아 유대인이 광범위하게 읽도록 유도하기 위해 "솔로몬 지혜"라는 가명을 붙인 하나의 윤리적 교훈서를 편집하였습니다 이집트 유대인들의 회의주의와 물질주의,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고 이방인들에게는 유대주의 진리와 우상숭배의 우(愚)를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의를 쫓으라고 권면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신학적 교훈은 구약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알렉산드리아를 풍미하고 있던 헬라철학을 따라 약간의 수정을 가하였습니다 몸을 영화롭게 생각하고 있는 신구약성경과는 달리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몸이란 단순한 지상의 장막일 뿐, 영혼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9:3)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몸의 부활사상은 없고, 영혼선재설(8:19~20)과 불멸성(3:1~5)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7) 집회서, 또는 시락의 자손, 예수의 지혜서
지혜의 덕을 찬양하고 있는 윤리적 교훈집인 집회서는 BC. 200~175년경, 예루살렘의 경건한 학자인 시락의 자손 예수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손자가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서론이 첨가되었습니다(BC.132년경) 외경중에서 가장 긴 책으로 저자가 알려진 유일한 책이었습니다 정경의 잠언과 같이 집회서는 먹는것, 가족관계와 삶의 주제들을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긴 단편은(44~50장)은 찬양, 에녹, 노아, 아브라함, 스룹바벨, 느헤미야와 동시대인이며 그의 친구인 대제사장 시몬까지 위대한 신앙인에 대한특성을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8) 바룩
예레미야의 친구이며 서기(예레미야32:12)로 알려진 사람이 기록한 바룩서는 BC. 1세기경 혹은 그 이후까지도 완결되지 못한 혼합물이었습니다 마지막 교정본이 헬라어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원본의 기록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비극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보응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회개의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1:1~3:8) 이스라엘이 당한 불행은 유다가 지혜에 태만하였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시적인 서술이 기록되었습니다(3:9~4:4) 지혜는 하나님의 율법과 동등한 것으로 찬양되었으며(4:1~3) 제3부 역시 시적인 서술부로 슬픔에 빠진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적은 패할 것이며 예루살렘의 자녀들은 승리를 외치며 돌아오리라! 바룩서는 기원에 있어서 의심이 가지만 구약의 예언자들이 가졌던 영감을 불러 일으킨 책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대인들이 많이 읽었으며 회당예배 의식에 사용되었고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읽혀졌습니다
(9) 예레미야 서신
BC. 300년, 미상의 작가가 예레미야11:10에 근거하여 하나의 설교문을 기록하였습니다 금이나 은 또는 나무로 만든 우상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편지로 알려진 이 설교는 히브리어(혹은 아람어)로 기록되었으나 현재는 헬라어로 번역한 것만 남아 있습니다 라틴어 번역본과 많은 헬라와 시리아 필사본이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룩서와 연관시켜 대부분 영어 번역본 외경에서는 바룩서이 제6장으로 취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룩서와 관련성이 없으며 어떤 고대 사본에는 애가서 다음에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형적인 헬라 유대적인 기록입니다
(10) 아자리아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다니엘서3:23과 3:24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것) BC.1세기~2세기경, 익명의 저자들이 정경의 다니엘서에 삽입되는 세개의 첨가분을 기록하였습니다 고대헬라어와 라틴번역본들은 이 첨가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첨가부분이 정경본문에서 분리되어 외경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첨가부의 첫부분이 아자리아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게 백성들이 고통받는 시대 혹은 마카비 반란시대에 경건한 유대인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입니다 풀무불이 격렬하게 타고 있는 고통의 시간에 아자리아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백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을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맹렬한 화염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불길을 흩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풀무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그 노래는 시편148편, 응답송으로 시편136편과 유사하게 기록되었습니다
(11) 수산나
BC. 1~2세기경, 세계의 위대한 단편문학으로 인정받은 수산나 이야기는 도덕성과 하나님께 신뢰하는 것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며 70인역성경에서는 다니엘서(정경)의 서두에 나오는 반면 벌게이트에서는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숙하고 아름다운 수산나는 바벨론에서 남편 요아킴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음욕적이고 부도덕한 두 장로가 수산나와 성관계를 맺기를 원하였으나 거절하자 간통죄로 음해하며 고소를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산나는 간통죄목으로 사형을 받게 되었고 수산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다니엘이라는 젊은 청년이 나타나 증인심문권을 요구하였고 다니엘은 두 장로에게 어디에서 각각 간통하였는지 따로 질문하자 그들은 불일치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로서 두 행악자의 음모가 밝혀져 그들이 오히려 사형을 당하였고 수산나는 무죄석방되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높였습니다
(12) 벨과 뱀
BC. 1세기중엽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헬라어번역자가 다니엘서에 첨가 시켰습니다 70인역에서는 다니엘서 후편에 두었으나 벌게이트에서는 수산나 이야기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벨의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추리소설이었습니다 벨과 뱀은 우상숭배와 그들의 제사의식을 문제삼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① 매일 많은 양의 밀가루와 기름, 그리고 많은 수의 양을 먹는 바벨론의 신 벨의 이야기입니다 그 제물들이 매일밤 없어졌기 때문에 고레스왕은 벨이 살아있는 신으로 벨에게 예배해야 한다고 다니엘에게 확신을 종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지혜로서 제물을 모아둔 신전문을 봉인하고 신전 마루에 재를 뿌려 놓았습니다 아침이 되자 제물은 없어졌으나 마루바닥이 발바닥으로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밤마다 제사장들과 그 아내와 자식들이 비밀통로로 들어와 제물을 훔쳐 갔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지혜로 벨이 우상이라는 것을 증명하자 왕은 사제들을 죽이고 신전을 헐어 버렸습니다
② 왕은 거대한 뱀에게 예배하라고 다니엘에게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거절하며 칼과 몽둥이를 사용하지 않고 뱀을 죽이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왕이 허락하자 다니엘은 역청과 비계와 머리털을 섞어 끓여 뱀에게 먹였고 뱀은 즉시로 죽어버렸습니다 자기들의 신이 다니엘의 손에 죽자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버렸습니다(다니엘6:1~28과비교) 사자들은 굶주려 있었지만 다니엘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한 천사가 유대의 하박국으로 하여금 음식을 가지고 바벨론 다니엘에게 주도록 하였습니다 일곱째 날에 다니엘은 구출하고 대적자들을 굶주린 사자에게 넣어 그들의 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13) 므낫세의 기도
BC. 1세기경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기록한 유다의 왕 므낫세의 기도문이었습니다 기도서가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역대하 33장에 의하면 므낫세는 바벨론으로 끌려가 자기가 통치할때에 저지른 우상숭배에 대해 회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33:19에는 므낫세가 기도하였다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므낫세의 기도서는 고대 유대의식서의 전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주권은 창조(1~4)와 죄인들을 향한 자비(5~8), 개인적인 고백(9~10), 사죄에의 탄원(11~13), 은혜에의 간구(14), 영광의 찬미(15)의 순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예배의식 형태의 모델이자 종교적 경건의 순수성으로 전체 외경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4) 마카비상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시리아의 왕위에 즉위한 BC. 175년에서 마카비 일족중 한사람인 시몬이 세상을 떠난 BC. 135년까지의 40년간을 기록한 것입니다 BC. 10년경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히브리어로 기록한 역사서로 안티오쿠스에 대한 유대인의 저항과 유대의 독립을 준 마카비 전쟁에 대한 훌륭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티오쿠스에 저향하여 혁명을 일으켰던 제사장 맛다디아의 세 아들 유다(3:1~9:22)와 요나단(9:23~12:53)과 시몬(13:1~16:24)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독립을 위해 대항하였던 소수집단의 운명에 관한 역사기록으로 기독교 이전의 혼란스러운 유대교 역사를 권위있게 취급한 자료로 귀중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성탄절과 동일한 계절에 지키는 하누카(Hanukkah)는 마카비 반란의 결과로 얻어진 성전 재봉헌을 기념한 것으로 신약성경에서는 수전절(봉헌절 축제)로 언급되기도 하였습니다(요한복음10:22)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초반부를 "고대문물기"(Antiquites)를 구성할때 원천적인 자료로서 사용하였습니다
(15) 마카비하
마카비하는 마카비상과의 연속성이 없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마카비상권 1~7장에 나오는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다 마카비의 공적보다 하늘의 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에 관심을 둔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주재성과 유대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강조하며 바리새적인 교리들을 반영하고 있는데 종말론의 교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BC. 175~160년의 짧은 역사를 담고 있는 마카비하의 기록자는 익명이나 그가 구레네 사람 야손(2:19~230이 기록한 5권의 역사서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여 압축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야손의 실존가능성은 불분명하였습니다 마카비하는 BC. 120년 AD. 1세기경의 기록으로 추정하며 수사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elnala/220507771820
'5. 신구약중간사 : 외경(外經, Apocrypha)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