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회 의결로 K전도사님께서는 교회 시무를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많이 힘들어 하셨고, 교우들도 마음이 답답하였다. 일부 제직
들은 교회 예배에 불참하였다. 이래저래 교회는 활기를 잃어갔다.
이 와중에 K도 맘이 그리 편치를 못했지만, 제직회를 거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교우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실은 그것도 K에게 부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교회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
졌다. 그것은 일상적인 신앙활동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교회학교와 구역
활동 강화가 그 대표적인 일이 되었다.
어느 덧 봄철이 지났지만, K전도사님의 후임지는 여전히 미정이었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K전도사님 요청으로 교회는 주일 낮에 장년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다. 전도사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K가 이 공부의 교사가
되어서, 교우들앞에서 성경공부를 진행하였다.
과거에, 대전 성원교회와 보은의 관기교회에서, 장년 성경공부를 진행하
였던 K는 조심스럽게 성경공부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구역예배도 열심히
참석하여 예배인도를 하였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심정으로 지내시던, K전도사님께서는 그 해
10월에 새 임지로 떠나셨다. 보내는 성도들의 심정은 기쁘다기 보다도 참
착잡하였다.
K전도사님의 새 사역지가 멀리 경남 남해 바닷가인 거제도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K도 많이 안타까웠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쉬움과
죄송한 마음으로, 여러 교우들과 함께 남녘으로 떠나 가시는 전도사님 내외
분과 가족들을 전송하였다.
그 후로 전도사님께서는 새 임지에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며, 목회를 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게 되었다. 그 후에, K는 전도사님께서 과로와
질병으로 사역지에서 고생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생전에 더 뵙지를 못하고, 성광교회에서의 작별이 마지막이 되었음을 K는
탄식하였다.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런 저런 회한(悔恨)으로, K는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