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으로 인간의 추한 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따로 없다. 세상 물정 어두운 지인에게서 SNS로 일본 야동이 날아왔다. 평소 소원한 데 따른 불의의 일격이다. 맑은 정신을 흩트려 놓는 것 같아 일거에 삭제했다. 일순 마음이 더없이 차분해진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eud는 인간은 두 가지 종류의 본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본능에는 긍적적이고 건설적인 힘의 토대가 되는 삶의 본능eros과 어둡고 파괴적인 힘의 토대가 되는 죽음의 본능thanatos이 있다고 보았다. 삶의 본능에는 성적 본능, 욕구 충족 본능, 창조적 본능, 사랑의 본능 등이 포함되는데,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성적 충동이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중요한 본능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방송대 출판 문화원)
또한,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의 구조에 영향을 주는 힘으로서 세 가지 개념을 들고 있다. 그것은 원초아(原初我) id, 자아(自我) ego, 초자아(超自我) superego로서, 원초아의 쾌락 추구, 초자아의 완벽 추구, 그리고 이것을 적절히 조절하는 자아의 현실적 기능을 말한다. 시도 때도 없이 솟아오르는 성적 욕구를 통제하는 이성적 기능이 마비되면 현실적으로는 낭패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훔쳐보기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본능인가, 아니면 초자아의 기능이 마비된 추태의 한 일면에 불과한가?
한창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중학생 시절, 영어 단어를 외우다 잠시 밖에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무심코 건너편 이층집을 쳐다보니, 주황색 전등 불빛 아래로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나신으로 ‘획’하고 지나간다. 찬물을 덮어쓰고 거실을 거쳐 자기 방으로 들어가다가 내 눈에 포착된 모양새다.
순식간의 일이라 얼떨떨한 가운데서도 여체의 곡선이 어쩜 그렇게 오묘하고 신비스러운지. 책상머리에 앉아서도 눈앞에 아롱거려 공들여 외운 단어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날부터 틈만 나면 그 집을 훔쳐보곤 했지만 다시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훔쳐보기가 인간의 공통된 욕구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중앙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총각 때였으니까 4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의 청사 주변은 살림집은 없고 사무실만 밀집되어 있었다. 직장인이 퇴근하고 난 밤 10시 이후로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어져 일시적으로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곤 했었다. 전면의 철도 하치장에선 열차의 쿵쾅거리는 소음이 끊일 새 없었고, 새벽이면 고성능 스피커로 열차를 호출하는 소리가 온 동네를 들쑤셔 놓았다.
청사는 지하 1층, 지상 4층의 직사각형 구조였다. 1층에는 계단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각 부서의 사무실이 있었다. 당직실은 동쪽 사무실 출입구 쪽에 좁게 위치하여, 수위를 포함해 주무와 부무 각 1명씩, 총 3명이 쪽잠을 자며 근무했다. 그리고 운동장 동쪽 모서리, 철도 하치장으로 치우친 곳에는 1층짜리 관사가 꼭 벙커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한편, 서쪽 사무실 바깥에는 다섯 칸으로 된 폭이 너른 계단이 있었다. 민원실 비상문과 연결되어 있었고, 계단 옆의 긴 화단에는 사철나무가 방풍림처럼 심어져 있었다. 여기에 맞은편 맹아학교 건물이 검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 계단이 위치한 공간에는 자연스럽게 으슥하고 아늑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어느 날 보안 점검을 하다가 서편 사무실 쪽, 밖으로 미는 형태의 창문이 살짝 열려 있어 당연하다는 듯이 문을 굳게 닫았다.
조금 있으니 수위 근무자가 나를 불러 그 창문을 다시 열어 놓으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밤이 이슥하면 손님이 찾아온단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으니, 이 근처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술을 한잔하고 여기에 사랑을 나누러 들른다는 것이다.
‘설마?….’
밤이 깊어 서편 사무실 출입문을 통과하여 고양이 걸음으로 창문 옆에 섰다. 남녀 한 쌍이 계단 중턱에 앉아 있다. 귀 기울여 들으니 앳된 여자와 나이가 좀 든 남자의 목소리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숨소리가 가빠지고 여자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리자, 나도 덩달아 콧김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조금 후.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대로변으로 사라지고, 쓸데없이 열이 오른 나는 당직자의 근무수칙대로 밤새도록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날 이후로 당직만 서면, 그 유리창 옆이 내 주된 근무지였다. 그런데 이런 근무형태가 총각인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방점이 있다. 심지어 머리가 희끗거리는 점잖은 주무 한 분은 훔쳐보는 게 들킬까 봐, 여름에 입는 반팔 흰 셔츠 위에 검은색 동계 근무복까지 챙겨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훔쳐보기의 열풍이 온 청사를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장소를 아베크 손님을 받는 ‘ㅇㅇ여관’이라고 불렀다. 우리 기관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지만, 우리가 보살펴 드려야 할 분들의 명예에 누를 끼칠까 우려되어 ‘ㅇㅇ’으로 표기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어느 날 주무 한 분이 여관에 손님이 찾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부리나케 2층 사무실로 올라가서, 창문을 열고 붉은 플라스틱 양동이에 들어있던 방화수를 사정없이 내려부었던 것이다.
이 일로 그 선배는 여론의 중심에 섰다. 여론은 우리 처의 모토인 ‘국가에 헌신한 분을 위해 성직자와 같은 자세로 봉사하자’의 모범을 보였다는 부류와 ‘에이’ 보기 싫으면 그냥 안 보면 되지 왜 물까지 뿌려서 여관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느냐‘로 나누어졌는데,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가 다수를 차지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여관 영업이 급격히 하강 곡선을 그려 개점휴업 상태가 되고 말았다. 사후 분석컨대, 그 여관은 아는 사람만 애용하는 소수의 단골 고객층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일상의 하나인 점심시간에 운동장 벤치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던 중, 선배 한 분이 모래를 가득 담아 재떨이로 사용하는 항아리를 가리키며 저게 엄청 무겁더라고 한다.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우리 여관이 거의 폐점 단계라 혹시나 하고 담벼락 주변을 안에서 귀를 곤두세우며 순찰하고 다녔단다. 그랬더니 바로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 뒤편, 철도 하치장 쪽에 손님이 와 있더란다.
’얼씨구나!‘ 하고 담벼락을 짚고 내려다보려니, 담이 너무 높아서 자세를 잡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항아리를 옮겨 발판을 삼았는데, 아침에 원래 위치로 돌려놓으려니까 무거워서 꼼짝을 않더란다. 시험 삼아 들어보니, 한창때인 나도 겨우 들 정도로 무거웠다.
하루는 수위 근무자가 관사 대문 앞이 소란스러워 순찰을 잘 돌라는 특명을 받았다며 슬그머니 일어서서 나갔다. 그리고 한참 후,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호기롭게 들어오더니 아베크 한 쌍을 적발해 혼을 내서 쫓아 보냈단다. 어쨌든 그나마 남아 있던 손님이 그 이후로 완전히 발길을 끊었으나 여관은 결국 폐업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청사 주변을 얼쩡거린 손님이 문제일까, 순찰을 핑계 삼아 여관 손님을 훔쳐본 우리가 문제일까.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원인 제공자가 더 문제일 것 같은데…. 그것도 서로 좋아서 으슥한 곳을 찾아 인간의 본능에 따라 행동한 일이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아무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적당한 훔쳐보기는 삶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지나치면 n번 방 사건처럼 온 세상 자탄의 대상이 되고 패가망신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평소 이성을 잘 갈고닦아 지나친 욕구를 통제하는 일에 게으름이 없어야 하겠다.
끝으로, 그 시절 함께했던 분들께 그리움을 담아 드리는 말씀.
“ㅇㅇ여관의 주인들이여,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고 늘 행복하소서!”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고갑니다. 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