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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두 가지 비밀(2)
성경 본문 : 요한 계시록 1장 20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3월 31일 주일 오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오늘은 <부활절>주일 입니다.
우리는 매주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전에 이어서 오후에도<요한 계시록>를 공부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 계시록>1장 20절 말씀입니다.
20절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⑩ 특별 사항은 생명과 위급한 일에 관련한다.
병원이나. 약국을 영업하라는 것이 아니며
위급해 찾는 자가 있을 시나 본인이 필요할 시 가능하다.
국가 안보 문제나(군복무) 일정으로 잡혀 있는
직장 당직 관계인데 가능한 예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국이 아닌 사회에서 주일을 성수하기 힘이 든다.
그러나 신앙 양심이 허락하는 한 주일을 성수 할 수 있는
직업과 직장이 돼야한다.
경비를 서는 일 등도 예배의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경 사업. 건설업 등은 월요일 아침부터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일요일에 작업 준비(나무. 시설물 등)를 하게 되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가능한 토요일쯤에 월요일에 착수할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다.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주일은 주님의 일로 충실해야 한다.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하는 날이며 믿음의 일을 하는 날이다.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이 신약에 와서도
그렇게 율법대로 행할 의무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구약처럼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정신에 있어서 구약의 안식일과 다름없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구약의 모든 율법의 존재와 그 목표가
완성되었다는 신약 적 구약의 재해석에 따른 안식일의 개념은 행위 언약은
폐하고 은혜 언약 적 내용은 그대로 전수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많은 지도자들이 주일 성수를 현실 문화에 비추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정통신학에서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주일 성수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많았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대 생활에 적용 문제로
주일에 상거래를 하는 것이나 인간 중심으로
주일을 지내는 일들이 많다.
과연 신앙 양심이나 신학의 문제일까?
아니면 현실주의에 따른 합리적 해석일까?
우리는 주일성수가 구원을 얻는데 결정적인
율법적 요구가 된다는 이론은 내세울 수 없다.
신약에 예수님의 속죄 사건 중심으로 소위
하나님의 구속사적 입장에서 구약이 해석되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셔서 부활하시게 됨으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안식일보다
날 자체로도 주일이 더욱 중요한 날이 된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는
온전한 예배와 이웃의 아픈 자. 약한 자를 돌보며 위로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많이 얻고 기도로 영성 훈련을 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생을 충분히 찬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주일에 생업에 종사하는 것은 내세의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의 불신적 삶이 된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생업이나 어떤 상거래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 잘되고 세상일을 염려하지 말라하신
주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믿음의 순종이 되는 것이다.
먼저 주일에는 시장 보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영업을 하게 되는 불신자는 결국 이 날에
주님께 찾아올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힘든 세탁은 전날에 해두는 것이 유익하다.
이날 너무 힘겨운 청소나 세탁하는 일로 고달픈 것은
주의 부활을 즐거워하는 날에 조화롭지 않다.
간단한 목욕은 가정에서 가능하며
오락을 즐기는 것은 부당하다.
이 날은 인간의 안식이 되기 전에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토대로 하는 신령하고도
영광스러운 기념의 날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처럼
오락으로 육체적인 즐거움에 취하는 것은
거룩한 행위가 아닐 것이다.
직장 시험 치르는 것과 국가고시 자격증
시험 등에 대해 본인은 거절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결코 축복받을 행위는 아니라고 본다.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는 것은 무척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갈 수 있다.
현실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합리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주일에 대한 신약 적 이해 그리고 신학적 해석이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은 많은 논란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은 전통적으로 상업적 거래나
인간중심의 오락적인 행위를 금하는 것으로 전해져 왔다.
주일 뿐 아니라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신자들의 삶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다.
십일조의 개념이나 주일 성수나 신약 적
재해석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2) 별의 비밀
별에는 붙들린 별도 있고 떨어진 별도 있다.
붙들리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지만.
떨어지면 자신도 죽고 남도 죽인다.
(1) 떨어진 별의 비밀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6장 9절-12절 말씀에서
떨어진 별에 대해 몰각한 목자들이라고 기록하였다.
9절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10절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절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소경인 파수꾼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짖지 못하며. 꿈꾸는 자. 누운 자.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다.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개와 같다.
몰각하여 자기 길로 돌이키는 몰각한 목자들이며. 자기의 이익만 도모하며.
포도주와 독주(세상의 즐거움)에 취한 자들이다.
<이사야> 6장 9절 말씀과 같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떨어진 별의 예표로 <엘리>제사장이 있다. <엘리>제사장은 사사. 선지자.
제사장의 축복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삼대 직분을
<엘리>와 <사무엘>에게 주시고 그 뒤로는 나누셨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많은 권력을 주시니까
인간이 잘못 될 가능성이 많아지기에 분리시키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직분이 많아질수록 잘못될 확률이 많아지므로
그럴수록 겸비해져야 한다. <엘리>제사장을 살펴보면
한 번 떨어지면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면 안 된다.
강과 물 샘에 떨어진 별은 하늘에서 횃불같이 탔던
큰 별로 쓴물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요한 계시록> 8장 10절-11절 말씀에
10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11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강과 물 샘은 생명의 샘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셔야할 영생수다.
<잠언> 14장 27절 말씀에
2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쑥은 떨어진 별의 이름이요. 쑥물은 쑥이 강과 물 샘에서 물을 낸 것이다.
쑥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는다. 양은 쑥을 먹으면 배탈이 나서 죽는다.
그렇기에 쑥을 먹으면 안 된다. 신선한 꼴을 먹어야 한다.
쑥에 대한 말씀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고.
쑥물에 대한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예레미야> 9장 15절 말씀에
15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예레미야> 23장 15절-16절 말씀에
15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1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할 때. 그 당시 사람들은 수 백 명의 왕궁
선지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때 쑥물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여호와가 주시지 않은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전하는 거짓 선지자의
교훈을 쑥물이라고 하였다.
<아모스> 5장 7절 말씀에
7절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공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진인 쑥으로 변하게 한다.
<아모스> 6장 12절 말씀에
12절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법을 쓸개로.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한다.
선지자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정권을 등에 업은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 선지자로 하여금 예언하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그 때 주신 말씀이다. <아마샤>가 하는 말이 쑥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 <아마샤>와 같은 종들이 나와 쑥이 된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을 전하는 어떤 사람이 된 일의 말씀을 쑥물이라고 하는데.
된 일의 말씀은 젖이다. 우리가 된 일의 말씀을 받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이 쑥물이라면 우리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을 알더라도 된 일의 말씀을 부정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된 일의 말씀은 기초이기에 반드시 필요하고
거기에 될 일의 말씀을 더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5장 12절-14절 말씀에
단단한 음식과 젖에 대한 말씀이다
12절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절.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절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6장 1절-3절 말씀에
젖은 그리스도 도의 초보라고 말씀합니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절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거듭난 새 생명이 되었다면
계속해서 젖을 먹어서 될 것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을 먹어서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4장 19절 말씀과 같이
젖 먹이는 자는 화를 당한다고 하였다.
젖을 먹이는 자가 화를 당한다면
젖을 먹는 자도 함께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단단한 식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젖을 먹어도 되지만.
단단한 식물이 나왔는데도 계속해서 젖만을 먹는다면.
주님은 화를 당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될 일의 말씀을 전해도
예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
초대교회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그 기초 위에 될 일을
말씀으로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된 일의 말씀에서는 쑥물은 나올 수 없지만.
이단은 나올 수 있다. 될 일의 말씀에서
쑥물이 나오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가 주시지 않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전하는 거짓 선지자의 교훈을 쑥물이라고 하였던 것과 같이.
우리 시대에도 여호와가 주시지 않은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전하는 것이 쑥물이다.
여호와가 주신 말씀과 주시지 않은
말씀을 정하는 기준은 성경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1장 10절 말씀과 <요한 계시록> 4장 2절 말씀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베드로 후서> 1장 20절-21절 말씀을 보면.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하였기에. 사사로이
풀지 말고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 말씀을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될 일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바른 진리이지만.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쑥물이 된다는 것이다.
된 일의 말씀을 통해서 초림의 주를 영접하였다면.
될 일의 말씀을 통해서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것이다
(참고 성경 <요한 계시록> 22장 20절).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이해 못하는 것처럼.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된 일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의 기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될 일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나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자가 될 뿐이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이어야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기에.
하나님의 인을 치실 종들에게는 성령의 감동 속에 일곱 영의
역사가 있는 곳을 찾아 모이도록 역사하실 것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