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깨
김효자
나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이 있다. 여학교 시절에는 짖궂은 남학생들의 놀림도 꽤나 받았다. 어떤 심술쟁이는 대문 앞까지 졸졸 따라오면서 한사코 놀려대기도 했다.
나는 학교 예술제 같은 때에 연극 주인공 노릇을 했는데, 분장을 한 관계로 주근깨가 보이지 않은 탓이었던지 연애편지도 많이 받았다.
이런 일과 관련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나의 사춘기를 주근깨 때문에 고만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젊었을 때 어쩌다 미장원에 가면,
"주근깨만 없으면 얼마나 훤하겠어요. OO병원 가면 깨끗이 밀어 준다는데……."
하면서 친절한 미용사들은 성형외과를 권하기도 하고, 특효약에다 별의별 비방秘方을 귀뜸해주며 시험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마워요."
하고 대답했을뿐, 그들이 권하는 녹두물이나 뜨물로 세수 한번 해 본 적이 없다.
이상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거울을 대하면서도 남이 상기시켜 주지 않는 한, 내 얼굴에 쭉 깔린 주근깨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용사 아가씨의 친절한 코치를 받고 있는 동안 미장원 거울 위에 확 돋아났던 나의 주근깨는, 미장원 문을 나서면 또 어느샌지 모두 잦아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자연 성형의원을 권하는 이조차 없어져 그것을 의식할 기회도 점정 줄어들고 있다.
나의 다정한 친구들은 주근깨 없는 나를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나의 얼굴에 있는 흠까지도 나의 일부로서 사랑해주고 있다. 본인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 흠을 남들인들 뭣이 그다지 안타까워 박박 기를 쓰며 미워할 까닭이 있겠는가?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나의 얼굴, 나의 젊음, 나의 여성을 의식적으로 생활의 무기로 삼으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짧고 한계가 들여다보이는 밑천이요, 가장 닦이지 않은 원형적인 자신資産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딸은 곱게 길러 시집이나 잘 보내고 싶다는 것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공통된 꿈이다. 하기야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공통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곱다는 것이 어떻게 평생 살아가는 밑천이 될 수 있을까?
앞 세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이 생각은 그렇다 해도 내일을 살아야 할 젊은 여성들이 제 용모 제 젊음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마침내는 이것으로써 의존적 생활 무기를 삼으려 하는 속셈이 들여다 보일 때, 나는 늘 민망스러운 생각이 들었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밑천이 달랑달랑한 장사꾼 같아 불안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효자|(1932―2022) 전남 영암 출생, 전 《월간수필문학》 편집인 겸 주간
수필집 《그림 속의 나그네》《나의 만남 나의 사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