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특별한 도시, 울산
청량하고 예쁜 계절에 방문했던 도시, 북적북적한 인근의 부산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던 여름 바다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 울산에 계시는 고모님 댁에 방문할 때마다 한 번도 바다를 간 적이 없어서 울산은 내륙 어딘가 있는 도시인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생 때 울산에서 온 친구를 만나 종종 고향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친구가 애정 가득 이야기해 주는 그 도시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어느 날 친구의 집에 초대받고 처음으로 홀로 울산에 갔어요. 베란다 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고서야 이곳이 바다와 매우 가까운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매일 친구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따라 나섰고, 하루는 친구의 부모님께서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해 주셨는데 커다란 선박을 건조하는 산업단지를 지나 주전몽돌해변에서 간절곶까지 다섯 군데나 되는 바다를 보여주셨고, 그 다채로웠던 바다의 모습이 아직까지 잊히질 않았어요. 저는 이 도시가 좋아졌고 이후 틈 날 때마다 울산을 찾았습니다.
① 진하해수욕장에서 맞이한 아침
■ 주소 :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토지구 획정리지구내 9B
<오전 7시>
개인적으로 태화강역 앞에서 출발하는 715번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5시 40분에 출발하는 첫 차를 타고 간절곶으로 가는 길에서 맞는 아침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어두웠던 하늘이 붉게 물들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따사로운 햇살을 쏟아내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번에는 간절곶이 아닌 진하해수욕장에서 하차했어요. 언제부턴가 뜨겁고 발 디딜 틈이 없는 한여름 바다를 좋아하지 않게 되어 지금처럼 늘 성수기를 피해 다녀오곤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따뜻한 바다보다 차가운 바다 앞에 서 있을 때가 많았어요. 아직은 따뜻할 거라 예상했던 바다는 치아가 덜덜 부딪칠 정도로 추웠습니다. 쌀쌀해진 날씨만큼 하늘은 더욱 쾌청했답니다.

잔잔한 파도가 이는 깨끗한 해변을 거닐어 봅니다. 아침 햇살이 무척 아름다웠어요.

가족과 산책 나온 강아지가 모래를 밟더니 신이 났는지 마구 뛰어다니는데 제 마음과 같은가 봅니다. 어찌나 발랄하던지 낯선 제게 다가와 자그마한 몸을 부딪히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아침 낚시를 하는 아저씨께 다가가 주변을 서성이며 참견하기도 했어요. 그 개구진 모습에 절로 미소짓게 되더군요. 모래사장 위로 성큼성큼 걷는 걸음 사이로 뽈뽈 따라가는 반려견의 발자국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백사장 뒤에는 곰솔숲, 저 앞에 자그마한 명선도가 보입니다. 수평선에는 조업 중인 선박들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② 순록의 털 색 같이 포근한 가을 산을 오르다, 영남 알프스
<오전 11시>
해변을 잠시 거닐다가 조금 먼 곳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거의 이동하는데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바다와 멀어지니 산이 가까워집니다. 이곳은 초행길이었지만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는데 울산역(혹은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환승한 이후부터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만 따라다니면 됐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곳엔 사람들이 많는 명산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곳이 처음인 사람은 주암마을(배내골, 근처에 배내통하우스가 있습니다.)에서 하차해서 간월산이나 신불산으로 가는 길이 가장 무난할 것 같습니다. 임도(forest road, 林道)를 따라 빙빙 둘러가는 산은 처음인데 오르기보다 약간 경사진 곳을 가볍게 산책하는 느낌이어서 산을 좋아하지만 등산을 싫어하는 아이러니한 제게 딱 맞는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영남 알프스는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재약산:1,18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고헌산(1,034m), 간월산(1,069m) 등 7개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참고 : 두산백과]

간월산과 신불산 자락에 위치한 간월재까지 1시간 15분가량 소요되었고, 산 둘레를 걸을 때마다 휙휙 바뀌는 풍경에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간월재에 도착하면 간월산이나 신불산을 선택해서 오르거나 두 산 모두 차례대로 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일정이 빠듯해서 간월산만 올랐는데 정상 표지석(간월재에서 20 - 30분 소요)까지 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고 기암괴석이 형성되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르는 풍경부터 산 정상까지 이곳에서 본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전형적인 가을산이 아니라 순록의 털 색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던 곳이라 머무는 내내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 간월산 정상으로 가는 길(끝까지 오르면 간월산 표지석이 있습니다.)

신불산과 간월산 두 형제봉 사이에 위치한 이 간월재는 영남알프스의 관문이라고 합니다. 이 왕고개를 선인들은 '왕방재', 또는 '왕뱅이 억새만디'라고 불렀는데요. 5만 평의 거대한 억새밭은 백악기시대 공룡들의 놀이터이자 호랑이, 표범 등 수많은 맹수들의 천국이었다고 합니다. 간월재 서쪽 아래에 있는 왕방골은 우리 민족사의 아픔을 간직한 골짜기인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원시림 협곡이라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였고, 한때 빨치산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왕방골에는 생쌀을 씹으며 천주의 믿음을 죽음으로 지킨 죽림굴과 숯쟁이가 기거하던 숫막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간월재는 배내골 주민, 울산 소금장수, 언양 소장수, 장꾼들이 줄을 지어 넘은 삶의 길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시월이면 간월재에 올라 억새를 베어 날랐는데 벤 억새는 다발로 묶어 소 질매에 지우고, 사람들은 지게에 한 짐씩 지고 내려와 억새지붕을 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발췌 : 영남알프스 간월재 안내문]

지금 우리는 임도로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거대한 산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이곳을 선인들은 어떻게 넘었을까요?




광활한 억새밭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남 알프스, 다른 계절에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입니다.

③ 반짝반짝, 울산의 야경
저녁 7시
다시 울산 시내로 돌아와 마지막 장소로 이동했어요. 하루 동안 굉장히 큰 동선으로 이동했는데 마치 세 개의 다른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만큼 울산은 크고 넓습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으니 노을이 지기 시작했어요.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뜨겁게 타오르다가 사라져 가는 빛이 아름다우면서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현대자동차 공장, 중공업, 제철, 미포조선, 석유화학 등 산업단지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날 때면 거대한 선박들이 건조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볼 때마다 경이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울산 동구청 뒤, 염포산을 오르면 울산대교 전망대가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산을 끝까지 오르면 수많은 불빛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전망대 오른쪽으론 태화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울산항과 울산대교가 보입니다. 바다 너머로 산업단지와 주거단지가 만들어 내는 불빛들, 그리고 그 뒤론 제가 다녀온 간월산이나 신불산 등 많은 명산들이 감싸고 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해설자 분께서 무역항으로써 역사와 조선업이 발달한 지리적 이점 등 울산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어요. 어떤 분야와 지식에 정통한 사람에게 듣는 이야기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요? 이곳에 방문한다면 해설자 분의 설명을 꼭 들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밤 11시 30분>
다시 태화강 근처로 돌아왔습니다. 조금 뒤면 서울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계속해서 이동하며 쉴 새 없이 움직였던 날, 자연으로부터 받은 에너지 덕분일까요?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