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재림교회의 신학적 뿌리
♦마음 열기
*찬양의 시간: 찬미가 376장 주가 주신 약속 위에 굳게 서
*더글라스 프랑스의 이 글을 읽으면 무엇을 느낍니까?
“나는 한때 어떤 원시 부족에 대한 글을 읽었다. 한 인류학자가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 이 고장에 살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들은 그들의 선조가 덩굴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후 복음전도자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원시부족들같이 생각하면서 성장했다. 우리는 1세기 교회의 현재적 표현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는 로마 가톨릭의 긴 암흑시대를 거치고 개신교 종교 개혁에 의해 매우 경미한 변화를 겪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확히 우리가 어떻게 1세기 교회에서 지금의 이 모습까지 왔느냐 하는 것은 신비의 수의에 가려져 있고 아무도 그것을 조사하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Less Than Conzuerors, vii).
♦생각 열기
베드로전서 1:10-12 ”[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재림교회의 신학적 배경을 살펴봅시다>
재림교회의 신학적 뿌리
1) 재세례파: 종교개혁의 주류 집단에서는 유아세례와 국교체제 같은 신앙전통을 그대로 고수한 반면 재세례파 종교개혁 그룹에서는 이 두 가지 신앙 전통을 모두 비성서적이란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온전히 돌아가고자 하였다. 교회전통과 신조적 형식에서 온전히 돌이켜 신약 교회의 이상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었다. (재림교회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 39)
2) 회복주의: 1800년 전후로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된 회복주이 운동은 신약의 모든 가르침을 회복시킴으로써 교회를 개혁하자는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을 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운동으로 제한시키려는 입장을 배척하였다. 회복주의 운동의 목표는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반(反)신조주의 운동이기도 했다. 신조를 앞에 내세우지 않고 오직 성경자체를 앞에 내세웠다. 이 운동의 한 갈래가 크리스천 커넥션이란 교파이고 죠셉 베이츠와 제임스 화잇이 크리스천 커넥션 교인이었다. 조슈아 V. 하임즈도 크리스천 커넥션 교회의 목사였다. 죠셉 베이츠는 재림하기 전에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강력히 주장해고, 베이츠와 화잇은 반삼위일체 신앙사상을 재림교회 신앙에 유입시켰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삼위일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삼위일체 교리를 중세 시대의 교회가 성경에 대한 ”대 배도“의 산물로 채택한 교리의 하나로 간주하게 되었다. (상게서, 41)
3) 감리교회: 감리교회 신학이 강조하는 자유의지의 교리는 청교도 신앙전통이 강조하는 예정의 교리를 반대하는 신앙사상으로서 특히 미국의 개척정신과 많이 상통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의지를 가지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구원의 은혜를 선도하는 이른바 선행은총을 통하여 각 사람을 감동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에 의해 믿음으로 응답함으로써 구원을 받고 배교함으로써 은혜로부터 떨어질 수 있다.
웨슬리에게 성화가 그리스도인의 평생의 사업이라면 칭의는 순간의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동료인간에 대하여 완전한 사랑의 상태로 성장해 가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역동적 완전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 신앙에 웨슬리의 성화 개념과 완전 개념을 가져왔다. (상게서, 43)
4) 이신론: 그 궁극적인 권위를 성경에 부여하는 대신에 인간 이성에 부여하였다. 그런데 이 이신론이 재림교회 신학전통에 연결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러 운동의 창시자인 윌리엄 밀러가 이신론자였기 때문이다. 밀러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종교를 포함한 일체에 대해서 합리적 접근을 크게 평가하던 세계에서 논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신론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온 후에 성경을 연구하는 자신의 경험을 “이성의 잔치”라고 말할수 있었다(A&D 12). 그의 성경연구 방식뿐만 아니라 그의 전도 방식조차도 청중의 마음이나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두뇌를 겨냥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와 같이 종교에 대한 지성적 접근방식은 안식일준수 재림집단이나 그 후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들의 신앙사상에 핵심적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재림교도가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면 그 말은 그 사람이 교리들을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지 성경에서 “알다”란 단어의 개념이 뜻하는 경험적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볼 때 재림교회의 교리를 시간을 들여 연구한 사람들이 결론적으로 “재림교도들은 매우 논리적이다.”라고 평가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상게서, 44)
5) 청교도 신앙: 청교도들은 성경의 권위와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안식일의 엄격한 준수를 강조하였다(여기서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 또는 청교도들이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는 날이다. 그런데 당시 청교도들은 이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르면서 또 성경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으로 일요일을 지켰다.) 미국의 청교도 신앙에 있어서는 안식일이 단순한 예배일로 끝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은 물론 생활방식의 전반에서 언약의 정신을 나타내어야 하는 날이었다. 언약 사상이라는 것은 어떤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께 충성스러우면 하나님도 그 신앙 공동체를 축복하실 것이며 만약 그 신앙 단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하나님도 축복을 거두어들이신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윈톤 솔버그가 말했듯이 청교도들에게는 안식일준수가 그들의 신앙적 신실성을 “시험하는 표징”이었다(Redeem the Time, 37, 282-297). 이러한 사고방식은 기독교 단체의 역할은 사회를 변혁하며 구속하는 것이라는 신앙사상과 짝을 이루어 청교도 사회에 기독교 윤리를 입법화하려는 꾸준한 운동을 유도하였다. 영국의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하여 북아메리카 청교도들에게 계승된 일요일 입법운동도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상게서, 45)
2. 천년주의적 비전들: 위에서 논의한 지적 경향들은 어네스트 샌딘이 “천년주의에 취해있는 상태”라고 표현한 미국의 상황에서 존재했다. 리스본의 대지진 같은 “시대의 징조들”과 프랑스 혁명의 지나친 행위들은 모두 성경학도들에게 천년기의 시작 같은 마지막 시대의 사건들에 대하여 전에 없던 큰 관심을 나타내도록 자극하였다.
침례교회 평신도 윌리엄 밀러가 1830년대에 전도설교를 시작했을 때 미국 사회는 위와 같은 기대감으로 충만해져 있었다. 그러나 밀러는 천년기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이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기가 시작 될 때 재림하실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윌리엄 밀러는 후천년주의자가 아니라 전천년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밀러는 예수님이 몇 년 안에 재림한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특별히 긴박한 기별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게 되었다. (상게서, 47)
♦적용하기
나는 재림교회의 신앙의 신념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나는 기독교 내에 타 교단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자세로 대하였습니까?
우리의 복음을 전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 혹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겸손한 자세로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언급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마음이 열릴 때 우리의 기별을 전하는 것은 선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기도시간
1.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을 확실하게 깨닫도록
2.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3. 오늘 깨달은 내용과 함께 개인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