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허파 '한밭수목원'에 가보세요
기억과 추억 사이/발길 닿는 데로 여행
2006-06-24 14:13:54
▲ 야생화원를 가로지르는 산책로가 확 트여 시원스럽다
ⓒ 유진택
주말마다 줄기차게 타는 대전의 변두리 산행을 접어두고 이번 주말엔 좀 더 색다른 장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점점 숨통을 막는 무더위에 무작정 산을 탄다는 것도 지치고 힘들어 한 번쯤은 산책로를 걸으며 명상에 잠겨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서였다.
마침 대전에도 그런 적합한 장소가 한 군데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한밭 수목원이다. 한밭 수목원은 면적이 6만8천 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 국내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며칠 전에 그 수목원에 대해 침을 튀기며 자랑을 늘어놓던 직장 동료의 말이 떠올라 아예 그 곳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유형, 꽃 좋아하니께 꽃 이름 알고 싶으면 한밭 수목원으로 가봐. 거긴 야생화가 말도 못하게 많아. 꽃마다 이름표를 다 붙여나 무슨 꽃인지 환히 다 알 수 있어”
수목원이라고 하면 으레 나무만 울창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직장동료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졌다.
그 동안 야생화 이름을 몰라 답답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한밭수목원에 가면 그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야생화 이름을 속 시원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10일(토) 한밭수목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밭 수목원은 집이 있는 산성동에서 버스로 3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만년동에 위치해 있어 교통편이 참 편리했다. 만년동에서 내려 대전 KBS 옆 도로를 따라 몇 발짝 걸어갔더니 전면을 울타리로 빙 둘러싼 한 쪽에 작은 쪽문하나가 환하게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수목원답게 입구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울창한 수목 속에서 싱그러운 들꽃 향기가 훅 풍기는가 싶더니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야생화 접사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서 난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 용머리
ⓒ 유진택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둘러보니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특색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소나무숲, 굴참나무숲, 버드나무숲, 습지원, 명상의 숲, 생태숲, 무궁화원, 야생화원 등 테마별로 이름을 붙여 그 이름에 걸맞게 꾸며진 공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여러 공간 중에서도 '감각정원'과 '명상의 숲'을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습지원'과 '야생화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가로운 토요일답게 마침 햇살도 신나게 쏟아져 내렸다. 집에서 깜박 잊고 챙모자를 챙겨오지 않는 바람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고스란히 맞아야했다. 청침 같은 햇살이 사정없이 찔러대는 이마는 살이 벗겨질듯 따가웠고 등짝은 무더운 기운으로 땀이 솟아올랐다. 그렇지만 산책로를 따라 술렁이는 야생화 향기에 기분은 날아갈 듯 했다.
그런 와중에 도착한 감각정원은 더욱 더 오감을 자극해 주었다. 후각을 간지럽게 하는 허브향,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벽오동꽃, 달콤한 미각을 적시는 갖가지 열매들, 촉각을 느끼게 하는 자갈밭, 청각을 때리는 분수 등 오감을 위한 감각정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잠시 명상의 숲에 앉아 명상을 즐기는 것도 한껏 폼이 났다. 대나무, 회화나무, 불두화 등 시원한 수종을 석재와 함께 심어놓은 숲을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명상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외형적 안목을 중시하게 되면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적 가치를
소홀히 하게된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결함도
내면적 안목에 의존해서 바라보면
아름답게 해석될 수 있는 법이다.
(이외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야생화원엔 수많은 꽃들이 요상한 모양으로 꽃잎을 펼쳐 맘껏 제 세상을 뽐내고 있었다. 또한 그 주변을 꽉 채우는 꽃향기 때문에 잠시라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전국의 산천에 흩어져 있는 모든 야생화들이 이 수목원으로 자리를 옮겨 진한 향기를 뿌리며 살아가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 연잎이 덮힌 연못에 놓여있는 징검다리
ⓒ 유진택
야생화가 물결을 이룬 곳에는 으레 나비와 벌들이 제 철을 만난 듯 날개를 팔랑거렸다. 그 놈들이 가장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 아마 야생화원이 아닐까 싶었다. 명주 같은 날개를 팔랑거리며 보내주는 꽃향기를 맡으며 산책을 하는 길, 콧노래를 흥얼거렸더니 어느새 습지원에 닿았다.
습지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예상했던 대로 인기였다. 생태체험을 하려는 학생들과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연꽃에 피사체를 맞추는 사람들, 또 습지원에 들어가 생태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교사의 인솔하에 온 학생들이 연못 속에서 건진 우렁이가 신기한 지 연신 제 친구들을 불러대며 고함을 질렀다.
“야. 우렁각시 좀 봐”
“어디”
“선생님 우렁각시가 이상하게 생겼어요”
연못을 파랗게 뒤덮은 타원형의 연잎과 연잎 위에 활짝 꽃잎을 펼친 그윽한 연꽃을 보는 순간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차 올랐다. 웬일인지 연꽃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오랫동안 땅위에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야생화에 눈길을 빼앗긴 나로서는 처음 보는 연꽃의 농염한 빛깔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 혼탁한 세상에 연꽃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는 나의 염원 때문인지도 몰랐다.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눈이 부실정도로 순결한 꽃을 피워 올리는 연꽃의 매력에 쏙 빠진 탓이기도 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하루빨리 연꽃처럼 밝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연못가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행동에 눈길이 쏠렸다.
▲ 습지원에서 생태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
ⓒ 유진택
연꽃에 피사체를 맞추며 접사촬영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와 그 옆에서 노트를 끼고 서성이는 사내, 나는 연못 반대편에 활짝 꽃을 피워 문 분홍 연꽃에 반해 그 쪽으로 걸어갔더니 노트를 끼고 있는 사내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았다.
“선생님, 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빨리 나가세요.”
“당신들도 들어왔길래 한번 들어왔는데요.”
“저희는 생태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빨리나가세요.”
“미안합니다. 연꽃 사진 좀 찍고 나갈게요.”
억지로 떠미는 그 사내의 손길을 뿌리치고 멀리서 연꽃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가까이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지 못했으면 어떠랴.
카메라 속에 연꽃이 활짝 피어 있고 은은한 향기가 가득 들어있으니 심심하면 연꽃을 꺼내 보면 그만이었다. 사시사철, 아니 몇 백년동안이라도 연꽃은 늘 그 모습으로 활짝 피어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어디 있으랴. 더구나 한밭수목원 주변엔 엑스포과학공원, 문화예술의 전당, 시립미술관, 청소년수련원 등 문화시설들이 흩어져 문화도시 속에 살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도심 속 허파 같은 한밭수목원에서 주말을 즐기는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전에 유일하게 한밭수목원이 있다는 것만 해도 자랑스럽다. 멀리 떠나기 싫어하는 지역 사람들에겐 잠시 시간을 내어 명상이나 산책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연인과 데이트 혹은 가족 나들이를 즐기려면 다른 장소보다 울창한 수목과 야생화 향기에 젖은 이 한밭수목원이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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