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위인으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은 인물을 뽑자면 세종과 이순신이다. 아무리 정치적 갈등이 심한 한반도(남vs북, 좌vs우)에서도 이견이 없다.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존경받는 인물이 이순신이다.
장군이 남긴 유품중에 '난중일기'(국보 제76호)와 '이순신 장검'(국보)이 가장 유명하다. 국보로 지정된 것은 2023년 8월 24일 아주 최근이다. 그 동안은 '이순신 장도'(보물 326-1호 1963년)로 지정되어 있었다.
장검의 국보지정이 이렇게 늦었던 이유가 한국의 정서상 무(武)를 경시하는 풍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검으로 알려진 도검은 쌍룡검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길이가 거의 2m에 달하며 칼집과 함께 쌍검으로 칼집을 갖추고 있다. 각각 196.8cm, 197.2cm로 손잡이만 60cm/직경 5cm 이며 칼날 길이는 137.5cm 에 달한다.
이런 장검을 휘두르려면 키가 얼마나 커야 했을까? 당시 조선남성 평균 신장이 161.1cm 였으니까 최소 180cm는 넘지 않았을까? 장군의 키가 6척이었다는데 1척 31.1cm으로 해도 187cm 는 된다.
무인들은 일반인들 보다는 컷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키가 컷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이 장검을 하사받은 것이 아니라 장군이 직접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검은 실제 전투에서 적군을 벨 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허리에 착용하는 '패용'이다.
등록일 2023.08.24 (사진 문화재청) 소 재 지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길 126 (염치읍)
장검이 일본 도검 양식인 이유? 이 장검을 제작한 사람은 태구련(太九連 태귀련)과 공태원(孔太元 공대원)이라는 도장(칼 만드는 장인)이다. 공태원은 일본에 포로로 붙잡혔다가 1590년 조선으로 송환되었다. 그래서인지 일본 도검양식을 따른다. 당시 일본도검은 동아시아 최고의 검으로 알려져 있었다. 중국의 사극에서도 일본도검의 우수성이 등장하곤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장검의 상징적 가치에 있다. 칼에는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붉은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2015년에 제거하였다고 한다. 일제때 이광수가 이 장검을 목격한 기록에는 안료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아마도 1963년 보물로 지정되기 전 사이에 안료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