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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신(李濟臣)' '김행(金行)' '김덕연(金徳淵)'은 어려서 부터 서로 친하게 지냈다.
책상을 같이 하면서 별시에 응시할 공부를 했는데,
세 사람이 지은 책문이 한 권의 책을 이루어 분주탑시책(焚舟榻試策)'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유행하였다.
김행과 김덕연은 자라탕을 즐겨 먹었는데,
이제신은 침을 뱉으며 말하였다.
저와 같이 흉하고 추한 물건을 어찌 선비가 입에 가까이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족(士族)으로 자라를 먹는 사람은 그 사람됨됨이가 물어 볼 것도 없이 필시 오랑캐의 무리일 것이네.
이 말을 듣고 김행과 김덕연은 눈을 서로 깜박이며 말했다.
반드시 골탕을 먹이세!
김덕연은 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산의 호숫가에 있었다.
약속하기를 아무 날에 성산(城山)에서 고기를 낚고 연꽃을 감상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기일에 맞추어 즉시 이르렀고,
다른 손님들도 매우 많았다.
김덕연이 손님을 위해 점심을 마련하여 푹 삶은 닭죽을 내왔다.
생강과 산초를 넣어 큰 주발에 가득한데 좋은 향기가 코를 찔렀다.
세 사람이 먹고는 그릇을 다 비웠다.
김덕연이 이제신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집이 가난하여 다른 반찬은 없으나 암탉이 기장을 쪼아 먹어 살이 쪘다네.
두 손님이 맛이 없다고 하지 않고 감사해 하는데,
이제신이 말했다.
내 평생 닭죽을 먹었지만 이처럼 맛있는 것은 없었네.
김덕연이 말하길 그럼 한 그릇 더 드시지?
하니,
이제신이 한 그릇 더 주게나.
라고 했다.
다시 한 사발을 내오게 하자,
이제신은 좋다!라고 감탄하며 단번에 그릇을 싹 비웠다.
김행과 김덕연이 말했다.
이 맛이 왕팔탕王八湯(자라탕)과 견주어 어떠한가?
이제신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맛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나서 어찌하여 추악한 얘길 하시오?
김덕연이 능글맞게 말했다.
자네가 먹은 두 그릇이 왕팔탕이었다네!
자리에 있던 모든이들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이제신은 크게 놀라 거짓으로 땅에다 대고 왝왝거렸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물론이고 이제신도 가장 즐기는 음식이 자라탕이 되었 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