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에게 인간을 속여 자신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긴 뒤
인간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
신뢰할 수 없고 , 변덕스러운 엘리멘탈에 대해 따져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큰 숨을 들이마신 뒤 ,
이렇게 말했다.
" 우리 때문에 당신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 나는 독자들이 우리의 입장 역시 수긍할 거라 믿소.
우리는 함께 진화하는 아주 중대한 시기를 겪고 있소. "
그는 능글 맞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 인간과 엘리멘탈은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과도 같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인 거지.
따라서 자신의 좋은 의도를 서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서로의 환심을 사야 하오. "
" 당신이 내 삶의 일부가 된 기간이 이미 어지간한 결혼 생활 보다 더 긴 것 같은데요. "
나는 약간 누그러져 말했다.
" 책을 그만 쓰라는 요청을 내가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 "
내가 도전장을 던졌다.
"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좋을 거요. "
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위협적인 기색이 느껴졌다.
" 이번 여름 , 우리 말을 따르지 않았을 때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억하시오. "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
레프리콘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는 책을 쓰는 동안 책의 어떤 부분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오두막에서 혼자 수련을 하며
낮에는 컴퓨터로 글을 썼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는 다른 친구가 나를 찾아와 음식을 가져다 주고 ,
고립감을 덜어주었다.
호기심 많은 이 친구는 내 원고를 읽어보고 싶다고 했고 ,
당시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줄 원고를 출력하기 위해
프린터의 전원을 켰다.
하지만 프린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프린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었고 ,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였다.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흘 동안 그 섬에 사는 사람 중 기계를 고쳐 줄 만한 사람이 없는지 찾아갔다.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밴쿠버로 돌아오자
기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작동했다.
2 주 뒤 , 나는 프린터를 싣고 세 척의 여객선을 갈아탔다.
다른 오두막에서 은둔하며 , 책을 계속 써 나가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그 집을 빌려준 사람들에게는 열 두 살 짜리 조카가 있었다.
어느 날 , 그 아이가 오두막을 찾아왔고 ,
나는 그 아이에게 레프리콘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을 했다.
당연히 그 아이는 원고를 읽고 싶다고 했고 ,
지난 첫 번째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나는 또 다시 알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원고의 세 번째 페이지가 막 출력되고 있을 떄 ,
프린터의 토너가 다 떨어졌다.
그 섬에서는 토너를 구입할 수 없었고 ,
나는 작동하지도 않는 프린터와 함께 2 주동안 섬에서 지내야 했다.
그리고 세 번째 ,
내가 마지막으로 레프리콘의 지시를 어겼을 떄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엘리멘탈이 허락한 부분까지만 원고를 썼고 ,
집필이 모두 끝났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달에 관한 이야기도 쓰기로 혼자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또 한 번 수련을 하기 위해 세 번째 오두막을 찾아갔는데 ,
이번 집은 앞선 두 집보다 훨씬 더 외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내가 엘리멘탈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며
세 번째 장소에는 프린터기를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전체 원고를 미리 출력해 놓고 컴퓨터만 가져갔다.
오두막에 도착한 다음 , 코드를 꽂고 컴퓨터의 전원을 켜자 보이는 것은 캄캄한 화면 뿐
망했다.
그 주 내내 ,
나는 매일 컴퓨터의 전원을 켜보며 혹시라도 엘리멘탈이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을까 확인해 보았다.
엘리멘탈들이 컴퓨터를 먹통으로 만든 게 분명했다.
장소를 옮겨가며 전원 코드를 꽂아봐도 컴퓨터는 절대 작동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전원을 연결하자 컴퓨터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레프리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사건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 그는 이 사건들을 다시금 내게 상기시키면서
만약 내가 그와 다른 엘리멘탈의 허락 없이 책을 쓴다면
그가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세 번이나 쓴 맛을 봤기 때문에 그 해 여름에는 절대 또 다른 교훈을 얻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