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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함백산 정암사
2026년 02월 01일(일요일)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末寺)입니다.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율사가 636년(선덕여왕 5년)에 당(唐)나라에 들어가 산시성 운제사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석가모니의 신령스런 보물인 진신사리, 가사, 염주 등을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나누어 모셨다고 하는데, 그중에 정암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창건설화 외에는 정암사에 대해 전해지는 자료는 딱히 없습니다. 정암사의 상징인 국보 수마노탑이 고려시대의 모전석탑이므로 늦어도 신라 후기~고려시대에는 완전히 사찰의 원형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정암사는 일반적인 산사와는 달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예부터 전하는 곳이니만큼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약간 다릅니다. 대웅전이 중심이 되는 다른 절과는 달리 적멸보궁이 중심입니다.
하지만 적멸보궁이 정암사의 정중앙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주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면 관음전, 육화정사, 요사채, 범종루, 삼성각, 자장각 등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이를 지나 작은 개울 하나를 건넌 곳에 푸른 기와 지붕을 올린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적멸보궁 뒷편의 작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중턱에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된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있는데, 평지가 아니라 산비탈 절벽 위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있습니다.
경내의 중요 문화재로는 국보 수마노탑 외에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제32호로 지정된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또한 절 옆의 작은 개울은 열목어의 서식지인데, 여기는 한반도 내에서 열목어가 자연 서식하는 남한지(남방한계지역) 중 한 곳으로서 천연기념물 정선 정암사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되었습니다.
함백산
함백산 주목
중함백
정암사 갈림길
정암사 갈림길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데크길
수마노탑이 보입니다.
정암사 수마노탑(淨巖寺 水瑪瑙塔) (국보 제332호)
전체 높이가 9m에 이르는 수마노탑은 국보 제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등 신라 시대 이래 모전석탑에서 시작된 조형적인 안정감과 입체감, 균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어 늦어도 고려 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1972년 수마노탑 해체 당시에 함께 나온 탑지석(탑의 건립 이유,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로 탑 안에 넣어 둠)은 탑의 조성 역사, 조탑 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국보 제21호)·다보탑(국보 제20호)을 포함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희소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수마노탑
정암사 수마노탑은 '정암사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승려인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던 길에 서해 용왕으로부터 마노석을 받아 탑을 세우 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며, '수마노(水瑪瑙)'란 이름은 물에서 건져 올린 푸른 마노석을 뜻합니다.
탑을 구성하는 암석은 실제로는 마노가 아닌 돌로마이트(칼슘과 마그네슘 탄산염 광물)이며, 전승 과정에서 푸른 돌이 상징적으로 마노로 인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역사적 실재와 신화적 상상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유산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 7층으로 높이 9m 넓이 3.04m에 이르는 이 모전석탑은 상륜부와 풍경 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어 매우 희귀하며, 예술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됩니다. 모전석탑은 석탑에 비해 견고성이 떨어져 이로 인해 수차 례의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수마노탑은 고려 시대에 다시 축조된 것입니다.
1972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 장업 구와 고문서가 발견되어 이와 같은 역사적,종교의 중요성이 재조명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예술적, 신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국보로 승격되었으며, 오늘날 수마노탑은 한국불교문화의 정수를 담은 민족의 자긍심이 깃든 성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수마노탑 감실
수마노탑의 남쪽 면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틀을 짠 감실 모양의 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짝은 1장의 넓적한 돌로 만들었는데, 가운데에 세로 줄을 돋을새김하여 2짝의 문 모양을 나타냈으며, 문의 중심부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끼워 넣었습니다.
수미노탑 상륜부
수마노탑에서 바라본 정암사
삼소정(三笑亭)
사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2022년 신축한 사각 정자 형태의 건물입니다.
삼소정(三笑亭) 편액
자장각(慈藏閣)
자장각은 사방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자장율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신라의 수도는 경주였고 5군데의 적멸보궁을 경주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방어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설악과 오대산은 수직으로
사자산과 함백산(태백산)은 수평으로 경주를 방어
양산 통도사는 경주 남쪽 아래에 위치
경주 북쪽에 있는 4곳의 적멸보궁은 고구려의 침입으로부터
남쪽에 있는 통도사는 왜구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을 빌려 차단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장각(慈藏閣) 편액 글씨는 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의 친필입니다
자장율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1978년 금어 일섭스님의 마지막 제자인 조성우씨가 그린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율사 진영은 통도사에 전해지던 스님의 진영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눈이 컸다는 구전에 따라 눈을 약간 크게 그렸다고 합니다.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1978년에 절을 중창했을 때 계곡에 돌다리(극락교)를 닦으면서 그곳에 있던 나무 다리를 해체했는데, 그 다리에서 가져온 박달나무 목재로 지었습니다.
건물 내에는 칠성탱, 산신탱과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들은 1964년 석정, 수안이 그렸습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 글씨는 탄허(呑虛 1913~1983)의 친필입니다.
칠성탱, 산신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칠성탱
독성탱
다른 절의 독성탱은 토실토실 살이 오른 독성(나반존자)이 그려져 있는데 반해 이곳은 뼈만 앙상한 독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산신탱
관음전(觀音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으로 화려한 꽃창살과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전각입니다.
관음전(觀音殿) 편액 글씨는 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의 친필입니다.
관음전 꽃살창호
관음전 꽃살창호(촤측)
관음전 꽃살창호
관음전의 꽃살창호는 가운데 4짝은 빗꽃살, 양쪽 3짝은 통판 투조 꽃살무늬 입니다.
빛꽃살 창호는 두 살이 교차하는 지점에 꽃문양을 배치하고, 그 외의 사선 부분은 꽃의 잎이나 줄기를 형상화하여 창살을 대신하는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통판 투조 꽃살 창호
통판 투조 방식은 널판에 꽃나무나 자연의 형상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문틀에 끼우는 기법입니다.사찰의 꽃살문에 주로 쓰이는 꽃의 종류로는 연꽃, 국화, 모란, 매화, 살구꽃, 해바라기 등이 있으며, 이외에 물고기, 대나무, 새, 꽃병 등도 있습니다.사찰의 꽃살문은 다른 전통 문양에 비해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소박한 기하학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이 문양은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꽃살문은 한국전통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잘고 있습니다.
관음전에 봉안된 관음보살상입니다. 양 옆에 있는 동자승의 상이 미소를 자아내는 듯합니다.
관세음보살
육화정사(선불도량)
육화정사는 종무소겸 요사채로 팔각지붕에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직지붕의 건물로 2017년 배부 보수공사 진행 후 참배객을 위한 숙소로 활용 중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석축위로 들어 서 있는 선불도량이란 편액이 보이나
조금 올라와 편액을 보면 육화정사로 한 건물에 두가지 편액이 씌여있습니다.
육화정사(六和精舍) 편액글씨는 탄허(呑虛 1913~1983)의 친필입니다.
육화정사 뒤편 모습
유홍중의 나의 문화답사기 2권에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 절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왼편으로 육중한 축대 위에 길게 뻗은 선불도량와 평행선을 긋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사찰 건물입니다.
선불도량(選佛道場) 편액은 무오중추 탄허(戊午仲秋 呑虛) 1978년 가을에 쓴 탄허(呑虛 1913~1983)의 친필입니다.
문수전(文殊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문수보살의 공간입니다.
대승불교의 최고 지혜를 지닌 문수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2016년에 지었으며 정암사의 전각 중에 제일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문수전(文殊殿) 편액
문수보살
문수보살
닫집
자장율사 진영
자장각이 있음에도 이곳에 있는 것은 정암사의 사적기에서와 같이 문수보살을 친견하기를 바랐던 자장율사께서 끝내 친견을 하지 못하고 입적하신 것을 비로소 만날 수 있도록 문수전의 건립과 함께 자장율사의 진영을 한자리에 모신게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함백당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문수전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요사와 선방의 역할을 하는 건물로 예전에는 'ㄱ'구조의 요사채가 있었습니다.
함백당(咸白堂) 편액
문수전, 함백당
수마노탑 중수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2호) 서측
비석에 대한 안내문도 없고, 그냥 세워져 있는 바위 같아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수마노탑 중수비로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된 문화재입니다.
정암사 수마노탑 중수비는 1770년~1771년 중수 과정에서의 연화질, 불량답, 시주질, 시주 시기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1777년에 세워졌습니다. 정암사 적멸보궁 마당에 있으며 동측에 보탑중수질, 서측에 불량원이라 새겨져 있어 '보탑중수비' 또는 '불량원비'로도 불립니다.
수마노탑 중수비 동측
보탑중수질(寶塔重修秩) 천의산정암사비명(天倚山淨岩寺碑名)
수마노탑을 중수하고 정암사 적멸궁 마당에 세워진 높이 114cm, 폭 67cm의 크기의 '보탑중수비'에 는 중수 시기와 중수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양면에 기록하였습니다.
이 비석의 '보탑중수질(寶塔重修秩)'이 새겨 진 면에는 1771(1770의 오기인 듯)년인 건륭36년, 간지로 경인년에 시작하여 1771년인 신묘년에 마쳤다고 합니다. 시작한 해로 기록한 간지는 경인년으로 이때는 1770년입니다.
'불양원(佛糧願)'이 새겨진 면에 는 1777년인 건륭 42년에 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보탑의 중수는 1770년에 시작 하여 1771년에 탑의 수리가 종료되었고 수마노탑을 중수하는 데 드는 재물을 모은 명단은 1777년에 새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적멸궁 옆면
적멸보궁(寂滅寶宮)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2호)
'정암사사적'에 따르면 1771년(영조 47)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겹처마를 드리우고 옆면에도 지붕이 뻗어 있는 팔작지붕입니다. 안쪽에는 불상이 없고 신중탱화와 동종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도 1858년(철종 9)과 1919년에 각각 중수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수마노탑을 등지고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적멸궁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사찰의 다른 건물들과 떨어져 있습니다. 여느 적멸보궁과는 다르게 편액에 '보'자를 빼고 '적멸궁'으로만 적혀 있습니다.
'적멸"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열반'을 뜻하는 말로 적멸보궁은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계시며 열반으 즐거움을 누리는 성스러운 공간으로써 진신사리를 갈무리하고 모든 불교도들에게 신앙의 중심이자 귀의처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나라의 적멸보궁은 5대적멸보궁이 있으며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가 이에 해당됩니다.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지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수마노탑 안에 봉안하고 이를 참배하기 위해 건립한 법당입니다.
적멸궁(寂滅宮) 편액
탄허(呑虛 1913~1983)스님이 쓰신 '적멸궁'이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습니다.
이는 '번뇌가 사라져 깨달음에 이른 경계의 보배로운 궁전'을 뜻합니다.
적멸궁 내부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불상은 없습니다.
부처님 대신 황금색 연좌만 있습니다.
보통 적멸보궁에는 불상 대신 유리창 너머로 사리탑이 보이는 형태이나 이곳은 사리탑이 있는 곳과 거리가 먼 관계로 황금색 불단에 불상 대신 불탑의 형태만 갖추었고 천정에는 여의주를 문 용 두마리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적멸궁 천장
신중탱
동종
자장율사 주장자(慈藏律師 拄杖子)
이 주목은 약 1300년 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시고 평소 사용하시던 주장자(육환장)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기묘하게도 나무로 자랐다고 하며, 그 나무가 바로 이것이라고 합니다.
오랜시간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 성장되고 있어 자장율사의 옛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으며,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년 동안 자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습니다,
범종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범봉(1977년에 제작됨)의 공간입니다.
범종각(梵鐘閣) 편액 글씨는 탄허 택성(呑虛 1913~1983)의 친필입니다.
범종
적묵당(寂黙堂)
종무소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적묵당(寂黙堂) 편액
뒤돌아본 정암사
당겨본 수마노탑
일주문 뒤편
정암사 일주문
일주문은 1977년 중창하였습니다.
태백산정암사( 太白山淨岩寺) 편액 글씨는 탄허(呑虛 1913~1983)의 친필이고, 고한 읍내에서 도장포를 열고있던 서상수씨가 글씨를 새겼으면, 재질은 느릅나무입니다.
태백산정암사 편액은 변죽을 따로 붙이지 않은 통판에 음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것으로, 액판 좌측에 두줄로 ‘무오중추 탄허(戊午仲秋 呑虛)’라는 관지가 있습니다. 이 편액은 1978년 가을에 일주문을 신축하면서 당시 월정사에 머물던 탄허의 글씨를 받아 건 것입니다. 편액의 글씨는 탄허 특유의 호방한 선필이지만, 글씨의 아래 위 액판의 여백이 충분치 않아 편액의 모양이 다소 옹색한 느낌을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