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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선생 탄생100주년 기념문집 원고
제목:다함께 잘 사는 공생경제 구현
성범모(공생경제연구소장, 문경대학교 겸임교수)
2020.9.30
21세기에는 교통과 정보통신(IT)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지구가 한 마을처럼 생활환경이 가까워져서, 현재 약 74억 인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 경제’라고도 부른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상품, 사람, 자본의 자유스런 이동을 가로 막아 왔던 이념장벽과 무역장벽이 무너졌으며 교통, 통신, 정보기술의 획기적인 발달로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전세계는 하나의 지구촌, 단일 경제권화가 되어 왔다.
지구촌 경제의 특징은 국가간 지역간 경제의 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경제가 무역·투자·금융 부문에서 급속도로 빠른 통합을 이루고 있고, 각국 정부의 통화정책도 일제히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 역시 동조화 현상(coupling)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세계경제는 국가간 지역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적자생존의 각축장 같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들고 나오는 미국 때문에 여타 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99%는 트럼프에 달려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서 세계경제는 케인즈 이론과 신자유주의 이론이 교대로 지배해 왔다. 그러나 많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제현상은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를 겪은 후 세계경제는 다시금 케인즈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세계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맡고 있는 미국은 이제 자국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과 같이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번영의 길로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라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선상에서 바로서지 않으면 언제 까지나 강흥(强興)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인 미국도 범미주(汎美州)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는 정치, 군사, 경제면에서 우월한 힘을 가진 나라들이 지배해 왔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울 때에는 세계를 지도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최강 미국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힘으로 세계 각국을 밀어붙이는 강공전략이 먹혀 들고 있다. 미.중무역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데 이어,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운 트럼프의 강펀치로 슈퍼파워 아메리카로서의 독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독보적 막강 힘을 가진 미국이 자국만의 이익에 집착한다면 약소국들은 물론 전 세계의 정치, 경제가 불안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말 한마디가 다른 나라들에게는 엄청난 위기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자국보호 중심의 이기적인 행동들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흔들리면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릴 정도다. 그런만큼 자국 중심적인 이기심은 버리고 세계 평화와 화합을 우선시하는 정치 철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일개국주의 시대는 지나갔다.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 연합민족, 종합민족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세계는 점점 교류하게 된다. 그것은 국경없이 왕래하는 것이다.” 현대는 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계경제 위기는 단순히 경제학의 위기가 아니라 도덕의 위기, 국가의 위기, 가정의 위기 등을 포함하는 총체적 위기라는 사실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 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 즉 자본수익률(r)이 언제나 성장률(g) 보다 높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소수 부유계층에 자본이 집중돼 분배구조의 불평등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은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다.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는 인류가 바라 왔던 이상천국의 세계다. 그 세계는 절대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정문화 속에서 공생 공영 공의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상세계는 경제적으로는 공생주의 사회이다.”
공생(symbiose)이란 서로 다른 생명체와의 공동생활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로 볼 때 공생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쌍방에 이익을 주는 서로 다른 유기체의 공동생활’을 말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이 공동생활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인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사회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불협화음, 갈등, 단절이 일어나지 않는가. 공생은 모든 참여자에게 이점을 주는 관계여야 한다. 그러면 자연에서는 공생이 더 잘 지속되는가? 갈등이 없는 공동생활은 드물다.
공생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삶을 규정하는 이상적인 경제체제의 기본개념이라 할진대,‘공생경제’는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천국의 평화세계 구현에 경제학 이론을 적용하여 삶의 질을 높여주고 행복을 추구해 나가는 경제행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세계경제의 경제체제(경제협력기구)를 거시경제 차원에서 모든 인류가 모두 잘 살 수 있는 경제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편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 윤리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바람직한 세계관을 소유할 때 경제영역에서의 옳바른 경제윤리가 확립되는 것이다. 개인윤리에서 사회윤리, 사회윤리에서 국가윤리, 국가윤리에서 세계윤리로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에 있어서 이른바, 세계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필요성이 논의 되고 있다. 이 세계화는 시장의 규모를 넓혀 누구나 어디에서나 경제활동을 할수 있게 함으로서 세계의 공동번영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이상천국 건설에 경제는 필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강조한다. 어차피 사람은 남과 어울려 살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과 함께 사는 삶이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남에 대한 배려 내지는 사랑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는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참된 행복은 신(神)이 선사하는 선물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가장 합당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결과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행복을 좇다 오히려 불행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행복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을 계량화 하기는 더욱 어렵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무엘슨은 ‘행복 = 소비/욕망 이라는 방정식으로 정의했다. 소득이 늘어 소비가 늘면 행복도가 올라가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비보다 욕망이 더 늘어나면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잘 설명한다.
“한국인 10명중 9명은 ‘소득은 행복과 관계있다.’고 한 여론조사도 있다. 직장인 90% "불황엔 가족이 힘" 경기불황 속 직장인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역시 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과 행복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우리는 더 많은 부(wealth)를 쌓은 만큼 삶에 대해 더 만족하게 될까? 물론 한 시점만 놓고 보면 일반적으로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여러 시점을 비교해 보면 더 부유해지는 만큼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소득과 행복은 상관관계가 매우 높지만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를 넘어선 나라들을 보면 그런 관계가 거의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더 부유해진 이들이 더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을 이스털린 역설(Easterline Paradox)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환경에 금세 적응(adaptation)하며 기대수준은 급속히 높아진다.
자본주의는 한 때 사치품이었던 것도 금세 필수품으로 만들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부는 바닷물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난 날보다 잘 살게 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보다 잘 살고 싶은 열망을 품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 문제는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경쟁은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이라는 점이다.
지위를 과시하는 재화(positional goods)는 다른 이들이 즐길 수 없어야 당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부의 피라미드에서 꼭대기에 오르는 이는 한 사람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경쟁자가 있다. 다른 나라에, 그리고 역사 속에 더 큰 부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 나가려는 경쟁의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사회다. 결국 '좋은 삶'(good life)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보고 케인즈는‘현명하고, 흡족하게, 잘사는(wisely and well) 것이 좋은 삶이라고 정의 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 이때의 경쟁은‘싸움(Fight)’이 아니라 역경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의‘분투(Struggle)’가 맞다. 그리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생명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개 분투보다는 적절한 협력관계나 협동이 도움이 될때가 많다.
공생은 바로 이런 협동을 말한다. 경제는 살이있는 생명체와도 같다. 경제행위란 각 경제주체가 주어진 경제수단으로 자기의 경제적 목적을 가장 합리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세심하게 고려한 계획적 행위를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모두 잘 살아야 한다. 옛말에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사람이 낸다”고 했다. 통일원리에서는 성과에 관계없는 맹목적 평등주의 사상이 아니다. 인간은 개성진리체이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자유는 모두를 번영하게 하지만 반드시 경제적 불평등을 수반한다.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불균형은 극심한 사회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경제적 평등을 원하면 자유도 번영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설파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는 최적 불평등을 거부하는 지나친 평등주의 때문이다. 빌게이츠도 “인생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 져라”고 했다.
사회내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은 것을 갖는 이유는 어쩌면 세계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더 능력있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비율로 보상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풍요롭게 사는 것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꿈이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일 수밖에 없다. 역사상 불평등은 항상 존재해 왔는데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은 오직 기회의 평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없는 사회는 경제적 하향평준화로 가는 사회일 뿐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면 세상에도 유익하다는 가정 하에 살아 왔지만 그것은 잘못된 가정이었다. 세상에 유익해야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반대의 가정하에 살수 있도록 삶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돈이 ‘내가 많이 가질수록 너는 적게 갖는다.’는 원칙을 구현하고 있다면 가진 사람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경제에서는 상대방의 이익이 곧 내 이익이 될 것이다.
아담스미스는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적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활동하지만, 시장에 존재하는‘보이지 않는 손’이 이들의 사적 이익 추구행위가 공동체 전체의 경제적 후생을 증진하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행복은 남을 위해 사는 삶에 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내 가정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내 나라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때때로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한 하나님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실현된 미래의 세계는 국경이 없는 통일세계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여러 지역적 불록경제가 유기적, 조화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게 되고 모든 인류가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이루게 된다.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적 형태가 갖추어졌다고 세계가 하나 되는 것이 아니요, 경제적 생활제도가 같다고 해서 세계가 하나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방향이 하나가 되어야만 세계는 하나가 된다. ~ 정책방향의 차이 때문에 세계는 갈라지기도 한다. ~ 절대적인 사상, 절대적인 정신과 인연된 하나의 정책방향, 하나의 사상체계를 통해서 인간의 양심과 몸을 통한 생활무대를 재현시키는 길을 발굴하지 않고는 ~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
부자도 죽을때 갖고가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을 더날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사람은 누구나 풍요하고 풍족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풍요롭기 보다는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가진자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99섬을 가진자가 1섬을 가진자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세태이다. 오늘날 다원화된 세계에서 경제문제는 더 이상 정치의 종속변수가 아니다. 경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도 같아서 경제가 잘돼야 인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류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물질적인 충족을 가질 수있는 방법을 가져왔지만 그 동안 절제없는 욕망충족으로만 치달렸기 때문에 오늘날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바꾸어 가야만 할 것이다.
현대 정치학과 경제학에서 호평을 받는 분석가인 ‘볼프강 슈트렉(독일 퀼린대)교수는 그의 저서‘조종이 울린다’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 속에서 한데 뭉친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들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경제는 개인단위의 경제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지구촌 경제공동체는 나만 잘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균형을 이루워 이웃(사회,국가)도 함께 잘사는 공생의 경제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발달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틀 안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공정하며 평등한 발전을 이루어 보자는 것이다.
이에 나눔의 경제 공동체적 성격인‘공생경제’를 ‘21세기 새로운 경제모델’로 제시하는 바이다.
*성범모(공생경제연구소장/ 경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