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딸 한혜진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이 내 안에 충만하셔요.
너무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혜진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구한말 최초의 서양 의원(醫院) 제중원(濟衆院)이 동명(同名)의 드라마로 되살아나 촬영되는 일산 SBS스튜디오 어느 구석에서도 한혜진은 당최 행방이 묘연해 애를 한참 태웠다. 조선 역관(譯官)의 고운 여식(女息) 유석란은 동백꽃보다 붉어 내 눈은 촛불처럼 흔들렸는데, 먼 겨울하늘빛 한복차림에 길고 가녀린 머리카락을 올올이 땋은 한혜진이 한혜진이 아닌 듯하여 생각은 갸우뚱했다. 물어보려 마련한 말과 생각이 도달할 자리는 저만치 아득해졌다.
그래도 눈망울은 초롱초롱, 말할 때는 샤론의 꽃향기 솔솔 뿜어 보는 이를 벙긋거리게 하는 이 여인이 누군가 싶어 다시 보려 했는데, 활활 타는 불이 홀연히 가로막아 시린 눈을 질끈 감았다.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는 불꽃이 모세의 신을 벗게 하였듯, 다가가려던 마음의 신마저 훌훌 벗어버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보았다. 한혜진이 살포시 앉은 자리에는 성령님뿐이셨다. 소멸하는 불이었다. 그녀는 그 불 속에서 감출 수 없는 세상의 빛(마 5:14)이었다. 한혜진은 그렇게 주(主) 안에 있어, 있어도 없는 듯 했던 것이다.
2년 연속 MBC 최우수 연기자상을 받은 <굳세어라 금순아>(2005)의 나금순이나 <주몽>(2006~2007)의 소서노가 한혜진이듯, 의료선교사를 통해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는 역할로 빛을 내는 <제중원>(2009~2010)에서도 역시 그녀를 만나리라 나는 설레고 기대했다. 인의(隣誼)를 베푸는 주인공 황정 역 박용우의 호연(好演)과 함께, 조선말 개화 여인의 한계를 극복해가는 여주인공 유석란 역이 돋보이는 SBS월화드라마 <제중원> 촬영 현장이었다. 의료선교사들의 역할이 주요 배경이 되는 드라마이기도 한지라 내심 응원을 마지않던 참이었는데, 하나님의 딸 한혜진이 주인공이라니 기도가 절로 나온다.
약속 장소인 스튜디오 휴게실 한 구석에서 김밥 한 줄 펴놓고 정말 한참동안 식사기도를 하던 이가 배우 박용우임을 깨달은 순간, 일출(日出)하듯 한혜진이 등장했다.
-드라마를 같이 하는 동료 가운데 믿음의 지체가 많아 보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래요. <주몽> 할 때도 많은 분들이 그랬지만 저기 용우 오빠는 얼마나 신실한지, 제중원 촬영 스태프와 배우들 가운데도 믿는 분들이 많은데, 감독님은 아니셔서 용우 오빠가 연기할 때처럼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전도하기도 해요. “감독님도 예수님 믿으셔야쥬~” 하는 식이죠. 석란의 유모인 막생 역의 서혜진 씨, 칠복이 역의 김규진 씨도 크리스천이시고요. 이 드라마가 앨런이라는 선교사가 오면서 시작되잖아요. 저는 연기하면서 ‘하나님이 참 축복하시고 도와주시는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혜진 씨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나봐요.
처음 교회 다닐 때가 다섯 살, 먼저 예수님 믿은 어머니 따라 갔는데, 그때는 그냥 교회가 너무 좋았어요. 찬양팀도 유년부 회장도 하고, 늘 교회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됐어요.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없지’ 하는 배신감 같은 거요. 건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몸이 아프게 된 가운데 부모님이 함바집(공사현장 임시식당의 속칭)을 하게 되니 가족이 떨어져 살게 되었고, 가족 모두 하나님에게서 자연스레 멀어졌고요.
-그리고 언제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2004년 경제적으로 개인적으로 한꺼번에 시련이 몰려와, 사람에게 말해도 풀리지 않고 시간이 해결해줄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이었어요. 어느 날 새벽에 깼는데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었어요.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요. 그때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는 말이 나오더군요. 바로 일어나서 새벽예배를 갔어요. 그 새벽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을 주시는데, 뜻도 다 모르면서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그 뒤로 마음이 상하고 아플 때마다 “하나님, 여기 좀 만져주세요. 저 너무 답답해요”라고 하면 신기하게도 가슴이 뚫리고 회복되는 걸 경험하고 있어요. 그때부터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고 나를 지키고 계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던 것 같습니다.
-한혜진 씨 하면 사극(史劇)이 참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사극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에게 사극은 너무 어려워요. 저 스스로는 부자연스럽고 어렵고 어색해서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고 생각해요. <주몽>을 하며 “소서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였는데, 괴로워 우울증에 빠진 적까지 있었습니다. 지난해 <제중원> 출연 제안을 받을 때도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날 읽은 큐티 본문이 룻기였어요. 룻이 이삭을 주우러 밭으로 나가지요. 하기 싫은 일이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 결국 큰 축복을 누리게 되잖아요. 하나님이 <제중원> 하지 말라고 하셨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네 눈에는 기뻐하지 않는 것이지만 룻이 이삭을 줍듯이 이 작품을 주우라”고 하셨어요. 그 날 만난 감독님이 “유석란은 딱 한혜진 씨입니다” 하시는데, 감사했어요.
-그래서 잘하고 계시잖아요, 제중원에서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
일단 하겠다고는 했지만 첫 촬영을 하는데 제가 너무 못하는 거예요. 토요일, 두 시간 동안인가, 문 잠그고 방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울면서. 숨을 못 쉴 정도로 울었던 것 같아요. 퉁퉁 눈이 부어 주먹만 해졌는데, “이거 왜 하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잖아요. 왜 나한테는 감당할 연기력을 주지 않으세요? 나 연기자 그만두고 싶어요!” 응답하지 않으시면 무릎을 풀지 않겠다고 떼쓰며 기도했어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나 봐요.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은혜롭게 찬양을 인도하시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꿈을 꿨어요. 그 분이 개척을 하셔서 그새 그렇게 부흥하셨나보다, 그렇게 받아들였죠. 참, 못 듣는 사람은 그렇게 보여줘도 못 듣는 거예요.
-하나님이 들려주시려는 음성이 무엇이었을까요?
일요일 촬영이 있어 마음은 너무 힘든데, 촬영 마치고 서울 다 오는 고속도로 옆의 어떤 건물에 《왕의 기도》(손기철) 책 글씨가 크게 있더군요. 어, 저거 우리 집에 있는 책 같은데 싶어 찾아봤더니 있더라고요. 책도 동영상도 보는데 마음에 평안이 들었습니다. 가보고 싶어졌어요. 월요일 저녁 7시 선한목자교회. 거기 가라는 말씀이었나봐요. 자리에 앉자마자 너무 서럽다는 생각에 눈물이 터져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런데 손기철 장로님이 제가 앉았던 자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셔요. “이틀 전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괴로워 죽고 싶다고 했던 자매가 있다”고요. 제가 정말 하나님께 죽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아주 많이.
“머리가 긴 그 자매님, 하나님이 만나주실 겁니다.”
제 머리카락이 어깨까지만 닿을 때라 ‘나인가, 아닌가’ 싶어 주저하는데 제 앞에 있던 자매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일어서는 거예요. 어쨌든 그날 말씀이 너무 달콤하고 처음으로 강한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어요. 전기가 오고 손이 뒤집히면서 숨을 못 쉬겠고, 무언가 허공에 계속 토해냈고요. 집회 끝날 때 옆에 있던 분이 “탤런트 맞지?” 하시는데…(웃음).
-<제중원> 촬영 시작할 무렵 월요말씀치유집회에 나오기 시작한 거군요.
그런 셈이죠. 그날 집에 돌아갔더니 엄마가 “너 어디 갔다 왔기에 얼굴이 이렇게 환하냐?” 하셔요. 그래서 어쨌다 말씀드리니 그 다음 주부터는 엄마도 같이 다니고, 제가 촬영이 많아져 연말부터는 못 가고 있는데 엄마는 “여기는 집회라면서 겨울방학은 왜 하냐? 개학이 언제래?” 하실 정도가 되셨어요.
그날 밤 세수를 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그게 너야!” 하시는데, 소름이 쫙 돋았어요. 제 머리 보이시죠? (몸을 돌려 허리 밑까지 자란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너무 유머감각이 있으시다는 걸 깨달았는데, 지금 제 머리카락 엄청 길잖아요!
-하나님을 체험하려는 열망이 크신 것 같습니다. ‘하늘의 언어’도 받으셨다고요.
제 언니가 교회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청년부 목사님이 너무 명확하게 “이 책 꼭 읽어봐” 하시며 《하늘의 언어》(김우현)를 권하시더래요. 언니가 보다 마는 것 같아 “이거 나 먼저 읽어도 돼?” 하고 보는데 너무 방언이 욕심이 났어요. 일주일을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기도로 동역하던 언니가 “성령님이 너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아” 하기에 교회에 갔어요. 어떤 권사님이 집회를 하는데 와보라는 거예요. 알고 보니 부부동반 모임이었는데, 어린아이들까지 있는 데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터져 나온 방언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어찌나 크게 했는지 아이들이 무섭다고 쳐다봤대요. 그때부터 두세 달 동안 혼자 방에서 하루 한 시간씩은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감사하게 가족 모두 그걸 받았고요. 막막하고 답답해서 무얼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도 방언으로 기도하면, 비록 그 뜻을 모를지라도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방언을 하고 나면 마음에 평안이 와요. 제 영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고, 방언에 비밀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옵니까?
가난함이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면 저 아무것도 없잖아요. 하나님이 탤런트(은사) 주셔야 연기도 하고요. 실제로 제게 가난하고 힘든 날이 있었잖아요.
-이제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믿음이 힘이 되지요?
제 엄마 이름이 ‘순종’이신데, 믿음의 순종도 잘하시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를 가셔요. 어머니 기도로 내가 이 복을 받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제가 늘 치열한 전쟁터 같은 곳에 나와 있으니까 아버지는 아침마다 찬양하며 기도해주시고, 언니들도 늘 기도해주고요. 갈수록 기도의 후원자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나얼’(가수) 씨와 교제중이시잖아요.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개척교회 집사인데 성가대 지휘도 하고 교회에선 전도왕이래요. 저는 주변 사람에게 전도를 잘 못하는데 용기있게 예수님 이야기하고, 크리스천이라는 걸 당당하게 밝히는 걸 보면 진짜 믿음이 순전하고 좋은 것 같고, 제가 본받을 점이 많은 남자친구예요. 긍휼이 너무 많아 아프고 힘든 사람을 그냥 못 지나가고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순수하게 만나자고 서로 늘 다짐하고요.
-한혜진 씨가 받은 사명과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제가 영향력이 큰 자리에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면서 말과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선하게 활용하실 수 있도록 저를 드리는 것입니다. 동료 연기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 앞으로 함께 나오도록 저를 부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지금은 <제중원>이 정말 좋은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작품을 계획하신 데는 뜻이 있다고 믿으며, 용우 오빠를 비롯한 크리스천 출연진들이 함께 기도해요. 감독님이 하나님 영접하셨으면 좋겠다는 기도도 하고요. <제중원>을 위해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