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 (貧妻)
성선경
아내는 내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옷장서랍 칸칸을 뒤집어 먼지를 풀풀 날리고
나는 못 본 척 조간신문을 뒤척거리며
현진건玄鎭健을 생각한다
그때도 그랬을까 슬금슬금
해거름과 함께 저녁 안개가 몰려들면
아내는 더욱 궁상스러워지고
남편은 더욱 음흉스러워져서
토요일 좋은 날의 한나절을
힐끔힐끔, 못 본 척 그랬을까
그러나 다시 눈길을 돌려 아내를 보면
변변한 옷가지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한 죄책감보다
저놈의 여편네가 왜 저래
공휴일을 맞아 아버지의 농번기農繁期
한철 농사일을 거들겠다고 고향 가는 길
무슨 수선을 저리 떠나 싶어
죄책감보다 아내의 행위가 더 미워져
망할, 빌어먹을, 나쁜, 못된, 따위의
수식어를 옹알거리다 신문을 덮으며 고개를 돌리면
문득 마주치는 아내의 눈빛이 슬프다
제철마다 화려하진 못해도
한 가지씩 표나게 해 뒀더라면
이런 날, 가을 벌판의 들꽃처럼 한들거리며
혹은, 가을의 단풍잎처럼 화사하게 꾸미고서
빠각빠각 구두코를 반짝이며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현진건玄鎭健, 생각하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전당포의 옥양목 저고리라도 찾을 게 있었지
중절모라도 삐딱하게 쓸 수 있었지
아내는 내내 힐끔힐끔, 나는 못 본 척
마주치는 아내의 눈빛이 문득 슬프다.
'성선경' 시집 <돌아갈 수 없는 숲>;[문학의 전당, 2009] 중.
첫댓글 없이살던 시절... 남편의 죄책감을 괜히 아내에게 투정을하네요ㅠ
성 시인은 퇴직한 부부 교사 출신인데
종손인데다 말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골초에 촌사람입니다.
시를 보며 "그 답다" 느껴집니다. ㅋㅋ
그야 말로 고지식한 우리내 부모님들 풍경을 그려봅니다
맞습니다.
애틋한 마음과 달리
벌려지는 그 입. ㅎㅎㅎ
힘겨운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이군요
서민들의 애기죠. ^^
저를 대변하는것 같습니다 ㆍ
힐끔힐끔 슬금슬금 틈만나면 틈을 벌리려고 몸부림지는~~~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인데ㅋ
마님 눈치 보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ㅋ
현진건의 빈처가 아니고 성선경의 빈처이네요.......
옛적 차암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
남존여비의 시절을 엿볼 수 있는 글 같습니다...
가난이 무섭긴 무서운것 같아요..
성 시인 그렇게 가난하지 않은데
엄살 부리는 듯.
부부가 연금 받고
가끔 문학행사 게스트로
술값은 버니 쁘띠 부르주아는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