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어떻게 전해졌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정확한 전파 시기가 적혀있는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정확한 전래 시기가 적혀 있지 않다. 일단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1824-5년쯤에 청나라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한다. 청나라와 교류하며 조선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인삼을 도둑질하러 넘어왔을 때 먹고 버티려고 감자를 심어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감자가 조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금령을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함경북도 무산군의 수령 이형재가 감자를 보급하려 할 때도 감자를 심던 사람들이 벌 받을까 봐 시치미를 떼며 씨감자를 주지 않아, 많은 소금과 교환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한다.[38]
이렇게 도입되어 감자는 한반도 북방 지역과 강원도 산간까지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남부까지 전해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39] 일례로 1832년에 전라북도 지방에 머물렀던 영국인 암허스트 호가 감자 재배법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울에서는 1883년 선교사가 처음으로 재배했다.
이는 추정컨데 이미 18세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가 남부 지방에서 널리 보급되어서 감자는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반대로 북부 지방에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이유도 고구마는 추위에 약해서[40] 추운 북부지역에 별로 전파되지 못해서 대신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 이전에 한반도 지역에서 감자 먹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명백한 고증오류이다.
역사적으로는 이렇고, 2015년 현재 연간 생산량 99만 8460톤(통계청 집계)인 감자의 주 산지는 원산지처럼 고산지대인 강원도(전국 생산량의 35%)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상북도(15%), 충청남도, 경상남도, 충청북도 순서이다. 제주도산 감자가 대형마트에 꽤 들어와 있지만,[41] 생산량은 서울이나 광주 같은 대도시를 빼면 전국 최하위권. 그래도 연간생산량 2만 600톤으로 9900톤인 인천보다 2배 이상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