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만큼의 눈-방울이 비치는가? 긴가민가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뜨거운 아이들 함성소리가 들리고 운동장에 한 가득 쏟아져나온 모습이 보였습니다. 첫눈이 그렇게 왔습니다. 첫눈이 오신 것이 맞는거지요. 11월 23일에요.
"아이들의 환대가 뜨거워 눈도 내리다가 놀랐나? ...'
후후, 입술가에 미소가 퍼질 즈음, 사춘기 아이들은 방방 뛸만큼 격하게 팽창된 목소리가 하늘 저멀리 저 지리산꼭대기까지 닿을 듯했습니다. 우리집 강아지처럼요. 4개월에 이른 꽃눈이는 안아주기가 힘들만큼 좋아서 나대는데, 3년여가 흐르는 제 어미는 가만히 앉아서 쓰다듬는 것을 느끼며 교감할 만큼 천방지축 행동이 잦아들었는데요. 첫눈이 사춘기 아이들에게 주체하기 힘든 기운을 볻돋았나봐요. 내리던 첫 눈마저 잠시 주춤할 만큼요.
이윽고 차 한 잔 마실 만큼의 시간차를 두고, 소복이 커다란 눈송이가 바람을 타지 않고 내륙의 분지에 하늘하늘 퍼져 내렸습니다.
온 세상을 축복하듯이 소담스럽게 그렇게 첫눈은 내렸습니다. 음, 결국 첫눈이 왔어요. 그걸 보았어요. 아주 잠시였지만, 보았어요. 오늘 아침도 산에 가서 조금 쌓인 첫 눈이 듬성듬성 갖가지 원만한 곡선을 그리며 갈색 땅위에 하얀 모습으로 있었어요. 온기를 쪼인 모악산 정상의 눈도 12시 넘어가는 지금은 다 녹아 사라졌네요. 산길 오를 적에는 뒷 계곡 모악산 등성이에는 눈발이 성성했는데, 지금은 햇빛이 짱짱하게 들어차서 갈색 나무 숲이 고즈넉하게 따스한 기운에 몸을 내맡기고 있군요.
어제 6교시에는 '가연'이가 뛰어들어왔습니다. 갑자기. 무대화장처럼 진한 화장과 향수가 대뇌 후각세포를 덮쳐왔을 즈음 졸업생인데? 왔구나! 알아채게 되었어요. 오른쪽 측면 목덜미에 그린 붉은 장미한송이가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가연 : (다짜고짜 바로 어제 봤다는 듯이, ㅎㅎㅎ), "샘, 상현이 봤어요?, 여기 있는 거 아니예요?"
나 : "상현이? 오늘 못봤는데? 여기 없어~"
3학년 남자 후배인 상현이를 급하게 찾으면서 가방을 뒤지더니 거울과 콤팩트를 꺼내어, 달랑거리던 인조눈썹을 고치고는 분첩으로 얼굴을 두둘겨대느라 바쁩니다.
나 : "가연아, 그래도 샘이 여기 바로 코 앞에 있는데 없는 듯이 그렇게 거울 볼거니?, 어휴 나도 보는 눈이라고"
가연 : 어 그래요? 그쵸오 ( 건성건성 대답이 귀찮다는 듯이....)
나 : 다음주에 너희 학교 갈터인데, 흡연예방교육하러, ...
가연 : 선생님 우리 학교 오지 마세요. 아무도 듣지 않을 텐데요, 안녕히 계세요~~~
마치 펼쳐지는 연극 무대에 난데없이 뭔가가 뛰어들었는데, 자연스럽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금새 사라져버려서, 꿈을 꾼 것같기도 한, 가연이는 후각중추에 여운을 남기고 금새 사라진거예요.
이윽고 3학년 3반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 반에 아이들이(이틀 전 징계받은 아이들) 여기 왔다갔느냐는 거지요?
어째 등장하지도 않은 3학년 머스마들을 찾는 사람이 많은 날인가요. 첫눈이 와서 그런가봐요. 상현이는 그 전전 화요일날 선도회를 열었는데, 우리학교에 3년 4명이 흡연중독생으로 남아있는데, 상현이랑 어울려서,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놀다가, 라이터를 켜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그것을 그 현장에 없던 장헌에게 날린 거예요. 장헌은 초등 4학년 때 외할머니가 화재로 돌아가셨다는데,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이 그것을 장난거리로 만들어 장헌에게 보내어, 학폭으로 신고해 징계위원회가 열린거지요. 양부모님들은 학교내에서 봉사로 정리가 되고, 어떤 일이든지 신고 잘하는 아이들로 바쁜 총각선생님에게 이 사안은 집중력을 요하는 사안이었지요.
어두운 밤은 빨리 찾아왔는데, 밤 길 운전이 겁났지만, 전성은 교장이 지역교육연구소 출범식에 오신다니, 내 발로 찾아갈 판에, 질문 하나 들고 가서 기다렸다가 질문을 드렸지요. "자유하게 하라, 자유롭게 하라, 내버려 두라"는 것이 핵심이었어요. 요즘 서구에서 탄생한 개념들, 우리가 좇고 있는 개념과 실천적 작동의 군데군데 나있는 괴리와 간극, 구멍메우기 대한 관심에 빠져있었다가, 창조성은 다양성에서 나오고, 다양성은 ''자유'에서 나온다는 선생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한 거지요. 거창고교는 기독교 앙으로 정서적 기반이나 인성교육 그 모든 공통된 합의의 ( '지배이데올로기' 혹은 '도그마', 이 단어는 사용하지 않음. 신앙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빠질수도 있기에 ) 가치가 굳건한 가운데 예수님 운동장, 부처님 손바닥에서 펼쳐질 '자유'가 공교육에 반성없이 이식됨으로 인하여 공교육은 그나마 다 망가졌다고 , 신좌파가 이젠 문제다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질문했다가, 단칼에 저의 생각을 고치라는 명령을 받았지요.
거창고교는 엘리트 교육이고, 기독교 신앙인이 자녀를 입학시키고 싶어하는 사립 명문인데, 전성은 교장님은 국가 혁신 교육위원장으로 일하신 분이고, 그 분 말씀에 따르면 그 교육부 관료와 수장들은 사실 현장을, 특히 공교육을 아시는가? 했다가, 역시 모르시는구나! 마음을 접었지요. 그분 말씀대로 우리 현장은 정말 공부를 안하지요. 그분이 꼽는 저서 3권중에 2권을 읽은 사람이 각각 수십명 모인 곳에 2명씩 있었으니깐요. 저는 2권을 소유, 읽었고, 그때 감동받았지요. 교육관료와 교육담론을 이끌어가는 자들은 현장을 모르고, 우리는 서로 서로 기름 돌듯하는데, 현장교사로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승진대열로 인식해서 배려와 협조도 못받고, 무엇보다 시간이 태부족인거지요.
왜 현장과 연구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분화 나뉘어있는 것을 문젯거리고 인식되지 못하고 사토 마나부는 한 번도 자신은 교실 수업을 공개 안 해 본 비평 수업을,관찰자로서,수업을 만 번 이상 비평만 한 전문가의 비평을,그대로 현장교사들은 적용이 가능할런지요. 관찰자가 진공속의 입자인가요? 없는 존재인가요? 참관자로서 비평자는 지배하고, 참행자로서 행동실천하는 장에서 교사는 몸으로 부딪히는 관찰자있는 교실 수업과의 어마어마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허구의 교실 수업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요?(양자역학의 세계, 관찰자의 세계)
공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수업은 2학기 들어 거의 진행이 되지 못하고, 게다가 난방이 안되기도 하는 교실, 지난 수요일에는 차분한 학교에 대한 바램으로 뇌파를 외부전문가를 초청하여 뇌파를 측정하고 설명하는 시간에 어찌나 떠들고 난리를 쳐대는지요. 눈높은 내가 존경하는 동료 원로선생님이 보다보다 못해서 주동하는 아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뿌리치고 들어온 아현이는 '개 미친, 시발xx'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친구들과 무리지어서 같은 한 목소리를 떠드는데, 그냥 못 들은 척, 구경꾼처럼, 그저 제풀에 가라앉기만을 바랐지요.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남긴 음식과 스치로폴을 다 찢어버려서 바닥을 청소하며, 오늘날 내가 존경하는 한 분, 나이 많은 선생님이 욕을 먹고 있고, 욕을 해대는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 뭐 일상이 되어버려서 특별할 것도 없는 오늘날 공교육이 씁쓸했지요.
수업을 방해하기를 1년여를 채우는 대성이에게 다가가서 어쩌다가 분필로 머리카락에 점 하나 찍었다가, 위와 같지는 않았으나, 재수, 씨바, 이리저리 돌려서 욕먹고, 대성이게게, 점심시간에 찾아가서 사과하느라 마음쓰고 시간을 들였지요. 한 두 명이 교실 수업을 독점적으로 선도해가면,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하는 방식에 .....대응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지요.
학원이, 사교육이 있으니깐요. 공부 걱정이 없고, 게다가 시험도 없고, 어떤 규제와 규율이 사라졌다 싶은거지요. 그래도 조근조근 말 건네고, 돌봄 능력이 있는 여교사 수업은 교실안에서 해결이 되는데, 오히려 남선생님들은 더 곤혹을 치루고 있다 싶은 것이 하도 시끄러워 가다가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보는 교실 풍경은 아이도, 교사도, 이 뭐하는 것인가? 그 황금의 시간이 남루하고 초라한 쓰레기처럼 뒹구는 듯한지요.
출범식 때 사회자가 지역원로교사 대표로 퇴직한 선생님을 불러내어 한 말씀 부탁하니, - 보니 전에 지역의 동학혁명지, 최제우의 거처장소를 안내하던 퇴직한 역사선생님 - '30년 밥벌이를 했습니다.' 는 첫마디 부터가 어깨를 움추려져서 더 작게, 더 조금, 작아지려는 겸손이 돋보이기도 하고, 평교사로서 또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지요. 전직 선생님은 그만 둔 순간부터 '전혀'라고 할만큼 생각 안하고 살다가, 요즘 4가지 안 가르친 것이 후회되는데, 그중에 자신은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아이들에게 그러지 않도록 가르치지 못한 한 가지가 후회된다고 반성소회를 잛게 마치신 이름없는 무명선생님의 말씀이 흡연예방교육과 금연지도 사업을 못한 것을 반성하시는 것으로 내게는 꽃혔지요.
일생을 남의 월급 챙겨주느라 애쓰신 것으로 인하여 크신 분이 되었는가? 싶은 전성은 전 교장은 한 세기만 일찍 태어났어도 '영적 선지자 '같은 카리스마로 '서남대는 없어져야 하는게 맞나요?' 지역선생님의 질문에 없어질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 단 칼에 대답이 선명하고 애매모호한 흔들림이 없는데, 그저 쓰레기 줍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반성하는 전직 무명선생님은 스스로를 낮추고 작아지려하고 이름도 없는데, 어째 그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 한 것은 아닌가? 왜 누군가는 이름이 있고, 누군가는 이름이 없는가? 그것이 또 뭐 그리 중요한 것인가? 근대시절을 살아내신 두 남성 교육자에게 밥벌이 해결에 대한 방식의 차이가 미치는 근대적 남성의 삶이라고 할까요. 조금은 엉뚱한 결론을 내려봅니다.
사람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지향성의 수고와 피로회복은 그저 그러한 자연의 세계입니다.
나무와 숲에 햇살이 기울어져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