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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 1-8절. 고린도 교회 음행 문제의 해결. 요약설교
본 장에서 다루고 있는 음행 사건은 이러한 보편적인 음행 사건이 아니고, 음행이 보편화된 고린도 지방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음행 사건, 즉 자식이 계모를 데리고 사는 특수한 근친상간의 문제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극히 희생적이고 사랑이 풍부한 사도였으며, 사랑이 제일이며(고전 13장),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엡 4:2)고 가르쳤으나, 이 음행자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의 관용적인 태도를 질책하면서, “이 악한 사람을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 격렬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5:1-8, 고린도교회의 음행 사건과 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관용적인 태도를 질책하고 교회 법정을 열어서 재판할 것을 명령함
1절. 고린도 교회의 음행 사건의 실상
2절. 음행 사건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관용적인 태도
3-5절. 교회가 공동회로 모여서 이 음행 사건을 재판해야 할 것임
6-8절. 교회가 세속적인 범죄를 버리고, 윤리적으로 순수해야 할 것을 가르침
1절.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음행(πορνεία)이란 합법적인 결혼 관계를 떠난 모든 성적인 행위를 가리키는데, 구약 레위기 18장, 20장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음행 사건들이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음행 사건들은 당시의 가나안 땅이나 이방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헬라, 로마 시대에 이러한 음행 사건들은 보편적이었습니다(인간의 음행죄의 보편성, 롬 1:26-27 참조).
그러나, 고린도 지방에는 이러한 음행이 특별히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는 헬라 전역에 물자를 조달하는 풍요로운 항구도시로서, 여행객들이 숙박하고 가는 여인숙이 많았으며, 특별히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rodithe-로마의 Vinus와 동등)의 신전과 종교적 음행을 담당하는 여사제(女司祭: 종교적 창녀, 거룩한 창녀, sacred harlots)가 2,000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지방은 특별히 도덕적으로 음란했기 때문에, 당시 지중해 연안에서 ‘고린도인들처럼 행동한다’(κορινθιαζόμαι)는 단어는 ‘부도덕하다, 음란하다’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 음행’은 아프로디테 종교뿐만 아니라, 바알 종교, 아세라 종교 등 고대 종교의 한 특성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불교의 한 종파인 탄트라 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성적 특성은 인간 문제의 본질을 성적인 면에서 파악하려는 것이고, 인간의 성적 문제의 해결을 종교적 구원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대 종교 만 아니라 오늘날의 시그문드 프로이드(S. Freud)나 죠셉 플레처(J. Fletcher) 같은 학자들도 인간 문제와 종교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성(性) 문제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컨대, 부부간의 성적인 원만한 교통과 만족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궁극적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통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죄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고 그 피로 죄 용서를 받고,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면, 참된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3.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고린도 지방에는 음행이 일반화되어 있었지만, 본 장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음행 사건은 당시 고린도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성행하고 있던 그러한 종류의 음행이 아니라, 당시 음란한 불신 고린도인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음행 사건이란 뜻입니다.
4.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이 음행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아버지의 아내였던 여인을 데리고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아내’(γυναῖκά τοῦ πατρὸς)는 원문상 ‘아버지의 여자’로서, 아버지가 데리고 살던 젊은 후처였는데, 늙으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젊은 후처를 아들이 데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에는 ‘아버지의 후처’라고 번역했고, New Living Translation에도 ‘계모’(stepmother)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성경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전통적 예법에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헬라 시대의 사회 윤리에도( Cicero, Pro Cluent, 6:15)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그러한 부끄러운 행동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2절, 그리하고도 오히려 너희가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1.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 충만 받아서, 이런 신령파 사람은 구약의 율법 규정과 세상적인 윤리 규범에서 자유케 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아버지의 후처'와도 결혼생활을 할 수 있노라고 오히려 자랑했던 것입니다(NIV-SB, p.1739. note).
이런 신령파의 방탕주의(Libertinism)는 정통 신앙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신비주의 이단인 영지주의의 한 분파였습니다.
이처럼 신령파에 속한 여인들은 자신들이 성령 받고 신령해졌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1장에 말씀한 대로, 교회의 질서를 안 지켜도 된다고 하면서, 교회 내에서 장로님이나 권사님도 무시하고, 당시 예배 시에 썼던 수건도 안 쓰고, 설교 시간에도 마음대로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예배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2.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일반적인 양심의 가책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회법에는 ‘종교적 확신범’이란 것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양심이 마비되어, 일반 사회인들도 부끄러워서 할 수 없는 일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경에 나타난 특별 계시를 중요시해야 하지만, 양심이나 법률이나 자연법칙이나 역사적 교훈 등도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의 열정이 뜨거운 꽃 믿음 때나 신비적 체험을 하신 분들은 특별은총만 추구하면서, 일반은총(자연법칙, 법률, 도덕률, 질서, 양심 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유명한 지도자들인 어거스틴(Augustine)이나 토마스 아퀴나스(T.Aquinas)는 “특별은총은 일반은총을 초월하여 작용할 수 있으나, 일반은총을 무시하지는 않는다”고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조화적 관계를 적절하게 말했습니다(Walker, History of Christian Church, p.246).
3. 그 일 행한 자를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물리친다’는 것은 종교적 공동체로부터 출교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 요 9:22 참조)
유대교 사회에서의 출교, 중세 카톨릭 국가에서의 파문, 한국 유교적 가문에서의 퇴출은 공동체로부터의 격리, 법적인 보호로부터의 제외를 의미했습니다.
3절.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56년) 소아시아지방의 에베소에 있었습니다(고전 16:8, 행 19장).
2.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성령 안에서 함께 있어서’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바울의 신체, 영은 바울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해석한다면, 여기에 일반적 자연 상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바울의 신비(Pauline mysticism)가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인간은 불가분리의 단일체로서 몸과 영혼이 분리될 수 없으나(분리는 죽음을 의미), 기능상으로 몸과 영혼을 구별해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살아있는 상태로서 영이 탈혼된 신비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도, 엘리사 선지자의 수종자 게하시가 도적질할 때, 엘리사 선지자가 거리를 초월하여 그 사건을 알고, 게하시에게 엘리사의 심령이 감각되었다는 신비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주님이 자기를 들어 올려서 환상을 보게 하신 것을 여러 번 기록했습니다, (에스겔 2:12-15, 8:3, 11:24)
3.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판단하였다’는 ‘이미 심판을 선언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4절.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1. 어떤 영어 성경에는 ‘공동회로 모여라, 그곳에 내 영(과 우리 주 예수의 권능)이 함께 할 것이다’ , 또 다른 영어 성경에는 ‘너희가 모일 때, 내 영과 우리 주 예수의 권능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5절,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1.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공동체로서 생명과 풍요로움이 있는 곳이고, 교회 밖의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는 곳으로서 죽음과 가난과 질병과 고통이 있는 곳으로 묘사한 것입니다(NIV-SB).
이것은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행진에서, 이스라엘 공동체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주는 불과 구름 기둥이 임재해 있고 만나가 주어지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 공동체 밖의 광야에는 아사셀이 지배하고 있어서 그곳에는 더위나 추위, 죽음과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을 회상케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에게 내어 주는 방법은 어떤 주술적인 방법(magical incantation)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서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것(expel him from any connection with God's people)입니다.
2.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NIV 영어 성경에는 ‘이는 그 죄성은 멸하고, 그의 영은 주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 함이라’로 되어 있습니다.
6절.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 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 고린도 교인들의 ‘자랑’이란 ‘구원받은 은혜와 자유에 대한 교만’ (proud of grace and liberty)이요, ‘신령한 은사들에 대한 교만’이었습니다 (고전 12장 참조).
이들은 영지주의(Gnosticism)자들과도 같이 신령한 은혜를 얻은 사람은 멸망 받을 죄와는 무관한 ‘신령한 자들’(영적인 자들)이라고 자부했었습니다.
여기에서, 소위 방탕주의(Libertinism)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이단 사조 때문에, 세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도 양심이 화인 맞아 도리어 죄악된 행실을 자랑한 것입니다.
2.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것은 당시의 속담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9절에도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라고 나옴).
여기서 ‘누룩’이란 ‘죄성’이나 ‘잘못된 교훈’을 가리킵니다(마 16:5-12, 막 8:15).
즉, 누룩이 반죽에 퍼지듯이, 죄성이나 잘못된 교훈도 널리 확산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 중 신령파 사람들(the spiritual sects)은 자신들이 신령한 존재이므로, 죄의 전염성에 대해서 초연해 있는 듯이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의 공동체 안에서 괴악한 죄성이나 위험한 교훈이 번지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제거하는 일, 즉 ‘징계’도 해야 할 것입니다.
7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1. ‘새 덩어리’(νέον φύραμα)는 아직 누룩을 넣지 않은 새로운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가리키고, ‘묵은 덩어리’(τὴν παλαιὰν ζύμην)는 이미 누룩이 다 퍼져버린 덩어리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묵은 덩어리’(the old leaven)는 그 범죄한 특정한 자를 가리키고, ‘새 덩어리’(new lump)는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고후 5:17).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세상 죄에 오염된 그 음행자를 새 덩어리에서 떼어내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즉, ‘그 음행자를 교회에서 출교시켜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묵은 누룩 즉, 음행이 온 덩어리 즉, 교회 전체에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는 누룩이 든 유교병을 먹었으나, 유월절 때는 어린 양을 잡아서 구워 먹고, 누룩이 안 든 무교병을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출 12장).
그런데, 구약의 유월절 규례는 유월절 양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심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본 절, 요 1;29, 사 53;7 참조)
따라서, 구약 성도들이 유월절 때 유월절 양을 구워 먹고 누룩 없는 떡을 먹은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유월절 양 되신 예수님을 믿고, 밀가루 덩어리 같이 뭉쳐진 교회 속에서, 누룩이란 죄성이 스며든 덩어리는 내어버리고, 죄성의 누룩이 없이 순결한 새 덩어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8절,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1. ‘명절’이란 유월절(좁은 의미의 유월절과 무교절 전체)을 가리키는 것인데, ‘지킨다’는 것은 특별히 제사 드리고 누룩 없는 떡(무교병)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유월절을 지킨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의식적인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고 하나님께 산 제사드리는 헌신된(거룩한) 생활을 가리킵니다( 롬 12:1-2)
베드로전서 2: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새번역 벧전 2:5.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2.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 말씀은 “괴악하고 악독한 음행이라는 누룩이 들어 있는 옛 생활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뭉쳐진 덩어리가 되어 신령한 (기독교적) 유월절을 지키자”는 뜻입니다.
3. 결론
오늘 성경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얻을 것은 첫째, 영적인 교만에 빠져 죄를 짓고도 오히려 자랑하는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교회는 밀가루 반죽 덩어리와 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으므로, 죄악이나 이단 사상이 파고 들어오면, 온 덩어리에 퍼지지 않도록 단호히 잘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유월절 양 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으므로, 이제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삶으로써, 날마다 산 제사드리는 성도들이 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여 자신의 뜻대로 살지 마시고, 오직 성령 충만하여 주님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선한 열매 맺는 생활 하시고, 복된 가정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