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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16절부터 24절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1. 주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근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은 장관 자리 하나 얻어서 출세하려고 한 것인데, 이제 아무런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다고 하니까, 무슨 낯으로 가정에 돌아갈까 근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2.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서 출세할 것을 기대하다가 낙심했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다음에는 교회의 사도들이 되어서, 세상 출세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3. 이처럼, 죽음에서 부활은 큰 기쁨이요, 큰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크신 능력을 받아, 구원과 치유와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은 가장 성공적인 삶입니다.
4.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들도 쫓아내고, 심지어 죽은 자들도 살려냈습니다.
5. 오늘은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6.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16-20절.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
21-22절.예수께서 부활하시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24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주시리라.
16-20절.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
16절.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새번역: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며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조금 있으면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게 될 것이다. ("A little while, and you will no longer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
New International Version: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고, 그 후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게 될 것이다. (Jesus went on to say, "In a little while you will see me no more, and then after a little while you will see me.")
New Living Translation: 조금 있으면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다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In a little while you won't see me anymore. But a little while after that, you will see me again.")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Μικρὸν καὶ οὐκέτι θεωρεῖτέ με,
A little, and no longer you see Me;
‘보지’(θεωρεῖτέ)는 현재형입니다(you see).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καὶ πάλιν μικρὸν, καὶ ὄψεσθέ με.
and again a little, and you will see Me.
‘보리라’(ὄψεσθέ)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see)
1. <본다>는 단어(θεωρέω)는 ‘바라본다, 주시한다, 본다, 경험한다, 분별한다, 관찰한다, 인식한다, 지켜본다’(to look at, gaze, behold, see, experience, discern, observe, perceive, watch)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의 의미를 집중하면서 보는 곳이란 의미에서 영어의 ‘극장’(theater)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the root of the English term "theatre," i.e. where people concentrate on the meaning of an action).
2. 비잔틴 사본(Byzantine text) 같은 곳에서는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ὅτι ἐγὼ ὑπάγω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because I am going away to the Father)란 말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17절.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새번역: 그의 제자 가운데서 몇몇이 서로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하신 말씀이나,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제자 중에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고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과 또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고 하시고,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고 했다. (Some of His disciples then said to one another, "What is this thing He is telling us, 'A little while, and you wi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 and, 'because I go to the Father '?")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 때 몇몇 제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그 후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고 말씀한 것이 무슨 뜻이냐?’”고 했다. (At this, some of his disciples said to one another, "What does he mean by saying, 'In a little while you will see me no more, and then after a little while you will see me,' and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New Living Translation: 제자들 중 몇 몇이 서로 묻기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나, 그 후에는 너희가 나를 보리라’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로 갈 것이다’고 말씀하시니 무슨 뜻인가?”라고 했다. (Some of the disciples asked each other, "What does he mean when he says, 'In a little while you won't see me, but then you will see me,' and 'I am going to the Father'?)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Εἶπαν οὖν ἐκ τῶν μαθητῶν αὐτοῦ πρὸς ἀλλήλους,
said therefore some of the disciples of Him to one another,
‘말하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말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무슨 말씀이뇨
Τί ἐστιν τοῦτο ὃ λέγει ἡμῖν, Μικρὸν καὶ οὐ θεωρεῖτέ με,
"What is this that He says to us, 'A little and not you see Me;
직역하면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한다는 이것이 무었이냐’는 뜻입니다.
‘말씀하시기를’(λέγει)은 현재형이고(He says), ‘보지’(θεωρεῖτέ)도 현재형이고(you see) ‘무슨 말씀이뇨’에서 동사(ἐστιν)도 현재형입니다.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καὶ πάλιν μικρὸν καὶ ὄψεσθέ με;
and again a little, and you will see Me';
‘보리라’(ὄψεσθέ)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see).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καί Ὅτι ὑπάγω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and,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직역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가고 있기’(ὑπάγω)는 현재형입니다( I am going).
1. 앞의 <본다>는 단어(θεωρέω)는 ‘바라본다, 주시한다, 본다, 경험한다, 분별한다, 관찰한다, 인식한다, 지켜본다’(to look at, gaze, behold, see, experience, discern, observe, perceive, watch)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뒤에 나오는 <본다>는 단어(ὁράω)는 ‘본다, 인식한다, 주의한다, 경험한다, 분간한다, 알아본다’ (to see, perceive, attend to, experience, discern, beware)는 뜻으로서 ‘영적인 안목으로 보고 내적이고 영적인 안목으로 깊이 인식하는 것’ (to see with the mind i.e. spiritually see, i.e. perceive with inward spiritual perception)을 가리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에서 ‘간다’는 단어(ὑπάγω)는 ‘간다, 떠나간다, 죽는다’( to depart, go away, depart, die)는 뜻으로서, 현재형으로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는 뜻입니다.
18절.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새번역: 그들은 말하기를 "도대체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하였다.
현대인의 성경: 더욱이 ‘조금 있으면’이란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래서 그들이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그 분이 말씀하고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So they were saying, "What is this that He says, 'A little while '? We do not know what He is talking about.")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러자 그들이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우리는 그가 말씀하고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So they were saying, “What does he mean by ‘a little while’? We do not know what he is talking about.”)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들이 계속해서 묻기를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They kept asking, "What does he mean by 'a little while'? We don't understand what he is saying."0
New Living Translation: 그리고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And what does he mean by 'a little while'? We don't understand.")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ἔλεγον οὖν, Τοῦτο τί ἐστιν ὃ λέγει, τὸ μικρόν;
they were saying therefore, this What is that He says, the little ?
직역하면 ‘그러므로, 조금 있으면 이라고 그가 말하는 이것이 무엇이냐고 그들이 말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말하는’(λέγει)은 현재형으로서(He says) ‘그가 말하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무엇이냐’에서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그들이 말하고 있었다’(ἔλεγο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saying) 제자들이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οὐκ οἴδαμεν, τί λαλεῖ.
not we have known, what He is saying
직역하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시는지’(λαλεῖ)는 현재형으로서(He is saying) 말씀하고 계시는지란 뜻입니다.
‘알지’(οἴδαμεν)는 현재완료형입니다(we have known).
1. 앞에 두 번 <말하다>란 단어(λέγω)는 ‘말하다, 언급하다, 의미하다, 이야기 하다’( say, speak; I mean, mention, tell)란 뜻이고, 뒤에 나오는 <말하다>는 단어(λαλέω: talk, speak, say)는 원래 ‘재잘거리다’(chatter in classical Greek)란 뜻인데, 예수님께 대해서는 좀 더 정중하게 ‘말씀하신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but in NT a more dignified word).
<알지 못한다>란 말(οὐκ οἴδαμεν)에서 ‘안다’는 단어(οἶδα)는 ‘알다, 깨닫다, 알아차리라’(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는 뜻인데, 여기서는 현재분사로서 ‘우리는 지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는 뜻입니다.
19절.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새번역: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제자들이 묻고자 하는 뜻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고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 때문에 너희가 서로 문의하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그들이 묻고자 함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함께 협의하고 있느냐”고 하셨다. (Jesus knew that they wished to question Him, and He said to them, "Are you deliberating together about this, that I said, 'A little while, and you wi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
English Standard Version: 예수께서 그들이 묻고자 함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고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을 너희가 스스로 질문하고 있느냐?”고 하셨다. (Jesus knew that they wanted to ask him, so he said to them, “Is this what you are asking yourselves, what I meant by saying, ‘A little while and you wi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ou will see me’?)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ἔγνω Ἰησοῦς ὅτι ἤθελον αὐτὸν ἐρωτᾶν, καὶ εἶπεν αὐτοῖς,
knew Jesus that they were wishing Him to question, and He said to them,
직역하면 ‘그들이 그에게 질문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을 예수께서는 아셨고,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질문하기를’(ἐρωτᾶν)은 부정사형 동사이고(to question), ‘원하고 있는’(ἤθελον)은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wishing) 계속 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아셨다’(ἔγνω)는 부정과거이고(knew), ‘말씀하셨다’(εἶπεν)도 부정과거입니다(He said).
서로 문의하느냐?
Περὶ τούτου ζητεῖτε μετ’ ἀλλήλων,
"concerning this do you inquire among one another,
직역하면 ‘이에 관하여 너희가 서로 문의하느냐’는 뜻입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이에 관하여’란 번역이 빠져있습니다)
‘문의하느냐’(ζητεῖτε)는 현재형으로서(do you inquire) 문의하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ὅτι εἶπον, Μικρὸν καὶ οὐ θεωρεῖτέ με,
that I said, little, and not you see Me,
직역하면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는 것 (이것에 관하여)’이란 뜻입니다.
‘보지’(θεωρεῖτέ)는 현재형으로서(you see) 계속 보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고, ‘내가 말했다’(εἶπον)는 부정과거입니다(I said).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καὶ πάλιν μικρὸν, καὶ ὄψεσθέ με;
and again little, and you will see Me?
직역하면 ‘그리고 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볼 것이다’는 뜻입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다시’가 빠져 있습니다)
‘보리라’(ὄψεσθέ)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see).
1. <묻고자>란 단어( ζητέω)는 ‘찾는다, 묻는다, 요구한다’( to seek, search for, desire, require, demand)는 뜻으로서, ‘궁극적인 해결에 도달하고, 문제의 근본에 이르고자 탐색하는 것’(to investigate to reach a terminal resolution; to search, getting to the bottom of a matter)을 가리킵니다.
<함>이란 단어( θέλω)는 ‘원함, 소원함, 바람, 의도함’( to will, wish, desire, intend, design)이란 뜻입니다.
즉 제자들이 질문하기를 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시고>란 단어(Ἔγνω)는 부정과거형(aorist)으로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요구사항을 단번에 확 파악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알다’는 단어(γινώσκω)는 ‘알다, 인식하다’( to come to know, recognize, perceive)는 뜻인데, 부정과거형은 ‘확신했다, 깨달았다’(aor: I ascertained, realized)는 뜻입니다.
2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고 슬퍼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 슬픔은 오히려 기쁨이 될 것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울고 한탄할 것이지만,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가 근심할 것이지만, 너희 기쁨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이다. ("Truly, truly, I say to you, that you will weep and lament, but the world will rejoice;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be turned into joy.)
New Living Translation: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앞으로 나에게 이루어질 일을 보고 너희는 울고 근심할 것이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할 것이지만, 너희 근심이 갑자기 놀라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weep and mourn over what is going to happen to me, but the world will rejoice.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suddenly turn to wonderful joy.)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ὅτι κλαύσετε καὶ θρηνήσετε ὑμεῖς,
Truly, truly, I say to you, that you will weep and you will lament you,
‘이르노니’(λέγω)는 현재형이고(I say), ‘곡하고’(κλαύσετε)와 ‘애통하리니’(θρηνήσετε)는 둘 다 미래형입니다(you will weep, you will lament).
여기서 ‘너희는’(ὑμεῖς)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기뻐하리라.
ὁ δὲ κόσμος χαρήσεται·
the but world will rejoice;
직역하면 ‘그러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기뻐하리라’(χαρήσεται)는 미래형입니다(will rejoice).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ὑμεῖς λυπηθήσεσθε,
you will be grieved,
직역하면, ‘바로 너희가 근심하게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너희는’(ὑμεῖς)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근심하겠으나’(λυπηθήσεσθε)는 미래 수동태입니다(you will be grieved).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ἀλλ’ ἡ λύπη ὑμῶν εἰς χαρὰν γενήσεται.
but the grief of you into joy will become
직역하면 ‘그러나 너희의 근심이 기쁨이 될 것이다’는 뜻입니다.
‘되리라’(γενήσεται)는 미래형입니다(will become).
1. <진실로 진실로>란 말의 헬라어는 ‘아멘 아멘’(ἀμὴν ἀμὴν)입니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란 말(κλαύσετε καὶ θρηνήσετε ὑμεῖς)에서 ‘곡하다’란 단어(κλαίω)는 ‘울다, 곡하다, 탄식하다’( to weep, mourn, lament)는 뜻인데, 특히 큰 소리를 내어서 우는 것(weep aloud)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애통하다’는 단어(θρηνέω)는 ‘비통해 한다, 소리내어 울다’(to lament, wail)는 뜻인데, 역시 ‘큰 소리를 내면서 우는 것’(cry out loud, mourn, lament, especially audibly, wail)을 가리킵니다.
<세상>이란 단어(κόσμος)는 ‘질서, 세계, 우주’(order, the world, universe)라는 뜻인데, 이것은 집합적 단수(collective singular)로서 ‘세상 사람들, 세상 거주민들’( the inhabitants of the world)을 가리킵니다.
세상이 <기뻐하다>는 단어(χαίρω)는 ‘기뻐하고, 기뻐서 서로 인사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to rejoice, be glad, a salutation: Hail)을 가리킵니다.
<근심하다>는 단어(λυπέω)는 ‘근심하다, 고통하다’(to distress, grieve)란 단어인데, ‘심각하게 근심하거나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서 고통하는 것’(severe sorrow and grief: even used of the pain of childbirth)을 가리킵니다.
<기쁨>이란 단어( χαρά)는 ‘기쁨, 즐거움’( joy, delight, gladness)을 가리키는데,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앎으로써 얻는 기쁨’(the awareness of God's grace, favor; joy and grace recognized)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기쁨이란 단어와 은혜(χάρις)란 단어는 어원이 같습니다.
1.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바로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것과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분위기는 예루살렘에 운집한 300만명의 군중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시면, 어떤 장관 자리 하나 차지할까 궁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론가 떠나가신다고 하시고, 또 다시 오신다고 하시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것입니다.
3.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는 무척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오래 살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4.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것 때문에,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갈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5. 예화
(1) 제 친구중에 미국 국무성의 고위 관리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고향 부모님은 평생 시골에서 가난하게 농사짓고 사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교와 대학원을 1등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박사 따고, 미국 국무성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출세를 했습니다.
지금부터 약 40년 전에, 좋은 집을 갖추고, 모든 것을 갖추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미국으로 모셔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 부모님이 미국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시골 부모님은 미국에서 출세한 아들을 가서 보려고, 기쁨이 대단했습니다.
비록 시골에 있어도, 마음만은 이미 미국에 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온통 미국 생각 아들 생각으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시골에서 고생하며 사는 것이 하나도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2) 이것은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살 생각을 하시는 성도님들은 모든 것이 기쁨이요, 즐거움인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면서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우리는 우주여행을 멋있게 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여행을 하다가 믿는 성도들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며칠 전 발표를 보니까, 단 며칠 우주여행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값이 100억 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지구를 타고, 수 십 년간 우주여행을 하다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6. 그런데, 미국을 가게 되신 친구 부모님이 미국에 가서 살려고 하시는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챙기느라고 분주했습니다.
아들은 모든 것이 있으니,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말고, 그냥 맨몸으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시골에서만 사시던 부모님은 막상 필요한 이것저것을 챙기려고 준비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고추장 된장부터, 옷 이부자리, 바느질 할 것, 빨래할 도구, 청소 도구, 낫과 호미와 삽, 농사 도구들, 심지어 호롱불까지 챙기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들이 와서 부모님을 모시고 갈 때는, 여러 달 동안 챙겼던 물건들을 하나도 안 가지고 가고, 그냥 부모님 몸만 달랑 모시고 갔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전압이 100볼트였고, 미국은 200볼트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쓰던 전기제품을 미국에서는 하나도 쓸 수 없었습니다.
7.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살 텐데, 세상 것 하나도 가지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하늘나라 가서 살게 될 시민권과 비행기 표만 준비하면 됩니다.
하늘나라 시민권은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가는 비행기 표는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은 하나도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서 쓰지 못합니다.
다 버리고 갈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모든 좋은 것들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 하늘나라 시민권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 시민권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
8. 하늘나라는 너무도 좋은 곳입니다.
이 세상과는 완전히 차이가 납니다.
이 세상 것은 죽고 낡아지고, 쇠하여 지고, 썩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것들은 불 말과 불 병거처럼, 죽지도 않고, 낡아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영광스러운 것들입니다.
우리가 세상 어떤 곳을 보고 감탄한 것보다도, 하늘나라는 훨씬 더 감탄스러운 곳입니다.
아마 가시게 되면, 너무나 좋아서 탄성을 올리실 것입니다.
너무나 좋다고 끊임없이 감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것에만 취해서 살지 마시고, 하늘나라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 것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마시고,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살이가 비록 좀 힘들고 어렵더라도, 영광스런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영광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넘치는 하루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164장>
오랫동안 고대하던 천년왕국 이를 때, 주의 신부 공중으로 올라 가겠네. 항상 깨어 기도하며 어서 준비합시다, 우리 주님 세상 다시 오시네
우리 주님 세상 다시 오시네, 할렐루야 주님 다시 오시네, 악한 마귀 결박하고 세상 다스리시려, 할렐루야 주가 다시 오시네
21-22절. 예수께서 부활하시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1절.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아니 하느니라.
새번역: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성경: 해산할 날이 가까워진 여자는 겪어야 할 진통 때문에 근심한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고통을 잊게 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여인이 출산할 때마다,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고통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기쁨으로 인하여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Whenever a woman is in labor=산고 she has pain, because her hour has come; but when she gives birth to the child, she no longer remembers the anguish because of the joy that a child has been born into the world.)
English Standard Version: 여인이 출산을 할 때면 때가 되었으므로 슬퍼하게 되지만, 아이를 분만하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기 기쁨으로 인해,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When a woman is giving birth, she has sorrow because her hour has come, but when she has delivered the baby, she no longer remembers the anguish, for joy that a human being has been born into the world).
New Living Translation: 그것은 여인이 출산의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 여인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여인은 새로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 때문에, ㄱ 산고가 기쁨으로 변한다. (It will be like a woman suffering the pains of labor. When her child is born, her anguish gives way to joy because she has brought a new baby into the world).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근심하나
ἡ γυνὴ ὅταν τίκτῃ, λύπην ἔχει,
the woman when she is giving birth, pain she has,
직역하면 ‘여인이 출산하게 될 때, 그는 고통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해산하게 되면’(τίκτῃ)는 현재 가정법 동사이고(she is giving birth), ‘근심하나’에서 동사(ἔχ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has), 여인이 아기를 낳으면서 계속 고통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ὅτι ἦλθεν ἡ ὥρα αὐτῆς·
because has come the hour of her
직역하면 ‘그녀의 시간이 왔기 때문에’란 뜻입니다.
‘이르렀으므로’(ἦ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as come) 해산할 때가 심각하게 다가온 것을 가리킵니다.
아이를 낳으면
ὅταν δὲ γεννήσῃ τὸ παιδίον,
when but she brings forth the child,
직역하면 ‘그러나 그녀가 아기를 낳았을 때’란 뜻입니다.
‘낳으면’(γεννήσῃ)은 부정과거로서 결정적으로 성공적으로 낳은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아니 하느니라.
οὐκέτι μνημονεύει τῆς θλίψεως,
no longer she remembers the anguish,
직역하면 ‘그녀는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억하지’(μνημονεύει)는 현재형으로서 계속 기억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διὰ τὴν χαρὰν ὅτι ἐγεννήθη ἄνθρωπος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because of the joy that has been born man into the world.
직역하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는 그 기쁨 때문에’란 뜻입니다.
‘태어났다’(ἐγεννή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입니다(has been born).
1. <해산하다>는 단어(τίκτω)는 ‘출산하다, 낳다, 생산하다’(to beget, bring forth, be born, produce, beget, yield)는 뜻입니다.
<근심>이라는 단어(λύπη)는 ‘육체나 마음의 고통과 근심, 슬픔’(pain of body or mind, grief, sorrow)으로서 ‘사람을 낙심하게 만드는 마음의 큰 고통’(heavy, heart-sorrow and grief that brings a person down)을 가리킵니다.
<아이를 낳으면>이란 말에서 ‘낳다’는 단어(γεννήσῃ)가 부정과거형(aorist)인 것은 산모가 출산의 고통을 하다가 아이가 팍하고 나와서 출산이 완성된 것을 나타냅니다.
<사람 난 기쁨>에서 ‘사람’이란 단어(ἄνθρωπος)는 ‘사람’(a man, human, mankind) 특히 ‘인류 중에 한 사람’(a man, one of the human race)을 가리킵니다.
‘난’이란 단어(γεννάω)는 ‘낳다’(to beget, to bring forth, give birth to)는 뜻인데, 특히 ‘후손을 낳은 것’( properly, beget and procreate a descendant, produce offspring)을 가리킵니다.
‘기쁨’이란 단어(χαρά)는 ‘기쁨, 즐거움’(joy, delight, gladness)을 가리키는데,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앎으로써 얻는 기쁨’(the awareness of God's grace, favor; joy and grace recognized)을 가리킵니다.
<고통을 기억치 아니 하느니라>에서 ‘고통’이란 단어( θλῖψις)는 ‘환난, 박해, 고통, 불행’(tribulation, persecution, affliction, distress)을 가리키는데, 특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환난 고통’(a tribulation, especially when feeling there is no way of escape)을 가리키‘며, ‘기억하다’란 단어(μνημονεύω)는 ‘기억하다, 회상하다, 진술하다’(to call to mind, remember, make mention of)는 뜻입니다.
즉 여인이 출산을 하고나면, 아기를 낳은 기쁨 때문에, 출구가 보이지 않던 해산의 환난 고통을 다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잃고 나서 절망과 고통으로 애통할 것이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출산의 기쁨과 같은 기쁨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새번역: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이와 같이 너희도 지금 다 슬퍼하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보게 될 때는 너희에게 기쁨이 넘칠 것이며 아무도 너희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므로 너희가 또한 지금은 근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볼 것이니, 그러면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고, 아무도 너희에게서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Therefore you too have grief now;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r heart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your joy away from you.)
New International Version: 너희에게도 그렇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고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것이니, 너희가 기뻐할 것이고, 아무도 너희의 기쁨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So with you: Now is your time of grief, but I will see you again and you will rejoice, and no one will take away your joy.)
New Living Translation: 그래서 너희가 지금은 슬퍼하고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기뻐할 것이고, 아무도 너희에게서 그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다. (So you have sorrow now, but I will see you again; then you will rejoice, and no one can rob you of that joy.)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καὶ ὑμεῖς οὖν, νῦν μὲν λύπην ἔχετε·
also you therefore, now indeed grief you have;
직역하면 ‘그러므로 지금은 참으로 너희가 근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너희가’(ὑμεῖς)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지고 있다’(ἔχετε)는 현재형입니다(you have).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πάλιν δὲ ὄψομαι ὑμᾶς,
again but I will see you,
직역하면 ‘그러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볼 것이다’는 뜻입니다.
‘보리니’(ὄψομαι)는 미래형입니다(I will see).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καὶ χαρήσεται ὑμῶν ἡ καρδία,
and will rejoice your the heart,
‘기쁠 것이요’(χαρήσεται)도 미래형입니다(will rejoice).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καὶ τὴν χαρὰν ὑμῶν οὐδεὶς αἴρει ἀφ’ ὑμῶν.
and the joy of you no one take away from you.
직역하면 ‘너희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아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빼앗아가지’(αἴρει)는 현재형으로서(take away) 성도들의 기쁨을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하고 성도가 현재적으로 계속 누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근심하나>란 말(λύπην ἔχετε)은 ‘근심을 갖고 있다’(have sorrow)는 뜻이고, ‘근심’이란 단어(λύπη)는 ‘육체나 마음의 고통과 근심, 슬픔’(pain of body or mind, grief, sorrow)으로서 ‘사람을 낙심하게 만드는 마음의 큰 고통’(heavy, heart-sorrow and grief that brings a person down)을 가리킵니다.
<보리니>에서 ‘본다’는 단어(ὁράω)는 ‘본다, 인식한다, 경험한다, 분별한다, 안다’(to see, perceive, experience, perceive, discern, beware)는 뜻으로서 ‘마음을 가지고 보고, 영적으로 보고, 내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보는 것’(to see with the mind i.e. spiritually see, i.e. perceive with inward spiritual perception)을 가리킵니다.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에서 ‘마음’이란 단어(καρδία)는 ‘마음, 내적인 자아, 중심’(the heart; mind, inner self, center)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주님의 부활을 보고 제자들이 마음 중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기쁠 것이요’에서 ‘기쁘다’는 단어(χαίρω)는 ‘기뻐하고, 기뻐서 서로 인사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to rejoice, be glad, a salutation: Hail)을 가리킵니다.
<빼앗는다>는 단어(αἴρω)는 ‘제거하다, 빼앗다, 들어 올리다, 옮기다’( to take away, remove, raise, take up, lift up)는 뜻입니다.
1. 여성들이 해산할 때가 되면, 생사가 달린 일이므로,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난 기쁨으로 인하여,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립니다.
2. 아기를 낳을 때는 엄마의 온 몸이 뼈마디가 다 벌어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면서, 아기를 낳습니다.
너무 진통이 오래 가면, 산모가 까무러치기도 합니다.
3. 예화
한번은 제가 지도하는 여자 청년이 첫 아기를 낳는다고 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진통을 해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서, 촉진제 주사를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아기가 잘 나오지 않고, 산모는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의사는 아기의 머리에 흡입기를 대고 아기 머리를 뽑아내고, 간호사는 산모의 배를 누르면서 한 시간이나 진땀을 흘리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나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함께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 아기가 완전히 빠져 나왔는데, 울지도 않아요, 그래서 죽은 줄 알았어요.
억지로 빼낸 아기 머리가 한 달이 지나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더라고요.
하여간, 아기 낳을 때, 산모의 진통을 보면, 혹시 죽지나 않을까, 너무도 초조하고 불안하여 기도 안 할 사람이 없습니다.
3.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면, 세상에 아기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않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런 산고를 심하게 겪은 산모라도, 일단 아기를 낳고 나면, 그 고통을 잊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아기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마취제가 되어서, 실제로 몸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아갈 것 같은 기쁨과 새 힘이 솟아나서, 막 힘든 일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뼈마디가 다 벌어지고, 다 분해해 놓은 것과 같은 신체 각 부분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온전히 회복되는 데는 1, 2개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남자 아기를 낳으면, 1개월을 조리해야 하고, 딸아기를 낳으면 2개월을 조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성경 말씀대로, 아기를 낳으면 세상이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아니 합니다.
4. 그런데, 이 해산의 고통과 출산의 기쁨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써,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심판하시고, 영생천국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5. 참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세상을 떠나가심으로 근심에 빠졌으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큰 기쁨과 확신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6.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의 기쁨과 능력을 받아서, 믿음 생활 하고 복음 전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의미 있게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즉,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우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요,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우리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심으로써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7.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사람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기쁨과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참된 기쁨과 행복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충만히 모시는데 있습니다.
물론 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좋은 남편과 자식들도 필요하지만, 참된 기쁨과 행복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충만히 모신데서 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기쁨과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충만히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21장>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23-24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주시리라.
23절.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새번역: 그 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그 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면, 그 분이 그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In that day you will not question Me about anything. Truly, truly, I say to you, if you ask the Father for anything in My name, He will give it to you.)
English Standard Version: 그 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마다, 그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In that day you will ask nothing of me. Truly, truly, I say to you, whatever you ask of the Father in my name, he will give it to you.)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 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정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In that day you will no longer ask me anything. Very truly I tell you, my Father will give you whatever you ask in my name.)
New Living Translation: 그 때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 것도 물을 필요가 없다. 내가 진실을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가 아버지께 직접적으로 구할 것이고, 그러면 너희가 내 이름을 사용한 것 때문에, 아버지께서 너희 요구를 들어주실 것이다. (At that time you won't need to ask me for anything.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ask the Father directly, and he will grant your request because you use my name.)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καὶ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ἐμὲ οὐκ ἐρωτήσετε οὐδέν.
and in that the day, of Me not you will ask nothing.
‘묻지’(ἐρωτήσετε)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ask).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Truly, truly, I say to you,
‘이르노니’(λέγω)는 현재형입니다(I say).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ἄν τι αἰτήσητε, τὸν Πατέρα
if whatever you may ask, the Father
직역하면 ‘만일 너희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면’이란 뜻입니다.
‘구하는’(αἰτήση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may ask)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단호하게 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δώσει ὑμῖν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He will give you in the name of Me
직역하면 ‘그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는 뜻입니다.
‘주시리라’(δώσει)는 미래형입니다(He will give).
<묻지 아니 하리라>에서 ‘묻다’는 단어(ἐρωτάω)는 ‘묻다, 질문하다, 요구하다, 기도하다’(to ask, question, request, make a request to, pray)는 뜻인데,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요청하는 것’(requests from a preferred position, requests special consideration because of the special relationship involved)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 때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 실 때처럼 예수님께 무엇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요청을 들어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구하는>이란 단어(αἰτήσητε)는 부정과거형으로서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구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구한다’는 이 단어(αἰτέω)는 ‘구하다, 요청하다, 간청하다, 요구하다’(to ask, request, petition, demand)는 뜻입니다.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주시리라>는 말( δώσει ὑμῖν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에서 ‘이름’(ὄνομα)이란 ‘이름, 권위, 대의명분’(a name, authority, cause)을 가리키고, ‘주신다’는 단어(δίδωμι)는 ‘준다, 제공한다, 수여한다, 허락한다’( to give, offer, bestow, grant, offer, permit)는 뜻입니다.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새번역: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이제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며 너희 기쁨이 넘칠 것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Until now you have asked for nothing in My name; ask and you will receive, so that your joy may be made full).
New Living Translation: 너희가 이전까지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내 이름을 사용하여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니, 너희가 풍성한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You haven't done this before. Ask, using my name, and you will receive, and you will have abundant joy).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ἕως ἄρτι οὐκ ᾐτήσατε οὐδὲν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Until now not you have asked nothing in the name of Me;
‘구하지’(ᾐτή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have asked) 믿음을 가지고 단호하게 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αἰτεῖτε, καὶ λήμψεσθε,
ask, and you will receive,
직역하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구하라’(αἰτεῖτ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ask) 계속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받으리니’(λήμψεσθε)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receive).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ἵνα ἡ χαρὰ ὑμῶν ᾖ πεπληρωμένη.
so that the joy of you may be full
‘충만하리라’에서 동사(ᾖ)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may be).
<내 이름으로>에서 ‘이름’이란 단어(ὄνομα)이란 ‘이름, 권위, 대의명분’(a name, authority, cause)을 가리킵니다.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에서 ‘구하다’는 단어(ἐρωτάω)가 23절에서는 ‘묻다’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ἐρωτάω)는 ‘묻다, 질문하다, 요구하다, 기도하다’(to ask, question, request, make a request to, pray)는 뜻인데,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요청하는 것’(requests from a preferred position, requests special consideration because of the special relationship involved)을 가리킵니다.
<받으리니>에서 ‘받다’란 단어(λαμβάνω)는 ‘받다, 취하다, 얻다’(to take, receive, get)는 뜻인데, 받는 사람의 의지와 적극성이 강조되어 있는 단어(emphasizes the volition and assertiveness of the receiver)입니다.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에서 ‘기쁨’이란 단어(χαρά)는 ‘기쁨, 즐거움’( joy, delight, gladness)을 가리키는데,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앎으로써 얻는 기쁨’(the awareness of God's grace, favor; joy and grace recognized)을 가리킵니다.
‘충만하다’는 단어(πληρόω)는 ‘가득채우다, 완성하다”(to make full, to complete, fill, fulfill)는 뜻인데, 개인의 용량을 가득 채우는 것(fill to individual capacity)을 가리킵니다.
1. 우리가 은행에 가서 돈을 찾을 때는, 예금한 사람의 이름과 도장을 가지고 가야 찾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돈을 찾으려고 해도, 못 찾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 은행에 입금된 축복들은 예수님 이름으로라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하늘나라의 모든 보화는 예수님 이름으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하늘나라 보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나 공자의 이름으로 찾으려고 해보아야 찾을 수 없습니다.
2. 예수님 이름으로 저축된 천국 보화가 무엇입니까?
(1) 첫째, 죄 용서입니다.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앞에 죄를 얻으면,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잘못한 것을 사람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 지은 것은,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를 빌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십니다.
(2) 둘째, 영생입니다.
천국 영생이란 너무도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1백년 밖에 살지 못하는데, 2백살까지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2백 살까지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 영생이란 이 세상의 영생과 비교할 수 없이 너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를 가지고도 천국 영생을 살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천국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착해도 천국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만 천국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여 천국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 믿으신 성도님들은 이미 천국 영생 얻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셋째, 천국 시민권입니다.
세상에서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미국 국회의원 두 명이 추천하면, 명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많은 돈을 드려서 미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돈 가지고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만 천국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이름으로 천국 시민권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 믿으신 성도님들은 천국 시민권을 얻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넷째, 하늘나라 비행기표입니다.
지금 별 나라를 여행하는 데, 100억 원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 가는 비행기표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만 하늘나라 비행기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나라 가는 비행기표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 믿으신 성도님들은 하늘나라 비행기표 얻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다섯째,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①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유일하게 천국의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나 천국에서나 똑 같이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이 세상이 불 탈 때, 모두 타버립니다.
우리 몸도, 우리 돈도, 우리 집도 다 타버립니다.
그러나, 성령님만은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천국 들어갈 때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뜰 때, 아무것도 가지도 가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의 은혜만은 천국까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② 그리고, 세상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지혜도 능력도 기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성령님의 은혜는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이름으로 하늘나라의 것을 구하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죄 용서를 구하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영생을 구하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름으로 영생천국과 성령님의 은혜를 가득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