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3:1-14:12절) 열두 명의 정탐꾼 150 오늘날은 정보(情報)의 홍수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정보나, 자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것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서 결론을 내리느냐?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이나,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는 정보를 너무나 믿어버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의해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텔레비전 건강 프로에서 어느 전문 교수가 어떤 식품이 우리 몸에 좋다고 하면, 바로 그 순간 슈퍼마켓에서 그 식품은 동이 나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이나, 정보에서 조종(操縱)되기 쉬운 상태에 있는 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때, 두 사람의 사절(使節)을 일본에 보내서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의사가 있는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갔다 온 두 사절의 의견이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는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정말 우리나라를 쳐들어 올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풍신수길(豐臣秀吉)은 인물이 왜소하고, 보잘 것 없어서 절대로 우리나라를 침략할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보고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조정(朝廷)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결국 서로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느라고 일본의 공격에 대해 준비를 해 놓지 못한 상태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이때 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는데, 사실은 십만양병설도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을 막으려면, 오십만 명에서 백만 명의 군대를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아마 제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전쟁 준비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둘 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풍신수길(豐臣秀吉)을 보고, 느낀 소감을 가지고 말을 하니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반된 정보를 가지고 왕(王)이나, 신하(臣下)들이 제대로 된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엄청난 양의 정보(情報)가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정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기 멋대로 지껄여대는 쓰레기 정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하고, 올바른 믿음의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방에 있는 청년들이나, 사업가들은 정보에 있어서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수도(首都)나, 유력한 기관에서 근무하면, 거기서 듣는 것 자체가 모두 다 중요한 정보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約束)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約束)의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신앙 없는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세상에서 완전히 실패한 자들이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가운데서도 길을 뚫는 자들이며, 불가능한 것을 해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결코 지치지 않는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Ⅰ.이스라엘의 정탐꾼 선정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가나안의 입구까지 도달했습니다. 원래 애굽을 출발해서 광야로 해서 가나안 남부 입구까지 오는 데는 대략 40일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言約)을 체결하고, 또 성막을 만드는 동안 일 년이 걸렸기 때문에 일 년 사십일 정도 되어서 가나안의 납부 입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시하시기를 이스라엘 각 지파 가운데 한 사람씩 족장을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을 하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3:1-3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된 사람이라”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갑자기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정탐꾼으로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기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지금 가나안 입구까지 끌고 오셨으면, 그냥 밀고 들어가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혼동과 고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첫째, 우리가 정보를 수집을 하는 것이나, 어떤 것에 대하여 미리 알아보는 것은 믿음과 전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하는데, 그 회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아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즉 이러한 행위는 그 회사에 대한 나의 믿음에 전혀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때로는 우리가 어느 정도 미리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정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결혼을 하는데, 상대방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알아보는 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너무나 믿음이 좋아서 전혀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결혼을 해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미리 어느 정도 상대방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믿음과 인간적인 노력을 전혀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리 알아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알아보는 것에 불과하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미리 조사하게 하신 것은 가나안 땅이 얼마나 비옥(肥沃)한 곳인지, 미리 확인하게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하나님이 주신 곳이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정탐을 통해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 땅에는 성(城)들이 있고, 무기(武器)도 뛰어나서 거인(巨人) 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것은 이미 정탐꾼들이 가지고 온 결론적인 말을 그대로 백성들이 믿고, 믿음이 흔들려 버린 이것입니다. 정보는 어디까지나 정보에 그쳐야 하는데, 이들은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때 정탐꾼들이 하는 말을 듣고,‘과연 가나안 땅은 축복(祝福)의 땅이구나.
그러나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이것은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정탐꾼들을 보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결론을 내리실 시간을 주지 않고, 자기들이 곧바로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즉‘우리는 결코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것이 그들에게 손해가 아니었느냐? 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정보가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리고 성(城)을 정탐했을 때는 정탐꾼들이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모르고 당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이 닥칠 때, 모든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무 것도 몰라야 멋도 모르고 부딪치는 가운데 훈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데, 미리 연단 받을 것을 알려주시면, 우리는 기를 쓰고 도망을 쳐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가운데 정신없이 훈련을 받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나안 땅 안에 들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탐꾼을 보내었느냐? 보내지 않았느냐? 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즉 학생들이 시험을 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시험은 어디까지나, 시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동안 공부한 것을 평가하는 것에 불과하지, 그것 때문에 죽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 완전히 실패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험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못한 평가가 내려질 때, 실망을 하고 충격을 받고 심지어 자살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위대한 것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위대한 믿음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이나, 열등함을 인정한다 해서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거나, 한 평생 내내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상태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4-15절을 보면 이스라엘 정탐꾼들의 소속된 지파와 이름이 나옵니다. 모두 열두 지파에서 각 한명씩 열두 명의 족장들이 선발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 족장이 아니라, 상당히 젊은 족장들이었습니다. 왜냐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하려면, 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15절까지 나오는 지도자들은 오늘날로 표현하면‘차세대 지도자들 급’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아직 젊음이 있고, 용기가 있고, 미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 보고한 것을 보면, 늙은이보다 더 생각하는 것이 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고생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늙은이 이상으로 사상이 고루(固陋)하고, 따분하고, 한 가지 말만 자꾸 또 하고, 또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정신이 고루(固陋)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단지 젊다고 해서 생각이 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람만이 진정으로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에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대표를 뽑지 아니하시고, 매 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를 뽑으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각 자가 자기가 들어갈 땅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지 말고,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만 듣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이 뭐라고 하더라도 줏대 없이 흔들리지 말고, 모두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Ⅱ.열두 정탐꾼들의 활동 모세는 열두 사람의 정탐꾼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조사를 해봐야 하는지 지시를 했습니다. 17-20절)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게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즉 아무도 가나안 땅에 살아본 적도 없었고,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도대체 가나안 땅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신앙이 어릴 때는 모르고 당하는 것이 휠씬 낫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엄청나게 고민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어릴 때는 멋도 모르고 그냥 닥치는 대로 부딪치는 것이 나을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르고 그냥 가나안 땅으로 밀고 들어갔더라면, 상당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런 믿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열두 사람의 정탐꾼들은 정말 열심히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21-22절)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신 광야는 가장 남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인데, 거기서부터 가장 북쪽에 있는 하맛 어귀 르홉까지 정탐을 했습니다. 열두 명이 모두 함께 움직였는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누어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한쪽은 산지로 올라가서 헤브론을 정탐하였는데, 거기는 거인(巨人) 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거인들 중에 아히맛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습니다. 열두 사람의 정탐꾼들은 정말 열심히 가나안 땅을 조사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탐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안 땅이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서른 개가 넘는 작은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3-24절)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대하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어떤 곳이냐? 는 것은 포도 한 송이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열두 정탐꾼들은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서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보통 알이 큰 포도를‘거봉’이라고 합니다. 포도 알이 엄청나게 큰 포도 종류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의 포도는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땅이 기름진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스골’이라는 지명(地名)이 나오는데‘송이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여겨서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이 어마어마한 슈퍼 포도를 보았고, 그것을 가나안 땅의 증거물로 가져왔던 것입니다. 아마 이 한 송이 정도는 열 명 이상이 먹을 정도의 포도였을 것입니다. 한 송이가 이 정도라면, 포도밭에 있는 포도는 어떻겠습니까? 정말 가나안 땅은 어마어마한 축복(祝福)의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드디어 돌아와서 모세 앞에서 보고를 했습니다.
25-27절)사십 일 동안에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에 과일이니이다.”
이스라엘의 정탐꾼의 입어서 제일 먼저‘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나안 땅은 너무나도 좋은 땅이었고, 축복(祝福)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데 중요한 것은‘그러나’라고 하면서 엄청나게 부정적인 보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8절)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문제는‘그러나’에 있습니다. 아무리 가나안 땅이 비옥하고 좋지만‘그러나’우리의 힘으로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땅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은 튼튼하고, 거기에다가 거인 족들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열두 정탐꾼들이 본 것은 전부 다 사실이었습니다. 그 땅 사람들은 강한 사람들만 있었고, 튼튼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城)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아낙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거인 족들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로 말하면 신앙이 없는 정탐꾼들의 말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현실을 어떤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입니다. 즉 우리 힘으로 안 되는 것은 분명한데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닙니다. 정보를 어떻게 해석(解釋)하고, 어떤 눈으로 받아들이느냐? 는 것입니다.
갈렙은 이것을 믿음으로 해석(解釋)을 했습니다. 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갈렙은 가나안 정탐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기까지 왔고 정말 우리 눈앞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있으니 우리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런 까닭에‘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땅을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도 못하시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족장들은 불신앙의 해석(解釋)을 내렸습니다. 31-33절)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갈렙과 같이 올라갔던 족장들은 우리는 결코 가나안 땅을 칠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나안을 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서 인간적인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즉 32절)...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왜 사람을 삼키는 땅일까? 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그 땅을 보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즉 어떤 힘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좋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계속 전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 땅은 사람을 살리는 땅이 아니라, 사람을 삼키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장들은 가나안 땅이 너무나 좋으니까 앞으로 두고두고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싸울 것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골치 아픈 땅은 손대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족장들이 과욕(寡慾)을 부리지 않고, 미리 포기하는 것은 훌륭한 자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오르지 못할 나무이며, 사람을 삼키는 땅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모든 교회는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결국은 다 거기가거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우리가 다 그렇고 그런 신앙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냐? 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순절의 축복(祝福)을 우리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느냐? 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족장들은 가나안 족속들 중에서‘네피림’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네피림’은 노아홍수전의 무법자(無法者)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아마 무법자(無法者)들이 날뛰었던 것 같고, 아낙 자손이 설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을‘메뚜기’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여기서‘메뚜기’라고 하는 것은 발로 한번 밟기만 하면, 어스러지는 힘이 없는 존재이고, 뛰어봐야 멀리 가지도 못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메뚜기 족’으로 자처를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와 비슷했습니다. 즉 숫자는 엄청나게 많은데,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하루는 여기 하루는 저기 돌아다니면서 만나나 갉아 먹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자기들을‘메뚜기’로 보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을 한다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메뚜기 한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미물(微物)로 표현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하나님께서는 야곱을‘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부르신 적이 있었습니다. 지렁이는 그야말로 존재의 의미를 알기 어려운 미물(微物)이고, 징그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지렁이’라고 부르면‘우리는 지렁이가 아니라’고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손에서 연단 받고 있는 존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결론은 항상 하나님이 내리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너희들은 메뚜기니까 전부다 죽으라.’고 하시면, 죽는 것이고‘너희는 메뚜기가아니라’고 하시면, 우리는 메뚜기가 아닌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한번 들어가 보고 난 후에 자기들이 얼마나 이 세상 현실에서 동떨어진 자들인지 잘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그들은 숫자만 많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위대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메뚜기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보고, 밥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요즘 뭐 하시느냐? 물으니까‘그냥 놀고먹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저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이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Ⅲ.이스라엘 백성들의 통곡 지금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사람의 의견이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열두 명 중에서 두 명은‘우리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열 명은‘우리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원래 이것은 정탐꾼들이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정탐꾼들이 할 일은 가나안 땅이 어떻더라는 정보만 주면 되는 것이지, 가나안 땅을 공격한다. 혹은 안한다 하는 것은 그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煽動)을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14:1-3절)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백성이 톡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밤새도록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들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는 소리는 마치 들개들이 우는 소리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통곡을 했다고 했는데, 이것은‘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뜻입니다. 즉 지금까지 광야의 긴 여정 가운데 온갖 고생을 다 참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와 보니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모세에게 속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쉽게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믿고, 스스로 망(亡)했다고 판단을 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들은 가나안 땅이 빈 땅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즉 가나안 땅은 사람도 없고, 성(城)도 없고, 광야같이 임자가 없는 땅이어서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공짜로’가나안 땅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군대(軍隊)가 있고, 성(城)이 있고, 거인(巨人)족이 있으니까 결국 전쟁(戰爭)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이런 전쟁(戰爭)이 너무나도 싫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戰爭)에 대하여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바로에게 복종만 하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는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굳이 하나님만 믿어야 할 이유도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필요도 없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면 되는데, 왜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고생을 하게하고, 또 가나안 땅에서 전쟁(戰爭)까지 해야 하는지를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즉 위대한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위대한 예배, 그리고 위대한 새로운 삶, 이런 비-전이 없으니까 결국 세상적인 기준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엄청나게 손해를 본 것 같아서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출애굽이나, 시내 산이나 모두 다 때려치우고, 하나님을 모르던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14:4절)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향은 애굽이었습니다. 즉 옛날 어렸을 때, 고기 잡고 수박 서리하던 때로 돌아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즉 우리 고향은 우리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본향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부정했을 때, 모세와 아론이 땅에 엎드렸습니다.
5절)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우리가 흥분해서 엄청난 폭언(暴言)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맞상대해서는 됩니다. 우리는 그 분노(忿怒)와 그 폭언(暴言)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분노(忿怒)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함께 정탐을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분명하게 신앙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6-9절)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말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입니다. 왜냐면 전쟁(戰爭)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쟁(戰爭)은 인간들의 전쟁(戰爭)이 아니라, 신(神)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없다고 했으며, 우리의 보호자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우리의 먹이’라고 했습니다. 밥상을 차려 놓으면, 먹으면 되는 것이지, 우리가 굳이 그들이 강(强)하든지 혹은 성(城)으로 되어 있든 해서 겁을 집어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도 동일하게 현실을 대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강(强)하고 직장(直腸)은 높은 성(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네피림 족이나, 아낙 자손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어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밥인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세상에서 살 것이고, 그것도 가장 아름답고 풍성하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히 실망하셨습니다.
11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무가치한 자들이 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반드시 지금까지 내가 은혜 받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대한 출애굽을 빼 놓고, 가나안의 적(敵)들만 생각하니까 하나님을 멸시하고, 자기 자신들도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은혜 받은 것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정(心情)은 정말로 이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은 전혀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날 이 세상의 어떤 어려운 현실 문제에 직면하다라도 겁을 집어 먹거나 자기를 비하(卑下)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은 내 밥이라고, 고백하고, 믿음으로 자기 것을 챙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고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눅9:23)......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정직과 성실로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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