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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허준 (許浚) 第97話>
- 이은성 지음 / 소설 동의보감
七年 戰爭 中에서 第一
내의원의 분란은 오래지 않아 가라앉았다.
왕명이 지고한 것이로되 언로는 신하의 소임 속에 보장된 것이요, 설사 임금의 영이라 할지라도 통념에 반하여 관작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체의 인적 기본을 양반, 상민, 천민으로 엄중히 구분해 각 출신의 출세의 한계를 규정한 마당에서 설사 하천들이 발군의 공이 있다 한들 종5품이 한계일진대 육조의 판서나 참판 반열인 종2품의 직위는 너무나 외람되며 장래의 인사의 기준을 문란케 한 표본이 된다는 것이 조정의 주장이었다.
"온 백성이 날로 어육이 되어가는 그 심대한 우환을 막은 공이 그들에게 있는데도 말인가!"
임금 선조의 노기 어린 한마디가 있었으나 바탕이 천한 출신들이고 보면 속량만으로 하해와 같은 왕은이라며 대신들은 후퇴하지 않았다.
군신간의 논란은 국초에도 있었다. 세종임금이 장차 조선의 새로운 문물을 발흥코자 나라 안에 발명의 장인들을 모을 제 동래 관아의 노예인 장영실에게 상의원의 종5품 관직을 내렸을 때 하천배에게 벼슬을 줌이 불가하다고 온 조정이 들고 나서 두 달여를 두고 시끄러웠으나 초지대로 당신의 사람 봄을 관철시켜 마침내 세종조의 저 찬란한 문화의 한모퉁이를 장식케 했으나 조정은 조정대로 반대의 명분이 매서웠다.
장영실이 비록 결과적으로 측우기를 비롯, 이 나라 농사에 기여한 바가 없다 하지 아니할지나 종당엔 그가 임금의 어가를 무너뜨려 죄를 지은 사실로 반박했고 이에 선조가 다시 그 장영실이 몇 가지의 발명으로 벼슬이 호군(정4품)에 이르렀던 사실을 들고 장영실의 발명보다 왕실과 나라의 치병을 맡은 내의원의 공로를 높이 들어 초지를 물리지 아니했다.
그러나 신분에 관한 한 대신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러 들지 아니했다. 또 한번 목청을 돋우어 의원은 결코 문무양반의 동렬에 오를 수 없다는 성토 앞에서 마침내 월여에 걸친 승강이는 임금이 천거한 사람 중 일부에게는 벼슬을 내리지 아니한다는 타협안에서 낙착이 된 것이다.
내용인즉 이번 내환을 명목상 총지휘한 어의 양예수에게 가의대부를, 수도의 방역에 앞장선 여러 인물 중에서 안덕수, 이인상, 김윤헌 등에게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북방과 남도로 분주하던 인물 속에서는 상징적으로 이공기 한 사람만이 통훈대부(정3품 상하관)로 가자하여 군신간의 언쟁은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어의 양대감이야 명목상 그 작위가 가합하다 치세. 그러나 여타 인물들은 여역이 치발했던 지역에 코빼기 한 차례 내민 적도 없이 콧수염이나 뽑으며 한양바닥에서 재채기나 하던 자들인데 어째서 허준이나 이명원을 젖혀놓고 공치사를 받는단 말인가!"
"세상사 일일이 시시비비 가릴 수 있더냐. 다행히 이공기 한 사람이라도 용케 거명된 것이 장래를 위한 희망으로 알아야지."
"장래를 위한 희망이라니?"
"벼슬이 올랐대서 명목뿐이지, 의원인데 고을 하나 떼어 맡겨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동관이던 사람이 동반정직에 서임 됐다는 사실만이라도 자축하면 되어."
"본시 떡메 치는 자 따로 있고 떡 먹는 자 따로 있더란다고 의원 빛 보는 구멍은 피고름 짜는 데 있지 않고 조관님네 철철이 보약 의논이나 하러 다니는 게 직통인 법이라고. 헝, 젠장할 ..."
불만과 불평은 그러나 한바탕 욕질과 종주먹질 속에서 가라앉고 승차한 인물들을 모아 내의원 자축연이 있던 날쯤에는 그 불평객들도 이미 앞서간 새로운 상관들에게 다투어 축하 인사하기에 바빴다.
"특히 그대들을 볼 낮이 없네."
내의원 자축연이 끝나고 처음 거명되었다가 이름이 빠졌던 허준, 이명원, 남응명 세 사람을 마치 죄를 지은 듯한 얼굴로 바라보며 이공기가 두번째 같은 말을 했다.
아무래도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자축연이 끝나고 남대문 밖 객점으로 세 사람을 끌어들인 자리에서였다.
"사람도 ... 승차하여 영감이 되고 대감이 되는 건 그만치 내의원 짐을 더 진다는 뜻인데 왜 자꾸 미안하단 말씀이오."
연차가 훨씬 위인 남응명이 어제의 수하가 오늘은 세 품계나 높아진 상관이 된 이공기에게 웃고 말했다.
"그 존대 또한 듣기 민망하옵니다. 공이 없었다면 굳이 공을 고사하는 것은 아니나 제가 한 일 제가 익히 알고 세 분이 한 일 누구보다 제가 잘 아는 터에 내 공이 어찌 세 분보다 월등했으리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벼슬 끝줄 높은 곳이 아닌 바에야 이공이 왜 자꾸 민망하오, 자 잔이나 나누고 오늘은 이만 헤어집시다. 말만 듣던 호피를 얼결에 받았으나 정작 호랑이 가죽이 어찌 생겼는지 어서 끌러보고 싶소그려."
"저도 호피는 처음올시다.
이명원의 말에 이공기가 다시 미안한 듯이 시선을 떨구었다.
임금 선조는 자신이 거명한 의원 중 승차에 제외된 허준, 이명원, 남응명의 경우를 못내 아쉽게 여기는 듯했다. 제외된 세 사람 앞으로 특별히 호피 1령씩을 하사하여 이번 사지를 헤쳐 다닌 세의원의 노고를 따로 유념하고 있노라는 자상함을 보였다. 허준도 호피는 처음이었다.
궐내에 경사가 있거나 내의원에서 왕실의 작은 병이라도 치유했을 제 노고를 가상히 여겨 더러 사찬이 내려지는 경우는 있으나 이렇게 뚜렷한 물건-함부로 돈으로 살 수도 없는 호피를 기념으로 내려준다 함은 당사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내외에 밝히는 것으로 어사품을 받았다는 영예 외에 다음 연공 때 최우선으로 승차의 대상에 감안한다는 말없는 어명이기도 했다.
그날 네 사람의 술자리는 세 차례째 수표교 건너 시금동의 남응명의 집에서 통음 끝에야 파했다.
결국 통음이 된 것이다.
벼슬이 높아진 이도, 그 기회에서 제외된 쪽도 승차가 되었네, 아니 되었네, 변죽만 울렸을 뿐 기실 그들이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누구의 영달 이전에 조정에서 두 달여를 두고 소란히 떠들던 말-의원은 천업이요 의원 된 자는 양반과는 태생부터 천출이라 갈라쳐진 신분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차라리 천하다 여기는 자들만이 얽혀 사는 곳에서라면 서로 묻어지내니 별나지도 않다. 하나 천하의 내노라 하는 양반이 사는 한양에서는 싫어도 상대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아니 느낄 수가 없고 그 신분의 아픔을 이번처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모인 네 사람이 모두 그렇다. 인생에 대한 꿈을 꾸는 나이가 되는 스무 살 어간에서 너나없이 또래 중에서는 똘똘하다, 앞서 있다는 명석함을 촉망받았으되 벼슬길은 애초부터 바라볼 수 없는 신분이기에 그런 신분에게 열려 있는 몇 가닥 아니 되는 선택 중에서 의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요, 그 의업에 생의 보람을 찾아 헌신하던 차 또 한번 자신들의 출생의 비애를 맛본 것이 아니랴.
당하관이라 하나 정3품 동반에 섰으니 이공기야 이제 어디로 보나 천출의 모습일 수 없다. 근본 운운하며 마지막 어느 모퉁이에선가는 다시 거론이 될 수 있을지 모르되 당장 양반의 모습으로 빠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양반이 된들 ... '
통음 끝에도 결코 취할 수 없는 요 두어 달 겪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물의를 떠올리며 허준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반의 출생이었다면 나는 이 길로 들어서지 아니했을까? 들어선 걸 후회했을까?'
봄밤, 아니 이미 새벽, 애오개 긴 고갯길을 임금이 내린 호피 보따리를 한손에 들고 오르며 허준은 그 생각을 골똘히 했다. 물론 처음부터 출생에의 좌절을 맛보지 아니했다면 하필이면 의원의 길을 택하지 아니했기 십상이다.
출신에 회의도 느끼지 아니하고 태어난 고장에서
안주할 수 있었다면 애초 경상도 땅엘 왜 왔으며 유의태를 무슨 인연으로 만났으며 김민세 그 사람을 어디서 마주쳤으랴!
'추호도 후회할 거리가 아니도다.'
의원이 된 후 자기가 보고 겪은 14년째의 짧지 않은 생애를 떠올리며 허준은 새삼스러울 수도 없는 그 결론을 내리며 미소했다.
'의원도 벼슬이 높아지면 고작 수하들에게 호령이나 일삼는 한낱 고관으로 끝날 것이 아니겠는가.'
허준은 그건 싫다고 생각했다.
벼슬 높아지는 그것보다 끝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병자들에게 자기 또한 끝없이 도전해가는 그 길만이 자기가 보람을 느끼는 남은 생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 '
이번에 새로 겪은 병, 여역뿐이 아니고 자신이 침구에만 몰두하며 미처 돌아보지 못한 각 분야의 수많은 병, 이 세상의 병이라면 모두 대결하고 싶던 그 못다한 욕망을 어찌하랴 싶었다.
'이 세상 병을 모두!'
밀양 천황산에서 스승 유의태의 죽음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던 그 생애의 긴장을 다시 떠올리며 허준은 이제야말로 자기의 할일이 세상 곳곳에 얼마나 널려 있는가고 다짐을 했다.
고갯길 초입에서 자주 돌부리에 채던 허준의 걸음걸이가 자신의 자문자답 속에서 술이 깨며 차츰 똑발라갔다.
마루턱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내와 딸 숙영이었다.
"이 새벽에 웬일로?"
남편의 말에 딸 숙영이가 대답했다.
"할머님이 자주 내다보시고 어머님이 나오셨습니다."
열일곱 딸은 이미 달덩이 같은 처녀태가 났다.
허준은 말없이 어사품 호피를 그 딸에게 넘겼다.
"무언지 보따리에 비해 무척 가볍습니다."
숙영이 환히 말했고 허준이 대답했다.
"할머님 보료 대신 쓰실 귀물이다. 고이 들어라, 상감께서 내리신 것이니."
"상감마마께오서요!?"
"사찬이오니까?"
"사찬을 보료 대신 쓰오? 호피라 하오."
"호피? 호랑이가죽 말씀이오니까?"
아내의 말이 튀며 딸의 손에서 공손히 보따리를 받았다.
"나도 아직 보지 아니했소만 ..."
숙영이 한발 앞서 집으로 달렸고 스무 살 장성한 아들 겸이가 할머니와 달려나왔다.
호피는 장대했다. 밤눈에도 대호였다.
허준이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호피는 곧 인근의 평판이 되었다. 가뜩이나 병자들로 인해 사람이 끓는 집이었다.
자신이 내의원에 매인 관원이요 등청과 함께 맨 먼저 수행하는 소임이 왕실 각전에 문후가 우선이라 아침 정신을 맑게 가지고자 등청 시각 이 전에 찾아드는 병자는 받지 못하되 물어물어 찾아온 병자를 잘라 거절하긴 안쓰러워서 굳이 자기의 처방을 소원하는 이들에게는 퇴청시각 이후에 올 것을 이르니 그 퇴청시각에 즈음한 허준의 집은 연일 흡사 장날을 맞은 저자거리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그건 사랑채만이 아니었다. 지난 10여 년 세월 부인 이씨 또한 바탕에 지녔던 한학을 기초로 그 동안 남편으로부터 자주 부인병과 소아병에 관한 대강을 배우고 깨치니 함부로 처방하고 약 짓는 일은 아니해도 아비 못지않는 열성으로 의술에 야망을 태우는 아들 겸이와 함께 수많은 단골들을 사귀어 안채마당 또한 날이면 날마다 잔칫날의 부엌바닥처럼 인근의 아낙들로 붐볐다.
하나 단골이라 하여도 사람과 사람의 사귐이지 돈이 생기는 생업과는 달랐다.
"의원은 돈을 버는 성업이 아니다."라는 철칙을 고집스레 지키는 남편이요 그 남편의 소신을 자랑스러이 여기는 아내는 병자나 그 가족에게 그들 스스로 돈으로 사지 않아도 구해 먹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단방을 일러주거나 더러 귀 어두운 이들에게는 언문으로 자세한 처방을 적어주는 것이 다였다.
"돈을 안 받는 의원댁."
"약을 일러는 주되 약을 팔지 않는 의원댁."
그 두 가지 소문만으로 허준의 집은 밤도 낮도 없이 사람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허준의 단칸집이 10여 년 세월과 함께 사랑채 있고 안채 따로 넓어진 것은 저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달려왔다가 처방을 전해 듣고 돌아가 효험을 보았을 때 각자가 느끼는 고마움대로 사례차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아예 돈을 아니 받는다는 소문이 난 그 허준의 집 사랑채나 안채마루에는 그러나 누가 가져다놓은 것인지도 모르는 호박 두어 덩이, 찹쌀 몇 됫박, 팥 몇 되, 계란 서너 개씩으로 놓여지기 마련이고 더러 형편이 나은 이는 명주 한 감을 들여놓고 가기도 하고 강변 어부가 생업인 사람은 새벽녘 그물에서 건진 고기 몇 마리를 버들가지에 꿰어와 부엌 물동이 속에 담아넣곤 도망치듯 돌아가기도 하였다.
일년 내내 병치레하는 손주를 데리고 무시로 드나들던 노파가 세모에 술 한 병에 중병아리 한 마리를 들고 찾아와선 손씨 앞에서 한바탕 걸찍한 농담을 하다가 돌아가는가 하면 2년 전에 와 침맞고 돈도 없이 그냥 돌아간 일이 있노라며 기억도 없는 농부가 햇곡 반 자루를 들고 나타나 찾아온 연유를 설명할 제면 허준의 생모 손씨가 그 뿌듯한 인정에 고마워하면서도 생활이 펴지 않은 듯한 그 입성을 보곤 애비가 돌아오면 대신 인사를 전할 테니 도로 가지고 가라는 등 기어이 놓고 가겠다는 등 승강이 일어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했다.
목수는 처마를 내 달아주고 옹기장수는 물동이를 들여놓아 주고 수년 전엔 폭우에 집담이 무너지자 누군가의 발의로 10여 명 병자의 가족들이 모여 토담을 쌓아주며 마당이 넓어지고 그런 인정이 모이고 겹쳐 이제는 식구들이 각랑방을 쓰도록 널따란 집 경계가 된 것이다.
"허의원댁에 임금이 내리신 호랑이가죽 구경하러 가세."
사람들은 그 호랑이가죽 뒤에 가려진 허준의 신분에 대한 설움은 짐작한 바도 없이 말만 들은 대호의 가죽을 내 눈으로 보리라는 호기심으로 몸 성한 아이와 영감들까지 몰려와 허준의 영광을 화제삼았다.
저걸 팔면 세 칸 짜리 기와집이 한 채라고 아는 체하는 촌로와 쌀 서른 섬과 맞바꿀 수 있다는 가난한 가장의 배고픈 계산이 있는가 하면, 아니다 저 호피 위에 알몸으로 자면 성력이 철봉처럼 강해진다는 속설까지 소란한데, 저건 임금의 하사품이니 재물 따위로 가늠할 수 없는 대대 가보다 하는 이는 그래도 눈속에 식자깨나 들어간 생원의 선망어린 풀이였다.
그 호피에 얽힌 임금의 특별한 배려는 그 다음해 봄에야 허준에게 현실로 돌아왔다.
임금 선조가 인빈에게서 낳은 둘째아들이요 자신의 넷째 왕자인 신성군의 작은 두창을 치료한 허준의 공을 들어 직첩을 직장으로부터 주부로 두 품계를 승차시키도록 명한 것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전일의 논법대로라면 이번의 종6품 주부의 직첩이 또 한번 조정으로부터 시비거리가 되지 않을 바 아니로되 이때의 조정은 임금 선조의 눈치를 살피며 숨을 죽인 채 묵인했다.
허준은 대신들의 그 침묵을 고소했다. 허준은 대신들의 그 침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임금 선조가 장성한 제 1왕자 임해군이나 제 2왕자 광해군을 젖혀놓고 유독 총애를 쏟는 신성군의 병을 낫운 사실을 시비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바로 지난해 10월에 돌발한 정여립의 모반 사건이라 일컫는 서인 정철이 반대당 동인들을 몰아쳐 반대당수 100명이 죽은 이른바 기축옥사의 끔찍한 살기가 아직 선조의 얼굴에 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주 왕기설과 계룡산 정씨 도읍설 등 근원도 확연치 못한 참언에 걸어 기예 활발하고 반상에 구애되지 않는 대동계를 조직, 휼민에 공이 큰 정여립을 처참하게 죽였을 때의 선조의 격노는 잔인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옥사에 연루된 동인들을 물리친 승자인 서인들도 가급적 어의를 거스르지 않고 있는 분위기였다.
"감축하이."
이제는 이공기조차 높은 지위로 가버리고 허준이만을 유독 가까운 말 친구로 삼았던 이명원은 그 허준조차 이제 두 품계 앞서 승진, 앞으로 자주 만날 길이 없으리라 여겼는지, 남 먼저 달려와 축하해 주면서도 그 눈빛 속에는 외로움이 내비치고 있었다.
"나도 뜻밖이오. 이번 신성군의 그것은 가히 치료라 할 수 없는 가벼운 증상이었소."
이명원이 선의의 미소를 띠었다.
"병을 다 아는 이에게는 가벼운 증상이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창자 붙은 병이 쉬운 병은 아니지. 그보다 내 듣기 이번 신성군의 병세를 살피고 특히 그 수의로 허주부를 천거한 건 양대감이라니 이젠 양대감도 늙나보오. 사람을 적소에 뽑아 쓰는 걸 보면."
"천거한 게 어의 양대감이라 누가 하더이까?"
"도제조께서 허주부에 대한 여러 면에 관해 따로 하문이 계셨기로 알았소."
"도제조께서?"
내의원 도제조는 지난해 기축옥사에 연루된 노수신이 좌의정에서 파직되어 죽은 후 새 좌의정 유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 도제조께서 왜 하필 나를 지목해 여러가지를 묻더란 말이오?"
"여러가지를 묻습디다. 나도 아는껏 아뢰었고."
"여러가지란 무엇무엇이기다?"
"허주부가 창병에 관해 언제부터 공부가 있었는지를 특히 알고싶어합디다."
"...?"
"세상에 많은 것이 각종 부스럼인데 그 창병의 형상이 보기가 흉해 병을 앓는 이는 남에게 기피당하고 의원들 또한 정성껏 가까이하려 않으니 앞으로는 취재의 시제에도 특히 창병에 관심이 있는 의원도 뽑아야 하리라며 의사 전반에 남다른 관심이 계시더이다."
"난들 아직 초보요. 내가 창병에 관심한 것은 저번 여역의 돌림병을 겪고 난 뒤이니."
"곁에서 양대감이 그 말도 합디다. 그러나 덧붙여 양대감이 그 적임자는 허준이다, 앞으로 침구보다 그쪽에 전념케 할 재목이라 천거하더이다."
"그쪽으로 전념?"
"그 첫째로 맡겨진 것이 신성군이 아닌가 싶소. 다행히 속히 효험을 내어 전하 또한 기꺼워하시니 장차 허주부께선 싫어도 그쪽 일까지 전담해야 할 겝니다."
"의원이 지식을 넓혀나간다 함에 수고로움만 생각할 일일까만."
"이미 어의가 천거했고 공 또한 세웠으니 발뺄 순 없을 겝니다."
허준은 속으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창병뿐이 아니다. 그것도 더욱 겪고 그 낫우는 방법을 토구해야 하리라.
'그러나!'
허준은 근래 다른 생각에 잠을 설치고 있었다.
'욕심만이 아닌 하나의 실천으로.'
세상 모든 병을 겪고 고치리라는 뜻을 욕심만이 아닌. 하나의 실천으로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결심.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가장 가까운 곳 저 대궐 밖 백성들이 앓고 있는 온갖 병을 볼 수 있는 곳 그 혜민서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결심이었다.
대궐 안 그 왕실과 관련지어진 이들이 앓는 병만으로는 자신의 의술은 더욱 줄어들 뿐 넓어지지 못하리라는 자각이었다.
'대궐 안의 병은 나 아니라도 낫우는 이가 수두룩한즉 ... '
더 많은 병, 더 많은 병자, 이 세상 온갖 병을 보고 겪자면 최소한 자신의 선택은 혜민서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나없이 지긋지긋해하는 혜민서 의원질, 그러나 허준에게는 이제야 초출내기 때 온몸을 던져 한 사람 한 사람 환자를 다루어가던 혜민서의 지난날이 새삼 그리웠다.
'내일 등청하면 양대감께 그 소청부터 하리라.'
멀리 봄날 밤안개에 싸인 자기 집의 평화로운 불빛을 발견하며 허준은 그렇게 결심했다.
그러나 그 허준의 소원보다 많은 병자를 겪고 싶다는 소망은 너무도 무서운 방법으로 그 허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장차 임진왜란이라 불릴 3천리 강토를 초토화하고 조선 백성을 시산혈해 속에 어육으로 만드는 왜떼가 그 시각 동해바다를 까맣게 뒤덮으며 건너오고 있었다.
계속 ~~
著者, 放送作家 故 李恩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