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바다낚시 - 폭풍우 속의 사투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바다 낚시를 갔다. 오후 3시 30분 마산 댓거리를 출발하여 거제도 동남부에 위치한 서이말 등대로 향했다. 동료 교수 3 명과 갯바위 밤낚시를 간 것이다. 물때는 네 물, 낚시에 최적인 다섯 물과 열 물 사이는 아니지만 그런 대로 괜찮다. 도착 후 곧 물이 들어올 것이므로 그 조건도 좋다. 오늘의 대상 어종은 잡어! 며칠 전부터 거제 갯바위에 붙었다(‘많이 잡힌다’는 뜻의 낚시꾼들 은어)는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감생이(감성돔)나 돌돔, 뱅에돔 등을 노리는 사람들 눈에는 우스워 보일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씨알보다는 마릿수를 선호하며, 남에게 보이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먹기 위하여(잡는 즉시 회쳐 먹고, 칼집 넣고 소금 뿌려 구워먹으며, 남은 것은 집에 가져와 반찬으로 한다.), 즉 도락(道樂)보다는 생계를 목적으로 낚시를 하니 우리야말로 진정한 프로 낚시꾼이라고 자부한다. 아니, 실은 어부에 가깝다.
가는 도중에 입갑(미끼의 경상도 방언)과 마끼(밑밥), 케미(야광 찌), 김밥 등을 장만하느라 고성의 낚시점에 잠시 들렀을 뿐 계속 쉬지 않고 차를 몰았으나 100km가 넘는 먼 거리여서 5시 30분이 되어서야 와현 해수욕장 옆의 예구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착하기 직전부터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구 마을 끝자락의 선착장에 도착하니 계속 비가 오락가락한다. 젠장!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선장에게 물어보니 밤에도 계속 비가 올 것 같다고 한다. 선장은 우리를 갯바위로 안내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고 있는데 우리 중 낚시를 가장 좋아하는 B 교수는 ‘괜찮아, 괜찮아’ 하며 들어가기를 재촉한다. 드디어 선장이 결단을 내렸는지 배에 올랐다. 우리도 낚시 가방, 아이스박스, 취사도구, 음식물 등을 부지런히 배에 실었다. 6시 조금 넘어 갯바위에 도착했다. 외도 바로 앞의 내도 계단 바위! 내리자마자 먼저 높은 바위 위에 올라 바다 지형을 살폈다. 여는 어디 있고, 물살은 어떻게 흐르는지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계단 바위 옆으로는 파도에 깎여 형성된 해식애와 해식 동굴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하긴 그렇다. 이 지역이 바로 한려해상공원 아닌가? 바로 앞의 외도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관광코스인 것이다. 우리는 그 절경의 한 가운데 있다. 남해에서 이렇게 광활한 바다와 멀리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지형 탐사를 마치고 바로 낚시를 시작했다. 나는 곧 잡어 2 수를 올렸다. 두 마리 모두 낚시 바늘을 깊이 삼켜 입과 아가미를 찢을 수밖에 없었다. 금방 손이 물고기 피로 붉게 물든다. ‘음, 역시 낚시는 잔인한 취미구만.’ 날씨가 계속 심상치 않다. 비가 오락가락 하고, 저 멀리 하늘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수시로 터진다. 육지 쪽에서 먹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해도 넘어가 사위가 어두운데 바람은 점점 더 강해지고 물살도 거칠어졌다. 갑자기 굵은 비가 와락 쏟아진다. 일행 모두 급하게 일회용 비닐 우의를 걸친다. 바람에 날려 팔을 꿰기가 쉽지 않다. 말은 안 하지만 모두 표정이 좋지 않다. 잠시 후 J 교수가 결국 “날씨가 이래서 되겠나? 위험하지 않을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즉각 B 교수가 “괜찮아, 괜찮아. 이런 날씨에 낚시 한 두 번 해보나? 이럴 때 고기가 더 잘 잡혀. 바다가 뒤집혀야 낚시가 잘 되거든.” 하고 답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 역시 밝지 않다. 더 이상의 논의는 없이 그때부터 모두 낚시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나처럼 속은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낚시대 끝에 케미를 단 후 가끔 마끼를 뿌려주고 미끼를 갈아 끼우며 낚시를 계속한다. 모두들 말이 없다.
갈수록 비바람이 거세진다. 우의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점점 커진다. 파도도 점점 더 높아져 일행 모두 좀 더 바위 위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계단 바위 위쪽에서 내려오는 빗물이 점점 양이 많아진다. 모양이 꼭 계단처럼 생겼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곳이다. 이제는 마치 복도 물청소 할 때 계단 위에서 물이 쏟아지듯 빗물이 콸콸 흘러내린다.
그때 멀리서 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곧 배 한 척이 나타나 우리 쪽으로 헤드라이트를 비춰댄다. 뱃전에 달린 스피커에서 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으나 워낙 강한 경상도 사투리인데다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에 묻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하는 소리 같은데....”, “나오라는 소리겠지 뭐. 날씨가 심상치 않으니 위험해서 그럴 테지”, “어떻게 하지?”, “이제 들어왔는데 그냥 버텨보지 뭐.”, “아냐, 오죽하면 저 사람들이 저러겠어. 철수하는 게 좋겠어.” 다시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가는 중에 배는 어느 새 우리 앞에 뱃전을 대고 있다. 이제 분명히 선장의 소리가 들린다.
“얼른 올라 오이소. 위험해서 안 됩니더. 빨리 장비 거두이소”
빗속에서 서둘러 장비를 걷고 배에 올라탔다. 지금 시각은 7시, 낚시를 시작한 지 불과 30여 분 남짓. 이제 막 고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게다가 정말 오랜만에 마음먹고 나온 길이 아닌가.
배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으니 허망한 마음 중에 문득 낚시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1973년 내 나이 16살, 중학교 3학년 때 작은 아버지와 사촌 형을 따라 통일로 변의 공릉(공순영릉) 저수지, 안양 근처(요즘의 안산시) 고잔 저수지 등을 찾아다녔으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친구들과 춘천 소양 댐의 물노리, 화천 파로호 등지까지 진출했었다. 기억을 돌이켜보니 월척 향어를 수도 없이 올렸던 소양 호반의 풍광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남쪽의 다도해와 너무도 닮았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에 선실 지붕 위에 누워 올려다보았던 휘영청한 보름달은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얼마나 설레게 했던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파로호에서의 밤낚시 때는 밤새 두 척의 배가 바람에 부벼대며 내는 ‘끼기긱’ 소리에 무서움에 떨었었지. 파로호에는 육이오 때 중공군들이 수 없이 수장되었다는 소리까지 미리 듣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나의 조력(釣歷)도 어언 4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회상에 잠기는 것도 잠시, 폭풍우가 더욱 거세게 몰아치며 손바닥만한 배를 사정없이 뒤흔든다. 파도는 그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이며 쏟아지는 폭우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선장은 아직도 갯바위 위에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급히 섬 주위를 돌며 헤드라이트를 비춰댄다. 불빛에 드러나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주먹만 하다. 몇 사람은 벌써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고 있으나, 나는 오히려 이런 장면을 즐기고 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하니,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언제 내가 다시 이런 경험을 하겠나? 오늘은 바다의 광란을 만끽하기로 하자. 그 사이 배는 외도와 내도 사이를 빠져나와 급하게 포구를 향한다. 배가 속력을 내자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제법 따갑다. 나는 배 뒤쪽 갑판으로 나가 선실 지붕을 잡고 서서 떨어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는다. 이제 비닐 우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들어올 때는 얼마 안 돼 보이던 선착장까지의 거리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갑판은 쏟아지는 비와 파도 쳐 올라온 바닷물로 넘친다. 선착장까지만 무사히 가자! 아, 저 멀리 포구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그러고 보면 나도 속으로는 꽤나 겁을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배가 육지에 닿았다. 부지런히 짐을 내리는 일행의 얼굴이 모두 밝다. ‘이제 살았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지만 얼굴에는 하나같이 생환의 기쁨이 넘치고 있다. 흔들리는 배에서 내리니 오히려 발 밑의 땅이 출렁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뱃사람들이 육지에 오르면 육지 멀미라는 것을 한다더니 이게 바로 그건가 보다. 그것도 잠시, 곧 적응이 되었는지 어지럼증도 사라진다. 아! 육지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인간이라는 동물이 본디 땅위에서 사는 족속인 까닭에 물의 세계는 항시 두려움의 대상이다. 조금 전 어두운 바다 위에서 폭풍우와 사투를 벌일 때는 그 짧은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공포스런 상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던가. 바다 밑에서 불쑥 나타나 배를 끌고 들어가는 집채만 한 문어, 끈질기게 뒤쫓아 오는 대형 상어 죠스...... 육지에 오르자마자 조금 전의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폭풍우에 뒤집어지는 바다가 졸지에 볼만한 구경거리로만 여겨진다. 모두들 쾌활한 목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이제 어쩌면 좋을꼬?”,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일단 다른 낚시터를 찾아보자고.”, “그래, 그럽시다. 어디가 좋을까?”, “이제 바다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적당한 방파제를 찾아보지.”, “좋아, 좋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거제도 내에서 찾아봐야지.”, “그래, 마침 이 언덕 바로 너머가 지세포야. 지세포로 갑시다.”
그리하여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어둠 속의 지세포 항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빗줄기는 점차 잦아들고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단 미리 준비한 충무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방파제 위에서의 저녁식사. 어쩌면 처량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 우리에게는 그저 즐겁기만 했다. 한참을 낚시대를 드리웠으나 입질조차 없다. “여기는 고기가 없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할까 봐.”, “그래, 일단 여기는 떠나고, 가면서 다른 곳을 물색해봅시다.” 다시 차를 타고 가면서 통영으로 가자, 고성으로 가자, 당항포로 가자, 욱곡으로 가자, 원전으로 가자, 설왕설래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어느 새 시간은 꽤 늦어져 있었고, 운전을 하는 B 교수는 연신 하품을 해대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국 도착한 곳은 마산 근교 진동의 광암 해수욕장 앞 민박집. 거기서 밤새 한 일은 낚시로 잡은 몇 마리 안 되는 물고기를 굽고, 민박 옆의 식당에서 배달시킨 감자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면서, 다 같이 동양화 감상! 일행이 넷이니 한 명은 광을 팔고 나머지 세 사람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며 고도리를 노린다.
그리하여 오랜만의 출조는 엉뚱하게도 ‘오고가는 현금 속에 싹 트는 우정’을 외치면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몇 가지 고백:
① 낚시 시작한 지 40년이 다 되긴 했지만, 그 동안 잡은 민물고기, 바닷고기 모두 합쳐 30 마리가 채 안 된다. 소양강 물노리에서 낚은 수 십 마리의 월척 향어는 내가 아니라 같이 갔던 내 친구 이동은이 잡았다. 나는 그저 옆에서 구경하다가, 혼자 놀다가, 누워서 낮잠 자다가..... 만 했다.
② 낚시를 따라가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멍하니 바다 한번, 하늘 한번 번갈아 쳐다보다가, 동료들이 잡은 고기를 회쳐주면 열심히 먹어 남기지 않는 것!
③ 사실 낚시는 내 성격에 잘 안 맞는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 하염없이 찌를 지켜보고 있는 일이 몹시 지루한 것이다. 낚시질 자체보다는 그 전후 행사, 특히 잡은 고기를 안주로 하여 소주 한 잔 하는 일이 좋을 뿐이다.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저도 손보단 입이 즐거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ㄲㄲ
교수님.. 줄낚시도 손맛이 그만입니다.
자세하게 표현을 하셔서 그 장면을 옆에서 보고있는 듯합니다....자주 접하는 용어들이라..ㅋㅋ 더 와 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