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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창세기 3장은 기독교 신앙 밖에 있는 자뿐만 아니라 믿음이 있다 하는 신자들조차도 많은 의문점을 제기하는 본문이다. 뱀을 짐승이라
하여 발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는가 하면, 뱀과 사람이 대화를 하기도 하고,1)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데서 인간의
죄의 기원을 논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3장을 실제로 발생했던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화(寓話)나 전설(傳說), 혹은
신화(神話)나 비유(比喩)로 이해하려는 경향들이 있다.2)
이런 다양한 이해 앞에서 우리는 3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로마서에서 바울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대조하여 설명한다. 아담의 범죄를 실제 사건으로 전제한 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논하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가 실제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셨고, 인간을 위하여 실제로 피 흘려 죽으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 3장의
역사성이 의심되어서는 안 된다. 아담도 실제 역사적 인물이요 3장의 사건도 실제 역사적 사건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창세기 3장에 담긴 중요한 진리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3장은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세 영적 존재,
곧 하나님, 천사, 인간의 실존을 증명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에 선악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 세 영적 존재가 어떻게
상호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선악과 사건 이후 상호간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지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3장은 인간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분명히 보여주는 바, 이를 통해 인간의 본분을 다시금 확인코자 한다. 다만, 본고에서 3장에 사용된 단어나
어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생략한다.
2. 창세기 3장의 중요성: 세 영적 존재를 말한다
성경은 영적 세계와 영적 존재를 다루는 책이다. 세상에 있는 책들은 보이는 세계와 그에 속한 것들을 주로 다루지만, 성경은 보이는 세계는 물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그에 속한 것들까지 다룬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어떠한가? 창세기 1장 1절에 말씀한 것처럼, 창세기는 천지창조를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천지(天地), 곧
하늘과 땅은 물질세계다. 또 창세기 1장 전체에서 말하는 것도 대부분 해와 달과 별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를 맺는 나무, 그리고
짐승과 인간 등 물질에 속한 것들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 물질에 속한 것들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이
행위의 주체로서 공존하고 있다. 창조의 주체로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창 1:1), 타락한 천사들을 흑암에 결박하고 지키던
천사들이(창 1:2)3) 영적 존재다. 또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함께했던
천상회의(天上會議)의 참여자로서 천사가 등장한다(창 1:26).4) 그리고 2장으로 넘어오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영적
존재로서 등장한다(7, 21-23절). 이처럼 1, 2장은 하나님, 천사, 인간 등 세 영적 존재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3장은 세 영적 존재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세 영적 존재가 실존임은 물론,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또 향후 그 관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그런 점에서 3장은 중요하다.
우선, 3장에는 하나님이 등장한다. 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명명된다.5) 또한 들짐승으로 불리는 뱀을 포함하여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조물주)로 언급된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비롯하여 하와와 뱀을 심문하시고 또 심판을 선고하시는 심판자로 등장하며(창 3:9-19),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자로 등장한다(창 3:15, 20).
또한 3장에는 천사가 등장하는데, 1장보다 구체적으로 천사의 존재가 드러난다. 여기 등장하는 천사는 크게 두 종류인데, 하나는
의의 천사요 다른 하나는 불의의 천사다. 의의 천사는 하나님이 지으신 뜻대로 그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천사들로서, 하나님이
에덴동산 동편에 두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24절)이 바로 그들이다.6) 그런가 하면 불의의 천사도 등장하는데,
본문에서는 뱀이 사단, 혹은 마귀라고 분명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불의의 천사가 할 악행을 대행한다.7) 불의의 천사인 사단과 뱀의
관련성은 뒷부분에서 자세하게 언급될 것이다. 3장의 선악과 사건은 이 불의의 천사인 사단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3장에는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등장한다.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고 명시되었듯이, 아담은 분명히 영을 가진 영적 존재다. 그리고 그에게서 취함을 받은 여자 역시
영적 존재다. 에덴동산에서의 타락을 다루는 3장 선악과 사건의 등장인물이 바로 이들이다.
3.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세 영적 존재
3.1. 유일하신 자존자 하나님
3.1.1. 창조주 하나님
3장에서 하나님은 창조주로 등장한다. 1장이 물질세계에 대한 창조 사역을 설명하고 있다면, 3장은 하나님이 물질뿐 아니라
영들까지도 창조하신 분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보이는 것들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3장은 하나님이 모든 영들의 근원으로서 유일하신 분임을 조명하는 데 그 강조점이 있다.
하나님은 천사를 지으신 분이다. 창세기 3장에 천사 창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3장 1절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는 말씀에서 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3장 1절에 천사라는 말은 없고, 다만 ‘하나님이
뱀을 지으셨다.’는 언급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사단(마귀)을 가리켜 ‘옛 뱀’이라고 하여, 타락한
천사를 에덴동산의 유혹자 ‘뱀’과 연관짓고 있다. 이처럼 창세기 3장 1절 본문에서 하나님은 뱀을 ‘지으신’ 분으로, 뱀은
하나님께 ‘지음받은’ 존재로 등장한다.8) 다시 말해서 3장에서 하나님은 천사를 지으신 창조주로, 천사는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로 이해된다. 하나님이 에덴동산 동편에 두시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도 하나님께 지음받은
천사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인 천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대적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타락한
본성이(사 14:12-15, 겔 28:13-17) 창세기 3장에서 하와에 대한 유혹을 통해 재현된다.9)
또한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분이다. 그는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고(창 1:26-27), 그 중 한 사람을 택하여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그가 곧 최초의 영적 사람인 아담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창
2:15). 그 후 여자를 지어 아담의 돕는 배필로 주셨다(창 2:20-22). 아담과 그의 돕는 배필인 여자가 창세기 3장
선악과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이처럼 창세기 3장에는 성경의 주요 등장인물인 세 영적 존재가 모두 등장한다. 그러나 이 세 영적 존재는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천사는 물론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요, 인간과 천사는 하나님께 지음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할
피조물이다. 따라서 인간과 천사는 결코 피조물의 위치를 떠나 창조주의 권한을 넘보아서도 침해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 경계를
넘어서는 사건이 3장의 선악과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3장은 세 영적 존재 상호 관계의 출발점이요,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3.1.2. 하나님의 말씀과 피조물의 관계
만물의 창조 과정에서 보여지듯,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말씀은 권위가 있어서 모든 피조물이 복종한다.
‘빛이 있으라’ 하신 그의 말씀에 흑암도 복종하여 빛을 내었고(창 1:3), 땅과 물도 복종하여 각기 생물들을 냈다(창 1:11,
21, 24, 30). 이에 대해 신약성경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심과, 그 창조 사역을 ‘말씀으로’ 명하여 이루셨음을 증거한다(행
17:24, 롬 4:17, 히 11:3). 그리고 하나님이 넷째 날 지음받은 태양으로 하여금 첫째 날 지으신 빛을 주관하게 하신
것이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고, 나머지 날들에 지음받은 풀과 각종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들로부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에 이르기까지 만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은 주종의 관계로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말씀으로 유지되는 이런 관계는 영적 존재로 지음받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영혼과 육체를 함께
가진 존재로 지으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에서 난 것을 양식으로 주셨다(창 1:29). 그리고 육체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으니, 역시 말씀으로 육체에 ‘복을 명하여’ 주셨다(창 1:28).
또한 인간에게는 영이 있어서 영을 위한 양식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다. 창세기 2장 16-17절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바로 아담의
영의 양식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 후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하여 아담에게 선악과 계명을 다시 환기시켜 주신다. 네 육체는 무엇이든 먹어도 좋으나, 네 영혼은 내가
명한 계명을 순종했어야 했는데 왜 순종치 않고 임의로 행동했느냐고 반문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다. 또
마태복음 4장 4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고, 요한복음 6장
63절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다. 이처럼 영적 존재로 지음받은
인간의 영혼이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 있다.
땅에서 나는 풀이나 새나 물고기나 짐승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듯이, 인간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 영이
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게 하셨다. 이는 또한 영적 존재인 천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지어
하늘에 두시고 각각의 직분을 맡기셨으니, 겸손히 그 말씀을 순종하여 맡기신 직분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 천사들이 사는 길이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반드시 명령으로 받아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다.
3.2. 타락한 천사 마귀
3.2.1. 뱀과 마귀의 관계
일반적으로 창세기 3장은 마귀가 인간의 타락에 깊이 관여한 증거 본문으로 이해된다.10) 그러나 3장 어디에도 마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뱀’이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왜 인간을 타락시킨 주범으로 마귀를 말하는가?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 12장 9절은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여, 마귀를 ‘큰 용’이요 ‘옛
뱀’이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옛 뱀’이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타락시킨 그 뱀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창세기 3장 1절에도 분명히
말했듯이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이다. 짐승이란 다리가 있는 동물을 말하는 것으로, 뱀이 본래는 다리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11) 또한 ‘큰 용’이라고도 했는데, 그림이나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용이 다리를 가지고 있는 점은 ‘옛
뱀’과 ‘용’의 관련성을 말해준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를 ‘옛 뱀’이라고 하여 에덴동산에 있던 그 뱀과 연관시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김기동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설명한다.
성경에 ‘뱀이 모든 들짐승들 가운데 가장 간교하더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왜 마귀를 뱀이라고 말하는가?(계 12:9;
20:2) 마귀 자체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마귀를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실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창조하셨을 때는 아름답게 지음받은 존재였으나 저주받은 존재로 타락한 자라는 데서 마귀의 상징으로 뱀을 등장시켰다. 또 마귀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함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들짐승인 뱀으로 나타내신 것은
보이는 유혹자를 등장시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원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에 타락한
자가 있는데 그가 곧 마귀이며, 또한 그는 관념적 존재가 아니고 실존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 중에 타락한 영적 존재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라는 말은 하나님만이 오직 유일하시며 그 외는 그의 지으신
피조물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나님, 사람, 천사 이 세 영적 존재 중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그는 자존자로서 유일하시다.12)
즉, 3장 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분명히 밝혔듯이, 김기동은 인간을 꾄 마귀가
자존자(自存者)가 아닌 피조물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뱀’이라는 실체를 등장시켜 마귀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인간을 꾄 존재가
뱀이지만, 실상은 그 배후에서 역사한 영적 실체가 마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성경에는 마귀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명칭이 등장한다. ‘옛 뱀’ 외에도 ‘처음부터 범죄한 자’(요일 3:8), ‘거짓의
아비(거짓말쟁이, 요 8:44)’, ‘온 천하를 꾀는 자’(계 12:9) 등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타락을 유도한 마귀가
어떤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3.2.2. 처음부터 범죄한 자 마귀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고 하여 마귀를 처음부터 범죄한 자로
규정한다. 성경에는 마귀를 가리킬 때 ‘처음부터 범죄한 자’,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하여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는 그가 모든 범죄의 시작이요 근본적으로 범죄한 자라는 의미다.
그러면 여기서 처음이란 언제를 말하는가? 그리고 처음부터 범죄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본래 하늘에서 지음받은 천사들 중
하나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직분을 맡은 자였다(겔 28:13-14).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서 불의가 드러났다. 그 불의는 곧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초월한 것이니, 하늘의 모든 천사들 위에 자기 지위를 높이고자 한 것이었다(사
14:12-14). 그러나 그는 결국 하늘에서 쫓겨나 음부 곧 어두운 구덩이의 맨 밑에 갇혔으니(사 14:15, 겔 28:17),
이곳은 오늘날의 우주에 해당되는 곳이다. 천사의 범죄에 대해 유다서에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6절)고 증거한다. 이를 두고 요한일서 3장 8절은 마귀가 처음부터
범죄했다고 증거한 것이다.
흔히 죄의 기원을 다룰 때, 아담의 타락을 그 시작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3장을 통해 아담의 타락을 부추기고 적극
유혹한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장은 그를 ‘뱀’이라고 했고, 요한계시록은 그 뱀을 ‘옛 뱀’이라 하여 타락한 천사인 마귀와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범죄한 자 마귀가 인간을 꾀어 범죄케 한 것이다.
3.2.3. 거짓의 아비 마귀의 유혹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마귀가 어떻게 인간을 유혹했는가? 이는 ‘거짓의 아비’라는 그의 명칭을 통해 충분히 드러난다. ‘거짓의
아비’라고 할 때의 ‘아비’라는 말은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고 할 때의 ‘처음’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모든 거짓말이
마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앞서 살펴본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는 명칭이 마귀의 근본을 드러내는 표현이라면, ‘거짓의
아비’라는 말은 인간의 타락과 관련하여 마귀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마귀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인간을 꾀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귀가 어떤 거짓말을 지어냈는가? 이것을 다루는 본문이 창세기 3장이다.
창세기 3장 본문을 보기에 앞서,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는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신 후 광야로 가서 사십 일을 금식하셨을 때 마귀가 시험하기 위해 예수께 접근했다. 이때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이대며
예수를 시험했다. 흔히 마귀의 시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다가올 것처럼 여기지만, 예수께서 시험받으시는 장면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마귀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아주 그럴듯하게 예수를 시험했다. 그때마다 예수는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여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뱀을 앞세워 인간을 시험하는 마귀의 수법이 예수를 시험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뱀과 하와의 대화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다.
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하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2-3절)
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4-5절)
표면적으로만 보면 뱀도 하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뱀의 말에서는 그의 간교함이 묻어나고,13)
하와의 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불완전한 이해가 드러난다. 창세기 2장 16-17절의 하나님의 말씀-선악과 계명-과
3장 1-5절의 뱀과 하와의 말을 도표화하여 비교해 보면 거짓의 아비로서의 마귀의 본질을 더욱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본래 하나님의 선악과 계명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였다. 그러나 뱀은 확인하듯 물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변형을 꾀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묻는다. 뱀의 이 말을 공동번역은 “하나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로 옮기고 있다. 뱀의 이 질문을 잘 들여다보면, 뱀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나무를 빠뜨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뱀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모든 나무’라는 표현 안에 슬쩍 감추어
버린 것이다.14)
그런데 이에 대한 하와의 반응이 주목된다. 우리는 하와의 답변을 통해 그가 선악과 계명에 대해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는 말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는
말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과에 대해 ‘먹지 말라’고만 하셨을 뿐 ‘만지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여 계명을 어길 경우 이루어질 사태에 대해 분명하게 선포하셨다. 계명을
어기면 그 결과는 죽음이라고 엄히 경고하신 것이다. 그런데 절대적 계명으로 받아야 할 이 말씀이 하와에게서 상대적이고 우연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와에게서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말씀으로, 피조물의 의지와 생각과 판단에 의해, 혹은 인간이
처한 환경과 여건에 따라, 혹은 다수의 결정에 따라 변개되거나 수정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변형되어
버린 것이다.15)
결국 뱀은 하와가 선악과 계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함을 알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거짓의 아비로서 본격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을 경우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으나, 하와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뱀은 더 나아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다.16) 한낱 피조물인 뱀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17) 뱀의 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뱀은 선악과를 먹은 후 받게 될 치명적 결과를 부정(否定)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얻게 될 이익이 있음을 적극 주장한다.18)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5절). 한 마디로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선한 의도로 선악과 계명을 주셨는데, 뱀이 이를 왜곡하여 선악과 계명은 하나님이 자신만 좋은 것을 누리려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지어낸 것이다.19)
뱀과 대화하면서 그 생각이 지배받기 시작한 하와는 결국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 계명을 범하기에 이른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줄곧 보아 왔던 선악과가 뱀과의 대화 후에 보니, 유달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러워 보였다(6절).20) 결국 여자는 그
실과를 따먹고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했다.
하와뿐 아니라 예수도 동일하게 마귀의 시험을 받았는데, 왜 하와만 시험에 넘어졌는가? 하와와 달리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시험을 능히 물리칠 수 있었다. 반면에 하와는 마귀의 시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어 놓기는 했지만, 계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나 믿음이 없는 상태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와가 계명에 대하여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까닭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창세기 2장 16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여,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이 홀로 에덴의 동산지기의 직분을 맡고 있을 때 선악과 계명을 받았음을 말해 준다. 하와가 아담이 선악과
계명을 받은 후에 아담에게서 취해졌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20-23절). 그러므로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짐작컨대 하와는 아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악과 계명에 대해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21) 아담으로부터 선악과 계명을
전해들은 하와는 아담의 말을 오해하고 있었기에 뱀의 유혹 대상이 되었고, 결국 뱀이 하와의 불완전한 지식을 틈타 꾄 것이다.22)
이처럼 마귀는 처음부터, 곧 하늘에서부터 범죄한 자요, 진리가 없는 음부에서 거짓말을 일삼는 거짓의 아비로서 인간의 타락을 유도한
장본인이다. 마귀는 하늘에서 범죄한 것과 똑같은 양상으로, 곧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생각을 넣어주어 인간을
타락시켰다.23) 장차 하나님이 마귀를 용서치 않으시고 반드시 멸하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3.3.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
3.3.1. 하나님의 심문
아담이 범죄한 후 아담과 그의 아내는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했다(7절). 그 후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담과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이때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자,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아담이 범죄한 사실도 알고 그가 어디에 숨었는지도 알고 누구의 유혹을 받아서 범죄했는지도
아시지만, 아담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셨다. 또 아담이 먼저 선악과를 먹지 않고 그의 아내가 먼저 먹었지만,
하나님은 아담에게 계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와가 아닌 아담을 찾으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타락 과정은 3장 1-7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하나님이 범죄 사실을 심문하시는 과정에서 아담과 그의 아내의 입을 통해 다시 요약적으로 제시된다.
11절: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은 경위를 물었을 때, 아담은 하와가 선악과를 주어 먹었다 하고, 하와는 뱀이 자기를 꾀어 먹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었다. 비록 핑계이기는 하지만 아담의 말도 맞고 하와의 말도 맞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인간의 타락이 어떤
경위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다 아시는데, 왜 굳이 심문의 과정을 거치셨을까? 이에 대해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이므로 그가 지으신
아담을 찾아가 변호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24) 그러나 필자는 이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타락의 최종적인 원인 제공자가 뱀(마귀)임을 천명하려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여자와
아담에 대해서 심문하신 하나님이 뱀에 대해서는 심문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심판을 선고하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여자와
아담에 대한 심문을 통해 선악과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제공자가 마귀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려 하셨던 것이다.25) 주지하듯 하나님은
뱀에게는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26)
에덴동산에서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문과 심판을 다루는 9-19절의 구조를 보면 범죄의 근원을 밝히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음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a. 여호와의 아담에 대한 심문(3:9-12)
b. 여호와의 여자에 대한 심문(3:13)
c. 여호와의 뱀에 대한 처벌(3:14-15)
b、. 여호와의 여자에 대한 처벌(3:16)
a、. 여호와의 아담에 대한 처벌(3:17-19)
9-19절은 에덴동산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문과 심판을 다루는데, 이 부분은 대칭구조로 이루어져 있다.27) 여기서 보면
여호와께서 이 사건에 관련된 자들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데 있어서 아담-여자-뱀-여자-아담의 순서로 다루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대칭구조의 성격상 뱀에 대한 여호와의 저주가 중심점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영원한 적대감,
그리고 뱀의 후손의 궁극적인 몰락 및 뱀의 후손에 대한 여자의 후손의 최후 승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3.3.4. 하나님의 선고
선악과 사건에 대해 심문하시는 하나님의 근본 목적은 처음부터, 곧 하늘에서부터 범죄한 자 마귀를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 계명을 어겼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이에 하나님의 선고가 뱀, 여자, 아담의 순서로 내려진다.
선고의 내용에 대해서는 성경 본문을 간단히 확인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나님은 먼저 뱀에게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14-15절)고 하셨다. 뱀이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다니게 될 것, 종신토록 흙을 먹을 것, 그리고
여자와 원수가 되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인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여자에게는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셨다. 잉태의 고통과 자식을 인하여 겪게 될 수고의 짐을 지우신 것이다. 이는 남편인 아담의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담을 타락하도록 이끈 데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아담에게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다.
하나님은 선악과 계명의 직접적인 수명자(受命者)인 아담에게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 것이다. 아담으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고, 아담은 종신토록 땀 흘리며 수고해야 토지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계명에 대한 불순종으로 이미 영이 죽은
상태에서 육체마저도 뱀, 곧 마귀의 먹이가 되어 일생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뱀, 여자, 아담에 대해 심문하시고 선고하셨다. 그러나 뱀에 대한 선고와 아담에 대한 선고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선고문(宣告文) 안에 담겨 있듯이 하나님은 뱀에 대해서는 어떠한 은혜도 베풀지 않으시나, 인간에 대해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
3.4. 예수 그리스도
3.4.1. 자신을 낮추러 오시는 예수: 인자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쓰시려고 만물을 지으셨다. 그런 면에서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영원전에 하나님은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그에게 하늘을 유업으로 주실 계획을 세우셨다. 이때 아들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인
사람같이 되셔서 죽음을 맛보시고 하늘에 들어가려 하셨다(빌 2:6-8). 이것이 인자의 마음이다.28) 아들의 이런 낮추심을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셔서 죽음과 부활을 아들에게 계명으로 주셨다(요 10:18). 그 결과 아들은 죽음과 부활을 맛보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실 것이 작정되었고,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예정된 존재가 인간이다.
비록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인자로 오시기로 작정되었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의 타락이나
인간의 타락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시기로 작정되어 있었다는 대전제에서 3장을 읽어야 한다. 창세기 1-2장은
영원전 하나님의 경륜이 마침내 이 땅에서 이루어져가는 출발점으로서, 인자가 죽음을 맛보실 공간인 우주와 인자의 첩경인 인간이
창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하나님의 뜻이 잠시 미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것이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이다.
‘포도원의 비유’(마 21:33-40, 막 12:1-9, 눅 20:9-16)에서 보여지듯, 이 선악과 사건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서 오시는 길을 차단하고자 한 원수의 의도가 숨어 있다. 창세 전,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 오시려는 계획만 있고 아직 아버지
품속에 계실 때, 그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늘에서 천사들의 반역이 일어났다. 이에 반역한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이 심판하실
날까지 흑암(음부)에 가두셨으니, 이곳은 아들이 죽음을 맛보기로 예정된 장소였다. 천사의 타락과 관계없이 아들은 흑암 가운데
오셔서 죽음을 맛보실 것인데, 천사가 타락하자 아들이 가시는 길에 그들을 두어 아들로 하여금 심판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 후 흑암
가운데 궁창, 곧 우주를 만드시고, 또 지금의 지구를 만드셨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인간을
지으셨다. 그런데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에 의해 그 인간마저 타락하고 말았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사건이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예비된 존재임을 알고 마귀가 인간에게 접근하여 타락하도록 유혹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어 아들로 하여금 인간을 구원하도록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들은 인자로서 죽음을 맛보시기만 하면 되는데,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 흘리는 죽음을 당하는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29)
3.4.2. 마귀를 멸하시는 예수: 여자의 후손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뱀, 여자, 아담을 각각 심판하신다. 이때 하나님께서 뱀에게 내리신 선고가 주목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14-15절)30)
여기서 뱀과 여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관계가 주목된다. 하나님은 뱀과 여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될 것을
천명하셨다. 이는 이들이 ‘원수가 될 것이다.’가 아니라 ‘원수가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31) 다시 말해서 마귀는 멸망당할 자로,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를 멸하실 분으로 예고된다.
하나님은 선악과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 제공자로 뱀(마귀)을 지목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용서치 않으시고 반드시 멸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면 마귀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고, 예수는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히브리서 2장
14절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는 말씀이 이를 증거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를 용서치 않으심은 단순히 선악과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선악과 사건 자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일 뿐이다.
마귀를 용서하실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선악과 사건을 통해 드러난 마귀의 의도 때문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곧
하늘에서부터 범죄한 자로서 이 땅으로 쫓겨나 아들이 오실 때 심판을 받을 자였다(벧후 2:4, 유 6). 그 범죄는 피조물의
신분을 망각한 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이다. 그런 그가 아들이 오실 길을 예비할 자로 지음받은 인간까지 타락시킨 것이다. 그는
하와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라고 하여 하와에게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대적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피조물로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증거를 드러낸 셈이다. 마귀는 예수께서 육신이 되어 오셨을 때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면서도 그를
시험함으로써 대적자의 타락한 본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마 4:1-11).
신약성경 요한일서 3장 8절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요한복음 16장 11절은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신 데 있었고, 마침내 그의 공생애를 통해 이를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 8절과 요한복음 16장 11절은 창세기 3장의 예언의 말씀이 마침내 응하여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4.3. 인간을 구원하시는 예수: 모든 산 자의 구주
에덴동산에서의 범죄를 놓고 뱀, 여자, 아담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선고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뱀에게 내린
선고와 아담에게 내린 선고는 더욱 그러하다. 뱀과 아담에게 내린 선고는 한 마디로 ‘흙’과의 관계로 요약된다. 하나님이 뱀에게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3:14) 하시더니, 아담에게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하셨다. 아담에게는
흙으로 돌아가라 하시고, 뱀에게는 흙을 먹으라 하신 것이다. 즉 뱀과 아담이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규정된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경고대로 선악과 계명을 불순종하는 순간 영이 죽었고(창 2:16-17; 3:6), 남아 있는 육체는 그 근본이
흙임을 선고받고 흙을 주관하는 자의 손에 넘겨진 것이다. 이에 대해 베드로후서 2장 19절은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했고, 히브리서 2장 15절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자가 되었다’고 했다. 범죄로 인해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육체마저도 마귀에게 속하여 그를 따르는 자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쨌든 뱀의 입장에서는
흙일뿐인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32) 김기동은 이에 대해 마귀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합법화 된
것이라고 덧붙인다.33)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죄 가운데, 뱀의 지배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구원하려고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그가 곧 여자의
후손34)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담이 그의 아내에게 지어준
‘하와’라는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아담의 아내는 이름이 없었는데, 타락 후에 비로소 남편인 아담에게서 ‘하와’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 3:20)
여기서 ‘하와’라는 이름이 인간의 구원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35)로 일컬어지는데, ‘하와’라는 말
자체는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이 아니다. 본래 ‘하와’는 ‘생명(life)’이라는 의미인데, 그녀가 생명의 주(主)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고 마침내 생명의 주가 오심으로 온 인류가 구원 얻게 될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를 ‘모든
산 자의 어미’라 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을 구원하실 예수께서 모든 산 자의 구주가 되시려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다.
창세기 3장 22절에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을 가리켜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선악을 아는 일’이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36)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은 인자로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 오실 자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담이 타락한 후 인자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 인자가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요, 인간은 그 예수와의 연합을 통해서 구원 얻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4. 나가는 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세기 3장은 하나님, 천사, 인간 세 영적 존재가 실존임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등장하며, 어떤 피조물도 그 위치를 넘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또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며, 지음받은 목적에 합당하게 쓰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창세기 3장뿐만 아니라 신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기본 전제다. 창세기 3장은 이런 부동(不動)의 전제 위에 인간과 천사의 타락과
심판을 다루는 것이다.
선악과 사건이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타락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인간이 지음받기 전,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에 대한 심판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심문의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바, 하나님은 심문의
과정을 통해 모든 범죄의 근본인 마귀를 정죄한다. 결국 여자의 후손이 마귀를 멸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마귀에게 속아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는 인자로 오실 여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되게 하심으로 구원하실 것을 말씀한다. 인간이 비록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지만 인자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 반면에 뱀에 대한 심판에서 보여주듯,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3장을 통해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마귀의 최후가 어떠함을 깨닫고,
아울러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나 오히려 자신을 낮추신 인자의 겸손과 순종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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