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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3:6, 9의 죄 문제 재연구
1. 서론
요한1서 3:4-10의 내용은 신약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1) 특별 히 3:6과 9의 ‘죄를 짓지 않는다’는 표현은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여러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어 왔다.2) 최근 들어서 많은 학자들은 그리스어의 시제 연 구에 대한 최근의 경향을 반영하여 기존에 견지되어 온 견해, 곧 그리스어의 현재시제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 근거한 주장을 논박한다.3) 전통적 견해 에 따르면, 그리스어의 현재시제는 반복적/습관적 동작을 지칭하므로4)3:6, 9의 ‘죄짓다’에 해당하는 현재시제는 습관적인 동작을 의미해서 ‘반복 적/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로 이해한다.5)
하지만 최근의 상(相/aspect) 이론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이런 입장을 거부 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학자들 은 급진적 상 이론을 받아들여서 그리스어 시제는 시간의 의미가 없으며,현제시제가 반복적/습관적 행동을 나타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6)
다른 학자 들은 상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어 현재시제가 반복적/습관적 행동을 나타낼 수도 있다고 보는데, 정작 요한1서의 구절들에서는 그런 의 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7)
그런데 새로운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때로는 혼란을 드러낸다. 특별히 3:6, 9와 유사한 내용을 가진 5:18을 주해하면서는 자신이 3:6, 9를 해석하면서 논박했던 주장의 내용을 그대 로 받아들여 제시하기도 한다.8)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어 시제에 대한 입장 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존의 그리스어 시제에 대한 견해에 근거한 주장을 받아들여 많은 영어 성경이 3:6, 9와 5:18에서 ‘죄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어 현재동사와 분사를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죄를 짓는 것으로 번역해 놓았 다는 것이다.9) 한글 성경의 경우는 그러한 경향이 약한 편이다. 대다수 한 글 성경은 습관적/반복적 개념을 반영하지 않아서 영어 성경과는 방향을 달리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성경 번역 방향일까? 언뜻 읽게 되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아도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가능하면 원문 의 구조와 문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하는 한글 성경의 경우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나,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직역보다는 의역을 추구하는 한글 성경을 향해서는 심각하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 구절들을 둘러싼 혼란이 성경 번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입증해주며,결국 본문의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학자들의 의견을 분석하고 평가하 여 혼란의 요소와 핵심을 파악하고, 그리스어 시제의 의미에 대한 견해를 명쾌하게 정리하여, 그 견해에 근거하여 3:6, 9의 의미를 밝혀낼 필요성이 있다.10) 이때에 기존에 이미 다루어진 내용은 제외하고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는 사항이나 아직 미처 살펴보지 못한 측면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래 서 이 구절들의 문맥의 흐름을 유심히 살피고 이 구절들 속에서 시제를 결 정하는 데 있어서 유의미한 문법사항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시행하여 해답 을 찾아내고자 한다. 특별히 3:8의 ‘처음부터 죄를 짓는다’라는 표현에 대 한 문법적 연구를 진행할 것이며, 이때에 신약성경의 용례는 물론 칠십인 역의 용례도 연구하여 신뢰할 만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11)
1) 류(Judith M. Lieu)는 3:4-10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전적인 동의를 얻지 못해왔고, 따라서 이 부분이 요한서신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라고 기술한다. J. M. Lieu, I, II, & III John, NT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8), 127.
2) 2000년대초반까지의이문제에대한논의를위해서는정창욱,“요한일서에나타난그리스도인 과 죄의 관계: 요한일서 1:8과 3:6, 9를 중심으로”, 「신약논단」 13:3 (2006), 663-691을 참조하라.
3) 고전그리스어 문법서를 비롯해 많은 그리스어 문법서들은 이러한 현재시제의 용법을 소개 한다. W. W. Goodwin, Syntax of the Moods and Tenses of the Greek Verb (London: Macmillan, 1889), 24번, 87번; H. W. Smyth, Greek Grammar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56), 1876번. 월리스(D. B. Wallace)와 패닝(B. M. Fanning)도 분명하게 이러한 입장을 견 지한다. 이들의 책에 대한 서지 정보는 아래에서 상세하게 제시된다.
4) 스마이스(H. W. Smyth)는 반복적(itinerary) 현재라는 범주의 하부범주에 습관적(customary)현재를 놓는데, 패닝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반복적이 아니라 공백 없이 지속적으로 계속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습관적 현재가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B. M. Fanning, 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 (Oxford: Clarendon Press, 1990), 206.
5) 이러한 방식의 해결책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크루즈(C. G. Kruse)는 지칭한다. C. G. Kruse,The Letters of John, PNTC (Grand Rapids; Leicester: Eerdmans; Apollos, 2000), 129. 이미 칼 빈은 요1 3:9를 주해하면서 분명하게 ‘죄를 계속해서 지을 수 없다’고 해석해 낸다. John Calvin and Matthew Henry, 1,2,3 John, Crossway Classic Commentaries (Wheaton: Crossway Books, 1998), 60. 그는 그리스어 현재시제의 의미에 근거하여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이 동사가 계속적인 의미를 포함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런데 사실 그 이전에 4세 기경에 이미 시각장애인 디디무스(Didymus The Blind)라는 주석가는 3:9를 해석하면서 “하 나님께로부터 낳음을 받은 자는 죄 없다고 하지 않고, 의의 길을 따라 걷는 한 죄를 짓지 않 으며, 거기서 벗어나면 죄를 짓는다”고 주해한다. G. L. Bray, ed., James, 1-2 Peter, 1-3 John, Jude,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New Testament XI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0), 199.
6) 대표적인 학자로 포터(S. E. Porter)를 들 수 있다. 그의 견해는 S. E. Porter, Verbal Aspect in the Greek of the New Testament: with Reference to Tense and Mood (New York: Peter Lang, 1989)를 보라.
7) 대표적으로 패닝과 월리스를 들 수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상 이론을 주장하면서도 극단적으 로 그리스어 시제의 전통적 견해를 부인하는 포터나 캠벨(C. R. Campbell)과는 달리 어느 정 도는 전통적 견해도 수용한다. B. M. Fanning,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과 D.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Grand Rapids: Zondervan, 1997)를 보라.
8) 대표적으로크루즈를들수있는데,그는3장의두구절을주해하면서그리스어의현재시제 에 근거하여 펼치는 주장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비판한다. 그런데 5:18의 내용을 주해하면서 는 느닷없이 지속적인 동작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제시한다. C. G. Kruse, The Letters of John, 195.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조하라.
9) 이러한견해를따라번역한영어성경이다수를차지한다.영어성경의이구절들번역에관 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진다.
10) 5:18의 내용은 3:6, 9가 모두 담고 있으며 표현도 거의 동일하므로 이 두 구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1) 요1 3:6, 9의 직설법 현재시제와 분사 현재시제의 의미, 그리고 현재완료분사의 의미에 대 한 상세한 어휘적, 문법적 연구를 위해서는 정창욱, “요한1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인과 죄의 관계”를 참조하라.
2. 영어 성경과 한글 성경의 요한1서 3:6,9의 번역
요한1서 3:6과 관련해서, 많은 영어 성경은 두 개의 그리스어 현재시제,곧 직설법현재와 분사현재를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것으로 번역한다. 대표 적으로, ESV, GNT, NLT의 번역을 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ESV No one who abides in him keeps on sinning; no one who keeps on sinning has either seen him or known him.12)
GNT So everyone who lives in union with Christ does not continue to sin; but whoever continues to sin has never seen him or known him.
NLT Anyone who continues to live in him will not sin. But anyone who keeps on sinning does not know him or understand who he is.13)
한글 성경 가운데는 공동/공동개정만 현재분사의 번역을 위해서 ‘언제나’를 집어넣어 번역한다: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언제나 죄 를 짓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 입니다.
앞의 현재분사의 경우 ‘언제나’를 넣어서 지속적 행동으로 보았고, 뒤의 현재분사도 동일하게 이해했다.
2005년에 가톨릭에서 새롭게 번역한 성경에서는 다른 한글 성경과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직역해 놓았다:
‘죄를 짓 지 않는다 ... 죄를 짓는 자는 누구든지.’
각 영어 성경의 3:9의 번역은 6절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져서, 앞서 언급 한 영어 성경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문장을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죄 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로 번역해 놓았다.14) 어떤 영어 성경은 때로는 6절에 서와는 약간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전 달해 주는 방식을 채택한다. 반면에 한글 성경 중에서 6절과 심지어 8절에 서 ‘언제나’라는 수식어를 집어넣었던 공동/공동개정은 9절에서는 아무 런 수식어도 집어넣지 않는다. 오히려 ‘도대체’라는 수식어를 삽입하여 본 문의 의도를 해석해 내려한다:
누구든지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 으므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에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공동/공동개정의 번역이 원문을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를 차치하고 일 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수식어의 엇갈린 사용, 곧 ‘언제나’와 ‘도대체’의 사용은 두 구절간의 의미의 차이를 더 벌려놓고 말았다. 이것이 아마도 성경에 서 이 수식어를 빼어버린 이유일 것이다.15)
12) NIV의 경우는 앞 부분은 ESV와 동일하고 뒷부분은 약간 상이하다: “no one who continues to sin”
13) 참고로 몇 개의 영어 성경의 중심부분의 번역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God’s Word Translation: “go on sinning...Those who go on sinning”/ Orthodox Jewish Bible: “go on sinning...everyone sinning”/ CEV: “keep on sinning...they do keep on sinning”/ Complete
Jewish Bible: “continues sinning...everyone who does continue sinning”/ NCV: “go on sinning...goes on sinning”/ The Message Bible: “makes a practice of sin...do practice sin”/ Weymouth NT: “lives in sin...no one who lives in sin”
14) 흥미롭게도 Weymouth NT는 명확하게 ‘습관적으로’라는 단어를 집어넣는다: “No one who is a child of God is habitually guilty of sin. A God-given germ of life remains in him, and he cannot habitually sin—because he is a child of God.” 이 영어 성경은 3:8에서도 분명하게‘습관적으로’라는 단어를 집어넣는다. 3:8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15) 성경의 번역은 이렇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3. 전통적 견해와 최근의 동향
위에서 3:6과 9의 영어 성경과 한글 성경의 번역을 제시하고 분석해 보았다. 그렇다면 학자들의 의견은 어떻게 제시되어 왔는가? 성경 번역과 더불어 성경 주해자나 해석자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 구절들을 둘러싼 혼란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학자들의 의견을 범주를 나누어 전통적 견해와 최근의 견해로 다루어보고자 한다16)
16) 여기서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은 측면으로서 최근의 주석서들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취급하는 주장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1.전통적 견해
3장의 그리스어의 현재시제 동사를 지속적인 행동으로 이해하는 견해는 오래 전부터 이미 있어 왔다. 칼빈은 그리스어 현재시제의 의미를 직접 언급 하지 않으면서도 3:9에서 이 동사가 지속적인 동작을 지칭한다고 주해하였다.17)
어쩌면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행동으로 보는 견해는 문맥 과 신학적 사상에 의해서 먼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요한1서 1:8, 10의 내용과 3:6, 9의 내용이 서로 상충하고, 실제적인 생활 속에서도 이 구절들의 내용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얘 기해서 신자도 죄를 짓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전그리스어 문법서의 시 제설명에 근거하여 ‘죄짓다’에 해당하는 동사와 분사를 지속적이고 습관적 인 동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면서 이 견해를 체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성경 그리스어 문법학자인 제어빅(S. J. M. Zerwick)은 분명하게 요한1서의 이 구절들에서 현재시제는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동작을 나타내어서 그렇게 규정되어지는 모습을 묘사한다고 주장한다.18) 그 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이러한 견해를 따라간다.19)
2000년 이후에도 이런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한 학자 는 바로 아킨(D. L. Akin)이다. 그는 3장의 두 구절을 이런 견해에 입각하여 일관성 있고 명쾌하게 설명해내지만, 이런 주장의 문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는 않는다.20)
17) 3:9의 ‘죄를 짓지 않는다’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He[John] denies that the faithful keep on sinning, because God engraved his law on their hearts as the prophet says.”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John is not speaking of one act [of sin], as people sy, but of the continued course of life.” 이런 그의 발언은 분명하게 이 구절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를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18) S. J. M. Zerwick, Biblical Greek, S. J. Josepth Smith, trans. (Rome: Editrice Pontificio Istituto Biblico, 1963), 82.
19) 이 주장을 따르는 학자들에 대한 정보는 B. M. Fanning, 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 213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213쪽 각주 23에서 패닝은 브룩(A. E. Brooke)이 이 주장 을 따라 주석을 썼다고 적고 있는데 이것은 부정확한 정보이다. 브룩은 적어도 5:18과 관련 하여 현재시제는 절대적인 의미를 표현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인다. A. E. Brooke,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Johannine Epistles, ICC (Edinburgh: T. & T. Clark, 1912), 90, 148. 다만 ‘낳음을 받은’에 해당하는 완료시제와 관련해서는 행동의 결과를 유지하는 자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시제에 무게를 실어준다.
20) D. L. Akin, 1, 2, 3 John: An Exegetical and Theological Exposition of Holy Scripture, NAC (Nashville: B&H Publishing Group, 2001), 143-144, 147-148, 211-212. 최근에 발행한 주해 서에서도 그는 동일한 주장을 유지한다. D. L. Akin, Christ-Centered Exposition: Exalting Jesus in 1, 2, & 3 John (Nashville: B&H Publishing Group, 2014), 67. 톰슨(M. M. Thompson)도 3:6의 현재시제가 지속적 동작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이해한다. M. M. Thompson, 1-3 John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2), 94-95. 스토트(J. R. W. Stott)는 동사의 시제에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지만 세밀하게 설명해 내지는 않는다. J. R. W. Stott, The Letters of John, TNTC (Leicester; Grand Rapids: Inter-Varsity Press; Eerdmans, 1988), 146-147을 보라.
3.2.전통적 견해 반박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요한1서의 구절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전통적 인 견해를 반박하는 주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급진적인 상 이론을 받아들여서 그리스어 현재시제가 지속적/습관적 행동을 나타내 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온건한 상 이론을 받아들여서 그 리스어 현재시제가 지속적/습관적 행동을 표현할 수 있으나 이 구절들에서 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3.2.1.급진적 상 이론에 근거한 반박
최근의 많은 학자들은 상 이론 중에서 포터(S. E. Porter)를 대표자로 하는 상 이론을 받아들여 전통적 견해를 논박한다. 그들에 따르면 그리스어 현재시제 는 지속적/습관적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최근에 좁스(K. H. Jobes)는 이런 견 해를 받아들여서 이 구절들을 해석한다. 그런데 그녀는 주로 크루즈(C. G. Kruse)의 연구에 의존하기에 그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21)
크루즈는 급진적인 상 이론을 받아들여서 현재시제는 단시 진행 중인 동작을 표현할 뿐이며 반복적/습관적 동작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전통적 인 견해를 논박한다. 그러면서 크루즈는 3장의 문맥에서 답을 찾고자 한 다.22)
그 곳에서 ‘죄’가 특별한 죄를 지칭하며, 그 근거로 여러 가지를 제시 하면서 ‘아노미아’라는 단어의 의미가 특정한 죄를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 되었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죄’에 해당하는 명사에 붙은 관사와 ‘아노 미아’라는 단어의 의미에 근거하여, 특정한 죄를 지칭한다고 역설한다. 하 지만, 5절의 ‘죄들을 용서하려 예수님이 나타났다’는 표현과 7절과 8절에서‘죄’(관사)와 ‘의’(관사)가 한 쌍을 이루어 ‘의를 행하는 것’과 ‘죄를 행하는 것’이 서로 대조되고 있어서 ‘죄’가 특정한 죄가 아닌 일반적인 모든 죄를 대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23)
특별히 의를 행하는 자는 의롭 고, 죄를 행하는 자는 악마에게 속했다고 말하여, 죄와 의가 완벽하게 쌍을 이루어 반대되는 대립개념을 이룬다. 그렇다면 ‘죄’가 특정한 죄여서는‘의’와 대립개념으로 설 수는 없다. ‘의’도 특정한 의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절에서 ‘의를 행하지 않는 자’라는 표현을 하면 서 ‘의’에 해당하는 명사에 관사를 붙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9절에서‘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면서 ‘죄’에 해당하는 명사에는 관사를 붙 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6절의 ‘죄’라는 단어의 관사의 유무에 주목하여 문 제를 풀고자 하는 것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더욱 주목할 사항은, 크루즈의 5:18에 대한 설명이다. 그 구절에는 3:6과 9를 합쳐놓은 듯한, 아주 비슷한 내용이 제시되는데 이 때 그의 설명은 3장 의 경우와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낳음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 크루즈는 5장을 설명하면서는 ‘죄를 계속 짓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해 버린다.24) 3장을 설명하면서 논박하고 거부했던 견해를 따라서 18절을 설명해 내고 있다.25)
이러한 그의 자세는 이 문제의 해결이 복잡하며, 그가 제시한 해결책도 문제점을 담지하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좁스는 크루즈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리스어 시제에 근 거한 견해를 거절한다. 크루즈가 3:6, 9와 마찬가지로 1:8에도 현재시제가 쓰이는데 1:8에서는 시제에 근거한 그런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내용 을 인용하며 전통적 주장을 반박한다.26)
하지만 이러한 이 두 학자의 견해 는 설득력이 적다. 1:8의 경우에 ‘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표현이 등장하 는데, 이것은 1:10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구절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렇게 죄를 짓지 않아서 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8절의 내용을 이해해야 함을 드러내준다.27)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기 전에 요한1서 5:16의 현재분사시제의 사용이 전 통적 견해를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이것은 스몰 리(S. S. Smalley)와 야브러(R. W. Yarbrough)가 제시하였다.28) 그런데 야브 러가 의존하는 스몰리의 주장은 오락가락하는 측면이 있다. 3장의 구절들 을 설명하면서는 직설법 현재시제가 습관적/반복적 행동을 가리키기 어렵 다고 파악하는데, 그 이유로 5:16의 ‘현재분사’는 습관적 행동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구절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이라는 수식어 로 죄를 규정하는데 그것은 반복적인 범죄행위를 가리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5:16의 설명에서는 그 분사의 현재시제에 근거하여 지속적인 행 동이라고 제시한다.29) 그렇게 보게 되면 3:6, 9의 직설법 현재시제도 지속 적이며 반복적인 죄를 가리킨다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스어 시제 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의 주장의 문제의 핵심은 현재분사가 5:16에서처럼 부가적인(supplementary) 용법으로 쓰일 때 반복적/습관적 행동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2) C. G. Kruse, The Letters of John, 126-132. ‘죄 없는 완벽주의에 대한 해설’이라는 제목을 달 고 크루즈는 3:6-9와1:8, 10 사이의 모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데, 단순히 의견들을 나열할 뿐만 아니라 각 의견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펼친 후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23) 류는 이 부분에서 한 쌍으로 이루어진 개념들이 등장한다고 제시하면서 ‘의’와 ‘죄’/‘불법’을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J. M. Lieu, I, II, & III John, 118.
24) C. G. Kruse, The Letters of John, 195. 이 주석의 131쪽에서 크루즈는 분명하게 현재시제는 그런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195쪽으로 가서는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설명한다.
25) 문맥의차이때문에발생한일이라고이해할수있지만,현재시제에근거한견해에대한크 루즈의 반박의 근거는 다름 아니라 바로 그리스어의 현재시제가 그런 의미를 전달하지 않 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를 따라서 5장을 설명하려면, 5:18의 ‘죄 짓는다’에 해당하는 동사 ‘a`marti,nw’는 특정한 죄, 곧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지칭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 죄 를 성도는 짓지 않는다는 의미를 이 구절은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문법적인 사항이 그러한 논의를 지지해주지 않는다. ‘죄짓는다’는 표현은 동사로 되어 있어서 어떤 특정한 죄를 지 칭할 수 없다. 이런 것을 잘 알기에 크루즈는 슬그머니 현재시제를 습관적 동작으로 이해하 여 넘어가 버린다.
26) K. H. Jobes, 1, 2 & 3 Joh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2014), 146-148.
27) 어떻든 좁스는 크루즈의 견해에 근거하여 전통적 견해를 비판한 후에 크루즈의 입장을 비 판하며 그와는 달리, 모든 죄가 ‘불법’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이기에, 인정하지 않고 회개 하지 않는 죄가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규정한다. 그런 죄를3:6, 9에 묘사되었듯이 성도들이 저지르지 않으며 저지를 수도 없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28) R. W. Yarbrough, 1-3 John, 183; S. S. Smalley, 1, 2, 3 John, WBC 51 (Waco: Word Book, 1984), 161-162.
29) S. S. Smalley, 1, 2, 3 John, 300.
3.2.2.온건한 상 이론 주창자들의 주요 논점
월리스(D. B. Wallace)의 입장은 아주 흥미롭다. 왜냐하면 상 이론을 받아 들이고 동시에 현재시제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을 수용해 반복적이고 습관 적 동작을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요한1서 3:6, 9와 5:18에서는 습 관적 행동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30) 그가 3:6, 9의 현재 를 습관적 현재로 보기 어렵다며 근거로 제시한 내용을 다른 학자들은 인용한다:31)
1) 현재시제의 의미는 너무 미묘하여 거기다 주장의 무게를 다 걸 수 없다;
2) 5:16에서 ‘만일 너의 형제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이라는 표현에서, ‘죄짓다’에 해당하는 분사의 시제는 현재다.월리스의 이론에 따르면 현재분사도 반복적 동작을 나타낸다고 보기에 여 기서 범죄는 습관적 죄를 지칭하며 따라서 그렇게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자는 형제로 불릴 수 없기에 모순에 빠지게 된다;
3) 이 구절들에서 현재분 사는 격언의 현재(gnomic present)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32)
위의 세 가지 사항 중에서 두 번째 사항은 이전 논문에서 다루었기에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33) 반면에 세 번째 논거는 패닝(B. M. Fanning)도 주장 한것으로어느정도무게가있다고할수있다.34) 격언의현재란시대를초 월해서 적용되는 원리를 표현해 주는데, 패닝이 지적한 대로 요한1서에서 계속해서 pa/j가 사용되었고 ‘누구든지’라는 의미여서, 누구에게든지 적용 되는 보편적 명제라고 제시해준다.35)
하지만 요한1서 3장에서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주어진 명제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든지’라는 표현 도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진리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되었 을 수도 있지만, 우선적인 의미는 요한교회 성도들 모두와 분리주의자들에 게까지 해당되는 진리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던 것이다.36) 부차적으로 확장되어서 보 편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지, 그 당시 저자 요한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것을 의도했고 독자들인 요한교회 성도 들에게도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6하반절의 내용이 초월적/보편적 명제이 기 이전에 구체적인 요한교회의 상황 속에서 분리주의자들을 겨냥한, 그들 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는 사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무엇보다도 패 닝도 인정하듯이 격언의 현재로 사용되더라도 현재동사는 지속적 동작을 나타낼 수 있다(참조. 마 7:17; 요 3:36).
첫 번째 주장도 어느 정도 무게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현재 직설 법 시제의 의미에 근거하여 이러한 해석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위험 성도 있다. 확실하게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최근 들어 많은 비판을 받 는 시제이론에만 근거하여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 다.37) 현재시제가 습관적인 동작을 표현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 패닝 조차도 현재시제 외에 다른 아무런 문법적 장치가 없고 격언의 현재로 사 용된 요한1서 3:4-10 속에서 현재 시제인 ‘죄짓다’를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못 박는다. 결론적으로 패닝을 따라서 월리스는 3:6, 9의 현재가 습관적이며 지속적인 동작을 표현 해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38)
정리하자면, 전통적인 그리스어 현재시제에 근거한 견해를 반대하는 논 거들로 제시되는 것들 중에 어떤 것들은 설득력이 크다고 할 수 없으며, 그 것들에 대해서 논박이 가능함이 드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되 어야 하는 측면이 있으며 그것들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진정 현재시제는 지속적/습관적 동작을 나타낼 수 없는가?
둘째, 기존에 제 시된 사항 외에 요한1서 3:6, 9의 현재시제를 지속적/습관적으로 해석할 문 맥상의 근거는 없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이 주어져야 한다.
30) 그의견해도이전연구에서간략하게다루었으나,상세하게다루지못하였고,여전히주석가들 이 그의 문법서에 의존하여 이 구절들을 해석하기도 하기에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31) D.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524-525.
32) 이세가지주장중에서세번째사항은패닝이이미그의책에서제시한것이다.패닝은 이것에 근거하여 요1 3:6, 9의 현재시제는 습관적 행동을 가리킬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B. M. Fanning, 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 216-217.
33) 정창욱,“요한1서에나타난그리스도인과죄의관계”,672-674.
34) 패닝은 다른 문법 사항이 없이 현재시제 자체가 습관적 동작을 나타낼 수 없다는 하지스(Z. C. Hodges)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현재시제 동사 자체만으로도 습관적 동작을 표현할 수 있 다고 주장한다. B. M. Fanning, 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 215. 결론적으로 그는 요1 3:6, 9에서 현재시제를 절대적인 명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 게 되면 3:6, 9의 내용과 1:8, 10의 내용이 상충한다는 데 있으며, 결국은 분리주의자들과 동 일한 주장을 펼친다는 데 있다.
35) Ibid., 216.
36) 요한1서에서 저자는 종종 ‘모두’라는 말이 필요 없을 때에도 이 단어를 집어넣곤 한다. 그 렇게 하는 의도는 편지의 독자 모두 예외 없이 포함됨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37) 월리스는그런시제이론을받아들여자신을책을저술하기에그의주장은더욱무게가실린다.
38) 그는 3:6, 9의 현재시제의 용법을 분류하여 설명하면서 이 구절들의 현재시제들은 예변 적(proleptic) 현재라고 설명한다. 이 경우에 현재시제는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일을 지칭 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두 구절이 위치한 요한1서의 문맥을 살피면서 종말론적인 상황 을 다루고 있기에 종말에 이루어질 성도의 완전한 상태, 곧 죄를 짓지 않는 상태를 지칭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은 허점이 있다. 우선 만일 그렇다면 반대자들 의 사상을 비판하는 구절인 1:8에서도 현재시제가 사용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물론 3장의 문맥이 종말론적 문맥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6절은 미래보다는 성도의 현재 상태와 현재의 사명에 관심을 집중한다. 3:2에서 장차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언급한 이유는 3절에 나타나듯이 현재 윤리적이며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4-5절에서도 종말론적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말하고(4절) 현재의 기반이 되는 과거의 예수님의 죄 사함의 사역을 언급 한다(5절). 그런 죄사함을 이루어내신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 현재 거하는 자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6상반절은 선언한다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4-6절의 문맥 의 흐름을 다시 짚어보자면, 4절에서 현재 저지르는 죄가 불법이라고 설명하고 그 죄들 을 예수님이 용서해 주셨다고 5절에서 부연한 후에, 그 용서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와 연 합을 이루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흐름인 것이다. 6하반절도 이러한 맥 락을 따라 이해해야 자연스럽다. 그렇게 현재 이 땅위에서 죄를 짓는 자는 누구든지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묘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월리스의 주장을 따른다면 6하 반절의 내용은 아주 어색하다. 그의 주장을 따라 6상반절이 예변적으로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을 묘사하고 있다면 하반절의 내용이 왜 필요했던 것일까? 그러므로 월리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4. 그리스어 현재시제의 의미 : 의미론과 화용론
그리스어의 현재시제가 습관적/반복적 행동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주장 은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앞서 살펴본 대로, 동사 상 이론을 받아들이는 패닝이나 월리스도 현재시제가 습관적 행동을 지칭할 가능성을 인정한다.그리스어 시제와 관련된 논란에 있어서 흔히 간과되는 사항은 의미론(syntactics)과 화용론(pragmatics)의 관계다.39) 의미론은 시제의 어미의 원래 기능과 의미에 집중하여, 그리스어의 경우는 이것이 시간 관계나 동작의 종류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반면에, 화용론은 실제적으로 어떤 동사가 주어진 문맥에서 사용되어 ‘동사의 상이 실제화되는 것에’ 대해 다 룬다.40)
그래서 동사의 시제가 어떻게 주로 사용되는지를 관찰하여 각 시 제에 따라서 시간적 의미가 생겨난다고 본다.41)
이전에 동작의 종류(Aktionsarts)이론을 주장하던 학자들은 확고하게 시제가 동작의 종류를 객 관적으로 나타내며 다양한 시간개념을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에 언어학의 주류는 이 이론을 인정하지 않으며, 거의 모두 ‘상(aspect) 이 론’을 받아들인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그리스어 동사의 시제는 기본적으로 시간관계나 동작의 종류를 표현해주지 않는다. 어떤 학자들은(대표적으로 포터) 직설법의 시제도 시간을 전혀 나타내지 않아서, 직설법 현재는 사건/동작의 현재 발생이나 현재진행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는 어떤 동작을 진행 중인 동작으로 묘사하는 것이지 현재의 반복적 동작을 묘사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화용론을 인정해서 어떤 동사가 사용된 문맥이나 함께 쓰인 문법적 요소들이 시간적 측면을 나타낸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소극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습관적/반복적 행동 등의 범주를 인정하지 않는다.42)
그렇다면 이런 맥락에서 본 구절의 현재시제의 의미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모든 법에서 현재시제가 반복적 동작을 나타낸다는 견해는 전통적 인 견해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상 이론을 주창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화용론에 근거하여 이런 견해를 지지하기도 한다(패닝, 월리스).43)
그런데 사실 현재는 진행 중인 동작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반복적인/지속적 동작 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능성은 그리스어의 직설법 과거시제가 두 가지, 곧 미완료과거와 단순과거로 나누어져 있어 서, 단순과거는 단순히 과거의 동작을 전체로 봐서 표현하고, 미완료과거 가 반복적인/진행 중인 과거의 동작을 표현해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힘 을 얻는다. 그 두 가지 기능을 직설법의 현재시제는 다 포괄하고 있다고 이 해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의미론적으로 보자면 현재시제는 적어도 직설법 에서는 습관적 동작을 나타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화용론적으로 볼 때에는 습관적 동작을 나타낼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상 이론에서도 시간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제 자체가 아니라 주 변의 여러 가지 문법적 장치들과 문맥이 시간관계/동작의 종류를 결정해 준 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시제가 습관적 동작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이유는 현재시제가 나타내는 원래의 상, 곧 진행 중인 동작을 나타낸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44) 물론 어떤 동사의 현재시제의 구체적 의미 는 그 동사가 사용된 문장 속의 다른 문법장치와 문맥이 결정해 준다. 이것이 바로 시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문맥과 문법사항을 유심히 관찰해야 하는 이 유다. 그렇다면 3:6, 9에서도 문맥과 문법장치를 분석해 보아야한다.
39) 의미론과 화용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S. E. Porter, Verbal Aspect in the Greek of the New Testament: with Reference to Tense and Mood와 B. M. Fanning, 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을 참조하라.
40) 정창욱, 성경 그리스어와 신약성경의 이해(서울: 그리심, 2013), 63. 이 책에서 저자는 의미론과 화용론의 관계와 동사 상과 동작의 종류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해내고 있다. 특별히 58-67을 보라.
41) 대표적으로 그리스어 분사의 경우에, 현재분사는 본동사와 동시적이거나 이후의 동작을, 과거분사는 본동사 이전의 동작을 나타낸다고 화용론에 입각하여 어떤 학자들은 인정한 다. 반면에 의미론에 따르면, 그리스어 분사의 시제 속에 그런 시간관계는 전혀 없다.
42) 포터의 상 이론을 보려면, S. E. Porter, Verbal Aspect in the Greek of the New Testament: with Reference to Tense and Mood를 참조하라. 또한 B. M. Fanning, Verbal Aspect in New Testament Greek, 3장을 참조하라. 포터식의 상 이론의 최대의 강점은 명확한 이론을 근거 로 하여, 잘못하면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막아준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과거의 일을 위해 사용되는 현재나, 현재 사건을 위해 사용되는 과거동사와 같은 난해한 예들도 상 이론에 따 르면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된다. 기본적으로 상 이론을 받아들이지만, 직설법에서도 시간 의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99퍼센트의 직설법 현재는 현재의 동작/사건 을 가리키며, 99퍼센트의 직설법 과거는 과거의 사건/동작을 위해 사용된다. 이것이 바로 화용론으로서, 화용론적으로 보자면 그리스어의 동사시제는 시간적 의미를 전달하기도 함 을알수있다.
43) 앞서 설명한대로 스마이스와 굿윈(W. W. Goodwin) 모두 이런 견해를 저서인 고전그리스 어 문법서에 기술해 놓았다.
44) ‘나는 (아침에) 밥을 먹는다’라는 표현은 지금 밥을 먹고 있는 동작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밥을 주식으로 삼아 아침에 언제나 습관적으로 먹는다는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을 직 설법의 과거로 표현할 때, 그리스어는 과거의 습관적 행동과 한번만 했던 단회적 행동을 두 개의 다른 시제로 담아내어 하나는 미완료과거로, 다른 하나는 단순과거로 표현한다. 그런 데현재는하나의시제만있어서 이 두개의 기능을 다 담고있다.
5. 3:6-9의 문맥과 문법 사항 연구:3:8의 ‘처음부터 죄짓다’를 중심으로
5.1.문맥의 이해
우선 문맥상 3:6, 9의 ‘죄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습관적 행동을 나타낼 확률이 높다. 6상반절에서 ‘그 안에 머무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선언하는데, ‘죄를 짓지 않는다’는 선언의 의미는 6하반절의 ‘죄를 짓는 자’라는 말의 의미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며, 반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표현의 의미는 ‘죄를 짓는 자’라는 말의 정의가 규명해 준다. 6상반절은 5절 마지막 구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그 마지막 구절과의 관계 속에서 이 해되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는 죄가 없다. 따라서 그 안에 머물러 그와 연합 을 이루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이것은 원론적 선언이다. 그런데 이 선 언은 장로 요한이 앞서 1:8, 10과 2:1-2에서 밝힌 죄에 대한 입장과 상충된 다.45)
장로 요한의 의도는 오해를 받을 처지에 있다. 그래서 장로 요한은 이 선언의 의미, 곧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제시하기 위해 서 6절에서 후반부의 구절을 첨가한다: ‘죄를 짓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 였고 알지도 못했다.’ 결국 6상반절의 의미는 하반절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 리고 ‘죄를 짓는 자’는 단순히 한 번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짓는 자’곧 ‘죄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6상반절의 ‘죄를 짓지 않 는다’라는 말의 의미는 ‘죄를 지속적으로 짓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이곳의 문맥은 확실하게 습관적 동작을 나타낼 가능성을 지지해 준다. 이것이 바로 칼빈이 그런 입장을 드러내고 많은 영어 성경이 그런 입장 을 반영한 번역을 채택한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화용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3:6상반절의 주동사의 현재시제는 습 관적 동작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같은 구절 하반절의 현재분 사의 의미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46) 결론적으로 3:6, 9의 현재시제가 습관적 동작을 나타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열려있다.그렇다면 주변의 문법적 사항 가운데 이런 해석을 지지해 주는 다른 요소 는 없는가?
45) 사실1:8,10의내용과3:6,9의내용은서로상충되어서큰혼란을불러일으킨다.이런모순 을 저자인 요한이 몰랐다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해석이다. 모든 주석가들과 해석자 들은 이 두 부분 사이의 모순을 감지하며 이것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골몰한다.
46) 분사의 시제의 의미는 앞선 연구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취급하지 않는다.
5.2. 문법 사항:3:8의 ‘처음부터죄짓다’
어쩌면 3:8의 ἁμαρτίνω 동사의 용례에 근거하여 답을 찾아낼 수도 있다.거기서 악마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설명해 주는데, 이 때 그를 묘사하기 위 해서 현재동사를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ὁ ποιῶν τὴν ἁμαρτίαν ἐκ τοῦ διαβόλου ἐστίν, ὅτι ἀπ’ ἀρχῆς ὁ διάβολος ἁμαρτάνει. εἰς τοῦτο ἐφανερώθη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ἵνα λύσῃ τὰ ἔργα τοῦ διαβόλου.
이 구절에서 악마를 설명하면서 그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다고 설명한 다. 그런데 의미상으로나 문맥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대와는 달리, 전치 사 구 ‘처음부터’와 함께 단순과거나 미완료과거, 혹은 현재완료가 아니라,현재시제가 쓰이고 있다.47) ἁμαρτίνω의 현재동사가 요한1서 3장에서 무언 가 특별한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47) 스미스(D. M. Smith)는 ‘처음부터’라는 부사구가 이상한 맥락에서 사용되었다고 언급한다. D. M. Smith, First, Second, and Third John, Interpretat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1), 83.
5.2.1. 3:8의 성경 번역
3:8의 번역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살펴보아야 하는 사항이 있다. 특별히 처 음부터’와 함께 사용되어 악마를 묘사한 ‘죄짓다’에 해당하는 현재시제의 번역이 주목을 끈다. GNT, NAS, NKJ, RSV는 ‘has sinned’로 번역한 반면에,많은 영어 성경은 ‘has been sinning/committing’으로 해석한다(CEV, ESV, NIV, NLT, NRS, NCV).48)
이것을 ‘has been sinning’으로 번역한 거의 모든성경은 8절 초반부의 ‘죄를 짓는’에 해당하는 현재분사를 습관적이며 지속 적인 의미로 해석한다.49) 또 다른 영어 성경은 현재로 번역하여 ‘sins’로 해 놓았다(The Darby Translation, Jubilee Bible 2000).50)
한글 성경도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이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 한다. 사실 ‘죄는 처음부터 악마의 짓입니다’라는 공동의 이해는 더 심각 하다.51)
원문의 의도는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것인데 죄에 초 점이 맞추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동은 이것을 과거의 행동으로 전락시킨다. 흥미롭게 3:8에서도 공동은 현재 분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언제나’를 첨부하여 ‘언제나 죄를 짓는 자는’으로 번역한다. 한글 성경은 모두 원문의 주동사의 현재시제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한다. 진 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것은 2005년에 새로이 시도된 가 톨릭의 성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 문입니다.” ‘처음부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구에 대한 세밀한 연구 는 이러한 번역의 정당성을 무너뜨려버릴 수 있다.52)
과연 요한1서의 저자 는 왜 3:8에서 ‘처음부터’와 함께 현재 동사인 ‘죄짓다’를 사용한 것일까? 혹 시 이것이 3장의 요한의 ‘죄짓다’ 동사의 현재시제 사용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 주는 장치가 아닐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ἀπ’ ἀρχῆς가 칠십인역 과 신약성경에서 어떤 동사시제와 사용되어 어떤 의미를 전달했는지 살펴 보아야한다.
48) Complete Jewish Bible은 “kept on sinning”으로 번역한다.
49) 몇 개를 제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GNT/NCV “whoever/anyone who continues to sin”; ESV/The Message Bible “make(s) a practice of sin(ning)”
50) 흥미롭게도 3:6, 9에서 적극적으로 습관적 의미로 번역했던 NIV는 3:8에서는 습관적이라 는 의미를 적용하지 않는다.
51) 공동의 3:8 번역 전문은 이렇다: “언제나 죄를 짓는 자는 악마에게 속해 있읍니다. 사실 죄는 처음부터 악마의 짓입니다. 악마가 저질러 놓은 일을 파멸시키려고 하느님의 아들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52) ‘처음부터’라는 구문이 포함된 3:8과 3:11의 번역을 비교해 보자면, 대표적으로 NAS는 모 두 현재완료로 표현한다(has sinned/have heard). 왜 그런 것일까?
5.2.2.칠십인역의 예 연구
칠십인역에서 ‘처음부터’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ἀπ’ ἀρχῆς라는 표현은 약41번 등장한다.53) 41번의 예들 가운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단순과거동사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때로는 eivmi의, 미완료과거와 과거분사가 함께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구문은 과거 진행을 더 강조해 준다(지혜 12:11). 또한 미완료 과거와 사용되기도 한다(제1에스드라서 8:67-mete,cw의 미완료). 그런데 eivmi,의 미완료과거와 과거분사가 함께 쓰인 경우와 미완료과거가 이 전치사구 와 함께 사용된 경우를 해석해 보자면, ‘처음부터 ...하고 있었다’라는 의미 가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현재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 없는가? 문 맥을 살펴보면 지혜서에서 미완료과거 동사는 단순히 과거에 그런 일이 진 행되고 있었음을 표현해 주고자 하는 반면에(처음부터 저주받고 있었던 민 족이다),
제1에스드라서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래왔다는 사실을 묘사해 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당시까지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사실 을 묘사해준다. 그런데 왜 미완료과거를 썼을까? 과거로부터 쭉 존재해 왔 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과거 동사의 사용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 단순과거는 처음부터 그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처음 부터 그랬고 그 후에도 그랬을지 모르나, 단순과거 동사는 그 후에 어떠했 는가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고 처음부터 그랬다는 사실만을 강조해준다.
반면에 미완료과거는 처음부터 계속 그래왔던 측면을 강조해 준다. 현재의 상태는 단순과거나 미완료과거 모두 관심사항이 아니나, 문맥 속에 그런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으며, 특별히 미완료과거는 더욱 현재에도 관심이 있음을 드러낸다.54) 또한 전치사 구 ἀπ’ ἀρχῆς는 칠십인역에서 완료시제와 사용되기도 한다(시락 39:25). 현재완료시제는 과거의 어떤 행동/동작의 발 생과 더불어 그 동작의 결과, 효과, 영향을 표현해 준다.55) 시락 39장의 예 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어서 처음부터 창조되어졌고 그렇게 창조되어 존재 하는 모습을 그려준다.56)
본 연구와 관련하여 칠십인역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용례는 이 전치사 구와 현재시제가 사용된 경우다: ‘처음부터 우리 위에 계십니다’(사63:16). 이때에 eivmi, 동사의 현재가 등장하는데, 현재시제의 사용은 이 동사 의특수성에서그이유를찾을수있다.물론eimv i의, 미완료과거동사를쓸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에 강조점은 과거의 존재에 놓여진다. 현재를 쓰는 이유는 현재에도 처음처럼 계속 그렇게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 다.57)
그런데 이 전치사 구와 함께 현재시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칠십인역에서 eivmi, 동사만, 그것도 단 한번만 나타난다. 문맥상 의미는 분명하여서,그렇게 지속되어 왔음을 표현해 준다. 흥미롭게도 이사야 63:16에서 앞의 두 문장에서 동사는 단순과거시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라는 전 치사 구를 사용하면서 eivmi의, 현재 동사를 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바로 직전의 명령법 때문에 그렇게 했을 수 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금 구 원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그의 이름이 그들 위에 계신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16절 전반부에서 아브라함과 이스 라엘(야곱)을 언급하며 그들도 자기들을 몰랐다고 과거형으로 말한다. 그 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을 위해 주의를 기울이시고 그의 이 름이 그들 위에 있었고 말을 하는 그 때 곧 현재도 계심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여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청원은 현재의 하 나님과 성도의 관계에 대한 강조점을 이루어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를 써서 현재적 상태를 강조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름, 곧 그의 존재는 그들 위에 저자가 말하는 그 때에도 계속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사 실, 여러 예들의 경우에 이런 의미를 위해서 쓰일 때, 이 전치사 구는 동사 없이 사용되곤 한다. 대부분 eivmi, 동사가 생략되었다(삼하 7:10; 대상 17:9;미 5:2; 합 1:12). 흥미롭게도 칠십인역의 번역본은 거의 일관성 있게 생략된 동사의 시제를 현재완료로 번역한다. 이것은 아마도 영어의 현재완료가 현 재의 상태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58)
49) 몇 개를 제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GNT/NCV “whoever/anyone who continues to sin”; ESV/The Message Bible “make(s) a practice of sin(ning)”
50) 흥미롭게도 3:6, 9에서 적극적으로 습관적 의미로 번역했던 NIV는 3:8에서는 습관적이라 는 의미를 적용하지 않는다.51) 공동의 3:8 번역 전문은 이렇다: “언제나 죄를 짓는 자는 악마에게 속해 있읍니다. 사실 죄는 처음부터 악마의 짓입니다. 악마가 저질러 놓은 일을 파멸시키려고 하느님의 아들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52) ‘처음부터’라는 구문이 포함된 3:8과 3:11의 번역을 비교해 보자면, 대표적으로 NAS는 모 두 현재완료로 표현한다(has sinned/have heard). 왜 그런 것일까?
53) 이 전치사 구가 때로는 ‘어느 지역의 입구부터’(겔 48:1) 혹은 ‘from the top’의 의미(아 4:8)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예들은 제외한 빈도수이다.
54) eivmi의, 경우에 미완료과거만 있고 단순과거가 없는데, 이것이 이 동사의 특별함을 드러 내준다. 어떻든 둘 사이에 차이점은 없다.
55) 그리스어의 현재완료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D.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572-582. 정창욱, 성경 그리스어와 신약성경의 이해, 68-88.
56) 시락 39:25: ἀγαθὰ τοῖς ἀγαθοῖς ἔκτισται ἀπ ̓ ἀρχῆς, οὕτως τοῖς ἁμαρτωλοῖς κακά.
57) 한글로 표현해 보자면 이렇다: 과거- 처음부터 말했잖아(과거의 시점에 말한 것 강조), 미 완료과거- 처음부터 말하고 있었잖아(과거의 반복적으로 말한 것 강조), 현재완료- 처음부터 말해왔던 거잖아(과거와 현재 동시에), 현재- 처음부터 말하잖아(현재를 강조).
58) 여기서 제시된 예들 외에도 동사 없이 때로는 접속사 ‘...처럼’(w`j나 kaqo,j)과 함께 사용되 어 동사 없이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사 1:26; 슥 12:7; 바룩 17:30)
5.2.3.신약성경의 예 연구
신약으로 넘어와서는 이 전치사 구와 사용되는 동사의 시제는 칠십인역 과 약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우선 과거분사와 사용된 경우가 몇 개 있는데(마 19:4 [막 10:6 병행구절]; 눅 1:2; 행 26:4), 이 예들에서 주동사는 대부분 단순과거이고 사도행전의 예에서만 주동사의 시제가 현재완료이다. 이 전 치사 구와 직접 함께 사용되는 주동사의 시제가 완료인 경우도 여러 개 있 어서(마 19:8; 24:21=막 13:8; 요1 2:13, 14),59)
정확하게 완료의 의미, 곧 과거 발생과 현재 상태를 동시에 잘 표현해 준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까지도 영향이 있다.’ eivmi의, 미완료과거(요1 1:1)를 포함하여 미완료과거인 세 개의 예 모두 요한서신에 등장하며(요1 2:7; 요2 5), 미완료과거 동사는 칠십 인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과거의 처음부터 과거에 진행되고 있던 동 작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현재 상태까지도 암시적으로 표시해 준다.
ἀπ’ ἀρχῆς가 과거동사와 직접 연결되어 사용되는 예도 여러 개 신약에 등 장한다.(요 16:4; 요1 2:24; 3:11; 요2 6) 하지만 칠십인역과 비교하면 그 비율 은 현저히 낮다. 가장 흥미를 끄는 예는 바로 현재동사와 전치사 구 ἀπ’ ἀρχῆς가 사용된 경우로 두 곳에서 발견된다: 요한복음 15:27; 베드로후서3:4. 이 두 개의 예는 요한1서 3:8에서 이 전치사 구와 ‘죄짓다’ 동사의 현재 시제의 사용이 독특한 용법이 아니며 따라서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음을 입증해 줄 수도 있기에 중요하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예는 eimv i, 동사의 현 재이기에 특별함을 간직한다고 하기 어렵다.60) 칠십인역에서 살펴보았듯 이, eivmi, 동사는 특성상 현재시제를 쓰면 ‘계속해서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 있다’라는 의미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복음 15:27에서도 계 속해서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는 개념이 강조된다:
καὶ ὑμεῖς δὲ μαρτυρεῖτε, ὅ τι ἀπ’ ἀρχῆς μετ’ ἐμοῦ ἐστε.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언 할 것이라고 언급하시면서 그 이유/근거로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있 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이 현재 eivmi, 동사 를 have been으로 번역하여 ‘있어왔다’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런데 사실 저자 요한의 의도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당시(현재)에 예수님과 제자 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유난히 강조하고 싶어 한다. (그 전에 함께 하기도 했지만, 더욱)그렇게 지금도 함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장차 증언할 수 있 다. 그래서 몇 개의 영어 성경은 여기서 현재동사를 사용한다(YLT, Douay-Rheims Catholic Bible, Orthodox Jewish Bible).
그런데 베드로후서의 예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eivmi, 동사 가 아닌 다른 동사의 현재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καὶ λέγοντες· ποῦ ἐστιν ἡ ἐπαγγελία τῆς παρουσίας αὐτοῦ; ἀφ’ ἧς γὰρ οἱ πατέρες ἐκοιμήθησαν, πάντα οὕτως διαμένει ἀπ’ ἀρχῆς κτίσεως.
하지만 ‘...이래로’라는 의미의 ἀφ’ ἧς와 ou[twj의 사용은 이 현재시제의 의미가 과거와 맞물려있음을 입증해 준다: ‘조상들이 죽은 이래로 모든 것 들은 창조의 처음 때부터와 같이(그랬듯이) 그렇게 존재한다[해 왔다].’ 또 한 이 동사의 의미도 특별한 용례를 지칭해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동사의 의미는 eivmi, 동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남아 있다/존재한다’는 말은 사 실 ‘있다/이다’라는 말의 유사어에 해당된다.61) 결국 동사의 특수성과 구문 의 구조가 어우러져서 현재시제의 사용은 자연스럽게 다가오며 의미도 분 명해진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 그렇게 존재해오고 있다.’
정리하자면, 결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eivmi를, 제외한 일반 동사가 ‘처음부터’와 함께 특별하게 사용된 경우는 없으며, 따라서 만일 그런 조합이 이루어져 사용된다면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다고 판단해 볼 수 있다.
이런 사항들을 고려해 볼 때 요한1서 3:8에서 저자가 왜 특별하게 ‘처음 부터’와 함께 현재동사를 사용했는지 파악해 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악마 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규정해 주기 위해서였다. 악마/사단은 처음부터 죄 를 지었고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존재다.62)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어왔 고 여전히 그렇게 죄를 짓고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처음부터’와 현재동사를 쓰고 있다. 결국 사단은 처음부터 죄를 계속 짓는 특성을 가지 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3:6, 9의 의미는 분명해 진다.
8절의 문법 구조에 비추어보자면 악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죄 를 짓고 있는 자인 반면에, 죄가 없으신 그 분 안에 머물러 연합을 이루는 사람은 그렇게 계속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일 수 없다(6절). 의를 행하는 자 는 그와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이다. 그런데, 처 음부터 계속 지금까지도 죄를 짓는 존재인 악마의 일들을 하나님의 아들이 파괴해버렸다(8절). 그 결과 악마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자(곧 낳 음을 받은 자)는 마귀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고 지을 수도 없다(9절).63)
59) 요 6:64에서 oi=da의 과거완료가 사용되었으나 이 동사는 실질적으로 현재 대신 완료가 쓰이므로특별한의미는없다고할수있다60) 요15:27의그리스어본문은이렇다:καὶὑμεῖςδὲμαρτυρεῖτε,ὅτιἀπ’ἀρχῆςμετ’ἐμοῦἐστε.
61) W. Bauer,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233. 이 사전은 이 단어의 의미를 어떤 상태의 지속을 가리킨다고 제시한다. 그렇게 지속하는 것은 계속 존재한다는 말과 동일하 며 그것은 eimv i, 동사의 의미와 유사하다.
62) 월리스는 이런 현재시제의 용법에 다소 긴 이름을 붙인다: Extending-from-Past Present (Present of Past Action Still in Progress). 그러면서 얼마나 엄격하게 이 용법을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신약의 예가 상대적으로 드물거나 아주 많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D. B. Wallace,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519.
63) 8절의현재시제가지속적행동을나타낼가능성을패닝은언급하지만,자세한연구없이그 럴 가능성이 ‘비교적 약하다’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8절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8절이 6절과 9절의 현재시제를 지속적/습관적 행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근거를 제공해 준다.
6. 결론
그리스어 시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미론과 화용론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화용론적으로 볼 때에, 현재시제가 지속적 행동을 나타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결국 문제는 3:6, 9의 다른 사항들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 하 는가에 맞추어 지는데, 요한1서 3장의 문맥은 이 해석을 지지해 주며, 또한 8절의 ‘처음부터’와 함께 쓰인 ‘죄짓다’ 동사의 현재시제의 의미에 근거해 볼 때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또한 6절 후반부 의 내용은 전반부의 내용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이러한 해석은 힘을 얻는다. 따라서 3:6, 9의 ‘죄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a`marti,nw’의 현재 직설법 동사는 반복적/습관적 동작으로 해석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으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주석 작업에서 이러한 견해가 반영 되어야 할 것이며, 한글 성경 번역에서도 이런 견해가 반영된 번역이 이루 어져야 할 것이다. 특별히 직역보다는 의역을 추구하는 한글 성경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러한 견해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번역할 필요가 있다:
3:6
그 안에 머무는 자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그렇게 죄를 짓는 자는 그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64)
3:9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은 자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의 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습관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으니,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64) 3:6의경우에는‘죄짓다’의현재동사와현재분사가서로긴밀히연결되어있기에후반부의 현재분사를 번역하면서 ‘그렇게’(습관적으로)라는 표현을 넣어줄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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