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의 들밥>
이천에 가서 쌀밥보다 들밥에 녹아버렸다. 음식도 상차림도 실내장식도 흠잡을 데 없는데, 실외 커피숍과 구경거리까지도 화려하고 실속있다. 밥과 커피와 이천도자기 구경과 쇼핑, 여성 잡화도 쇼핑 가능한 전방위 공간이다. 거기다 쇼핑공간인지 감상공간인지 헷갈릴 정도의 놀라운 전시공간이 식당과 안팎으로 짝을 이루며 식전 식중 식후를 즐겁게 해준다. 그 모든 것이 식당의 영업 전략이라면 너무 슬기롭지 않은가.
1. 식당얼개
상호 : 강민주의 들밥 (이진상회점)
주소 : 경기도 이천시 서이천로 656 (마장면 장암리 325)
전화 : 031-336-9926
주요음식 : 한식 기본상차림 +1단품메뉴
2. 먹은날 : 2022.3.3.점심
먹은음식 : 찬 20,000원(2인)+제육볶음 15,000원
3. 맛보기
나무쟁반에 유기 찬기다. 쟁반 둘에 유기 찬기를 나눠답고 가운데는 된장에 주메뉴접시를 두고 앞에는 돌솥밥을 내온다. 기본 차림에 2인 1 단품메뉴 주문식으로 이루어져 주문방식도 독창적이다. 먹다보면 상차림도 가격도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 상차림만으로는 뭔가 헛헛하여 부족하므로 든든하면서도 화려한 단백질 메뉴가 필요한데, 그것은 개인 기호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식의 편안함과 특별찬의 마뜩함을 다 놓치지 않는 밥상이 된다.
기본찬에 주문 메뉴 차림새다. 우리상은 제육볶음이다. 김치가 겉절이처럼 갓담근 모양새인 데다 상추 등 푸성귀 리필이 부담없어 제육볶음 먹기에도 적절하다. 이천 쌀밥에 초점을 맞추고 싶으면 보리굴비메뉴도 적절하다.
제육볶음. 한눈에 돼지고기 품질이 괜찮다는 것이 드러난다. 맛도 쫄깃거리며 탱탱하여 신선도가 느껴진다. 비게가 적당히 섞여 풍성한 식감으로 다가온다. 너무 맵지 않고 약간 삼삼한 듯한 간도 좋다.
가지튀김무침. 오늘 음식중 압권은 바로 이것. 연한 간에 부드러운 튀김을 고춧가루 양념에 조선부추 양념과 함께 살짝 무쳐냈다. 튀김으로 잘 보존된 가치 특유의 향과 식감이 잘 살아 있다. 우리 가지요리가 중국에 비해 단조로운 것이 늘 안타까웠던 입장으로서는 가지요리 지평 확대도 반갑다.
중국 가지는 수퍼에서 맨눈으로 보기에도 적어도 세 종류다. 둥근 가지, 몽둥이처럼 긴 가지, 그리고 우리와 동일한 가지, 이중 둥근 가지는 아주 단단하여 튀기는 데 많이 쓴다. 이에 비해 우리 것은 좀 물러서 튀김에 적절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는데, 여기서 보니 튀김으로도 훌륭, 튀긴 후 무침으로는 더 훌륭이다.
더 압권은 이 맛있고 새로운 요리를 더 먹는 코너에 잔뜩 싸 놓은 것. 솜씨도 창의력도 인심도 최고다. 한번 온 사람이 안 찾는 경우가 거의 없을 거 같다. 여러 모로 귀감이 되는 식당이다.
고사리깻잎 무침. 살짝 볶아 무친 듯한데, 두 가지 나름 강한 식재료의 조합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하다. 맛도 딱 그렇다. 그런데 매력적인 조합이다. 둘을 구분하면서도 어울리게 만드는 혀의 맛감각을 타인의 것인양 떨어져 감지한다.
된장찌개. 밥상에서 유일하게 섭섭한 음식이다. 기대했던 맛이 아니어서 손이 안 갔다.
김치. 겉절이같은 김치. 오늘 감동 요리 중 하나가 바로 이 김치. 모양새도 맛도 플레이팅 품새도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게다가 국산 고춧가루이다. 고추씨가 눈으로도 혀로도 그대로 느껴진다. 고추의 생맛을 얼마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전엔 동네에 한두집 김치 양념 갈아주는 집이 있었다. 믹서가 집집마다 구비되지 않았을 때 얘기다. 확독 시대를 넘어 동네양념갈이 집 시대까지도 양념의 풋풋함이 자연 그대로였다. 그 시대의 풋풋한 생양념 맛을 이제 다시 끌어낸 느낌이다.
혀도 눈도 코도 호사하게 만드는 음식, 전라도와는 다른 풍미의 김치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보통 음식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요리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쌀 하나는 자신하는 이천답게 밥맛이 압권이다.
외국인들이 와서 놀란다는 우리의 식탁 부재 제공법. 보통 수저와 휴지를 비치하는데 여기서는 수저를 따로 내왔다.
4. 먹은 후
1) 일단 구경
미루어두었던 식후경 금강산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식당 주위를 휘황하게 감싼 커피숍, 도자기코너, 보석코너 등등을 둘러보고 커피 한잔을 즐긴다.
이진상회 베이커리카페. 카페 안안팎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각양각색의 도자기들은 카페장식품이자 진열된 상품이다.
슈베르트를 지나면 드디어 커피숍 입구. 도자기에 눈이 멀어 돌아다니다 보면 입구 찾기가 헷갈린다.
실내는 장식인 듯 아닌 듯한 가구 배치가 사실은 무위자연의 고도의 인테리어임을 조금만 기웃거리면 알 수 있다. 수많은 소품의 축적과 안목의 축적으로 가능한. 1960년부터 이 구역에서 이것저것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니, 누적될 만도 하다.
커피 맛은 은근한 장식 맛만은 못한 거 같다.
공급되는 빵은 메종 드 쁘띠푸르. 별도의 빵 기업과 연계된 운영방식이다.
주얼리가게. 보석류와 가방, 옷 등을 파는 곳이다.
*더이진. 도자기코너이다. 가지가지 자기 중에 필요한 자기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한 세트 내에도 수공을 거친 듯 손모양이 나는 수제 라인이 살아 있는 그릇들이 포진하여 현혹되어 구경하고 현혹되어 구매하게 된다. 좋은 가게이다.
2) 들밥과 식당 운영 생각
식당을 낀 블럭이 온통 즐길거리 투성이다. 식당 아니어도 일부러 찾아옴 직하다. 커피만 즐기고 싶어도 찾아옴 직하다. 커피보다 빵이 훨씬 맛있다는데, 빵을 먹으러도 찾아옴 직하다. 빵도 실험용 새 아이템이 많다. 순쌀바게트, 명란바게트 순쌀치즈케이크 등등, 높은 전문성과 실험정신 아니면 접하기 힘든 빵들도 명물이다.
도자기는 혼을 빼 놓을 만큼 용도도 모양새도 다양한 것들이 건물 안안팎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도자기공원을 이루고 있다. 조금만 성큼거리면 떨어질까봐 발걸음 소리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이것들은 조금만 찬찬히 보면 그날은 집에 다 갔다. 보고 싶은 욕구를 천천히 다스리며 호기심을 꾹꾹 눌러대야 한다.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사고..., 이 코스를 반복하며 있어도 될 만큼 먹거리, 볼거리, 마실거리가 화려하다. 그렇다고 사치스러운 곳도 아니다. 도자기와 빵들은 신기하고 아름다우며 장인정신, 창의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정점에 있는 곳은 강민주의 들밥이다. 이 모든 장치를 소품으로 사용하면서 밥으로 수렴하여 사람을 모은다.
그렇게 모은 사람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음식도 가격도 장식도 상차림도 마뜩한 한상을 받을 수 있다. 아름답고 편하고 즐거운 곳에서 '들밥'을 먹는다. 들밥은 들일하는 사람들에게 내다주는 점심이다. 해질녘에 들판에서 저녁을 먹을 리 없으니 점심이고, 들에서 먹으니 들점심밥이다. 들에서 먹는 점심밥, 들밥이 이제 이렇게 세련미를 갖추었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의 24화 들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기서는 제목을 '점심'이라 했음)이다. 간단한 찬에 커다란 밥그릇, 커다란 막걸리병에 술사발이 인상적이다. 아이를 업고 밥광주리를 이고 온 아낙은 농부들이 밥먹기를 기다리는 동안 밥광주리를 앞에 두고 젖을 물리고 있다. 아마도 곁에 있는 아이가 술병을 들고 동행했으리라. 아이의 밥그릇도 예사롭지 않게 크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반찬그릇이 보이지 않는다.
개화기 우리나라에 머무른 선교사는 조선사람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기록을 남겼다. 찬은 부실하고 배는 채워야 일을 하니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 일을 해냈을 것이기에 밥그릇이 저만했으리라. 사실 밥그릇이 '공기'라는 이름으로 작아진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1970년대를 지나야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밥에만 의존하던 들밥이 이제 이처럼 화려하게 변신했다. 아니 들밥이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 아니라, 화려한 한정식이 들밥으로 내려앉았다. 화려한 한정식도 민중의 찬으로 내려앉아야 손님들이 눈길을 준다.
'들밥'이란 이름이 갖는 전통성, 역사성, 토속성을 거두어 누리는 성과이다. '밥'에는 쌀이 유명한 이천의 지역성까지 담겨 있다. 보편적인 이런 의미에만 만족하지 않고 거기 경영자의 이름을 붙여 전문성도 놓치지 않았다. 과연 식당 경영인 대회의 발제자다운 명명과 운영방식이다. 이 모든 운영 전문성도 음식 맛을 놓치면 빛좋은 개살구다. 살구맛이 우선 좋으니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되었다. 번영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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