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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uli0 2019. 5. 7. 19:04
http://blog.daum.net/mamuli0/15867012
기해년 입하 다음날 또아리 둥근 호박모를 장에가서 사다 심었다. 외래종 바랭이에 치어 수선화가 금년에 꽃을 한송이도 피지 않아 구제해 보려고 시험 재배해 보려고 한다.
먼저 심은 보리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봄보리는 이제 이삭이 올라온다. 토란도 싹이 올라오고 울금은 아직 올라오지 않는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차이 나고 아침 기온이 10도에서 14도이다.
정 절 회 복
2003.01.01. 김준호 선생
나누어드린 글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책 이름을 알고 계시지요? ‘순결의 길 초월의 길’ 그 책에 있는 말씀을 같이 보기위해서 따로 이렇게 빼었습니다. 저로서는 이 글을 책은 갖고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 봤어요. 어떠한 뜻으로는 참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책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 내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쓰신 글인데 참 부끄럽기도 하고 늦었지만 저로서는 이 글을 볼 때에 혼자 봐서는 안 되겠다. 꼭 같이 볼 말씀이 여기에 적혀있기 때문에 같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선생님 말씀 보면서 또 성경 말씀도 더 조금 보충 하겠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어요. 보실 분들은 보시고 또 귀가 어두운 분들은 안 들릴 테니까 그래서 이 글을 직접 저녁에 보십시오.
9월 30일, 토요일, 1947년 9월 1일 시작 책에 써져 있는데 1947년이라는 말은 없어요. 계산 해보니까 그 날짜를 그 년도를 보충해 빼보니까 1947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책과는 틀립니다.
9월 말입니다. 13년 전 9월 1일에 서리내에서 시작케 하옵신 주님, 이 날도 여전히 역사하시와 처음 계획하신 바를 성취해 주시기를 빕니다. 성취하여 주심을 빕니다. 아멘.
이 말씀을 지금 고 영은 장로님은 95세 또 젊은이들은 30세 20세 그러시겠지만 여기 적힌 말씀은 이 선생님은 그 일기체로 쓰신 글에 그의 일기지요. 9월 30일자인데 13년 전 9월 1일에 서리내에서 시작케 하옵신 주님, 이게 저는 잘 몰라요. 여러분들이 저녁에 의논해 보세요. 이 날짜가 무슨 날짜인지 서리내에서 시작케 하옵신 주님, 그랬으니까 13년 전이라고 하는 말씀은 책에 있어요. 13년 전을 빼고 보태니까 1947년이 되더라.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같이 하늘나라 가신 분들이야 따라 알아듣겠지만 남아있는 우리들이 이 날짜를 알아 둬야 쓰겠다. 싶어요. 저도 잘 모르니까 아시는 분들은 이 기록이 맞는지 틀리는지 어찌 되었든지 나라도 어느 날 건국했다. 그러지 않아요? 이 공동체 이 모임도 어느 날 시작했다. 어느 해 시작했다. 그러니까 선생님 글에 직접 있기 때문에 처음 봤지요. 이번에 한 달 전에 와 참말로 반가 왔어요. 그럼 이것은 살아계신 어머니들에게 직접 의논해야 쓰겠다. 그래 이걸 제가 나왔습니다. 제가 뭔 말씀 하자는 것 없어요. 제가 서리내 가본일은 있습니다. 그래 서리내에서 시작케 하옵신 주님, 그런데 인제 우리들이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서리내에서 시작할 때는 이름도 없으신 것 같고 무슨 모임인지는 이름은 정하지 않았고 이 동란이 45년에 가사 해방되고 4년 후에 5년 후에 동란이 일어나지요? 그러니까 육이오 동란이 일어나기 일 년 전에 동광원이 시작 되었습니다.
동광원 시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서리내 시작할 때는 동광원 이라는 이름은 훗날, 훗날 생겨난 것이고 그러면 서리내서 시작하신 그것은 무슨 이름인지 알 수 없어요. 시작하셨어요. 제가 가볼 때는 서리내는 깊은 산속이고 얼마큼 마을로 내려와서 가까운 곳에 갈보리 쪽 거기에 갈보리 어머니라고 하시는 분이 계신 걸 그때 처음 봤어요. 갈보리 어머니라고 계시더만요. 지금 아시는 분들 있지 않습니까? 따님들도 지금 나이가 백발이나 되었는데 따님이 어머니니까 갈보리 어머니가 갈보리라는 곳에 사셨어요. 그러니 갈보리 어머니는 별명이겠지요. 그러면 거기서 한 십리나 올라가면 서리내 골짜기 인데 산 깊은 산속이지요. 거기서 시작했다. 제가 알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니까 그때 갈보리 사시던 분도 몇 분 살아계실 것이고 또 서리내에서 선생님이 뭘 시작했는가? 아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요. 오늘 밤중에 되시면 의논들 해보세요. 이런 것이 모였다는 어떤 뜻입니다. 왜 모였느냐? 우선 실상 동광원 사람들이 아닙니다. 동광원 이라는 말은 고아원 이름이거든요. 왜 동광원이냐?
그때 광주 시내에는 시장이 있었고 도청에는 도지사가 계시고 인제 경찰서에는 서장이 계시는데 그때 관민이요, 도지사, 서장, 시장 또 그때는 변호사 송 변호사는 알아요. 송 변호사, 광주 유지들이 육이오 전에 해방이 막된 다음에 제가 알기에는 내가 그때 걸인이니까, 부록크 담이 없었어요. 세멘으로 만든 부록크 담이 없고, 아무리 부잣집도 판자 울타리 입디다. 그때는 이 현 준호씨 집만 돌담으로 쌓고 다른 부자들은 다 탱자나무 울타리 아니면, 탱자나무 아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인제 판자로 모두 울타리를 다 쳤기 때문에 걸인들이 밤이면 추우니까 그 울타리를 뜯어다가 모두 불을 피우고 그 강가에 있어요. 아주 그걸 목격 했거든요. 우선 춥고 얼어 죽지 않으려면 남의 집 그 울타리를 뜯어다 불을 질러요. 그런 때에요. 다시 말하면 광주 시민이 다 걸인이에요. 그때 부자 없었어요. 그때 이야기니까 그러면 그때 광주에 계신 도지사, 가사 그때 광주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장 서장 무슨 판사 검사 그 변호사 광주 유지들이 교회 쪽으로 목사 그런 어른들이 회의를 했어요. 무슨 회의냐? 광주 거리에 헤매는 이 유랑민 이지요? 걸인은 아니에요. 그때 헤매는 고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이루어 줄 수 없다. 광주가 좋아요. 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데지요. 전국적으로, 광주 사건도 그래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광주 사람들이 그런 거 있어요. 딱 발기해가지고 무슨 일을 시작해요. 그러니까, 광주 시내 헤매는 우선 노인들 또 병자들 또 과부들 고아들, 이 사람들 어떻게 하냐? 이대로 둘 수 없다. 모두 길거리에서 얼어 죽고 하니까 그래서 관과 민이 합동해서 이제 발기회를 해가지고 그러면 이건 수용을 시키자. 어디로? 이렇게 저녁에 잘 수 있도록 집을 만들어 주자. 그랬겠지요? 그래서 그때 돌아가셨습니다. 김 춘배 선생님이라는 분은 YMCA 그때 총무에요. 그 다음에 정 인세 선생님이 YMCA 총무니까, 종교계니까 그러면 우리가 길거리에 헤매는 사람을 수용시켜야 하는데 그럼 장소는 어디로 하냐? 일본시대 병원이에요. 전염병원, 피할 피(避)자 피병원 그러니까 일본시대 해방 막 되었으니까 피병원 일본시대 보건소, 전부 국가 소유지요? 도청 관할이지요. 그런 것들을 집으로 쓰게 하고 그러면 누구를 대표로 세우냐? 그래가지고 김 춘배 선생님이 그랬다고 그래요. 이 일을 감당할 사람은 정 인세 선생님이오. 추천했어요. 그때 정 인세 선생님은 그때는 인제 Y에 있다가 수피아 여학교 교감으로 들어가셨지요. 그때니까 그러면 동광원이 태동하기 전이지요.
전이니까, 제가 알기에는 인제 이 선생님은 서리내 계셨어요. 광주 잠깐 나온 거지요. 나왔는데 인제 정 선생님이 하소연 하는 거지요. 광주 시민들이 주최를 해가지고 이 부랑아들을 길거리 헤매는 사람들을 수용하고자 하는데 인제 장소는 피 병원 일본시대 지산동에가 있었지요. 병원 그 건물을 쓰고 인제 대표 원장을 선출하는데 나 정 인세 나를 선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일에 있어서 그 원장 직에 내가 허락을 할까요? 거절을 할까요? 그걸 물어봐요. 이 선생님한테 이 선생님 들어보시고 그 일 보십시오. 그 만두시오. 그 이야기 안 했어요. 성경 보십시오. 야고보서 1장 27절입니까? 그거 큰 소리로 읽어 보세요. 성경구절을 써서 보냈어요. 인편에 그 것뿐입니다.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그 말이 아니고 성경 구절을 드렸어요. 그거지요. 큰 소리로 읽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네, 그 성경 구절을 정 원장님이 받으시고 아, 이 선생님이 내 원장 직을 수락 원장을 하라는 허락으로 알고 취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막상 누가 밥을 합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말로 하면 성경말씀대로 하면 과부 고아 열 명 스무 명 삼십 명 모아드는데 길거리에 있으니까 누가 밥을 하며 누가 옷을 빨아주며 누가 이 집을 보냐? 이 선생님이 서리내를 중심으로 모였던 옛날 자매들이요. 어머니, 그 첫째 그때 갈보리 어머니 계셨지요? 그러니까 또 그 다음에 젊은 자매, 그 무렵에 서리내에서 나오시니까 정 원장님이 YMCA 건물을 몇 동 빌려줬어요. 방은 아닙니다. 그냥 일본시대 훈련소니까 큰 초등학교 교실 같아요. 교실 하나가 열 평 스무 평 되는 것들, 큰 칸을 몇 개 주면서 이걸 쓰라고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 아실 겁니다. 증심사 입구에 최 흥종 목사님 친하니까, 최 흥종 목사님께서 홀로 쓰던 별장이야. 별장, 이걸 내 드릴 테니 쓰라고. 거기 보모들 누군지는 몰라요. 나이 한 20대 젊은 자매들을 7-8명, 거기에 기숙하도록 그러니까 방이 좁아요. 좁으니까 돌아가신 김 상옥 의사라고 한의사지요. 그분이 돈을 내놓으면서 방이 좁으니까 집 한 칸 마련하라고 그러니까 별장 뒤에다가 흙집을 짓는데 그때 한나 어머니가 들어오신 것 같아요. 그러고 집을 감독해서 돌하고 흙하고 집을 지어가지고 자매들이 한 7-8명 계세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허락은 정 원장님이 원장 직에 취임하도록 허락 했겠다. 원장님은 홀몸으로 원장이 어떻게 됩니까? 누가 이 살림을 합니까? 그러니까는 인제 그 증심사 입구에 있던 최 목사님 집 새집 들어있는 어머니들이 구술회의를 해가지고 그날 몇 사람 보모로 보냅시다. 그럼 내가 잘 몰라요. 수래기 어머니 확실히 내가 몰라 그런 중견 어머니 몇 분하고 젊은 자매 몇 분하고 보모 직이 되어가지고 파송 받는 거지요. 제 생각에는 서로 안 갈라고 그래요. 무등산에서 그렇게 조석으로 예배보고 고요히 수도하고 싶지. 거기 그 일선, 광주 시내에 내려가서 환자들 돌보고 고아들 거둬주고 그거 누가 좋아하겠어요? 선생의 명령 말씀이니까 순종하는 거지요. 그렇게 한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벌써 수용자가 백 명이 넘으니까 한 두 사람만 보내고 말자 한 게 어쩔 수 없어요. 이 선생님도, 무등산에 있던 식구가 다 내려가는 거예요. 손이 모자라니까, 이 선생님 본의가 아니었어요. 제가 그때 옆에서 보니까 선생님은 한 두 사람만 대표로 보내버리고 전 젊은 사람들은 무등산에서 우리말로 하면 수양하는 겁니다. 수양 조석으로 예배보고 성경공부 하고 싶은데 이 동광원이라는 고아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생을 하는 겁니다. 본인들도 하기 싫어했고 억지로 내려갔고 선생님도 보내기 싫지만 사건이 사건인 이상 사업이 시작되니까 원치 않았지만 다 내려간 거예요. 무등산에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느낌이, 엊저녁에 가만히 잠 안자고 생각해 봤어요. 그러니까 그런 광주에서 모임이 있기 전에 서리내 이야기는 오래전 이야기거든. 광주 오기 전 이야기라고, 서리내 머물던 이야기가 저는 서리내 이야기는 모르거든요. 그 이야기입니다. 1947년 9월 1일자로 짐작하면서 시작하신다.
주를 믿고 극진하신 자비와 한량없으신 은혜를 느껴야 바로 믿고 따르는 일입니다. 사랑을 해서 극진히 감사를 하고 죄를 인하여 두렵고 떨림이 참 계시로 주님의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음이 많이 혼합물처럼 되어서 아무 효과도 발생 안하나 참 복음은 믿는 이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게시오. 은혜 이십니다. 높아지려는 성질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물의 본성을 어기니까 조만간에 물의 성질에 부합될 것입니다. 본성으로 돌아가고만 말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예정된 천국화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세상이지만 조만간 천국화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물의 성질에 포섭되어야하는 성질입니다. 예수와 같아지려 않고는 주님 정신을 못 받을 것입니다. 중심에 매여서 물의 성질을 본받아야 주님 닮아집니다. 소감이니까 그때 선생님의 느낌을 물을 비교해서 물같이 인격화 되어야 되겠다. 그렇게 적으신 대목이지요. 책을 읽고 여러분 책을 보시고 그 다음을 보겠습니다.
주님, 권능이 무한하십니다. 어머니께서 그 권능 받으셨으니 제가 받은 것보다 더 좋습니다. 이 사연도 아시는 분은 앞으로 누가 알아맞히면 좋겠어요. 친 어머니, 제가 보기에는 친어머니 같아요. 선생님 친 어머니가 그때는 나이가 많으시고 살아계신데, 들리는 소식에 도암 중천에 계신 어머니께서 믿음으로 참 마음에 깨달음이 있으시고 기뻐하시고 그런 소문이 들어가셨는데 그 자녀는 그때 갈보리 어머니가 아파계실 때니까 어머니가 밤새 병이 나셨다는 건가 몰라도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거든. 이 말씀은 살아계신 어머니가 아닌 것 같아요. 주님 저의 성모님, 이런 말은 우리 쪽에서 아주 새로운 소리거든요. 그때 이 선생님이 이런 일기를 쓰셨을까? 우리가 천주교 모를 때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님 저의 성모님 저를 도우소서. 그러면 이 선생님은 병들어서 상당한 아주 생명이 위독할 때 일기를 쓴 장면이거든요.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가 선생님의 제자라 하니까 선생님이 이런 글을 써놨는데 저는 처음 봤거든요. 그래 참 놀래요. 선생님은 이런 글을 쓰셨는데 우리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그때 무슨 심정으로 이 말씀을 쓰셨을까? 주님 저의 성모님, 저를 도우소서. 무한하신 지혜를 저도 얻어야만 실수를 않겠습니다. 모든 참 일은 정신력이 첫째입니다. 정신력을 먼저 얻고 나서 몸의 힘은 그 다음이요. 그리고 그 다음이 물질과 기계의 힘입니다.
아버지, 저를 잘 얽어매 주셔서 저희로는 끊을 수 없이 되어있는 형편을 감사드립니다. 억지로는 안 끊어지니 순리로 잘 풀리도록 맺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인내와 사랑 가지고 순리로 풀게 하여 주옵소서. 저의 사람들 사이가 화평으로 화해되기를 바랍니다. 미련한 때가 가장 지혜로운 때입니다. 주님만 의지하는 시간이 바로 지혜로운 시간입니다. 약할 때가 가장 강합니다. 주님 힘만 빌리는 시간이 가장 강한 시간이 됩니다. 이 대목을 선생님이 죽음이 목이 말도 못하시고 어쨌든지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그 무렵이고 말년에 속한 글이거든요. 그래서요. 어제 밤에 좀 잠을 안자고 생각해 봤어요. 그때 짐작이 저는 잘 안가니까 제가 들은 이야기를 보태고 싶어요. 일기에는 없지만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우리 본 본원 생활은 창세기 말씀대로 살았지요. ‘이마에 땀이 나도록 땅을 파라.’ 아주 단순해요. 공동체의 시작은 그러니까 전 식구가 일한 때가 있었어요. 광주 와서도 다 나무 해다 불 때고 밭 매고 아무리 자기 학벌이 있고 대학을 나왔더라도 다 그렇게 했거든요. 그리고 냉수로 목욕을 하고 새벽에 세시에 일찍 일어나서 예배보고 꼭 하루에 세 번 예배를 봤어요. 그 무렵에 선생님이 저희가 알기에는 지금 그 집이 뜯어지고 다른 집이 들어섰지요. 옛날 목조건물 예배당이 있는데 방이 두 칸이야. 큰방이 있고 작은방이 있는데 그러니까 13세 14세 15세, 그 또래 애기들이야. 소녀들 소녀 반 그래 한 7-8명 안가고 아랫방에 있으니까 내가 말을 할 테니 들어보세요.
어느 분이 갑자기 눈이 병이 났어요. 병원에 가서 눈을 낫고 치료를 하고 오고 싶은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갈 형편도 못되고 어려운 사정인데 여러분 생각에는 집안이 어려우니까 살림이 그냥 눈병 들었으니까 그대로 집에 있으면 쓰겠소? 병원으로 가서 병원으로 보내서 눈병 낫고 오시라하면 쓰겠소? 어머니가 되었든지 아버지가 되었든지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그래 어린 소녀들 이니까 ‘선생님, 그 아픈 어머니를 병원에 가서 눈병 낫고 오시도록 하면 쓰겠어요.’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 의견이 나와요. 소녀들 입에서 ‘네 좋습니다. 그런데 말이요. 이놈이 제가 지금 눈이 캄캄합니다.’ 그래요. 앞길이 안 보인다. 그거에요. 왜 식구는 많이 모아놨는데 먹을 것이 없어요. 모두 땅을 파는데 아무리 파도 곡식이 안 나와요. 그 감나무 밭을 얻어놨는데 아무리해도 채소를 해도 안 되어요. 아주 땅이 박해요. 새벽마다 광주 시내 똥을 다 퍼오지요. 제가 그건 봤어요. 돌아가신 김 은현 어머니가 소고삐 잡고 성희언니 뒤 따라가서 그 똥통 밀고 새벽 세시부터 광주시내가서 똥을 퍼다가 늘 감나무 밑에다가 찌끌어 주지만 곡식이 안 되어요. 그늘이라. 식구는 먹을 것이 모자라요. 나물을 먹어도 한 끼 두 끼지 모든 식구가 쇠약해. 몸이 약해져 가지고 바짝 말라요. 종일 일해 봐도 나오는 것이 없어요.
그 무렵에 그때는 일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실 때인데 그러니까 제 눈이 캄캄 합니다. 여러분, 용서 하십시오. 제가 눈을 뜰 동안 눈을 뜨고 올 동안 광주를 비워야 하겠다고 내가 어디에 가서 어디를 가든지 지리산을 생각한 거 같아요. 서리내지요. 다시 서리내로 가서 눈뜨고 마음의 지혜를 얻어가지고 와서 이 사람들 지도해야 되겠다. 그런 암시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래 아까는 눈이 병들면 병원에 가면 쓰겠다는 비유를 말했지만 선생님이 정작 거기를 떠난다고 하니까 문제가 크지를 않습니까? 동산을 비우고 선생님이 떠난다는 거예요. 그 며칠 후에는 온데 간데 안계시데요. 어디로 가셔버렸어요. 그럼 인제 예배를 선생님이 인도하시던 때거든요. 조석 예배를 식구들이 본다 하더라도 꼭 낮에도 예배 봤어요. 그때 정오에 아시는 분 아실 거예요. 정오 예배를 못 봐요. 왜 그렇게 되었냐? 선생님이 눈을 뜨고 오신 것 같은데 이 생활이 변화가 일어나요. 종일 예배 보는 시간이 없어지고 근무할만한 자매들은 제중병원에 그 소위 말하면 협력을 전부 보내버려. 나이가 한 19세 20세 21세 23세 아주 젊은 층을 제중병원이라는 데를 알아가지고 가서 거기가 도와주라고 무엇이든지 거기 밭도 매주고 꽃밭도 매주고 또 병실에 가서 똥도 치워주고 고름도 닦아주고 간호원들 심부름도 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식하니까 병원에서 기뻐하는 대로 심부름하라.
소위 말하면 눈이 캄캄해서 안 보인다고 하시고 도암 가셨다. 몇 달 있다 오시고 혁명이 일어난 거예요. 생활 개혁이 일어났어요. 원 소원은 성경말씀 그대로 땅 파고 일 하고 예배보고 그렇게 살고 싶은데 전식구가 몸은 약해지고 땅은 파 봐도 먹을 것이 없어지고 그러니까 문제가 컸던가 보지요. 선생님으로서는 그래 생활 혁명이 일어난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이 지도했기 때문에 모든 식구가 예, 예 한건 아니에요. 전 식구가 싫어 한 거예요. 갑자기 남녀 분별을 시키고 엄격한 정절을 주장하는 그런 분이 남자 환자들이 그득한 병원에 가서 어떻게 근무를 해요? 부끄러워서 젊은 사람들이야 순종하고 간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급들이, 어머니 급은 저는 하소연을 들었어요. 저를 불러가지고 한나 어머니 같은 분은 몰래 얘기해요. ‘우리 선생님 미쳤소.’ 어머니들은 생활 혁명이 일어나니까 ‘우리 공동체는 땅을 파고 일하고 살아야 하는데 어째 젊은 처녀들을 병원에 가서 남자환자들 앞에 세워가지고 어떻게 고름을 닦느냐? 선생님이정신이 나갔던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폐병이 들더니 여자를 좋아하고 자꾸 여자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상당한 사건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데요.
나는 확실히는 몰라요. 생활이 개혁이 일어나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이해가 동의가 안 되어요. 그런데 강하게 절망한 분이 갈보리 어머니 같아요. 광주 간 어머니가 선생님이 변질해 버리니까 나 망했다. 나 혼자 살아야 쓰겠다하고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온데 간 데 없어요. 그런데 선생님으로서는 참 진퇴양난 이지요. 이거 믿음으로 나갈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제 애기 때부터 같이 컸는데 쑥 죽 먹고 나물죽 먹고 가사 인제 쌀겨 혹은 보리 겨를 먹고 큰 사람들이라 모두 몸이 약하거든. 몸이 약한데 이걸 어떻게 해? 도저히 이 몸 가지고는 농사는 안 되겠다. 중노동은 안 되겠다. 그러니 경노동 생활을 바꾸면서 일생을 살아야 하니까 혼자 살 사람들이니까 그렇다면 제일 불쌍한 사람이 환자들이니 환자들 섬기는 것이 무엇이 그게 나쁘냐? 이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렇게 보신 거예요. 병원을 접근하시고 병원 원장님과 의논하니까 그쪽은 쌍수로 환영해. 왜 선교회 돈이 모자라고 직원 월급을 못주는데 이쪽에서 무급으로 돈 받지 않고 봉사한다는 바람에 전적으로 환영한다고, 병원 쪽에서 열사람도 좋고 스무 사람도 좋고 많이 보내주시오.
저쪽은 환영을 하고 집에서는 보내려는데 생활이 변화가 일어나니까 이해가 안 되고 어머니는 도망가 버리고 막 선생님을 반박하고 반대하고 그래 선생님은 결단을 내리기까지 눈을 뜨기는 떴는데 정신적으로 눈을 떴는데 길이 막혀버렸다고 저 같은 사람은 남자니까 가만히 있어야 돼. 아무리 이렇게 하면 좋다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건설적으로 하더라도 이 식구로는 안 되겠다.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농사하는 게 절대 좋지만 몸들이 약해서 간호원을 시키는 게 좋겠다고 하나님이 내게 명령을 한다 하더라도 기성 관례가 강한 어머니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겠다. 그러니까 이 어머니 다 세상을 떠나시고 후 시대는 가능해도 이게 억지란 말이에요. 어머니들 마음을 서럽게 하면서 밀고 나가기는 나가는데 자기 본심이 아니야. 본심이 아니야. 그래 어머니들을 섭섭하게 해드린 거예요. 이 선생님은 왜 이 젊은 층들을 평생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농사만은 안 되겠다. 농사가 아닌 길을 열어야겠다. 그때 그분은 눈을 뜬 거예요. 캄캄 앞이 캄캄했다가 희망을 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협력이 된 게 고 허번(크링턴) 원장인데 고 허번 원장, 이제 그렇게 해서 길이 달라. 지금 현재 자선사업이 뭡니까? 요양사업이지요? 환자 돌보고 그렇게 길을 바꾼 거예요.
그때 이 선생님이 그때 길을 바꾸지 않았으면 지금 농사하고 우리가 살 거예요. 아무것도 다른 것은 하나님이 허락 안했다고 봤거든요. 땅만 파는 걸 하나님이 원했다고 봤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나갔으면 몸 약한 사람들이야 병들어 가사 죽었든지, 감당이 안 되면 다 나가버렸겠지요. 그리고 건강한 사람 땅 팔 수 있는 사람 몇 사람 남아 있겠지요. 그게 나쁘다는 거 그렇게 하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요. 어차피 그런 사정이 있다. 그 말이지요. 인제 내가 왜 이이야기 하는 줄 압니까?
부끄럽습니다. 저더러 금년에 80이라고 그래. 내가 세상으로 보면 내가 80이라니 그러면 내가 왜 안 죽고 살아있냐? 이 말하라고 그래요. 이 말하라고 젊은이 윤 선생 같은 이 길렀거든. 젊은이 죽어버리니 늙은이라도 말해야지. 역사가 있어 괜히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연히 모여 있지 않아요? 이렇게 이 수가 남아있도록 아주 많은 곡절이 있어. 곡절이 몰라서 그렇지, 그러니까 보십시오. 교훈이 밑에 뒤에 이 선생님 말씀이 나와요. 길을 열어주시고 희망을 보여주시고 빛이 환히 나도록 선생님은 영성의 기도를 하고 돌아가셨더라고 무엇이 우리한테 모자라느냐? 무엇이 우리한테 필요 하느냐? 정신세계 진리세계니까요. 선생님의 본문을 더 보겠습니다. 여기서 지금 주목할 만한 성모님 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지금 우리가 조금 이해할 거예요. 그때 시절에 이 선생님 입에서 성모님이 왜 나왔냐 이거에요. 성모님이, 그럼 여기다. 이 말 까지 하고 넘어가요. 첨가하기 위해서 이 선생님을 추천하고 성인이 아니지만 성인이라 하면 어쩌겠냐 하며 가정한 말을 만든 분이 엄 두섭 목사거든. 이 선생은 성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십시오. 성인이 아닙니다. 그분 전기를 쓸 때 이분을 성인이라 하면 무슨 잘못이냐? 전기를 쓰고 싶은 목사의 양심상, 나는 이 선생을 성인이라고 하고 싶다. 그것뿐 이에요.
그러니까 그럼 인제 이 선생님의 필적 이 선생님이 직접 썼다고 하는 편지, 누구한테 썼냐하면 다시 말하면 우리 어머니지, 한나 어머니한테 한 편지, 편지 한 장을 지금 목사님 방에 걸어놨다고. 기념으로, 그 내용이 간단해요. 어머니 이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 말씀에 불순종한 자식 앞으로는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으로서도 어머니들이 싫어하고 슬퍼한 것을 막 우겨가지고 젊은 사람들이 농사나 하고 싶은데 병원에 보냈어. 어머니 말씀에 반대한 거예요. 초기에, 역사를 보면, 살아보니까 쭉 살아보고 어머니가 농사하고 싶은 아이들만 한 40명 데리고 가서 살았어요. 계명산에서, 이 선생님이 자기도 죽을 때가 되었는데 와서 보니 어머니하고 사신 것이 옳아. 원칙은 옳은 거예요. 성경말씀대로 사신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자기로서 선생님의 생각으로서 젊은 사람들을 병원에도 보내고 간호도 가르치고 생활개혁을, 변화를 시켰다고 산 결과니까 사업도 커졌어요. 이 선생님의 영혼으로서는 어머니를 제자로 보지 않는다고, 한나 어머니를 제자로 보지 않았어요. 선배, 나보다 앞선 어머니, 그런데 이 아들이 그동안 어머니 말씀을 순종치 않고 불순종 했습니다.
그러니까 생활이 자꾸 변화가 일어났다고 이 선생님 생각에, 그러니 자기는 죽을 날이 가까워오고 이 선생님 어머니한테 편지하는 거예요. 어머니 제가 잘못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 순종하지 못한 죄인입니다. 앞으로 어머니 말씀 순종하겠습니다. 또 그런 편지를 써놨어요. 그 편지가 저로서는 그 편지가 성인다우세요. 다른 것은 모르겠어요. 어머니한테 순종하겠다고 항복하는 거지요. 항복, 그 세계는 참 영성 세계에서는 성스러운 세계니까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런 말 우리가 못 알아들어요. 무슨 뜻인지 몰라요. 세월이가면 알아듣겠지요. 그럼 이 선생님 돌아가실 때에 나 옆에서 봤거든. 제일 통곡하고 우시분이 또 한나 어머니야. 그러면 선생님 혼자 가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가시오? 그러고 대성통곡 했어요. 한나 어머니가 선생님 막 임종하니까, 그러니까 또 한나 어머니가 이 선생님을 가장 존경한 분이야. 물론 다 존경했겠지만 가장 존경했어. 이 선생님을 또 이 선생님은 이 선생님은 한나 어머니를 스승으로 봤어요. 선배로 봤어요. 선배, 제자가 아니었어요. 그런 관계지요.
그러면 한나 어머니는 이 선생님의 말씀을 타협이 안 되니까 이 선생님을 거절 않기 위해서 머리를 깎았어요. 이 선생님의 말을 듣다듣다 보면 사업은 커져도 영혼은 보호가 안 되겠다. 그러니까 이 선생님의 말을 거절해야겠다. 어머니 바쁩니다. 어디 나가서 고아원 돌보세요. 그렇게 말 하시면 거절을 못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가 말 못하겠나? 머리를 깎아 버려야 해. 이것은 무언의 항변이야. 그러니까 머리를 싹 깎고 앉아 계신 거예요. 선생님 찾아 올 것을 알고, 자 가시자 하면 절대 선생님 말씀에 순종 못하겠소. 그렇게 못해요. 그거에요. 아무리 선생님이 생활 개혁을 하고 구제 사업을 한 게 좋다고 하지만 이 젊은 사람들한테는 내가 절대 이 수도를 시켜야겠다. 어머니의 성령의 순종이지요. 어머니한테 내린 성령을 순종합니다. 제가 계명산 한번 갔더니 그러십디다. 머리를 깎은 이유를 이야기 하세요. 남자가 다 선생인데 남자랍시고 와서 선생인데 여자더러 이렇게 하라. 하면 내가 어떻게 불순종 하겠냐? 나는 울면서도 쫓겨나간다. 지리산, 계명산 버리고 가야 한다. 모처럼 모여서 사는데 그러니까 무언의 거부라면 거부라고, 이 선생님의 말은 못 듣겠소. 그 말이에요.
거절이라고. 그러면 사람은 감정이 있지 않아요? 순종해야 좋지, 거절하면 누가 좋겠어요? 그래 이 선생이 짱짱하게 어머니는 이럴 수 없지요. 이 자선 사업을 포기 시키고 어머니 뜻대로 하시는 게 옳겠다. 동의하는 거지요. 자꾸 어머니 불러다가 어디 고아원 돌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머니 소원대로 젊은 처녀들 데리고 수도를 하게 해드리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그래 어머니 말씀대로 순종 하겠습니다. 인정하는 거예요. 인정을, 어머니가 젊은 자매들 데리고 여기 들은 사람들 섭섭하게 생각 마십시오. 이 선생님 말씀을 어떻게 어머니가 순종 안할 수 없지요. 예, 해야지. 도저히 순종 안 할 수 없다. 그거에요. 그래서 머리 깎았다. 그러시더라고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으니까 무언의 말씀인데 그랬다는 이야기 이고.
그러면 정 인세 원장님은 우리들의 아버지 아닙니까? 고아들의 아버지, 그분이 고아원의 원장이 되어가지고 열 살 때부터 키운 애기들이 다 스무 살이 넘었거든. 자기 딸이지요. 원장님은 내 딸이야. 내 딸들이 공부하고 있어. 거기에, 그게 보고 싶을 것 아닙니까? 자기가 키운 자식인데, 그런데 한나 어머니는 그걸 용납을 못해. 아무리 자기가 키운 자식들이고 고아들 다 커서 청년이 되었다지만 정 원장이 들어오시고 그럼 이 선생님 들어오시고 그럼 뭐냐? 우리 여자들끼리 모여서 수도하고 싶다는 게 완전히 와해가 일어나버려. 전부 이렇게 해체가 되어버린다고. 그러니까 아주 죽음을 내놓고 지키는 거예요. 정 원장님 못 들어가게 해요. 거기를 얼마나 엄하기만 하던지 원장이라도 여기 못 들어와요. 그래요 거기를 못 들어갔어요. 그렇게 법이 엄했어요. 어머니가,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보면 큰 실수 아닙니까? 남자들은 선생님이고 어른이고 지도자고 원장인데, 아 일개 무식한 할머니가 꽉 짜고 규모를 강하게 해가지고 그렇게 했다고요. 그러니 그러면 어머니로서는 마음이 편했냐? 그렇지 않아요. 그런 이야기를 한 번씩 하세요. 일 년에 한 번씩 가면, 속 아픈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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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광주는 생활이 넓은 쭉 늘어놔 가지고는 세 때 쌀밥을 먹고 살더라고, 그런데 가서 보니까. 여기는 저녁에 한 끼 보리가 되었다고 보리밥 잡수시고, 낮에는 고구마 한 끼 먹고 밤에는 보리밥 한 끼, 그것도 농사가 되었다고 금이야 옥이야 기뻐하는데 모두 몸이 약해. 역병이 나고 그런데 제가 그랬어요. 제가 광주 사정을 아니까, 광주는 십일조를 모으더라도 이 식구 여기 식구 쌀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원장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정 원장님께 말씀해서 이왕 십일조니까 조금 도와 달라고 해서 이 식구 밥 한 끼 먹으면 어떻겠소? 그렇게 진정을 했어요. 깊은 밤중에, 좀 생각해 봅시다. 그래 일주일쯤 며칠 있다 내려와야 쓰지 않겠습니까? 일주일 후에 내려오려고 했어요. 어머니 저를 불러가지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허락할 수 없소. 그러더라고 광주 가서 사정을 해서 한 끼 밥 먹도록 해달라고 그 말 하지 말라고, 여러분 짐작이 되지요? 광주서 양식이 온다. 다 아는 거예요. 그거 우리가 먹었다. 그럼 정 원장님 오셔서 이 아이들 데려가렵니다. 아무데 아무데는 바쁘니까 모두 환자가 많으니까 보모로 일 시키렵니다. 어떻게 거절해요?
그러니까 만일 광주서 양식을 갖다가 내가 보태 먹었다 하자. 그러면 와해가 일어나버려. 그러면 거기는 다 해체된다. 이거야. 그래 정신 독립하려면 경제 독립을 해야 돼. 정신적으로 꽉 고집을 지키려면 경제적인 도움을 안 받아야 돼. 그것은 세계 경제정치철학이지요. 누구 나라 도움을 받아봐. 속국 되어 버려요. 굶더라도 자립을 하고 남의 나라 덕을 안 봐야지요. 미국 덕 보니까 한국이 다 미국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한국에는 정신이 없다고 합디다. 한국에는 영성이 없대요. 많이 녹아버리고 가사 인제 철저한 그야말로 무식한 할머니의 철학이야. 그럼 그러시더라고 이 나는 여자인데 어미의 심정으로서 이 젊은 것들이 배가고프고 이 영양이 모자라서 이 고개, 고개가 비틀비틀하고 몸들이 바짝 말라들어가는데 난들 어떻게 그 밥을 좀 먹고 싶지 않겠냐고? 난들 어떻게 광주에 사정해서 양식 좀 달라고 해서 이 자식들 먹이고 싶지 않겠는가?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얻어먹기 시작하면 이건 모였다는 본분 그 뜻이 뭐야? 뜻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냐?
그러니 돈이 없다기보다도 저녁에는 전기도 안 오니까 불을 켜야 하는데 산 넘어 절에서 여승들이 아깝다고 그 절에서는 한번 초를 쓰면 내버리지 않아요? 내버린 초를 많이 모아서 줬다고, 그걸 녹여서 쓰시면서 야 참말로 기쁘다고 감사하다고 이 초를 녹이면서 성경을 봤을 때 성경, 이 맛이 얼마나 참말로 맛있는가? 참 황홀, 황홀경에 성경을 볼 줄 모르니까 그 촛불이 꺼지니까 잠깐 비춰가지고 잠깐 비춰가지고 성경을 봤을 때 아 그 재미, 그 재미, 제가 항상 이야기 하지요. 어머니 이야기 할 때 그 어머니 이야기 보탭시다. 요한복음 5장이지요? 잠깐 보겠습니다. 제가 잔소리 하는 것 같지만 우리 어머니 선생님 들이 참 피가 나고 눈물이 나고 아주 정신력이 투쟁을 한 거예요. 이래야 좋냐? 저래야 좋냐? 어떻게 이 젊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냐? 뭐 배운 것이 있어? 무슨 전통이 있소? 여기는 아무 전통이 없지 않아요? 그 어른들이 전통을 발휘 한다는 거지요. 이렇게 살아야 쓰겠다는 영적 계시를 받아가는 장면인데. 오늘 이렇게 사는 것이 우연히 사냐? 그건 아니거든. 뿌리가 있고 역사가 있어요. 우리가 확실히 하자. 그 말씀 이지요.
제가 요한복음 5장 몇 절 보겠습니다. 3절부터, ‘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고는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 여기를 읽으시다가 전기불이 있으면 빨리빨리 읽어요. 그러면 깨닫지 못하는데 촛불이 자꾸 꺼지니까 심지를 돋우면서 천천히 봤지요.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이제 불이 꺼졌으니까 다시보고 못에 내려와, 못에 내려와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낫더라. 이렇게 인제 영험이지요. 성경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적 계시로 들리는 거예요. 그럼 인제 남자 없이 여자들만 모여 산다고 합시다. 그러니까 애비 없는 호래자식이라고 엄한 원장님도 안계시고 선생님도 안계시니까 여자가 지도하신 곳에서는 무엇이 많아요? 무서운 사람이 없다고요. 어머니가 무섭게 한다고 해도 껍질을 무서워도 속은 따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질서를 잡는데 눈물로 하소연해.
젊은이가 한 40명 모였는데 20대, 어찌 의견이 똑 같겠어요? 콩을 심던지 팥을 심던지 둘이 의견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럼 아무리 가만가만 말해도 소문이 나. 누가 둘이 싸웁디다. 그럼 어머니가 저녁에 불러온다고, 오늘 뭔 일에 둘이 큰소리 했소? 부끄러운 이야기 아니니까 집안 사정이니까 나는 이렇게 의견을 내고 저 사람은 이렇게 의견을 내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 선생님이 모세지요. 율법으로 말하면 그분이 결을 쳐야지. 누가 잘했다 못했다. 그렇게 해보니까 안 된다. 그거에요. 누가 잘했다 해도 안 되고 누가 잘못했다 해도 안 되고. 이것이 화목이 안 돼. 실제 살아보니까, 그런데 여기를 깨달았어. 이 말씀을 깨닫고 춤을 춘다고 춤을 춰. 성경말씀이 이렇게도 행복 한가? 왜 누가 둘이 언쟁이 일어나고 불화가 일어나면 데리고 와서, 내 탓이다. 어머니가 울어. 누가 잘했던지 못했던지 이건 전부 내 탓이야. 이 선생님도 안계시고 정 원장님도 안계시고 나는 어머니인데 내가 너희들을 버렸다. 내가 무식하고 잘못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서럽게 되었으니 나를 때리라. 나를 좀 용서해 주라. 그러니까 누가 잘못했던지 어머니가 자기를 때려. 이거 내 탓이요.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지만 이 어미 탓이요. 그러고 우니까 집안이 조용하다고. 성경 말씀을 촛불을 돋우면서 깨달은 후 부터는 이렇게 집안이 좋다고. 집안이 살아가기가 누가 싸웠던지 그 사람 탓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 이 한나 내 고집 나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이 고생한다. 가고 싶으면 가라. 가고 싶은 길로 가라. 소원대로 가라. 그전에는 갈까봐 전부 가버릴까 봐 잡았는데 이제는 가라고 해도 안가요. 왜 이것이 다 내 탓이다. 내가 덕이 모자란 탓이다. 내가 지혜가 없는 탓이다. 내가 사랑이 없는 탓이다.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고생 시킨다. 용서해 줘라. 그리고 배고프면 집으로 가라. 광주로 내려가라. 그렇게 한 다음에는 집안이 조용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깨닫고 사는 재미 이 재미로 살아가요. 그러니까 성경 이 재미 내 탓이라고, 아 내 탓이야. 그 말이라고 무슨 병에 걸렸던지 공동체 생활이 무슨 사건이든 상관없어요. 무슨 사건이든지 다 원장님 탓이야. 책임자 탓이야. 그러니까 모든 사건이 내 탓이 되어버리면 집안이 조용해. 그런데 누구 탓 그러면 파당이 되어요. 누구는 잘못하고 누구는 잘못했어. 둘로 갈라져요. 그래 그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취해서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일 년에 한번 잠깐 가보지요. 그러면 그런 이야기인데 그럼 나는 이 선생님이 썼다는 편지 마지막 엄 목사가 가지고 있는 유서지요. 유고지요. 유고, 그것이 이 선생님의 보물인줄 압니다. 그래서 그랬어요. 그거 유고를 갖고 계실 자격이 있는 분이 엄 목사뿐이야. 엄 목사님은 이 선생님의 영성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나는 등잔 밑이 어두워요. 이 선생님 글을 나는 안본사람인데 얼마나 불효자식이야? 요새 봤다고 여기 오기 전에 여기 오라고 하니까 본거예요. 얼마나 불효자식이. 그런데 이런 말 아 이런 말씀도 쓰여 있더라고요. 그러면 봅시다.
‘동광원을 편심으로 사랑 말게 해 주소서.’ 이 말 한자리는 성인다우세요. 내 동광원이니까 사랑 편심하지 말자. 그분이 유언이에요. 유언 죽기 전에 들은 사람은 듣고 못 들은 사람은 못 들었는데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요. 그거에요. 절대 그분은 동광원 사람이 아니에요. 정신적으로 인류의 형제에요. 인류가 오십억이면 오십억으로서 형제의 한분이지. 자기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라고, 동광원도 배고팠을 때 동광원이지, 배부르면 동광원이 아니라고 동광원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이 많다고. 거기서는 얼마나 우러러 보겠어요 동광원을 좋아하고 배부르면 동광원이 자랑이 되어버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영원히 자기는 배고픈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시지. 동광원 사람으로 있기를 부끄러워 하셨어요. 말년에는, 그러니까 동광원을 편심으로 사랑 말게 하여 주소서. 분명히 주님만 높이게 해 주소서. 아버지의 영광이 꼭 될 터이면 이루어 주소서.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사업에 있어서도 주님 영광될 일만 이루어 지이다. 사람은 아쉬워 할 때 기도로 원함을 이룹니다. 마음을 고치도록 선량한 사람 되도록 지도해야 되겠습니다. 책에 있으니까 여러분이 보시기로 하고.
8월 23일, 저를 구원하실 이는 주님이십니다. 이름도 아니요. 친구도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다른 분을 구원하실 이도 역시 주님뿐이십니다. 동광원 역시 사람의 영혼을 구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주님 믿어서 구속받음을 증거 하는 단체에 불과합니다. 동광원이라는 영성 길이 확실히 열어놓은 거예요. 이거 삼무에요. 종교가 불교가 있고 천주교가 있고 예수교가 있지요? 동광원은 셋이 없어요. 목사가 없어요. 신부가 없어요. 스님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건 종교 단체가 아니에요.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불교신자 있어도 좋아요. 이 공동체는 천주교 신자 있어도 좋아요. 장로교 신자 있어도 좋아요. 감리교 신자 있어도 좋아요. 그러니까 신자들이 모여서 불쌍한 사람 돌보는 공동체에요. 이게 파벌운동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개인은 어떤 종교에 예속되어 있던지 그 사람의 길이에요. 이 선생님은 그걸 원하셨어요. 한번 이러십디다. 내가 왜 동광원에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동광원에 꼭 내가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 두 사람이 있다고. 그 글이지요. 그 글, 그 글로 인제 엄 목사님이 갖고 있다가 이 선생님 친필이니까 저한테 제게 오면서 갖고 왔어요. 자기가 갖고 있던 보물인데 여기다 보관 하라고, 그래 본원에 보냈어요. 지금 사무실에 있을 거예요.
이 선생님이 보고 싶은 사람은 오 북환 장로, 그때는 장로가 아니에요. 집사하고 돌아가신 화순 씨 어머니, 두 분이 친구가 있어 찾아왔다. 이 선생님 친구는 두 분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 안에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잠깐 들려있는 것이지. 그때 그랬어요. 내가 가야할 길은 그때는 공산주의였어. 중국이다. 아니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소련이다. 그랬어요. 나는 거기 친구가 있으면 찾아간다. 무슨 동광원이니 한국이니 그건 자기는 그건 관계없어. 초월했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이 선생님은 오십억이면 오십억하고 형제하고 싶었지, 어떤 소속되기를 싫어하셨어. 그걸 대중 앞에서는 이야기를 안 하셨어요. 그 깊은 자기 가슴을 열어 보일 때, 한 두 사람 있을 때 설명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럽디다. 이 병찬 목사가 이 선생님 전기를 쓰려고 손을 댔는데 너무 인물이 커버리니까 자기는 소화가 안 된다는 거야. 이 손 들었어요. 그것도 알았어요. 저 사람이 손댔다가 결국은 손 들을 거라고 이번에 만났어. 아 선생님 저 손 들었어요. 나 겁 없이 손댔는데 아 이제는 전기 못쓰겠습니다. 옳은 말이야. 이제야 전기는 안 돼. 내가 그래. 엄 목사님 이 선생님 전기를 썼다지만 우리 생각에는 정신이 반편이 죽어버렸지요.
정의에 관한 것은 우리가 말 했어. 이 선생님 깨끗한 사람이다. 정절을 지켰다. 그것은 반편뿐이야. 그럼 죄 지은사람은 누가 구원해? 실수한 사람, 죄 지은사람, 이 종교는 죄지은 사람 실수한 사람 구원하는 게 종교인데 그럼 이 선생님 전기에는 구원이 없어요. 이 선생님 전기를 봐야 누가 위로를 못 받아요. 공포를 느껴 불안해. 그리고 천국이 무너져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 전기가 아직 안 나왔어. 이 선생을 오해한 거란 말이야. 우리가 이 선생을 몰라본 거지. 몰라본 사람들이 이야기 하니까 그대로 속기를 하셨거든. 엄 목사 탓이 아니거든. 엄 목사 잘못은 그대로 들은 대로 써 놓은 것이라고 오늘 하자는 것은 말씀 드리려는 그 다음 인데요? 그러면 동광원은 무슨 이야기가 전기에 빠졌냐? 신교 쪽으로 우리가 아첨을 하니까 신교 목사가 들으면 싫어할 줄 알고 선생님의 글 속에 이런 말 주님 저의 성모님 저를 도우소서. 이런 말은 목사가 들으면 싫어하겠다싶으니까 딱 감춰버린 거예요. 실상은 감춰버려요. 역심으로 알고 한쪽으로 아첨을 해. 그래 한쪽밖에 몰라.
그렇게 고백을 하니까 엄 목사는 그쪽만 썼거든. 그럼 지금도 엄 목사는 이 말 못해. 목사인데 신학 상 눈치가 보이니까 선생님 이런 말 못했어요. 그 말 안하거든. 그러니까 한쪽만 썼다. 그 말이지요. 엄 목사 잘못이 아니다. 그 말이야. 그 다음에 봅시다. 정절 이라는 제목인데 이런 말은 무서우니까 안 봤는데 춘일 언니 덕분에 서울 가서 어느 예배당에서 말했다는 잡지에 이 말이 나옵디다. 깜짝 놀랐어요. 이 선생님 이렇게 엄청난 말을 기록해 놓다니 그래 실상은 이게 이 선생님의 재산인데요. 이런 말을 차마 못한 거예요. 엄 목사한테 그런데 이 글도 엄 목사가 써놨네. 모두 수집해 가지고 본인도 속을 안 본거예요. 그런 말 심부름하셔. 그러면 이런 글제일 가슴아파하고 눈물을 빠치고 울면서 보신 분이 이 준 목 목사라고. 이 글을 제일 속으로 알아듣고 빨아들인 분이 이 준목 목사야. 그분도 돌아가고 안계시네. 그러니까 이 뜻을 알고계신 분은 하늘나라가고 안계세요. 이 말이 얼마나 자기 마음에 해당이 되던지 매일 읽어본 거야. 그 목사님이 그 책이 검어, 손때가 묻어 가지고. 저하고 오 장로님은 안 봐요. 등잔 밑이 어두워. 본 식구는 이 선생을 몰라봐요. 실제 몰라봐요. 이 선생이 누군지 전혀 몰라봐요. 건성이에요. 건성,
그래서 부끄러워서 이야기지요. 정절이라는 제목이지요. 안 먹을 수 없고 안 죽을 수 없고 안 아플 수 없고 물 안마실수 없으나 독신 생활은 가능하다. 그 말이지요. 이 선생 그때 철학 이지요. 혼자 사는 과부 잘산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보면 그렇지 않아요? 공기 안마시면 죽어버리고 결혼하면 자유가 권리가 없어집니다. 인간은 음란행위를 하지 않으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결혼하면 모든 것에 매이게 되며 특히 자녀에게 매이게 됩니다. 이것은 보편생활의 해설 이지요? 인간의 본성을 바로알고 보면 짐승과 같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뜻을 먹고 삽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뜻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정결은 고독을 먹고 살아갑니다. 시험 중 가장 큰 시험이 고독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서면, 정결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결 순결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순결을 조금 고쳤어요. 정신적인 것을 합하려고 여기도 정절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근대 젊은이들은 정절이라는 걸 육체적 정절이라고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순결이라고 통역했습니다. 정신까지 깨끗해져야 이것이 깨끗한 거지. 육체만 깨끗해야 반쪽이라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순결하면 정신까지 깨끗하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이 말 바로 했는가몰라도 이번에 우리 이 목사님 만나가지고 여기를 둘이 봤어요. 예수로 말미암아 서면 정절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순결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어떻게 기뻐하는지 우리가 존경하는 분, 그 이 목사님 아닙니까? 춤을 추더라고 춤을, 아 이 선생님이 이 말씀 하셨어요. 아니 이거는 누구 입담으로 옮긴 말이 아니고 이 선생님 친필이야. 친필, 지킨다는 것과 회복 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야. 동광원에 회복한 사람들의 공동체야. 그걸 우리가 속고 있어요. 어머니들의 믿음으로 지탱이 되고 있지, 독신한 사람들은 아직도 헤매고 있어. 무엇인지 몰라. 지키려니까, 그런데 회복한다는 그런 통곡이 여기 있어. 나는 이미 잃었다. 이거야. 어떻게 해야 회복이 돼? 회복한다는 것이 구원이지요? 회복? 에덴동산을 쫓겨났지요? 사람들? 회복 한다는 게 구원 아닙니까? 그러니까 인제 잃어버린 사람들이 회복한다는 것은 그것이 희망이요? 소망? 그건 믿는 것이 믿음이요. 그것이 예수교라고요.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 나는 의인 99을 찾으러 온 사람이 아니다. 죄인 된 한사람을 찾으러 온 사람이다. 예수의 선언이거든. 그것이 기독교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아이고 우리 이 목사가 말이야. 아 우리 이 선생님이 정절을 회복한다고 했어요? ‘선생님, 그렇게 후퇴하지 말고 이번에 동광원 식구들 모이면 선포 좀 해 달라’는 거예요. 동광원은 회복한 공동체이지. 지켜내고 지키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거야. 왜 지도자가 회복하려고 시작했는데 그 서러움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내 보배 잊어버렸다 이거에요. 그럼 그거 어떻게 찾느냐? 어디가면 찾느냐? 찾을 가망 희망이 있다는 거 그 서러움은 이 선생 아니면 모르겠지요? 이 공님은 지키라고 훈시했지요. 그런데 못 지켰어. 그럼 회복한다는 희망이 이 선생의 희망이라고. 이 선생의 정절관은 회복하는 정절관이야. 나는 회복해야겠다. 그러니까 그것을 핵을 알면 이 선생님 글을 알아들어요. 이 선생님이 그래서 글을 이렇게 썼구나. 회복한다는 거지요. 그러니 그 말이지요. 말귀만 잘 알아들으면 엄 목사님이 이제라도 안 늦었어. 이 선생님은 순결한 성인이다. 그걸 빼버리고 이 선생님은 죄인인데 죄를 회복하고 죽었다. 회개하고 죽었다. 그렇게 선포하면 이 선생님이야. 그래서 그렇게 다시 쓰겠다고 자기가 그랬어요. 누가 그걸 다시 쓸까? 이 목사가 다시 완성 하려는지 모르지요. 잃어버린 재산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동광원이 변하지 않고는 동광원이 없어져. 앞으로, 구약이 지키는 사람 아닙니까? 구약이, 그러니까 보십시오. 구약을 누가 지킵니까? 유대교인들 유대 사람들이 구약을 지켜요. 매일 싸워요. 매일 싸워, 지금도 대포가지고 서로 죽이고 또 그 첩의 자손, 이스마엘 자손, 아랍 자손이지요? 회교, 회교 성경이 구약이에요. 그럼 구약, 그런데 예수교가 부끄럽게 구약을 믿네. 얼마나 부끄러워요? 구약, 구약은 지키는 겁니다. 지키는 거 말씀은 지켜야해. 말씀 안 지키면 지옥가요. 쫓겨나요. 그래 이 선생님이 쫓겨나요. 안 지켰어요. 이 공님이 지키라고 그랬어요. 구약을 줬어요. 안 지켰어요. 그 사람같이 통곡한 사람이 없어요. 이 선생님 같이 서러워서 울다, 울다 죽은 사람 없어요. 실제는 몰라요. 그렇지 우리가 몰라봤다. 그거에요. 몰라봤어요. 그걸 오해했어요. 그럼, 그럼 앞으로 동광원이 회복 운동을 하고 전환을 하고 있었겠지요? 여러분들은 전환이 시작되는 것이 복음이지요?
그 점 그렇다면 동광원이 앞으로 이 교계 인류세계에 필요해도 옛날같이 지키라고, 결혼한 사람더러 정절 지키라고 그래 불가능한데 정에 펄펄 타가지고 결혼했는데 지키라고 그래. 얼마나 억지소리야? 얼마나 저주이고 얼마나 공포심을 주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그런데 이 선생 본문에 그런 게 있다고 하니까 안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로 말미암아 성은 경건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선생님의 희망이고 순결을 회복한다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회복 한다는 것은 말로는 안 되지요. 기뻐한다는 말로는 안 되겠지요? 구원받는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순결을 사랑하는 것은 성모성의 계승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말이 너무 고등종교의 언어거든요. 그래 인제 진리의 절정을 선포 하셨는데 순결을 회복하지요? 순결을 회복하면 사랑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은 성모성의 계승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글만 이렇게 되어있지 그분 돌아가시기 전 석 달은 서울 올라가시기 전에 그때 미쳤어요. 우리가 보면 정신 나간 사람이야. 왜 그건 요새 짐작 했어요. 남의 종교를 들여다보면 내 종교를 알 수 있어요. 석가는 남자입니다. 엄마가 그 애기를 낳다가 길가에서 낳았기 때문에 일주일 후에 죽었어요. 길가에서 애기를 낳다가 죽었어요. 엄마가 병들어서 죽었어요. 그 석가가 한이 엄마의 사랑이지요? 나를 낳다가 죽은 엄마, 어째 우리 엄마는 죽었을까? 나를 낳다가 죽지 않았느냐? 어떻게 해서 이 은혜를 갚느냐? 그래서 혼자 사는 거예요. 아내도 자식도 아니다. 이 사람을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죽는 거다. 그런데 다른 짐승은 새끼 낳으면 거의 죽어요. 고기들 산란하고 다 죽지요? 그 잉어인가 연어인가 어찌되었든지 사랑 사랑은 엄마가 죽는 것인데 이 선생님은 이런 결론을 왜 내렸는가? 불교를 보면 아는 건데 석가가 스승이 되어가지고 45년을 가르치는데 자기는 남자 아니에요?
남성적인 영성이 길러져버려. 그래 인제 어머니다운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도 어머니 사랑을 못 받았지만 이 제자들이 고아가 되어버려. 아버지 밑에서 크니까. 그래서 인제 이 석가의 고뇌지요. 석가의 사랑인데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관념의 어머니를 만들어요. 관념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눈이 천이고 우리 어머니는 손이 천이야. 천수천안(千手千眼), 그래 우리 어머니는 여러분의 마음을 다 알아준다. 여러분의 서러움을 다 알아준다. 여러분의 기가 막힌 사정을 어머니가 다 알아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에 배웠어요. 학문적으로, 그러면 종교가 되는데 영성을 영혼을 길러내는데 석가 아버지 혼자 안 된다는 거예요. 자식들이 엄마의 사랑을 못 받으니까 병신이 되어버려. 그 어쩔 수 없다. 인생은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만들어 줬다는 거예요. 불교신자한테 내가 알아요. 관세음보살만 불러요. 모두 절에 가서 석가 안 불러요. 아버지는 필요 없어요. 어머니라야 해. 수만 명이 아침 새벽에 빌어요. 어머니 어머니하고 비는데 우리 석가 선생님 남자 선생님 그거 안 불러요. 왜 절대 필요한 게 어머니의 사랑이야. 그게 인류의 순수한 실상이야. 어쩔 수 없어요. 남자도 죽을 때는 엄마 불러요. 여자만 엄마 부르는 거 차라리 여자 같으면 아버지를 부르겠지요? 아버지가 그리우니까, 어찌되었든지 모성애, 모성애인데.
그러면 인제 성경으로 시간이 없으니까 성경으로 가면 더 쉬워요. 시므온 할아버지가 아기 예수를 이렇게 딱 보듬고 감격하시고는 엄마한테 주면서 아 이 아이를 낳으신 어머니 가슴에 칼이 꽂히도록 아프실 것이요. 그런 예언을 해버리지요? 그게 성모성이란 말이야. 자식을 낳은 죄로 평생에 가슴에 칼을 꽂고 살아. 그래 엄마의 사랑이 그것이라는 거예요. 내 자식을 위해서는 항상 가슴에 칼을 쑤시는 것 같은 통곡이 온다는 거야. 왜? 사랑의 본질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웃어요. 그건 거짓 사랑이야. 참 사랑은 가슴이 아파요. 그럼 보십시오. 이 선생님은 인류의 형제가 되기를 원하고 동광원의 스승이 되기를 거부하는데 성모쯤 되는 사람이 아들 예수의 엄마가 되고 싶어 하겠어요? 인류의 엄마가 되고 싶어 하지. 일개 우리 이 선생님도 인류의 형제가 되고 싶어 했다면 아 예수 엄마쯤 된 여자가 내 예수 엄마다. 그럴 사람 아니라고요. 우리 엄마 우리엄마 라고요. 인류의 엄마가 되고 싶어 하신 분이에요. 그래 우리 때문에 나 때문에 가슴에 칼이 꽂히도록 아파하셔. 그게 어머니의 사랑이야. 그러니까 제가 그냥, 그냥 하는 말씀이 아니에요.
성경말씀 한 장 봅시다. 이왕 교훈이니까 요한복음 19장, 그런 말이 좀 있어요. 성경에 있다. 그 말씀이지요. 예수와 그 어머니 예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의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서 서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의 어머니라는 거야. 자기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 이것은 이제 예수님의 예수님은 나는 마리아의 자식이고 마리아는 우리 엄마가 아니다. 그런 말이지요. 모두 내 형제고 예수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내 부모다. 내 제자다. 내 형제다. 그랬지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하고 똑 같아요.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요. 인류의 형제요. 누구든지 마음이 아파하시면 내가 그 사람을, 그 사람도 울 사람이 엄마 이지요? 누구든지 서러워하면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서러워할 사람이요. 인류형제라는 말이 그럼 성모성이라는 것은 인류의 어머니다. 그 말이지요.
인류의 어머니 순결을 사랑하는 것은 성모성의 계승이다. 이 선생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인류를 사랑한다. 그 말이지요? 우리 식구니까 사랑한다. 그 말이 아니에요. 우리 식구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의 서러움을 내가 같이 서러워한다. 모든 사람이 기쁘면 내가 같이 기뻐한다. 그러니까 성모 성 성모성의 계승을 하는 것이 독신생활의 목적이다. 그 말이에요. 나는 순결을 지켰다. 정절을 지켰다. 한다면 내 몸 편 하려고 우리 공동체 편 하려고 그것이 아니야. 인류의 운명을 같이 하려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니까 성모성이 계승이 되어야한다. 이건 이 선생님의 선언이고 우리 스승으로서 제자한테 훈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괴롭게 살다가 즐겁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실천할 때 괴롭지요? 그러나 영혼은 기쁘지요? 예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일생이 그거란 말이에요. 우리의 죄가 씻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큰 재앙입니다. 사람은 죽기까지 충성해야 손해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엮어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에 아까 그 성경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쓰여 있으니까, ‘시몬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트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하실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은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랬어요. 목사님들이 서울서 오셨습니다. 얼마 전에 그런데 여기를 봤어요. 이 선생님의 성모 성 말이 처음으로 나오는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그러다가 칼이 꽂히듯 아파하신다는 말까지 같이 봤지요. 그러고 생각을 쭉 해봤어요. 그러니까 이게 그러니까 조금 느낌이 오데요. 친 자식이 예수는 자기 친 자식이거든. 자기가 젖 먹여 키운 자식인데 사형을 받을 때까지 목격을 다 하신 거예요. 옆에서 다 봐요. 친엄마가 두들겨 맞고 가시관 쓰고 매 맞고 욕 얻어먹고 침 뱉고 창으로 찌르고 자기 아들을 죽이는데 예수 엄마만 같으면 울기라도 해야 하지 않아요? 물론 울었겠지요? 예수 엄마라면 예수를 죽이는 사람한테 항의를 해야지. 왜 죽이냐고?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냐고 항의가 없어요. 진실로 성모님이다.
그러니까 예수도 자기가 낳은 자식이지만 예수를 죽인 가룟 유다도 자기 자식이야. 인류의 어머니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이거야. 편을 못 들어 편을 누구 편을 들어버리면 당파가 되니까 고소하지요? 한쪽을 보복할 수 있으니까 보복을 초월한다. 미움을 초월한다. 그건 가슴에 피가 녹아나요. 피가 닳아져요. 칼로 찔러 아픈 정도가 아니지요. 대신 죽는 거지요. 예수가 죽을 때 성모님 대신 죽는 거지요. 예수가 아플 때 엄마도 대신 아픈 것이야. 그 말인데 그래서 이 선생님 말 알아듣겠더라고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야. 내가 길이 열리면 내가 찾아볼 사람이 있다면 중국을 가야하고 꼭 내가 찾아볼 형제가 있다하면 나는 소련 갈 사람이요. 그때는 천년만년 그쪽이 문이 열리지 않을 때거든요. 그 심정을 알겠더라고 다시 말하면 이 정절 해보고 싶은 꼬투리가 있다면 회복할 수 있다. 회복하자. 구원, 희망을 주고 가겠다. 우리는 그걸 오해했다고 지키려고 하자. 지키자. 그러고 갈 줄 알았는데 그거 우리가 너무 뜻을 몰랐다고요. 그런데 구약 정신에서 복음 정신으로 바꿔야겠다. 여기 다 바꿨겠지요? 그 동안에 문헌이 그러니까 선생님 글이 그러니까 확실하지 않습니까? 더 연구해 보세요.
그럼 이 선생님으로서는 이 공님 말씀을 못 지키고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고 황송하고 죄인 되었지요? 그러나 회복한다는 거 총 희망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데 인제 전라남도에 대학교 교수가운데 부흥운동하신 분이 김 준곤 목사지요? 그렇지요? 김 준곤? 이 목사가 그거 잘 압디다. 한 5년 전인가, 여기 신안 군산에 오셔가지고 부흥회 하셨는데 어쩌면 이 선생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고요. 막달라 마리아는 순결을 회복한 성녀다. 우리도 희망이 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성인이 될 수 있소. 회복 합시다. 회복의 설교를 3일 하드라 그래요. 막달라 여자는 정절을 회복한 성녀요. 우리도 회복 합시다. 아 그런 목사가 있더라고, 이 선생이 그런 말 했냐고? 이 선생이 그런 말 안 하는 줄 알았다고. 오해 했어요. 아 이 선생이 그렇게 회복할 수 있다고 말씀했냐고? 그러고 기뻐하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기뻐하는데 아 영혼이 다 그런가보다. 내가 죽을병에 걸렸어. 당신 나을 수 있소? 얼마나 기쁘겠소? 당신 약이 없소? 얼마나 절망이야? 회복할 수 있다. 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전부 그 말 아닙니까? 전부 내가 낫게 해준다. 다 회복시켜준다. 다 구원시켜준다.
그러니까 지킨다는 쪽에서 볼 때와 회복할 수 있다는 쪽에서 볼 때와 희망이 달라진다. 그 말이에요. 말씀이 달라져요. 말씀이 그래서 그 목사님들이 기뻐하고 희망을 품는 거를 볼 때 아 나는 살았다.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살았다. 그 기쁨을 같이 하겠어요. 동의를 해줘요. 동의, 요한1서 1장 7절, 유명하지요? 보겠습니다. 가사 우리가 회복하게 되었다는 말 합시다. 우리정도 말하면 곧이 안 들어. 아 이 선생도 이렇게 이야기 했더라고 그러면 다 이해해. 왜? 믿음이 가는 사람이 말 했으니까, 가사 요한1서 찾으렵니다. 1장 7절, 현대어 성경으로 보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산다면 우리는 서로 아름다운 사귐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말 얼마나 설명이 잘되어 있습니까? 가사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사람이 이 글을 봤을 때 같은 글이라도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빛은 절대의 사랑이거든. 미운 사람이 없어요. 죄가 있으면 다 녹아버리니까 빛 가운데 계시니까 우리도 빛 가운데 산다면 희망 사랑 초월 이지요. 살수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 그때 아름다운 사귐이 있다. 그 성령을 받아버리면 천하에 미운 사람이 없어. 원수가 없어요. 원수는 불쌍한 사람으로 이렇게 마음이 바꿔지니까 눈물이 나와요.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지 미움은 없단 말이지. 원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