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굴려굴려 가다 보면
방송일 : 2019년 9월 23일(월) ~ 9월 27일(금), 517번
*다시보기->http://www.ebs.co.kr/tv/show?prodId=7225&lectId=20156130
*영상보기->https://youtu.be/Fjz5iZrlH7c?list=PLvNzObWMMx6vtinh8PV4sXYwxRPjaGPqv
백발의 농부에겐 귀한 재산목록 1호인 경운기,
중년 아재의 오랜 로망인 오토바이,
산마을 부부에겐 지구력 좋은 두 발로 통하는 사륜바이크…
이 둥근 바퀴들은
둥글둥글 구르고 굴러 가기에 우리네 인생으로도 비유된다.
그러한 바퀴를 굴려굴려 가다 보면 어디쯤 이르게 되고
어떠한 풍경과 마주하게 될까.
바퀴를 굴려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와 둥근 바퀴가 안내하는 초가을 비경을 만나보자.
1부. 멈춘 그곳에 인연
바람의 라이더 최정환, 최지훈 부자
오토바이로 유라시아를 횡단한 아빠 최정환 씨(48세)와 아들 지훈이(14세),
이번엔 쪽빛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경상남도 남해를 내달린다.
신나게 바퀴를 굴리다 멈춘 남해 벽련마을.
이곳 말로 ‘까꾸막(비탈)’에서 참깨 수확이 한창인 노부부를 만나고
바닷가에서 만난 주민과의 인연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앞마당에서 잊지 못할 캠핑도 하게 됐다.
달리다 멈춘 그곳에 휴식 같은 인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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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달산 자락에서 만난 인연
경상북도 문경 고갯길 너머
험준한 임도를 달리는 라이더 김지훈 씨(35세).
느닷없이 숲속에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다짜고짜 산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 시간여 산을 오르자 안개에 휩싸인 비밀스런 암자가 나타나는데…
이곳에 지훈씨의 그리운 인연! 나홀로 수행 중인 원천 스님이 기거하고 있다.
산이 좋아 산길을 달리다 멈춘 길 끝에서 스님을 만나 위안을 얻었다는 지훈 씨.
그래서일까. 스님을 위해 팔 걷어붙이고 장작 패기에 도전한다.
또, 그런 지훈 씨를 위해 스님은 산물 등목을 돕고 저녁 밥상까지 내어주는데…
2부. 바다를 달리다
자고로 경운기는 논밭으로 달리는 게 세상의 이치이건만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의 경운기들은 가는 길이 다르다. 바다로 달린다!
갯벌에서 바지락 잡이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주민들.
“호미 하나만 갖고 나오면 돈이 우슬우슬 나오잖아요”
능쟁이, 고둥, 바지락... 갯것들 덕분에
자식들 굶기지 않았다는 박창례 할머니(72세).
한평생 그 바다를 숱하게 오갔을 어미와 그 어미를 바다로 안내해준 건 경운기였다.
늙은 어미와 어미가 바다에서 보낸 세월만큼 늙어버린 경운기,
그들의 지난 삶의 이력은 바다에 기다란 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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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서 만난 낚싯배 선장 문영석 씨(63세).
30년 차 베테랑 택시 운전사였던 그는
5년 전, 고향 안면도로 귀촌하면서
택시 바퀴를 굴리는 대신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용왕님이시여! 백조기를 보내 주소서~”
틈날 때마다 바다낚시에 나선다는 영석 씨와 부인 정심 씨.
정심 씨의 노래에 용왕님이 감동하신 것일까. 백조기(보구치)가 쌍으로 딸려온다.
백조기로 끓여낸 맛있는 매운탕을 나누는 부부,
바다로 달려오고 나서야 알았다. 행복이 뭐 별건가. 이 순간이 행복이다.
3부. 그사랑 참 오지다
제천 제일의 오지로 꼽히는 충북 제천 다불리 마을,
매일 아침 사륜 바이크를 타고 산밭으로 향하는
부부 송순례 씨(63세)와 그녀의 자기 이명희 씨(54세)가 산다.
보기 드문 9살 연상연하 커플!
“말하자면 왕누님이지, 왕누님. 헤헤~”
그래도 선하고 웃는 모습이 예뻐서 먼저 프러포즈했다는 남편 명희 씨.
험한 풀숲에서 앞장서 걷고, 낫으로 풀을 쳐내 아내를 위해 길을 낼 만큼 사랑꾼이다.
“아이고, 이 장사네~!”
반면, 남편 기 팍팍 살려줄 줄 아는 현명한 아내 순례 씨.
멧돼지가 밭을 갈아엎어도
그들의 땅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내는 세금이라 생각하고,
70마리 닭들 중에서도 부실한 녀석들에게 회복이, 얼룩이, 보화, 보석이 등등
장수하라고 이름까지 붙여줄 만큼 마음도 비단결이다.
사륜 바이크를 굴려굴려 가다 보면
다불리의 정갈한 산세와 유유한 충주호 물길을 닮은
사랑꾼 부부를 만날 수 있다.
4부. 지리산 낭만 오토바이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쓴 이원규 시인.
이십여 년 전 지리산에 내려오며
“집은 절대 소유치 않는다. 한 달 생활비는 원고료로 받는 2, 30만원이면 충분하다.”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 선언했지만 오토바이만은 포기할 수 없었단다.
“바람이 나이고 내가 바람이 되는 맛은
겪어보지 않으면 말을 마.”
그 오토바이 달리며 만난 가을 지리산의 풍광은
한 장의 사진이 되고, 한 줄의 시가 된다.
바퀴 굴린 만큼 좋은 시가 나온다고 자부하는 시인. 스스로 ‘족필’이라 칭하는데…
오토바이에 푹 빠진 낭만 라이더 이원규 시인과 함께
지리산의 가을 비경을 달려본다.
5부.행복은 둥글둥글
전라북도 무주 백운산 자락에는
황소 네 마리를 경운기에 묶어 들판으로 향하는 김경식 어르신(75세)이 있다.
알고 보면 할머니 소가 낳은 아들, 딸내미 소가 낳은 딸 이렇게 다복한 3대 가족.
“경운기는 내 발이니 좋고, 소는 자식 같아서 또 좋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르신을 웃게 만드는 이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볼 때마다 서로 웃음 번지는 아내 권용분 어머님(70세),
행복이란 작은 것에 만족하고 둥글둥글 살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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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이면 고추 붉게 익어가는 경상북도 영양군.
고추밭 전용 보행기 바퀴를 밀며 일손을 서두르는
권달기(82세), 정필연(80세) 노부부가 있다.
“지독하게 일만 하는 양반이여!” “그래도 나는 좋은걸. 헤헤헤~!”
투닥투닥, 삐걱삐걱 하면서도 60년 세월 정이 들 대로 들었다는 부부,
매달 4일, 9일이면 함께 경운기 타고
영양장터에 나가 장사를 한 세월이 또 반 백 년이다.
평생 밭과 장터에서
함께 바퀴를 굴리며 후손들 번듯하게 키운 게 이들의 행복이자 삶의 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