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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지마. 그러다가 언제 크게 다친다.
이쁜: 내가 뭘?
재간: 여긴 무서운 데야. 몸 조심하라는 얘기야.
이쁜: 넌 너무 걱정이 많아 탈이야.
재간: 미리 걱정해 둬서 탈날 것 없지. 가자. 맹 대장: 기다리실라.
이쁜: 맹 대장이 아니라 장관님이야.
2 . 무치.
(홍동지가 혼자 뜨락을 거닐고 있다.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다.)
홍동지: 이제 서서히 나라의 틀이 잡혀가는 구나. 백성들은 온순하고 국경은 평화롭다. 신하들은 충성심에 넘치고 궁안은 활기에 차있다. 인간 중에 나만한 힘과 용지를 가진 자 없고 또 그 중에 나만한 지혜와 식견을 가진자 없으니 왕의 그릇으로 어디가 부족한가? 이제 정치는 물 흐르듯 순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홍동지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나쁜 마음을 먹던 자들이 겁에 질려 마음을 착하게 돌려 먹는다 하지 않던가? 역시 인간의 세상으로 나오기를 잘했다. 그때 맹 대장의 말을 쫓아 그냥 산속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 나라 꼴이 뭐가 됐겠는가? 이 쯤 됐으니 이제 내 신상의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지. 우선 그 동안 소홀했던 책읽기를 계속하자. 그리하여 가이 없는 학문의 세계를 방황해야겠다. 장가도 들어야 할것 아닌가? 왕이 홀몸이라고 주위에서 말들이 많다던데. 문제는 시녀 장이다. 아직도 그 여인만 보면 뼈골이 녹신녹신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니 말이야. 한 나리의 왕이 되어 한낱 연약한 여인앞에서 그토록 쩔쩔매서야 쓰는가? 그러니 어쩌면 좋은가? 박사와 의논해 봐? 아니면 맹 대장한테 얘길 해? 아니야. 왕의 체통을 세워야지. 쉽게 약점을 보여선 안되다. 그럼 어떡하나? 시녀 장을 멀리 쫓아버려? 그게 좋겠다. 눈 앞에서 사라지면 그런 해괴망칙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 아닌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생각난 김에 해치우자. 이봐라. 시녀 장을 들라 이르라. (사이) 그런데 무슨 핑계로 그 여인을 쫓아 버린단 말인가? 밑도 끝도 없이 그냥내치면 그 또한 우습지 아니한가? 무슨 좋은 방도 없을까?
시녀 장: (등장하며) 부르셨습니까, 폐하?
홍동지: (당황한 빛을 보이며) 오, 시녀 장, 내 그대와 긴히 상의 할일이 있소.
시녀 장: 예
홍동지: 사실은……. 저 ……. 시녀 장…….
시녀 장: 무슨 말씁이옵니까, 폐하?
홍동지: (아랫도리를 자꾸 내려다 보며 비틀다가) 내가. 할말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시녀 장: (웃으며) 폐하. 한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홍동지: 얘기하시오.
시녀 장: 자고로 왕은 무치라 하였습니다. 이는 왕은 어떠한 행동을 하여도 부끄럽지 않다는 뜻이옵니다. 저 같이 미천한 것에게 무슨 말씀인들 못 하실 것이 없는 줄 아옵니다마는 …….
홍동지: 아, 그렇소? 좋은걸 알려줘서 고맙소. 사실은 말이오. 내가 말이오. 그대만 보면 말문이 막히고 몸이 이상해 지는데……. 그래서 말이오.
시녀 장: 옥체를 보살피고 심기가 불편하시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저의 임무이옵니다. 헌데 왕꼐서 그런 불편을 겪으시는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었으니 죽어 마땅하옵니다.
홍동지: 그대의 잘못이 아니야. 다 내가 못난 탓이지.
시녀 장: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면 오늘 저녁 저의 방으로 납시어 주옵소서.
홍동지: (당황하는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응. 그래. 그러지. (주위를 둘러보며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시녀 장의 뒤를 따른다.)
시녀 장: (웃음과 함께 교태를 보이며) 폐하, 왕은 무치라 하였습니다.
홍동지: 그래, 왕은 무치라. (걸음걸이를 고치며) 명심하지. 왕은 무치라.
(홍동지와 시녀 장, 사랑가를 부르며 놀고 있다.)
왕비: 잘들 놀고 자빠졌다. 사내들이란 다 저 모양인가? 왕은 무치라구? 저를 왕의 자리에 앉혀준 게 누군데……. 나를 궁중 한 구석에 쳐박아 놓고 저만 즐거우면 그만인가 정말이지 사내란 계집에게 빠지면 체면이구 뭐구 다 없어지나? 남의 떡이 커 보인다더니…….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저 계집이 대체 무언데 늘 내자리에 앉는단 말인가? 하지만 열계집 싫다는 놈 없다던데 저 치는 어찌된 판인지 마냥 저 년 한테만 홀려서 저러니 알다가 모를 일이다. 저 계집이 어디가 그렇게 좋지? 지가 나보다 예쁘면 얼마나 더 예쁘고 젊으면 몇 살이나 더 젊다고…….
(홍동지, 겉옷을 걸쳐 입으며 등장.)
홍동지: 이것이 사랑인가? 처음에 지나가는 바람에 잔물결이 일듯 가볍게 흔들리더니 나의 가슴은 어느 새 질풍노도에 휘감기며 거친 호흡을 몰아쉰다. 시간이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랑의 노예가 된 것인가? 하지만 이런 것이 노예라면 골백번이라도 서슴치 않고 나서겠다. 아, 가슴 뛰는 이 비밀스런 즐거움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구나! 시녀 장을 왕비로 맞아들여야겠다. 나의 반쪽을 메꿀 수 있는 여인으로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전왕의 애첩이면 어떠냐?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그까짓 예의범절이며 윤리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모두 인간이 정해 놓은 것 인데 인간이 바꿀 수도 있는 법. 그래도 혼례는 성대하게 치러야겠지? 당장 날을 받아야겠다.
왕비: 가당치 않은 일.
홍동지: 무어라구?
왕비: 옛 일을 잊으셨습니까?
홍동지: 옛 일이라니?
왕비: 내가 일국의 왕비의 몸으로 무엇이 부족해 지아비를 저승의 어둠으로 내몰았겠습니까? 무엇때문에 뼈와 살을 깎는 아픔을 견뎌내며 폐하를 그 자리에 모셨겠습니까? 폐하의 인물됨, 군주다운 풍모와 천하 남아로서의 기질이 이년의 눈을 멀게한 것입니다. 그때는 꿈이 있었지요. 페하를 천하제일의 제왕으로 만드는꿈. 천하 제일의 제왕의 귀여움을 받으며 세상 모든 부귀 영화와 권세를 누리는 꿈……. 폐하께서는 그 꿈을 저버리시고 엉뚱한 데다가 애정을 쏟아부으시니 이년의 복장이 메어 터질것 같습니다. 지아비를 몰아내던 때의 아픔은 이 아픔에 비하니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습니다.
홍동지: 꿈은 한낱 꿈일뿐, 꿈이 모두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왕비: 꿈이 있기에 현실이 있는 것이지요. 꿈이 있기에 희망도 있고 희망이 있기에 삶이 있는 것이지요.
홍동지: 자고로 선왕의 비를 다시 왕비로 맞는 일은 없었소.
왕비: 선왕의 애첩을 끼고 자는 일은 있었습니까?
홍동지: 무엄하다!
왕비: 그년은 폐하를 죽이라고 선왕에게 애원을 하였지요. 또 폐하를 고문대에 올려 놓았던 일도 있었지요. 모두 잊으셨나요?
홍동지: 잊지 않았어. 모두 기억하고있어.
왕비: 그런데도 그년이 그리도 좋으시던가요?
홍동지: 지껄이면 다 말인 줄아는가?
왕비: 그리도 매사에 밝으신 분이 어째 이 일에만은 이토록 어두우십니까?
홍동지: 물러가라.
왕비: 옥석을 가릴 줄 아셔야지요. 왜 굴러 들어오는 복을 스스로 차버리십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홍동지: 말같지도 않은 소리.
왕비: 제가 두 눈을 뜨고 있는 한 그 년은 안됩니다.
홍동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왕비: 절대로 안됩니다.
홍동지: (발작적으로) 물러가란 말이다!
(왕비는 홍동지에게 가볍게 눈인사하고 퇴장한다.)
홍동지: (다시 자리에 주저 앉으며) 무서운 일이다. 욕망앞에는 염치고 체면이고 다 소용 없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입에 담는단 말인가? 전 왕이 살아있을 때도 욕정에 눈이 어두워 나에게 추근거리지 않았던가? 그때 저를 생각해서 주리를 트는 아픔을 참아내며 입도 뻥끗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왕비가 되겠다니? 선왕의 비로서 그만큼 예우를 해주 면 됐지, 무어가 부족하단 말인가? 괘씸한 것. 대체 저 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그대로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여 없앨 수도 없는 일. 하지만 그 정도에 물러설 내가 아니다. 나는 홍동지다. 한때 자연의 왕이었던 홍동지……. 이제 인간의 왕이 되었이.
아이: 으응, 난 또…….
눈물: 아이가 무섭다고 기겁을 하는데 보니까 큰 멧돼지 한마리가 화살통 같은 입을 세우고 달려오고 있지 뭐야? 그 아이 엄마가 엉겁결에 몽둥이를 들어 심하게 내리쳤지만 꿈쩍도 않더라구, 누가 옆에서 갖다준 도끼로 여러번 찍고 또 찍고 그러고 나서 들여다보니까 도끼에 찢긴 어깨쭉지에 피묻은 속옷이 너덜거리는데 피투성이가 된 아이이 모습이 아니겠어?
아이: 우웩, 웩……. 그럴 수가 있어?
눈물: 하지만 그런일이 일어났어.
아이: 너무하잖아?
눈물: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까 그래?
망치: 그런일이 일어났다는 거 아냐?
아이: 정말로?
눈물: 그래 정말로, 꿈에서.
아이: 큰일 났다.
망치: 우리가 망친거야.
눈물: 우리는 돕자고 한일인데.
망치: 어떡할래?
아이: 홍동지를 구하자.
망치: 어떻게?
아이: 산으로 돌려 보내자.
망치: 어떻게에?
아이: 나도 몰라.
눈물: 그럼 어떡해?
망치: 생각해봐.
아이: 생각이 않나.
눈물: 빨리 생각해!
아이: 생각이 안 난다니까.
망치: 저기 누가 온다. 튀자.
(도깨비들 퇴장. 왕비와 몸종 1,2가 보따리에 무엇을 싸들고 등장.)
왕비: 여기다 좋겠다. 모두 꺼내거라.
(몸종들이 보따리를 풀어 호동지의 모습의 제웅과 저필묵 등을 꺼내 상위에 돌려 놓는다.)
몸종1: 사주를 몰라서 어쩌지요?
왕비: 그까짓 것이 사주랄게 뭐 있겠는냐? (잠시 생각하다가) 반인반수 홍동지라고 적어라. (몸종1은 종이에 반인반수라고 적어 제웅의 둥에 붙이고 이를 작은 상위에 올려 놓는다. 왕비는 상 앞에 앉아 주문을 외우고 바늘을 끄내 제웅의 머리 여기저기에 꼽는다.)
왕비: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효혐이 있을 것이다. 네가 얼마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 (몸종에게) 잘 지키고 있어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퇴장)
4. 불신
(홍동지 왕좌에 앉아 있고 그 아래 박사와 맹 대장, 재간과 이쁜이 늘어서 있다.)
맹 대장: 불가하옵니다. 폐하.
홍동지: 왜?
맹 대장: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홍동지: 전례가 없다고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내 그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마는 시녀 장이 왕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구절은 본일이 없었다. 누가 그런 구절을 읽은 일이 있는가? (사이) 박사는 그런 글을 본적이 있소?
박사: 없습니다.
홍동지: 그러면 박사는 이일을 어찌 생각 하시오?
박사: 왕비는 폐하의 반려자입니다. 폐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택하시는 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폐하의 나라입니다 폐하께서 법은 정하시면 그만입니다.
홍동지: 고맙소. 당장 혼례 날자를 받도록 하시오. 가능한 한 빨리 좋은 날자로 잡아주시오.
맹 대장: 불가하옵니다. 폐하.
홍동지: 어째서 자꾸 불가하다고만 하는가? 정
당한 이유를 대라.
맹 대장: 그 여인이 왕비가 되면 파탄이 일 것 입니다.
홍동지: 파탄이 인다고? 네가 대비의 사주를 받은 게로구나?
맹 대장: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씁이옵니다.
홍동지: 그러면 왜?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할것 아니야? 신분이 낮아서 그러한가?
맹 대장: 그것도 한 이유가 되지요.
홍동지: 그렇다면 그대는 자신이 장관감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맹 대장: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홍동지: 왜?
맹 대장: 저는 천한 광대일 뿐입니다.
홍동지: 네가 나는 어찌 생각하느냐? 산짐승과 뛰어 놀던 나는 천한 속에서도 가장 천한 자이겠구나? 내가 왕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맹 대장: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홍동지: 못된 것. 네가 역심을 품었구나! 이봐라, 목에 칼을 채워 독방에 넣어두어라. 내 곧 심문을 할터이다.
(재간과 이쁜이, 맹 대장을 데리고 나간다. 박사도 이들을 따라 나간다.)
홍동지: 인간이 저 하기에 따라 귀하고 천함이 나뉘는 것이지, 어디 날때부터 귀천의 구분이 따로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것! 그러니 너에게는 평생
광대: 노릇이 걸맞는 것을……. 저자가 그토록 어리석었던가? 아니, 그렇지가 않았다. 저 자가 비록 광대이긴 하지만 영특하기로 소문난 자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정말로 대비와 내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저치들은 대비 앞에서 인형놀음을 하며 그 여인과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다. 내가 궐 밖에서 곤경에 처해있을 때 대비의 전갈을 가져왔던 것도 저 패거리 중 하나였다. 인간들이 그럴수가 있을까?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내가 저희들에게 벼슬을 주고 그만큼 대우를 해주었는데 설마 나를 따돌리고 저희끼리 역모를 했을라구?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 그자의 입에서 파탄이 일어난다는 소리가 나왔겠다? 그건 대비를 염두에 두고 나를 협박하는 수작이 아닌가? 그렇다면 역시…….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믿을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진실을 밝혀내야겠다. 하지만 증거도 없이 무작정 욱박질러서 해결될 일도 아니지 않는가? (사이) 왕의 노릇도 하기 쉬운게 아니로구나, 왕이 장가 한번 간다는데 웬 말들이 그리 많지?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말, 말! 겉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그 뒤에 무슨 흉게가 숨어 있는지, 저희들끼리 무슨 쑥덕공론을 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으니. 그렇다고 한놈한놈 모두 쫓아다니며 무슨 얘길 하는지 감시할 수도 없고……. 또 감시한들 뭐하나?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마음속까지 쫓아 들어갈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어쩐다? 누구 같이 좀 의논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박사, 그자는 이래도 응, 저래도 응, 믿을 수가 없어. 시녀 장은 이번 일에 당사자란 말이야. 그 광대 패거리들……. 그것들은 모두 한통속이고, 그렇다고 아랫것들 붙들고 이러니저러니 할 수도 없는 노릇, 답답하구나! 공연히 인간 세상에 나와 골머리를 앓는게 아닌가? 산 속에 살때는 이런 고민은 없었다. 혼자 있어도 이렇게 외롭지는 않았다. 그때 산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갔으면 쓸데없이 목에 힘 줄 일 없고 골치아픈 책도 없고, 말도 없고, 글도 없고 보기 싫은 쌍판떼기들도 없고……. 얼마나 좋을까? (사이) 헌데 갑자기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생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5.꿈
(홍동지의 비명에 시녀 장 뛰어 들어온다.)
시녀 장: 폐하!
홍동지: 아닙니다. 마마. 아.시녀 장……. 시녀 장!
시녀 장: 어찌된 일이옵니까. 폐하? (홍동지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힌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왕관을 홍동지의 머리에 씌워준다.)
홍동지: 어? 어.어디 갔어?
시녀 장: 무어 말씀입니까?
홍동지: 아니, 내가 꿈을 꾸었는가 보아.
시녀 장: 무슨 꿈이옵니까?
홍동지: 이게 무슨 소리냐?
시녀 장: 무슨 소리 말씀입니까?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요.
홍동지: 그래? (사이) 응, 이리 가까이 좀 오게. (시녀 장의 손을 잡으며) 그대를 왕비로 맞아들이겠소.
시녀 장: (복받쳐 오르는 기쁨에 흐느끼며) 폐하……. 폐하!
홍동지: (시녀 장의 무릎을 베고 누우며) 노래를 불러주오.
(시녀 장은 홍동지를 쓰다듬으며 다시 사랑가를 부른다.)
홍동지: 오늘 당장 혼례를 올려야 겠다. 장관을 들라 이르라.
시녀 장: 폐하, 장관은 옥에 가두시지 않았습니까?
홍동지: 아, 그렇지. 그럼 박사를 불러라.
시녀 장: 하오나 폐하.
홍동지: 뭐가 걱정인가?
시녀 장: 대비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홍동지: 대비? 대비가 뭐 말라비틀어진 대비냐! 이 나라의 왕은 나다. 내가 좋고 네가 좋으면 그만이다.
(박사등장.)
박사: 부르셨습니까, 폐하.
홍동지: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만지며) 박사.
박사: 예. 폐하.
홍동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소. 오늘이라도 혼례를 올려야 겠소.
박사: 알겠습니다. 준비를 서두르지요.
홍동지: 고맙소. 그런데 아까부터 이게 무슨 소리지?
박사: 무슨 소리 말씀이옵니까?
홍동지: 방금 저 소리.
박사: (시녀 장에게)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까?
시녀 장: 못들었는데요.
홍동지: 저소리, 저소리가 안 들려? 저건 영조가 아니냐?
박사: 사람을 시켜 알아 보겠습니다. (퇴장.)
홍동지: 꼬리로 바람을 가르는 저 소리가 안 들린단 말인가? 저 놈이 지독하게 빠른 모양이다. 벌써 저기 까지 갔구나. 하지만 그 정도론 어림도 없다. 내가 누구냐? 어떤 무서운 싸움에서도 단 한번 뒷걸음질 쳐본 일이 없었다. 나보다 더 센 팔과 다리는 아직 본일이 없다. 네가 나의 혼례를 축하하러 왔느냐? 와라. 네 놈 쯤은 단 한방에 끝내줄 수 있다. 벌써 숨이 차 허덕거리는구나. 한번 붙어보지도 못하고……. 꼴좋다. (웃는다.)
시녀 장: (홍동지에게 매달리며) 폐하, 고정하옵소서.
홍동지: 놔라. 저 놈이 반격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느냐?
박사: (달려 들어 오며) 폐하, 사람을 시켜 알아보라 하였으니 잠시만 참고 기다리십시오.
홍동지: 알아볼 필요도 없다. 저 놈이 벌써 꼬리를 감추고 도망하지 않느냐? 그러면 그렇지. 이 홍동지 앞에서 감히 어느 놈이 행패란 말인가?
시녀 장: 폐하, 안으로 들어갑시다. 잠시 몸을 눕히시지요.
홍동지: (시녀 장을 뿌리치며) 그럴 틈이 없다. 지금 공부할 것이 산더미 같이 쌓였는데 어떻게 쉴 수가 있겠는가? 별은 왜 저녁이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빛나는가? 달 속엔 누가 사는가? 그것들은 긴 낮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가? 땅 속에는 무엇이 계속 파고 들어가면 어떤 세계가 있을까? 궁금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쉬라구? 안돼. 이 의문들을 풀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겠다. 박사 ……. 박사와 의논해봐야겠다. 아, 참을 수가 없다. 끌과 망치를 가져와라. 내 머리를 쪼개서 그 놈을 잡아다오. 한 두 놈이 아니구나. 불개미다. 불개비떼다. 이놈들을 잡아야겠다.
박사: (시녀 장에게) 폐하께서 신열이 있으신가 짚어 보시오.
홍동지: 어서 끌과 망치를 가져오라는데 무얼 꾸물 거리고 있느냐? (이마에 손을 대보는 시녀 장을 밀어 넘어뜨리며) 너는 누구냐?
시녀 장: 폐하, 고정하옵소서.
홍동지: 나는 홍동지다. 나더러 폐하라고 하는 너는 누구냐? 나를 반역자로 물아 죽이려는 거지? 안되지.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아무리 모진 고문을 해봐라. 자백할게 없는데 무슨 자백을 하라는 거냐? 자 얼마든지 때려라. 또 때려봐. 그까짓 매쯤에 억지 고백을 할 줄 아느냐? 나를 죽이겠다구? 그래도 안된다. 묵숨이 두려워 거짓 고백할 내가 아니다. 나는 홍동지다. 반역을 하고 싶으면 왜 숨어서 하겠느냐? 떳떳하게 앞에서 하지. 차라리 내 머리를 쪼개서 그안을 들여다 봐라. 만일 아무 것도 없으면 어쩔테냐? 내 그때는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아이구 머리야. 이놈의 불개미떼들. 모두 밟아 죽여야지 (발을 구르며)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닌다. 배신자들. 너희들 얘기를 믿을수가 없다. 가슴을 열어라. 왜 도망을 가? 숨기는 게 없다면 왜 떳떳하게 가슴을 못 내밀지? 더러운 것들. 그렇게 살면 인생이 즐겁더냐? 죽어라. 죽어. 너희같은 놈들은 백번 죽어도 모자란다. (숨을 헐떡이며) 지독한 놈들이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구나. 왜 이렇게 답답하지? (의관을 벗어 던지며) 안돼겠다. 독약을 뿌려아지. 독약. 독약을 어디에 두었느냐? (퇴장)
(박사도 허겁지겁 홍동지를 따라 퇴장한다.)
시녀 장: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그 순간이……. 드디어 오기는 왔구나. 그런데 왜 하필 이런때 저런 해괴망칙한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홍동지가 벗어던진 의관을 집어들고) 옷은 왜 또 벗어붙이고 난리야? 옛날 버릇 다시 나오는 건가? 저런 상태로 혼례를 제대로 올릴수 있을런지 걱정이다. 자고로 행운이란 만나기도 어렵지만 옆에 붙들어 두기는 더욱 어렵다고 했겠다. 빨리 서둘러야겠다. 이런일일수록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퇴장)
7. 길 떠나는 세 도깨비.
망치: (노래조로) 큰탈랐다아 똥탈났다아 어떡하니이 난 몰른다아…….
눈물: (아이에게) 모두 네 잘못이야.
아이: 왜 내 잘못이니?
눈물: 네가 시작한 일이잖아?
아이: 그렇다고 내 잘못이야?
망치: 아무 잘못도 아니야. 일이 그렇게 됐을 뿐이지.
눈물: 왜 생각을 안해?
아이: 생각이 안나는 걸 어떻게 해?
눈물: 불쌍하지도 않아?
망치: 모두 소용없어. 이제 구제 불능이야
(눈물은 울기 시작한다.)
아이: 울지마.
눈물: 슬픈데 어떻게 안우니?
아니: 이건 순전히 인간이 우릴 실망시킨 거야, 슬퍼할 것 없어.
눈물: 바보야! 그러니까 슬픈거야.
망치: 이제 어디가서 놀지?
아이: 산으로 가자. 깊은 숲속에 짐승들이 많잖아?
망치: 야! 도깨비 위신이 있지, 짐승들하고 어떻게 노냐?
아이: 너 짐승이 인간 보다 훨씬 낫다. 몰라?
망치: 정말?
아이: 빨리 가자. 이러고 있다간 우리까지 돌아버리겠다.
(세 도깨비, 하늘을 날아 사라진다.)
8. 독침
(홍동지, 옷을 벗은 채 보료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고 그 옆에 시녀 장이 앉아 있다. 약간 떨어져 박사가 서 있다.)
홍동지: 하늘천 따지 검을 현 누루황 집우 집주 넓을 홍 날일 달월 어……. 으음……. 선생님, 이게 무슨 자더라?
박사: 영자입니다. 찰영.
홍동지: 그래 맞다. 찰영 누루황……. 이게 무슨 자지?
박사: 진자입니다. 별진.
홍동지: 별진? 별진……. 으응……. 젠장, 공부가 어려워 골치가 아퍼. 공부가 ……. 왜 해? 쳇 (책을 집어 던지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며) 선생님,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러께. 공부 열심히 할께.
박사: 이제 공부는 그만 하셔도 됩니다. 폐하!
홍동지: 폐하? 폐하가 왔어요? 잘못했어요, 폐하. 나……. 머리가 아퍼. 머리……. 때리지마……. (벌떡 일어나며) 피……. 피다.
시녀 장: 폐하!
홍동지: 폐하! 피가나. 머리가 아파.( 박사에게) 폐하, 머리가 아라.
박사: 자리에 가서 누우십시오.
홍동지: 으응 (자리로 가서 누우며 시녀 장의 손을 잡는다. 눈을 감으며 엄마야). 폐하가 공부하지 말래.
(홍동지는 시녀 장의 가슴에 손을 넣는다 시녀 장 울며 홍동지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어 홍동지를 잠재운다.)
홍동지: 엄마야……. 엄마……. 잠든다.
(왕비 등장)
왕비: 이웃나라에서 온다던 의원은 어찌 되었소?
박사: 예. 이제 곧 도착 한다고 전갈이 왔습니다.
왕비: 좀 어떠신가?
시녀 장: 잠이 드셨습니다.신열이 높으십니다.
왕비: 여전히 헛것을 보시더냐?
시녀 장: 그러하옵니다.
왕비: 그동안 국사에 너무 정신을 쏟으신게야. (머리를 짚어보며) 불덩이 같지 않으냐? 찬 물수건으로 계속 열을 식히거라.
시녀 장: 예
(전령 등장)
전령: 도착하셨습니다.
왕비: 어서 안으로 모시어라.
전령: 안으로 듭시라신다. (의원 등장하여 홍동지의 머리맡에 앉는다.)
왕비: 병세에 대해서 들으셨지요.
의원: 예 (몸의 이곳 저곳을 만져 보고 맥을 짚으며) 뇌 속에 균이 번진 것 같습니다.
왕비: 어찌하면 좋겠소?
의원: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마는…….
왕비: 그래요?
의원: 예. 그런데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 …….
왕비: 어떤 위험인가요?
의원: 침을 바로 뇌 속까지 짚어 넣는 겁니다.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박사: 그렇다면 곤란하지요.
시녀 장: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의원: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있어다 오늘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왕비: 그렇다면 그 방법을 쓸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소?
의원: 그렇습니다.
박사: 의원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의원: 예예?
박사: (왕비에게) 이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는것이 순서라 여겨집니다
왕비: 박사! 왕의 생명이 이 분 손에 달려 있소.
의원: (자리에서 일어나며) 저는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의논하셔서 결정이 되면 알려주십시오.
왕비: 결정은 내가 한다. 지금 시술을 해 주시오.
의원: 예. (의원은 침통에서 긴 침을 꺼내 홍동지의 머리에 꽂는다. 홍동지는 움찔하더니 꿈틀거리며 깨어난다.)
홍동지: 무울. 물.
(시녀 장은 대접에 물을 가져다 홍동지에게 바친다. 왕비와 의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홍동지의 옆에서 물러난다.)
홍동지: (놀라서 물그릇을 떨어뜨리며) 너……. 내……. 내……. 내관……. (의원은 가발을 벗고 수염을 뜯어낸다. 내관이 의원으로 변장을 한것이다. 홍동지는 일어나 비틀거리며 내관에게 다가간다.)
내관: (됫걸음치며) 너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봐라. 독을 묻힌 침이 네 뇌속에 꽃혀 있지 않느냐? 네가 역적질을 하고도 무사할줄 알았느냐?
홍동지: (비틀거리면서 내관에게 다가가) 너……. 아……. 아……. 간……. 아아…….
왕비: 어디 할말이 있으면 해 보거라.
홍동지: 나……. 아……. 아홉……. 어……. 이……. 억……. (홍동지는 천지를 흔드는 커다란 비명을 지르더니 시녀 장에게 다가간다.)
홍동지: 어……. 어……. 엄마야.
시녀 장: 폐하! (홍동지는 큰 나무둥치가 넘어가듯 쿵 소리르 내며 쓰러진다. 시녀 장은 홍동지에게 매달려 운다.)
왕비: 사람이건 짐승이건 은혜를 모르는 것은 죽어 마땅하다. 짐승 같은 것을 데려다 사람을 만들어 줬더니……. 온갖 풍파만 일으키다가 결국은 그렇게 끝나는 구나. 내 한때 그토록 마음을 쏟았건만 모두가 헛일. 어디 인생에 마음 먹은대로 되는 일이 하나나 있더냐? 그래서 인간이란 근본이 좋아야 하는법. 힘도 지혜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이 불쌍한 것의 장례나 잘 치루어 주어라. (왕비 퇴장한다. 내관도: 왕비를 따라 퇴장하고 박사와 전령도 이들의 뒤를 이어 퇴장한다.)
9. 죽은자를 위하여.
(맹 대장을 비롯하여 놀음바치들이 창을 하며 인형극 무대를 밀고 나온다. 모두 관복을 벗고 예전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불사건립막이 진행되는 동안 시녀 장만 홍동지 옆에 엎어져 흐느껴 운다.)
창: 어, 화상이 절을 짓네.
어, 화상이 절을 짓네.
어, 화상이 절을 지어라.
어, 화상이 절을 지어.
절을 지어라, 절을 지어.
어, 화상이 절을 지어라.
(상좌중들 나와 절하고 절을 짓는 동안 창이 반복된다. 절을 다 짓자 상좌 중들 절을 뜯는다.)
어, 화상이 절을 헌다.
어, 화상이 절을 헌다.
절을 헌다. 절을 헌다.
어, 화상이 절을 헌다.
(무대가 어두워지도록 창이 계속되고 그 속에 시녀 장의 비명. 이어 건강한 아이의 울음소리, 아기 홍동지가 시녀 장의 치마 속에서 기어나와 아장아장 걷는다. 용마를 타고 비상하는 아기 홍동지.)
[ 끝 ]
0
막이 내린다.)
플라자 호텔(Plaza Suite) Neil Simon/作(작)
김계영/역
박준용/연출
(등장인물)
제1부:잠깐 들린 손님
카렌 내쉬
샘 내쉬 -중년 부부
벨보이
웨이터
진 맥코맥-젊은 여비서
제2부:헐리우드에서 온 손님
웨이터
제스 키폴링거-헐리우드의 젊은 제작자
뮤릴 테이트-젊은 유부녀
제3부:결혼식 손님
노마 허블리
로이 허블리-중년 부부
밈시-신부
보든-신랑
무대는 뉴욕 플라자 호텔의 719호,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특실로 두개의 방으로 꾸며져 한쪽은 멋진 실내장식의 거실로,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출입문이 있다. 다른방은 침실로 커다란 더블베드와 목욕실로 통한 문과 큰 벽장이 있다. 양쪽방 모두에 큰 창문이 하나씩 있다.
(제1부: 잠깐 들린 손님)
(오후 4시쯤 방에 문 열리며, 벨보이가 작은 여행가방을 들고 들어와 거실의 전등을 켠다. 그 뒤를 따라 밍크 코트를 입고 실내화를 신은 카렌 내쉬가 들어온다. 코트속에는 값비싼 옷을 입고 있는데 모델이 입으면 멋져 보이겠지만, 불행히도 카렌에겐 잘 어울리지 않는다. 40대 중반의 카렌은 자기 나이에 별로 개의치 않고,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나이나 체중이 느는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밍크모자를 아무렇게나 눌러쓴채, 쇼핑백 한개와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다. 벨보이는 약간 열려져 있던 창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벨보이는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켠다음 나온다 카렌은 화장실로 가서 들여다 본다 벨보이는 문 근처에서 주춤거린다
보이: 뭐, 더 필요한게 있으신가요?
카렌: 아, 잠깐만요. 우선 이방이 진짜 그방인지 확인해야겠어요. (거실로 나오며) 지금 이방이 719호실인데, 옛날에도 719호실이었나요?
보이: 네, 여긴 719호실 맞습니다
카렌: 아니 왜 호텔에선 가끔 방번호를 바꾸잖아요. 혹시 이방이 723호나 715호로 바뀌었던 적 없어요? 왜냐하면 난 꼭 719호실에 있어야 된다구요
(꽃을 가지러 침실로 돌아간다)
보이: 글쎄요, 전 여기서 일한지 2년 되었지만, 방 번호가 바뀐 적은 한번도 없는데요
카렌: 사보이 호텔 826호에서 일어난 사건 알죠?
보이: 모르…….겠는데요
카렌: (거실로 돌아와 소파 테이블에서 꽃포장을 푼다) 몰라요? 거기 826호에서는 아주 유명한 살인사건이 났는데, 얼마 지나서는 그방에서 불이 났죠. 그리구 1년 있다가는 웬 부부가 동반자살을 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826호실에 들려고 하지를 않아서, 결국 그 방은 창고가 되고 말았죠. 그러니까 이제 사보이 호텔엔 826호가 없다구요!
보이: 그야 사보이 호텔은 통채로 없어졌죠. 2년전에 헐렸거든요
카렌: (믿지 못하겠다는 듯 보이를 쳐다보다가 창문가로 간다) 뭐에요? 어마나, 세상에 진짜 사보이 호텔이 없어졌네! 그 자리에 선 저 괴물같이 큰 빌딩은 뭐죠?
보이: 아, 네. 제네랄 모터스 본사 건물이죠
카렌: 좌우간 요즈음은 구식이면 죄다 없어지는군!
보이: (다른 창문을 가리키며) 이쪽 경치가 좀 낫습니다
카렌: (그쪽 창문으로 가서 내다본다)그래요. 하지만 이 경치를 얼마동안이나 볼 수 있을까? 앞으로 5년이면 센츄랄 팍도 없어질꺼에요
보이: 설마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카렌: (소파 테이블의 꽃병에 꽃을 꼽기 시작한다) 틀림 없어요!그래서 5년뒤에는 저 창문에서 내다보면 또 무슨 커다란 빌딩이 보이고, 나무라고는 한그루 있을까 말까 할꺼에요
보이: 하긴 5년이면 저도 여기 없을테죠
카렌: 어머나,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군요!
보이: 무슨 소문요?
카렌: 플라자 호텔이 헐린다는거요
보이: 네? 여기가 헐려요?
카렌: (창문가에 꽃병을 놓는다)하긴 뭐 소문이니까, 확실히는 모르죠. 허지만 언젠가 헐리기는 하겠죠
보이: 전 그런 소리 못들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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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호텔(Plaza Suite) Neil Simon/作(작)
김계영/역 박준용/연출
(등장인물)
제1부: 잠깐 들린 손님
카렌 내쉬
샘 내쉬 -중년 부부
벨보이
웨이터
맥코맥-젊은 여비서
제2부:헐리우드에서 온 손님
웨이터
제스 키폴링거-헐리우드의 젊은 제작자
뮤릴 테이트-젊은 유부녀
제3부:결혼식 손님
노마 허블리
로이 허블리-중년 부부
밈시-신부
보든-신랑
무대는 뉴욕 플라자 호텔의 719호,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특실로 두개의 방으로 꾸며져 한쪽은 멋진 실내장식의 거실로,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출입문이 있다. 다른방은 침실로 커다란 더블베드와 목욕실로 통한 문과 큰 벽장이 있다. 양쪽방 모두에 큰 창문이 하나씩 있다.
(제1부: 잠깐 들린 손님)
(오후 4시쯤 방에 문 열리며, 벨보이가 작은 여행가방을 들고 들어와 거실의 전등을 켠다. 그 뒤를 따라 밍크 코트를 입고 실내화를 신은 카렌 내쉬가 들어온다. 코트속에는 값비싼 옷을 입고 있는데 모델이 입으면 멋져 보이겠지만, 불행히도 카렌에겐 잘 어울리지 않는다. 40대 중반의 카렌은 자기 나이에 별로 개의치 않고,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나이나 체중이 느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밍크모자를 아무렇게나 눌러쓴채, 쇼핑백 한개와 작은 꽃다발을 들고 있다. 벨보이는 약간 열려져 있던 창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벨보이는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켠 다음 나온다. 카렌은 화장실로 가서 들여다 본다. 벨보이는 문 근처에서 주춤거린다.
보이: 뭐, 더 필요한게 있으신가요?
카렌: 아, 잠깐만요. 우선 이방이 진짜 그방인지 확인해야겠어요. (거실로 나오며) 지금 이방이 719호실인데, 옛날에도 719호실이었나요?
보이: 네, 여긴 719호실 맞습니다.
카렌: 아니 왜 호텔에선 가끔 방번호를 바꾸잖아요. 혹시 이방이 723호나 715호로 바뀌었던 적 없어요? 왜냐하면 난 꼭 719호실에 있어야 된다구요.
(꽃을 가지러 침실로 돌아간다.)
보이: 글쎄요, 전 여기서 일한지 2년 되었지만, 방 번호가 바뀐 적은 한번도 없는데요.
카렌: 사보이 호텔 826호에서 일어난 사건 알죠?
보이: 모르……. 겠는데요.
카렌: (거실로 돌아와 소파 테이블에서 꽃포장을 푼다.) 몰라요? 거기 826호에서는 아주 유명한 살인사건이 났는데, 얼마 지나서는 그방에서 불이 났죠. 그리구 1년 있다가는 웬 부부가 동반자살을 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826호실에 들려고 하지를 않아서, 결국 그 방은 창고가 되고 말았죠. 그러니까 이제 사보이 호텔엔 826호가 없다구요!
보이: 그야 사보이 호텔은 통채로 없어졌죠. 2년전에 헐렸거든요.
카렌: (믿지 못하겠다는 듯 보이를 쳐다보다가 창문가로 간다.) 뭐에요? 어마나, 세상에 진짜 사보이 호텔이 없어졌네! 그 자리에 선 저 괴물같이 큰 빌딩은 뭐죠?
보이: 아, 네. 제네랄 모터스 본사 건물이죠.
카렌: 좌우간 요즈음은 구식이면 죄다 없어지는군!
보이: (다른 창문을 가리키며) 이쪽 경치가 좀 낫습니다.
카렌: (그쪽 창문으로 가서 내다본다.)그래요. 하지만 이 경치를 얼마동안이나 볼 수 있을까? 앞으로 5년이면 센츄랄 팍도 없어질 꺼에요.
보이: 설마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카렌: (소파 테이블의 꽃병에 꽃을 꼽기 시작한다.) 틀림 없어요! 그래서 5년뒤에는 저 창문에서 내다보면 또 무슨 커다란 빌딩이 보이고, 나무라고는 한그루 있을까 말까 할꺼에요.
보이: 하긴 5년이면 저도 여기 없을 테죠.
카렌: 어머나,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군요!
보이: 무슨 소문요?
카렌: 플라자 호텔이 헐린다는 거요.
보이: 네? 여기가 헐려요?
카렌: (창문가에 꽃병을 놓는다.) 하긴 뭐 소문이니까, 확실히는 모르죠. 허지만 언젠가 헐리기는 하겠죠.
보이: 전 그런 소리 못들었는데요
카렌: (침실로 가서 가방을 끌어 침실의 벽장앞에 놓는다.) 그야 직원들 한테는 비밀로 하고 있겠죠. 하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이 플라자 호텔을 헐고 52층짜리 특급호텔이 들어선데요.
보이: 여긴 지금도 특급호텔인걸요.
카렌: 하지만 구식 특급호텔이죠. 사람들은 새걸 좋아하니까 구식은 인기가 없어요. (거실 가구위에 있는 전화의 수화기를 든다.) 나같이 구식인 사람이나 이렇게 찾아올까, 아무튼 난 이방이 좋으니까 됐어요.
보이: 네, 그럼 뭐 필요하신게 있으시면…….
카렌: 아, 잠깐만요 (전화 내려놓고 침실로 가서 지갑을 열고 동전을 찾는다.) 동전이 다 어디갔나?
보이: 괜찮습니다, 부인
카렌: 괜찮긴, 무슨 소리야? 당연히 팁을 받아야지! (결국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갖고 온다.)자, 여기 있어요.
보이: 감사합니다.
카렌: 뭐 솔직히 말해서 난 1달라씩이나 팁으로 줘본일은 없어요.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기념일이기 때문에 크게 선심을 쓰는 거라우.
보이: (문을 열고 나가려한다.) 아 그러세요 축하드립니다.
카렌: 고마워요. 바로 24년전 오늘 남편과 결혼해서 바로 이방에서 첫날밤을 지냈죠. 이방 719호 맞죠?
보이: 네,719호 틀림없어요.
카렌: 24년전엔 몇 살이었어요?
보이: 그야, 저는 그때에 아직…….
카렌: 24년전에 난 스물둘이었고…….그때 나는…….그런데 지금은 요모양의 할머니가 되었죠.
보이: 별말씀을, 할머니라뇨! (웃으면서) 자, 즐거운 저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편히 쉬세요!
(나간다.)
카렌: 고마워요. 아참! (보이다 다시 고개 내민다.) 그리구, 소문이 꼭 틀리는건 아니니까, 잘 생각해서 서둘지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요! (보이는 고개 끄덕이고 퇴장한다 카렌은 침실로 가서 옷장문에 붙어있는 큰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 모자를 벗어 가구위에 놓는다.) 그래, 할머니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중년부인임엔 틀림없어! (침대옆에 있는 전화를 집어 침대위에 놓고는 수화기를 집어든다. 여전히 밍크 코트는 입은채다.) 룸써비스 부탁해요! (허리를 굽혀 신발을 벗으려고 낑낑댄다.) 에이구 이런 빌어먹을! (전화에) 네? 아, 아녜요. 교환, 그냥 혼잣말이에요. (일어나서 코트를 벗으며) 여보세요? 룸써비스죠? 저, 여긴 719호실의 내쉬부인인데요. 잘들어요! 우선 차갑고 아주 맛잇는 샴페인 한병 갖다줘요……. 네? 그게 그러니까 프랑스제인가요?…….-네 괜찮겠군요. 좋아요. 컵은 두개! 그리고 오드볼하구! 아 잠깐요. 앤쵸비는 빼주세요. 오드볼엔 항상 앤쵸비가 들어가는데 우리 남편은 앤쵸비를 먹지 않거든요. 나도 아주 싫어하구, 그러니까 앤쵸비를 꼭 빼주세요! 앤쵸비 대신 훈제연어를 넣거나 아니면 캐비아를 섞어 넣든가요……. 네, 719호실의 내쉬부인……. 앤쵸비 빼는거 잊지 마세요! (전화 끊는다.) 이젠 틀림없이 앤쵸비를 빼겠지? (전화를 다시 테이블에 놓는다.) 세상에 사보이 호텔이 없어져 버리다니! (다시 실내화를 벗기 시작한다. 전화벨 울린다. 거실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아 여보! 어디 계세요?……. 여보, 이리 오세요…….여기가 어디냐구요? 719호요! 아니, 당신은 기억 안나요? 719호 719호실요!……. 네, 그래요! (전화 끊는다.) 아니, 이방을 기억 못하다니! (쇼핑백으로 가서 잠옷을 꺼낸다. 휜히 비치는 야한 것인데 거울 앞에서 몸에 대본다. 물론 매력적인 모습은 못된다 전화벨 울린다. 잠옷 내려놓고 침실의 전화를 집어든다.) 여보세요?…….아, 안녕하세요 미쓰 맥코맥! 아뇨, 샘은 아직 안왔어요. 하지만 곧 올꺼예요…….- 네, 그대로 전해 드리죠. 그런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이가 요새 아주 피곤해 보이니까 오늘밤 만이라도 회사일에 신경 안쓰게 해줄수 있죠?…….- 알았어요. 그이 오는대로 전화하라고 할께요. 네, 들어오는 즉시 전하하도록 할께요. 안녕! (다시 신발을 벗으려고 허리를 굽히는데 잘 안된다. 결국 간신히 한쪽을 벗고 다른 쪽을 벗으려는데, 도어벨 울린다.) 잠깐 기다리세요! (신을 벗으려 낑낑대고,도어벨은 계속 울린다.) 이놈의 신발이 왜이리 말썽이지? 좀 기다리라니까요! (도어벨이 계속 울린다.) 알았어요, 알았다니까, 가요! 가! (한쪽은 신은채로 절뚝거리며 문으로 간다.) 스물네번째 결혼기념일에 이꼴이 뭐야? (문을 연다. 샘이 들어선다. 그는 50세인데, 자신의 나이를 감추고 싶어 한다. 균형잡힌 몸매에 말쑥한 차림으로, 양복은 아주 젊은이에 어울릴 스타일로 고급이다. 고급가죽으로 만든 서류가방을 들고있다. 그는 정돈되어 있고, 능률적이며, 합리적인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어서와요 여보! (샘은 무뚝뚝하게 카렌 곁을 지나 방안을 둘러 본다.)
샘: 망할놈! 한시간 반동안이나 그놈의 치과의자에 앉아 있었네! (가방을 옆에 놓고 코트를 벗는다.)
카렌: (문을 닫고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채) 여보,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샘: 지겨운 에프엠 음악소리에, 지저분한 의사놈 떠드는 소리를 잔뜩 들었더니, 머리가 다 멍멍해! (거실에 있는 거울 앞에 서서 입을 벌리고 이빨을 들여다 본다.) 나한테 전화 온거 없어?
카렌: 여보, 이방 기억 안나요? (그에게 다가간다.)
샘: (여전히 이빨을 살펴본다.) 젠장, 이제 두개만 더 썩으면 치료는 끝나는거야! (돌아서서 카렌에게 이빨을 보인다.) 여보, 내 이빨 어때?
카렌: (눈이 부신듯 손을 들어 눈알을 가린다.) 오, 눈이 부셔요!
샘: 너무 하얀거 같지 않아? (돌아서서 다시 거울을 본다.) 이빨이 너무 하얗지 않냐구!
카렌: 아뇨, 아주 멋있어요. 당신의 파란 샤쓰랑 잘 어울리네요.
샘: (여전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 의치는 색갈이 변치 않는대. 100년후 무덤속에서도 이 색깔 고대루 있을꺼래!
카렌: 대단하군요. 무덤속에 누운 송장이 되어서두 이빨은 그대루 있을꺼라니! 당신 이방 기억 안나요?
샘: (손목시계를 보며) 벌써 네시반인가? 그럼 회의가 끝났을텐데, 전화온거 없어? (코트와 가방을 침실로 가져가, 코트는 가구위에 가방은 침대위에 놓는다.)
카렌: 사무실에서 미쓰 맥코맥이 전화했었어요. 들어오는대로 전화해 달래드군요.
샘: (짜증을 부리듯) 거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어?
카렌: 아, 그야 당신의 그 하얗고 눈부신 의치 얘기하느라고 다른 얘기는 할틈도 없었잖아요! 우리 오늘을 어떻게 축하하죠? (꽃병을 들고 침실로 간다.)
샘: (카렌의 얘기를 못듣고 전화를 든다.) 267-5900번 부탁합니다. 카렌이 절뚝거리며 들어오는걸 보고는) 아니, 당신 다리가 왜 그래?
카렌: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야 한쪽다리가 다른쪽 보다 짧으니까 그렇죠. 내다리가 이런거 몰랐우? 벌써 몇년이나 이러고 다녔는데.
샘: (전화에) 아, 로렌? 나야 내쉬야! 미쓰 맥코맥 바꿔줘! (그리고는 자신의 모습을 옷장의 거울에 비쳐본다.) 아 오늘은 이발소에도 못가고,잠시 햇빛 쏘일틈도 없었군! (카렌이 열려진 화장실 속에서 노래 부른다.) 아, 미쓰 맥코맥?……. 저 앤더슨이 전화했었지? 그사람 계약서는 보내왔어?……. 아직도? (노래소리가 시끄러운듯 한손으로 귀를 막는다.) 나이저는 어떻게 됐어?……. 음……. 음 (그는 침대옆 테이블에서 메모지를 집어 침대위의 서류가방위에 놓는다. 연필을 찾는다.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는 카렌에게 손짓한다.) 그래 보기에는 어때? 오, 그래?음……. (카렌에게) 아니 뭐해? 연필 좀 찾아줘! (카렌은 급히 침대 양쪽에 있는 테이블을 살피고 가구를 살펴본다.) 그럼 얼마나 되는거지? 위에서 부터 불러봐! (카렌은 계속 연필을 찾고 있다. 그녀는 급히 거실로 절뚝거리며 뛰어가서 거실을 둘러보다가 소파 테이블에 있는 자기 지갑으로 가서 집어든다.) 맞는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견적서하고 대조를 해봐야겠어……. 내일아침? 안돼 시간없어. 잠깐 숫자를 다시 불러줘봐. (수화기에 손을 대고 화난듯 속삭인다.) 카렌! 연필좀 달라니까! (카렌은 정신없이 지갑을 뒤지고 있다.) 그러니까 185가 315 로 바뀐건가? 175가……. (카렌은 립스틱을 지갑에서 꺼내 샘에게 껑충 껑충 뛰어온다 샘에게 립스틱을 준다.) 잠깐, 175에서……. (쓰려다가 말고 카렌을 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