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읽은 시편의 표제를 보시면 고라 자손의 시라고 합니다. 고라 자손의 레위인들입니다. 그들은 성막의 문을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지어진 후에는 자연스럽게 성전의 문을 지키고, 또 문에서 찬송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10절을 보면 악인의 집에 거하는 것보다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것이 좋다고 합니다. 인도자를 따라서 깃딧에 맞춘 노래로 역시 공동체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공동체로 모였을 때 부르는 노래이지만, 내용은 고라 자손이 집에서 성전을 향해서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4절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의 장막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고라 자손은 성전의 문지기 역할을 맡았는데,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지켰을 것입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너무 좋아서 순서가 되어서 이제갑니다.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로 성전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마치 상사병에 걸리는 것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전에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임재하신 거룩한 집에 즐거운 마음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비록 가는 길이 험하고 어려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힘으로 마음과 육체가 회복되어 마침내 성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시인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얼마나 갈망하는 지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성전에둥지를 틀고 있는 새들을 부러워합니다. 성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참새와 제비들은 자기들의 새끼를 두는 집을 성전에 지어서 매일 매일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지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복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마음껏 찬송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1-4절이 성전에 도착하기까지 시인의 마음, 곧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고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지 보여주었다면이어지는 5절에서 8절은 길을 떠나는 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가는 길이 비록 힘겨운 일이지만 그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 힘을 공급 받습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다는 말은 간절한 마음으로 성전으로 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힘을 얻어서 하나님과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날 때에도 그곳에 마실 물이 항상 있을 것이며 시의적절한 비가 내려서 더위를 이겨날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절을 보시면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마침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기쁨으로 시작하는 이 순례길은 때로 힘듭니다. 하지만 그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을 얻고 더 나아갈 수 있고, 마침내 그 길고 길었던 순례의 길 끝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순례자는 그 여정 가운데 만군의 하나님,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께 기도를 들으시고 귀를 기울여 달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외침에 하나님께서 힘을 공급하시고, 이 눈물 골짜기 같은 삶에서도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순례길 가운데 경험하기 되는 것입니다.
또 마침내 성전에 갔을 때 시인은 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 왕이 있습니다. 그왕이 바르게 통치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온 이스라엘에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왕은 공의와 예배에 대한 실제적인 책임이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왕을위해 기도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시인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에 도착해서 찬양합니다. 긴 순례의 길 끝에 도착한 성전에서 시인은 그곳에서 하루가다른 어떤 좋은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낫다고 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할지라도, 또 그 일 일시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악인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악인들과 함께 빌딩에 사느니 하나님과 함께 천막에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좋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태양과 같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참된 방패, 곧 참된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영광을 나누어 주시며 모든 좋은 것을 아까지 않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마지막으로 찬양의 고백으로 마칩니다. 주께 의지하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시편은 이동에 대한 시입니다. 예루살렘 밖에서 성전 안으로 이동합니다. 일상적인 사모하는 삶에서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는 삶으로 이동을 노래하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에서 멀어져 있는 것에서 가까이 가는 것으로 이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동은 순례자의 길입니다. 이것은 크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인생 전 과정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을 향한 여정, 순례자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동시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오늘 시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일상에서 거룩한 삶으로 이동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성화에서 영화로 이동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거룩한 삶으로이동하는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월요일에서 토요일, 그리고 주일입니다. 주일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삶을 가지고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살아가고 다시 주일로 이동합니다. 이런 패턴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창조의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패턴이라고, 예수님은 부활로서 그 안식일을 지금의 주일로 완성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주일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토요일 저녁에 주일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공동체적으로 만나고 예배함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오늘 시편에서 고라 자손과 같이 일상 생활에서도 하나님과 만남,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고 사모하는 순례자의 길과 같았습니다. 끊임없이 일하는 세상 속에서, 마음으로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주일에 온 영적인 가족들과모여 함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 길을 준비했습니다.
이 시편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과연 우리가 그 순례의 길을 걸어 성전에 도착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물론 지금은 건물로서 성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만 임재하고 계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셔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셔서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로 모이는 그곳에 성령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 자리를 우리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 드릴 영원한 예배와 찬송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우리의 삶 전체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 과정은 녹록치 않을 수있습니다. 들짐승과 더위와 목마름이 그 길을 걸을 때 찾아 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더 주셔서 마침내 그분 앞에 우리를 서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일주일의 삶이 녹록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를 사모하여 일상을 감당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또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하시고 그분과 동행하도록 하셔서 참된 행복의 사람으로 우리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갈망하시고, 예배를통해서 주실 은혜를 사모하면서 한 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참된 기쁨과 위로와 힘과 능력이 넘칠 것입니다. 오는 주일에도 이 큰 행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