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시놉 쓰기 7
송하연
인간 존재의 딱한 점은 그들이 가끔 자기 삶의 복판에서조차 여기가 어디요, 같은 멍청한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다. 노인에게는 요즘이 그러했다. 인생의 종착지를 윤곽이나마 알게 되리라 믿었던 노년, 그는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이쯤이면 한 사람의 생이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둘 시기였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간에 살아온 궤적을 하나의 모양처럼 설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필 그때 노인은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게임말처럼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수십 년 전 그토록 도망가고 싶었던 쇠락한 고향. 성공해서 보란 듯이 돌아오겠다고 큰소리쳤던 곳에, 노인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초라하고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월의 흐름에 변한 구석이 있다고는 하나, 그에게는 여전히 고향의 골목길이 눈 감고도 훤했다. 가난과 허름한 벽돌집, 골목마다 들러붙은 어린 날 자신의 열패감 같은 것들이 폐부로 먼저 와닿는 곳.
노인은 반평생을 이곳으로부터 멀어지는 데 썼다. 더 정확히는 가난으로부터, 아버지 같은 삶으로부터, 너절했던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그때의 그는 그것을 전진이라고 불렀다. 더 큰 도시로, 더 나은 생활로, 더 존경받는 이미지로. 한 걸음씩 멀어질 때마다 과거 또한 저만치 뒤에 남겨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고향에 돌아온 후부터 전진과 후진이 좀처럼 분간되지 않았다. 가게 유리창에 문득 비친 것은 기억 속 아버지와 놀랄 만큼 닮아버린 성마른 노인이었다. 유독 망설임이 길던 젊은 시절의 유약함마저 푹 꺼진 눈밑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듯했다.
그토록 오래 걸었음에도 노인은 아직도 자신이 어디를 향해 걸었고 결국 어디로 도달했는지 알 수 없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들여 실은 같은 모퉁이 하나를 굽이굽이 돌았던 듯했다. 멀리 왔다고 믿었건만 이제야 그 끝을 돌아 다시 낯익은 벽돌담과 마주한 것은 아닐까. 고작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토록 오래 걸었던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허탈함보다 먼저 묘한 현기증이 일었다. 인생에서마저 헛도는 이방인의 감각. 한창 참여 중이던 게임의 규칙이 불현듯 낯설어질 때의 멍한 상태인가.
이후 노인은 관성처럼 매일 길을 나섰다.
떠나지도 않을 지하철역 의자에 죽치고 있는 일마저 초조해지면, 불쑥 몸을 일으켰다. 종착지는 없었다. 그저 어디로든 가야만 한다는 막연한 강박이 빈속을 할퀴어댔다. 골목을 돌고, 언덕을 오르고, 다시 모퉁이를 돌았다. 길을 잃을 수조차 없을 만큼 익숙한 곳에서 그는 자꾸만 멈추었다. 여기가 어디요. 누구에게 묻는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