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1-11)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하루는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는 불량소년을 보았다.
『새를 어떻게 할래?』
스펄전이 묻자 소년은 대답했다.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
스펄전은 2파운드를 주고 그 새를 사서 멀리 날려 보냈다.
이틀 후 부활 주일.
스펄전은 이렇게 설교했다.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 입니다.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7-9).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나귀는 당시 보통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 어느 곳에도 예수님이 나귀를 타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단 한 군데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타셨다고 예루살렘성에 입성 하셨다.
3년 동안의 공생애 가운데 한 번 나귀를 타신 일이 기록되었다면 여기에는
무엇인가 깊은 의미가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그리고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이란 것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와 나와 함께하시고 내 안에 계신 다는 것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종려주일 오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는 장면 입니다.
많은 군중이 나와 호산나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 하셨다.
'호산나'는 히브리어 '호시안나'(Hosianna)라는 말을 헬라적 표현으로 발음한 것인데, 본 뜻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또는 "아무쪼록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이다(시 118:25; 삼하 14:4; 시 20:9; 마 21:9; 막 11:9; 요 12: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면 이 땅에 우리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왜 오셨나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천국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오셨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주님이 이 땅에서 공생에를 시작하며 먼저 제자들을 부르고 그들과 함께 천국 복음을 선포하였다. 산상수훈을 통한 생명의 말씀과 이 땅에 살아가야되는 새 계명을 주시고 많은 귀신을 쫒고 ,어렵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눈먼봉사, 앉은뱅이, 중풍병자 등을 치료하였으며 오병이어의 기적같은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눈 먼 자를 고치신 것은 너희도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를 보라, 앉은뱅이를 고치신 것은 너희도 일어나라, 중풍병자를 고친 것은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바르게 움직여 진리안에 바로서 라는 것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많은 비유를 통해 생명 복음을 우리에게 영적으로 성장시키셨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다.
2.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9).
종려주일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알게하는 이유는 우리의 죄를 사하고 천국의 소망으로 푯대를 향하게하시고
영생의 구원은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사함을 받고 주님을 닮는 삶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나귀새끼를 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는 이야기 입니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힘들고 조금 귀찮아도 나귀새끼를 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하고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니 힘들고 박수도 받지 못하고 비난과 조롱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이 주님의 모습이요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칭찬하시는 모습이요 천국에서 진정 큰 자로 인정받을 모습입니다.
고난의 주님을 바라보며 어린 나귀를 타시고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참 자유 함을 주기 위하여 오셨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 2:14).
고난 받는 종은 이런 고난 속에서도 전혀 반항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그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편 강도가 너무 힘들고 화가 나서 막 소리를 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라 너무 힘들어 죽겠다’이것은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드니까 소리칠 수 있고요 반항할 수 있고 욕하고 대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난의 종은 소리치고 반항하는 대신에 비폭력적이고 무저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진정 우리를 위한 모습이고 우리를 위해 고난과 고통을 참고 이김으로 우리를 인류를 자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의 생명을 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4.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고난과 희생과 헌신으로 이 땅에 평화와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자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들의 사명이 있습니다.
천국복음을 들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진정한 진리를 알 수 있도록 우리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셨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
십자가의 주님은 마지막 까지 우리를 위한 순종하는 모습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으며 우리를 마지막까지 사랑한다는 것을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하나님나라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인내하시는 모습을 묵상하며 우리도 부활의 생명으로 자유하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