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월 7일에 책 ‘평신도 선교사’를 출간하였습니다. 아래는 책을 내게 된 동기입니다.
책을 내게 된 동기
나는 2007년 7월에 기독교사이버대학(평신도지도자) 1년과정을 수료하였다. 과목은 성경강해, 교회행정, 교회교육 그리고 자율학습 문제지였다. 6개월 마다 시험을 치렀고 평균 60점이 넘어야 수료가 되었다. 교회에서 배우지를 못 했던 것들이 많아서 기뻤다. 신선했다. 신앙에 철이 드는 기분이었다. 교회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 세가지, 가장 오래된 고참교인, 헌금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 그리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목사들이 좋아하고 칭찬하는 사람들인데 이상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들은 교회에서 말씀 하나 붙들고 고난 받고 있는 소수의 사람(remnant)들을 죽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진짜 믿음이구나!! 당회 회원인 목사와 장로는 필히 이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춘천으로 이사하여 2010년 1월에 춘천동부교회에 등록하였다. 박창운 담임 목사는 제자교육, 구약과 신약의 파노라마, 선교관학교, BTC(basic training course) 등을 열심히 가르쳤다. 2012년 12월에 바이블아카데미(평신도선교사) 1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종로 5가에 있는 여전도회관 1001호 사무실에 찾아가서 김병삼 장로도 만났다. 유명 목회자와 신학자로부터 성경66권 강해를 들은 것이다. 즐거웠다. 연이어 10년간 스스로 심도있는 성경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거듭남(reborn)을 깨달았다. 사물과 사람을 성경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당회 회원인 목사와 장로는 필히 이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그해 여름 8월에 대구제일교회에서 장로들이 박창운 목사를 청빙하러 동부교회를 방문하였다. 박목사가 동부교회를 떠날 수도 있는데 장로들이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박목사는 장신대를 수석졸업하였고 영락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춘천동부교회에 부임한지 2년만이다. 그는 2010년 9월에 동부교회를 떠났다. 2011년 4월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 앞에서 목회하던 김한호 목사가 부임했다. 나는 베드로 2부에서 성경공부를 같이 할 사람을 찾았다.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
바이블아카데미의 역사는 1982년 한국미디어선교회 초대 총재 한경직 목사의 권유로 비디오 선교의 원조 김병삼 장로가 사재 5억원을 기증하여 교단-교파를 초월한 신앙무장의 기회로 한국미디어선교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2010년 5월 22일 국민일보 24면 게재 기사에서 강사문 장신대 명예교수(박사)는 온라인 바이블아카데미 성경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신학생들도 성경66권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신학교를 졸업한다고 지적하였다. 이건 목사들을 위한 과정이었고 한국교회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사업이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교회로 문을 닫게 적도 있었다. 예배를 온라인으로 집에서 드리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초대 교회를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초대교회 때는 예배당, 노회, 총회도 없었다.
나는 2014년 7월 내블로그를 개설하여 문서전도를 한 지 10년이 흘렀다. 매일 수십명이 조회를 하고 2025년 2월 현재 누적 조회수는 2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성경공부하고 배우고 체험한 걸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네이버 내블로그와 다움 내카페에 올리고 있다. 나는 춘천동부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도 온라인 교육 수강등록 주소를 몇 번 알려주었다. 아직까지 수강했다는 소식을 못들었다. 춘천동부교회서 어언 15년이 되었다. 그간 신앙생활한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올해 79세다. 군대는 육군갑종장교 출신이다. 평생 직업을 두 번 가졌다. 군 복무 18년과 미8군 취업 22년이다. 군복무 중에 두번 보직해임 당했다. 첫번째는 1969년 이동에서 본부중대장(중위) 발령된지 3일만에 월남전에 갔다온 부대대장(소령)이 자기 집에 쌀이 떨어졌으니 사병식당에서 쌀 한 말을 보내라는 걸 불응했었다. 장교는 월남전 1년 갔다 오면 집과 논밭을 살 수 있었다. 당시 우리 군대의 급식이 열악했다. 두번째는 1978년 운천에서 통신중대장(소령)을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여단장(준장)이 서울 영등포에 이사간 자기 아파트에 민간 전화기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당시 민간(백색) 전화기 한 대 값이 지금의 아파트 한 채 값 정도로 비쌌다. 이걸 못하니까 구실을 만들어 보직해임에 견책처벌을 당했다. 군대에서 장군의 권세는 왕과 같았다. 무척 수치스러웠다. 상관의 갑질, 김일성과 싸우기 전에 먼저 내부의 부정 부패한 적들을 척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단장은 나의 연금수령 약점을 알고 있었다. 참모장(대령 육사14기)은 병과 내에서 악당으로 소문 난 사람이었다. 보직해임 당하고 타 부대로 전출되기 전에 아들이 태어났다. 1985년 4월 육군에서 제대 20넌이 안되어 군인연금은 못 받게 되었다.
1987년부터 십일조 하며 15년간 개봉동 애양교회에서 교회생활을 하는데 교인 중에 대대장(중령) 출신으로 군인연금을 수령하면서 전쟁기념관에 취업해 군인연금과 월급을 받는 교인이 있었다. 그의 십일조는 나보다 두 배가 넘었다. 담임 목사는 내가 십일조를 일부터 적게 내는 걸로 오해하고 나에게 사람이 짜다느니 목사를 무시한다느니 라는 말을 했다. 내가 목사가 안 되었으면 잘 살수 있었는데 너희들 때문에 고생한다는 태도였다. 목사의 갑질, 한심했다. 매년 15년 동안 십일조 봉투는 내 이름이 아니고 월수입이 없는 아내 이름으로 나왔다. 장로에게 물으니 목사가 직접 준비한다고 대답하였다.
교회에는 하박국 선지자 같은 정규 신학교를 나온 사람도 있고 아모스 선지자 같은 평신도 선교사도 있어야 한다. 나는 공식기관에서 인증한 평신도 선교사다. 그런데 춘천동부교회 김한호 목사는 나를 평신도선교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넝마주의 출신 두레마을 교회 김진홍(83세) 목사는 주일 예배 후에 어느 교인들이 십일조를 얼마나 했는지 기록한 리스트를 보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국에 그런 목사도 있구나!! 목사는 창세기부터, 로마서, 요한계시록을 필수 성경으로 삼고 성경66권(조직신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면서 디아코니아(실천신학)도 하면서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십일조와 헌금을 하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예배로 대신하고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교인들이 많다고 한다. 교회 헌금도 줄었다고 한다.
한경직 목사와 김병삼 장로의 숭고한 뜻은 한국교회 목사들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었다. 은혜는 수동태이지만 믿음은 능동태다. 그러나 김한호 목사는 디아코니아(실천신학)에 집중하느라 교인들에게 온라인 성경공부를 소개하지 않았다. 김한호 목사도 얼굴을 알리는 대외 활동을 위해 신차를 타고 다닌다. 전임 박창운 목사는 중고 소나타를 타며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는데 비교가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고 에베소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다. 교회건물 리모델링으로 교인들은 영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15년 동안 로마서 강해설교를 못들었다. 끝.
2025년 2월 7일
춘천 우두동에서 남기영 선교사